불교의 근본 신앙인 염불의 핵심은 살아서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태어나 업장을 소멸하고 성불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근본 신앙인 염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극락세계가 어떠한 곳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극락과 정토와 불국토를 구분하여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경전은 없다. 이러한 용어들이 혼잡스럽게 섞이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지금 극락과 정토와 불국토라는 용어를 새로운 개념으로 구분하려고 하는 것은 용어는 혼잡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개념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 개념을 구분하지 않는 한 부처님의 세계들을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필자가 앞으로 정의하려는 극락이 경전에서는 정토나 불국토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또 정토라고 정의하려는 개념이 불국토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며 또 불국토라고 정의하려는 개념이 정토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여 필자가 정의하려는 극락과 정토와 불국토의 개념이 구분이 안되어져 있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과 용어를 구분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극락과 불국토와 정토의 개념을 극락이란 아미타불이 머무시는 곳이며 불국토란 현재불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 곳이며 정토란 미래불이 머물고 계시는 곳이라고 정의하겠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7개의 산맥과 바다에 그리고 4개의 대륙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우주를 1소세계라 하며 이 1소세계가 1,000개가 모이면 1중세계라 하고 1중세계가 1000개가 모이면 1대세계라 하며 1대세계가 3개가 모이면 삼천대천세계라 하는데 이 삼천대천세계가 1분의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시는 범위라 하여 1불국토라 한다.
부처님에는 과거불과 현재불과 미래불이 있는데 과거불이란 과거에 이 세상에 오셔서 중생들을 제도하시고 가신 부처님을 말하며 현재불은 현재 사바세계에서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 부처님이며 미래불은 현재불 다음에 이 세상에 오셔서 중생을 제도하실 부처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국토를 현재불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 곳이라 정의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불은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이 계시다.
그렇기에 불국토 역시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이 있는 것이다. 그 중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불국토에 있어서의 현재불은 석가모니불인 거이다.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불국토의 과거불은 과거 7불이며 미래불은 미륵불이다. 그런데 『법화경(法華經)』에서는 현재불인 석가모니불의 불국토를 영산정토라 표현하고 있는데 어쨌든 여기에서는 현재불이 중생을 구제하시는 곳이니 불국토라 정의하겠다.
정토는 미래불이 머무는 곳을 정토라 정의하겠다. 미래불인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열반하신 후 56억 7천만년 후에 이 땅에 오신다 하며 지금은 도솔천 내원궁에서 이 땅에 오실 시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토란 도솔천의 내원궁이 되며 또 다른 불국토에 있는 미래불들이 머무는 곳이 다 정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토의 특징은 무엇인가.
중생들이 성불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업장을 다 소멸하여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지은 업은 받아서 소멸하여야 하며 새로운 업을 짖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불국토는 현재불이 설법을 통하여 이제가지 지은 업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과 또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짖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계시는 곳이다.
이에 반하여 미래불이 머물고 계신다는 정토는 이제까지 지은 업은 소멸시켜 줄 수 없지만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짖지 않게끔 함으로써 업장이 늘어남을 막아주고 미래불이 이 땅에 오실적에 같이 내려와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이제까지 지은 업을 다 받아 소멸하게 함으로써 성불시켜 주는 곳이다.
이에 반하여 극락은 새로운 업을 짖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제까지 지은 업도 다 받아 소멸되게 함으로써 극락에 왕생하면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오지 않아도 극락세계에 왕생한 것 만으로도 성불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중생구원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실지로 불국토의 현재불이나 정토의 미래불 모두 중생들에게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을 권유하고 계신다. 극락세계가 생긴 인연에 대하여 설하여진 경전은 『무량수경(無量壽經)』이다. 『무량수경』에 근거하여 극락세계가 생기게 된 인연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우주 어딘가에 있는 어느 불국토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그 불국토에는 과거 53불이 차례로 출현하시어 중생을 구제하시다가 53번째의 부처님이신 세자제왕(世自在王)부처님이 현재불로써 중생을 구제하실 대의 일이었다. 현재불인 세자재왕불이 머무시던 나라의 국왕이 국가와 재물과 지위를 버리시고 출가를 하셨다. 그리고 이름을 범장(法臧)비구라 하셨다.
