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편집) 크메르의 세계
아시아 공연산업의 최전선을 가다
유행을 주도하는 대중예술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얼마나 놀라운 인프라를 갖고 있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발전된 공연산업의 이벤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저는 오늘날 대중예술 공연이 이토록 발전하게 된 것은 크게 2가지 점에 주목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무대장치와 악기, 그리고 음향기기 등의 하드웨어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고, 동시에 과거보다는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판매 혹은 렌탈(대여) 산업의 형태로 보급된다는 점입니다. 즉 이제 캄보디아와 같은 저개발 국가에서도, 왠만한 뮤지션들은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자랑하는 악기들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는 세계 탑10에 들어가는 출연자들 정도만이 누릴 수 있었던 거대한 무대장치도, 이제는 웬만한 국가의 렌탈산업계가 하청과 재하청 등의 구조로 연합하기만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블록버스터 무대 하나를 연출해내기도 합니다. 이제 장비 면에서는 뉴욕과 프놈펜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캄보디아 어느 읍내의 부잣집 결혼식 피로연에 가보신 분들은, 그곳의 분위기를 북돋아주는 커다란 스피커들에, 20년 전만 해도 극소수 사람들만 볼 수 있었던 "JBL" 상표가 떡하니 붙어있는 모습들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피로연장에서 캄보디아인들 200명 정도가 모여 춤을 출 때 사용되는 음향기기의 총 음량이 통상 5 킬로와트(kw)에서 10 kw 사이로 추정됩니다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이 정도 음량은 왠만한 대학 축제의 운동장 주무대에서 사용되던 음량과 맞먹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다른 하나는 공연연출 노하우에 관한 정보 자체가 이제는 급속도로 파급된다는 점입니다. 후진국이라 할지라도 조금 여력이 있는 상류층 학생들은 미국의 버클리음악원 같은 곳으로 유학을 떠나고 있으며, 주요한 블록버스터 공연들의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매우 쉽사리 전파되기도 합니다. 즉 발전된 하드웨어에 걸맞는 운용의 노하우 역시 상당한 정도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LA에서 히트한 춤사위는 내일이면 도쿄와 서울의 강남대로에 등장하고, 모레면 방콕을 거쳐 다음주에는 중국의 오지 운남성의 멋쟁이 춤꾼들도 추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주일만 더 지나면 티벳의 젊은이들도 동일한 랩송을 불러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입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오늘은 아시아 정상급 뮤지션들의 실황공연 몇편을 감상하며 이러한 현실을 체험해보기로 합니다. "크메르의 세계"가 나름대로 엄선한 3팀의 아시아 뮤지션들입니다.
가장 먼저 소개해드릴 뮤지션은 태국의 최고 정상급 밴드인 "클래쉬"(Clash)입니다. 한국에도 동일한 명칭의 스래쉬메탈 밴드가 있습니다만, 태국의 "클래쉬"는 힙합과 리듬&블루스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얼터너티브 락의 파워풀한 요소까지 갖춘 보다 신세대적 성향을 보여줍니다. 때때로 다소 그로테스크하고 저항적 이미지까지 가진 이들은 음반판매량과 지명도에서 현재 태국 최고를 자랑하는 밴드 중 하나입니다.
|
(동영상) 곡명: "선천적 질병"(โรคประจำตัว, 롯 빠짬뚜워)
이들의 감각은 미국이나 한국의 뮤지션들과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다. |
|
(동영상) 곡명: "회상"(Retrospect). 파워풀한 사운드와 더불어 연극적 상상력이
가득한 무대를 보여준다. 퍼포먼스 형 밴드의 특성이 살아나는 무대이다. |
두번째로 소개해드릴 밴드는 언제나 아시아 락뮤직의 선봉에 서있는 일본의 뮤지션으로, 그 주인공은 락 밴드 "비즈"(B'z)입니다.