법장비구는 자신만이 부처가 되는 길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어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들의 정토는 많으나 모두가 과거에 지은 업장을 소멸시켜 주는 장치가 없기에 완벽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새로운 업을 짖지 않게 해 줄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지은 업장도 다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정토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 방법을 그 당시 그 불국토의 현재불이신 세자재왕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러한 곳이 완성된 곳도 없고 시도하여 본 부처님도 없으시기에 세자재왕불은 법장비구가 세운 서원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방(十方) 불국토의 제불여래 아무도 그것을 모르심을 관하시고서 법장비구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법장비구를 데리고 현재불이 중생을 구제하시고 계시는 210억의 불국토를 보여주면서 그러한 정토를 만드는 방법을 찾도록 협조하여 주었다. 210억이 불국토를 모두 돌아 본 법장비구는 5겁 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그 중에서 가장 수승한 방법을 48가지를 선택하시고 그러한 정토를 만드는 수행에 들어간다. 이때 이분의 이름을 법장보살이라 부르게 된다.
이윽고 헤아릴 수 없는 무수억겁을 수행한 끝에 지금부터 10겁 전에 법장보살은 48원의 서원을 모두 성취하고 만인이 성불할 수 있는 정토를 만들어 부처님이 되시니 그 이름을 아미타불이라 하고 그 정토를 극락세계라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정토가 완성되자 모든 불국토의 현재불들과 모든 정토의 미래불들은 모두가 중생들에게 아미타불의 극락세계가 완성되었음을 알리고 중생들에게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을 발원하도록 권유하시게 되었다.
이것이 극락세계가 탄생되어진 인연이다. 법장보살이 세운 시원은 대단히 큰 서원이었다. 스스로 성불할 능력이 있는 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불할 수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한 명도 빠짐없이 구원하겠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원은 모든 부처님들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실천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세자재왕불은 법장비구에게 다른 부처님들이 중생을 구제하시고 계시는 현장을 보여주기 위하여 210억이 불국토를 함께 다니셨던 것이다. 210억이라는 숫자는 모든 부처님들의 불국토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불국토는 다른 부처님들이 모든 중생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서원과 실천방법을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시는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법장보살은 48가지의 서원을 5겁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선택해 한 명의 중생도 빠짐없이 구원될 수 있는 서원을 완성하신다. 그러기에 법장보살이 세운 서원은 모든 부처님들의 서원이 포함되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불 여래들의 서원을 48가지로 단축하면 아미타불의 48원이 된다. 그리고 이것을 네 가지로 단축하면 사홍서원이 된다. 또 이 사홍서원을 하나로 단축하면 제18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노래할 때 18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 보면 아미타불의 극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의 불국토를 지나가면 있는 세계라고 한다.
앞의 제 4장 불교의 세계관에서 설명하였듯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소세계라 하였을 때 이 소세계가 천이 모여야 1 중세계가 되고 또 1 중세계가 천이 모여야 1대세계가 되며 1 대세계가 3개가 더 모여야 3 천대천세계가 되며 이 3 천대천세계를 1불이 중생을 구제하시는 범위라 하여 1불국토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0만억의 불국토라는 거리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리이다.
그러기에 극락세계는 우리가 우주선 등의 어떠한 물체를 타고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로지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생각하였을 때 극락세계는 10만억의 불국토를 지나야 한다는 말은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또 그 만큼 아미타불로 향하는 우리들의 마음의 문이 얼마나 굳게 닫혀져 있는가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서쪽이리는 방위 역시 동서남북의 방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지는 곳을 상징하는 상징적인 의미인 것이다. 즉 우리가 사는 세계는 육도윤회의 세계이니 육도윤회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해가 동쪽에 뜨는 것처럼 동이라는 방위로써 표현한다면 한참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상태는 위가 될 것이고, 육도윤회를 마치는 것은 서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서라는 방위는 육도윤회를 벗어나 다시는 육도윤회의 세계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였을 때 동서남북 상하를 가리지 않고 육도윤회의 사바세계를 벗어난 곳이 바로 극락세계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극락의 반대말을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에서 생각한다면 극락세계의 반대말은 지옥이 아니라 육도윤회를 하는 사바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지옥의 반대말은 육도윤회 중 천상이 지옥의 반대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극락세계에서는 어떻게 하여 이제까지 지은 업은 모두 소멸시킬 수 있으며 또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게 되는 것일까.