일본 락뮤직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록 대중적 성공은 크게 거두진 못했지만 현란한 기타 연주와 독특한 헤비 사운드로 세계적 수준의 락뮤직을 선보였던 "라우드니스"(Loudness)라든지, 일본식의 독특한 분장과 대중성 있는 사운드로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뒀던 비주얼 락 밴드 "엑스 재팬"(X-japan)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밴드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일본 락계를 대표하는 밴드들이었습니다.
"B'z"는 레코딩 세션맨 출신의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타카히로(松本孝弘, 1961년생)와 보컬리스트 이나바 코우시(稲葉浩志, 1964년생)가 1988년 무렵 결성한 밴드로, 그 외의 파트들은 국내외 정상급 뮤지션들이 수시로 서포트해주는 형태의 밴드입니다. 마치 한국의 "봄여름가을겨울"이 김종진(기타&보컬) 씨와 전태관(드럼) 씨의 2인조 밴드이면서 여타 파트에는 수시로 많은 뮤지션들이 서포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B'z"는 일본의 국민밴드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밴드입니다. 팬클럽인 "비즈 파티"(B'z Party) 회원이 53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앨범(CD) 판매량은 약 8천만장에 육박하여 일본 대중음악계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락뮤직 장르가 아니라 대중가요 순위 차트 탑10 안에 들었던 곡만 40여곡에 달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들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울트라 소울"(Ultra Soul)부터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동영상) 2008년 라이브에서 연주된 "울트라 소울". 단순한 패턴의 곡이지만 마츠모토 타카히로의 노련하고
탄탄한 연주력이 빛을 발한다. 이 날의 공연은 비가 내린 가운데 진행됐다.
|
B'z가 가진 사운드의 특징은 전통적으로 일렉트릭 리듬에 의존하는 댄스음악과 인간적인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는 락 뮤직 사이의 괴리를 좁힌 데 있습니다. 즉 락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마치 클럽용 댄스음악 같은 비트감을 주는 사운드를 구축한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이 아시아 여타 국가들에서 진행중인 신세대적 사운드가 아닌 다소 구시대적인 스탠다드한 락뮤직 형태이면서도, 전무후무한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 락뮤직 팬들이 두터운 점도 작용했을 것이고, 기타리스트 마츠모토가 교과서형 연주를 해야만 하는 레코딩 세션맨 출신이란 점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사운드에는 과거 세션맨 출신들로만 구성됐던 미국 헤비락 밴드 "저니"(Journey)나 토토(Toto)와 유사한 요소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다소 보수적이지만 직선적인 성향의 사운드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무대 역시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흑백을 기조로 하는 조명과 심플한 라인 등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무대장치를 보여줍니다. 때로는 그 단순함 속에서 또다른 럭셔리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아시아의 뮤지션은 한국의 서태지(1972년생)입니다. 서태지 씨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아시아의 주요 뮤지션 속에서 그를 다시 살펴본다면 나름대로의 새로운 느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서태지의 음악은 태국의 "클래쉬"와 같이 신세대 음악 장르의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고, 특히 라이브 공연에서 상상력이 발휘된 다양한 연출들은 매번의 공연마다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우선 제일 먼저 소개해드릴 연주는 2008년 "ETPFEST 페스티발"(Eerie TaiJi People Festival)에서 공연한 "라이브 와이어"(Live Wire)입니다. 이제 "서태지 컴퍼니"의 소유주(경영과 소유를 분리시킨 회사임)가 된 그가 기획한 2008년 "ETPFEST 페스티발"에는 마릴린 맨슨, 디 유즈드, 드래곤 애쉬 등 해외 유명밴드들까지 참여한 커다란 음악축제였습니다.
2008년 8월 15일 "ETPFEST 페스티발" 공연을 한 서태지는 9월 27일에 "더 그레이트 2008 서태지 심포니" 공연을 통해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습니다.
2009년 8월 15일 "ETPFEST 페스티발" 공연에 등장한 38세의 서태지는 여전히 신선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년(2011)에 비로소 불혹이 됩니다.