이제까지 지은 업을 모두 소멸시키려면 다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극락세계에 중생이 태어나면 연꽃 속에 태어나게 된다. 연꽃 속에는 그 중생이 받아야 할 업에 따라 업을 받을 수 있도록 사바세계와 같은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다만 사바세계와 다른 점은 사바세계는 업에 의하여 만들어진 환경 속에서 업을 받아 소멸시킬 수도 또 새로 만들 수도 있지만 극락세계의 환경은 업을 받아 없애기 위해서만 부처님의 위신력의 방편에 의하여 만들어진 환경인 관계로 업을 새로 지을 수는 없다. 오로지 받아 소멸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서 사업이 부도가 내고 부인과는 이혼을 하고 가족은 다 뿔뿔이 흩어져 자살을 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하면서 극락을 발원하여 염불을 하였다고 가정하여 보자. 그러면 이 사람도 극락에 태어난다. 그러나 극락 속에 태어난 연꽃 속에 부도가 나고 이혼 당하여 가족이 뿔뿔이 다 흩어진 상태의 환경이 그대로 만들어져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사바세계에서야 자신의 업에 의하여 만들어진 환경이지만 극락세계는 업장을 소멸시켜 주시기 위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만들어진 환경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연못 한 가운데서 종이 울리면 연꽃이 열기고 그 밖으로 나와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누각으로 가서 법문을 듣는다.
모든 괴로움은 부처님이 악업을 소멸시켜 주시기 위하여 주시는 쓴 약이고 또 즐거움은 선업을 시켜주시기 위한 단약이니 가리지 말고 잘 받으라고. 그 법문이 끝나면 다시 연꽃 속으로 들어가 업을 받으며 소멸시키는 것이다.
지금 환경이 괴로운가? 고통스러운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 여기가 극락의 연꽃 속일지도 모른다. 생을 마치고 죽는 순간이 극락의 한나절 이어서 연꽃이 피고 법문을 들으러 연못 한가운데로 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먹기에 따라 예토도 극락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예로부터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지은 업은 그렇게 소멸시킨다 하더라도 새로운 업은 어떻게 안 지을 수 있게 하여 주는가. 업이란 우리 행위 그 자체가 업이기 때문에 우리 생활 그 자체가 업을 짖는 행위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락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도 생각으로 먹는다.
그리고 옷을 입는 것도 생각으로 입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만 하여도 그 음식을 실컷 먹는 것이 되며 그리고 입고 싶은 옷을 생각만 하여도 몸에 입혀지는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업을 지을 리가 없는 것이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의하면 이러한 극락세계에는 오역의 죄를 지은이라 하더라도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의 염불만 한다면 갈 수 있다. 또 수행력이 높은 큰스님이라 하더라도 육신을 버릴 때까지 숨되 쉬었을 것이고 생각도 하였을 것이고 음식도 먹었을 터이니 업장을 완벽하게 다 소멸시켰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극락세계에 가서 조금 남은 업이라도 다 소멸시켜야 완벽한 성불을 이룰 수 있다.
그러니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에는 오역의 죄를 지은이와 같이 소멸시켜야 할 업장이 많은 이와 수행력이 높은 큰스님과 같이 소멸시켜야 할 업장이 아주 적은 이가 함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들을 모두 같은 곳에 수용시킨다는 것은 유치원생과 대학원생을 한 교실에서 카르키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극락세계는 9품으로 나누어 중생들을 접인하는 것이다. 9품이란 업이 가장 가벼운 상품상생에서 시작하여 상품중생. 상품하생, 중품상생, 중품중생, 중품하생, 하품상생, 하품중생, 하품하생의 아흡 가지의 세계를 말한다.
하품하생에 태어나는 이는 무간지옥에 갈 5역죄를 지은이가 마지막 임종시 모든 것을 참회하고 선지식을 만나 '나무아미타불' 하려고 마음을 일으키기만 하여도 갈 수 있는 세계이며 최 상승의 상품상생은 수행력이 높은 큰스님과 같은 분들이 가서 업장을 소멸시키는 세계이다. 다시 말해서 하품하생이 극락세계의 1학년이라면 상품상생은 졸업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9품의 세계에는 각각의 연못이 있어 그 안에 연꽃이 피어 있는데 극락세계 태어나는 중생들은 이 연꽃 속에서 업장을 소멸시키는 생활을 하게 되는 곳으로서 연꽃 속에는 그 중생이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는 그 중생에게 맞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꽃이 각양각색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의 업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극락세계에 태어날 중생들이 임종을 하게 되면 연꽃 속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 연꽃 속에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모든 세계와 똑같은 환경이 구비되어져 있다. 만약 빚쟁이에 쫓기어 죽은 사람이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자신이 태어난 연꽃 속에도 그 빚쟁이들이 있다.
그래서 같은 곤경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빚쟁이에게 쫓겨야 하는 업을 지었기에 그러한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이어서 그 업을 받지 않으면 업은 소멸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극락세계의 자신의 연꽃 세계 속에는 그러한 업을 받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빚쟁이들이 있는 것이다. 극락세계는 일곱 가지 보물로 이루어진 나무와 일곱 가지의 그물과 일곱 가지의 계단이 있다. 그리고 한가운데는 연못이 있으며 이곳에는 중생들이 각자의 업을 받아 소멸시키게 하기 위해 중생들이 업이 변화하여 생긴 각양각색의 연꽃들이 피어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누각이 있고 그 누각에는 종이 매달려 있다.
하루에 세 번씩 문수보살님이 종을 치면 연꽂 속에서 중생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모양이나 복식은 9품연화의 세계가 각각 다르지만 한 세계에서는 같다. 이들은 누각에 모여서 문수보살님의 법문을 듣고 환희심을 낸다. 그러면 하늘에서는 만다라꽃이 내리기 시작하고 중생들은 그 꽃을 주워서 다른 불국토를 다니며
부처님들꼐 공양을 올리고 산책을 즐기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우는 새소리와 볼을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소리, 그리고 누각의 처사에 매달린 퐁경소리들을 즐긴다. 그런데 이 소리들은 모두가 부처님의 법문으로서 중생들에게 항상 커다란 깨달음을 주게한다.
그리고 난 후 중생들은 다시 연꽃 속에 들어가 업을 받는데 사바세계에서는 선업을 받으면 행복하고 즐거워 희희낙락하고 악업을 받으면 불행하여 고통스러워하면서 헤어날 줄을 몰라 다시 업을 지었지만, 이곳에서는 하루에 세 번씩 법문을 듣는 까닭에 선업을 받아 행복이 찾아오면
부처님이 선업을 소멸시켜 주시기 위하여 주신 단약으로 알아 즐거움에 빠지지 않고 악업을 받아 불행이 찾아오면 부처님이 악업을 소멸시켜 주시기 위하여 주신 쓴약으로 알아 고통에 빠지지 않으며 업장을 소멸시켜 나가는 것이다.
극락세계에 태어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아미타 부처님의 구원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지옥 가는 것이 두려워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 싶다고 하는 나약한 믿음이 아니라, 지옥을 잘 업이라면 지옥을 가서라도 자신의 입장을 다 소멸시키겠다는 참회에서 비롯된 강인한 믿음이다.
그 다음은 극락세계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하는 강한 욕망이다. 이 욕망은 지옥이나 육도윤회가 두려워서 극락세계에 태어나야겠다고 하는 이기주의적 책임회피적 욕망이 아니라 육도윤회의 세계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기에 반드시 그곳에서 나와 극락세계에 가 자신이 지은 입장을 다 소멸시키겠다고 하는 강인한 의지에서 비롯되는 욕망이어야 한다.
그 다음은 기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 기뻐하는 마음은 아미타부처님이 극락세계를 만들어서 나를 점인하지 않으시면 나의 육도윤회의 여행은 끝이 없었을 것을 생각할 때, 나를 대신하여 수고를 하여 주셨고 내가 성불할 때까지 도와주시고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된 기쁨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집중하여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면 누구나 다 극락세계에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무량수경』에서는 이러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10번 하라 하였고 『아미타경』에는 7일을 하라 했으며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에서는 5역의 죄를 지은이라 하더라도
임종 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려고만 하여도 극락에 태어난다고 하였으니 경전이 말하는 바가 다 다르다. 하지만 이것은 '나무아미타불'을 얼만큼 불렀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마음으로 불렀는가 하는 아미타불을 믿는 신심이 더 중요함을 단적으로 말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무아미타불'을 하더라도 믿음이 없이 그냥 입으로만 하였으면 극락세계에는 태어나지 못하고 극락세계의 변방에 태어나 견고한 믿음을 갖춘 후에 극락으로 간다고 『무량수경』에서는 설하고 있는 것이다
| | |
첫댓글 나무아미 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