이러한 서태지란 아이콘에게 "문화 대통령"이란 별명을 최초로 붙여준 인물은 바로 작고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말 무렵에 쓴 글)
'발해를 꿈꾸는 아이들'
상당히 오래 전부터 나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사무실로 전화나 편지를 통해 청탁(?)을 해오고 있는 10대, 20대의 젊은 민원인들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의 부탁인 만큼 나도 가급적 도움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도 또한 그럴 성격의 문제도 아닌 것 같으니 여간 고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청탁의 요지는 1996년 벽두에 은퇴해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대중가수 서태지씨가 무대에 복귀하도록 내가 나서서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것입니다.민원인들은 물론 서태지씨의 열성팬들입니다. 아마도 대중가수 중 서태지씨를 각별히 좋아한다고 내가 TV에서 답변했던 것이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다는 어느 청년은 서태지씨와 내가 `고졸 출신자들의 희망`이란 공통점이 있어 특별히 부탁하는 것이라고 편지에 밝혔지만, 젊은이들이 도대체 얼마나 간절히 그의 복귀를 소망했으면 나 같은 정치인에게까지 부탁을 해왔겠습니까?
일견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요청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만한 능력이 내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손자뻘의 나이라지만 내가 나설 만한 성질의 일도 아니고 또 내가 나서 봤자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엄연한 대중 예술인의 자기 결단인 만큼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서태지씨를 좋아하는 젊은이들, 즉 서태지씨 팬클럽은 여느 연예인들 팬클럽과는 좀 다른 면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란 이름으로 기념 공연을 열어 온 것은 나도 그 행사에 초대된 적이 있었기에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이 모임이 올 봄에 <북한 청소년 돕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는 소식은 나로서도 참 의외였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북한 청소년이 불쌍해서 도와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북한 청소년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삼자`는 취지의 행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보여 준 자유와 도전정신을 기리자`는 목표를 가지고 서태지씨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뜻깊은 많은 활동을 벌여 오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앞서의 행사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발해를 꿈꾸며] 의 영향이었다고 합니다. 내게는 참으로 각별한 감회를 안겨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가 서태지와 아이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역시 노래 [발해를 꿈꾸며] 였습니다. 영국에서 돌아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활동을 시작했던 1994년 쯤으로 기억됩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대두되기 시작한 신세대 문화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던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기성 세대 일반처럼 우리의 신세대문화란 것이 너무 물질적이고 감각적으로만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세대의 대중음악이란 것도 솔직히 생경스럽게만 느껴져 혹시 외국의 저급한 대중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국적 없는 노래들이 아닌가 하며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표절시비도 많았던 것 같고요.
그러던 차에 어느날 잡지에선가 서태지씨의 인터뷰를 보게 된 것입니다.
`신문에서 청소년들이 통일 문제에 관심이 적고, 오히려 통일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발해를 꿈꾸며]란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름만 듣고는 무슨 홍콩 영화 배우 이름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참으로 기특하고 가사한 젊은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나는 이들의 테이프를 서둘러 사서 들어 보게 되었습니다.
대중음악에 대해서 내가 뭐 알겠습니까마는 나름대로는 열심히 분석해 보면서..... 그 결과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우선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수가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로 시작되는 이 곡은 노랫말이 좋았습니다. 왠지 도포를 걸쳐야 자연스러울 것 같고 그만큼 신세대들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졌을 민족 정서를 이들은 과감히 현실화, 실감화한 것입니다.
곡 자체도 아주 세련되고 박진감 넘치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내가 뭐 알겠습니까마는. 음악의 중간중간에 사설조로 읊조리는 것이 랩이란 것도 이때 알았습니다. 주로 흑인들의 대중 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창법인데 이들이 한국화 했다는 주변의 설명 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우리 판소리와도 비슷한 일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7,80년대 민중 가요에서 중요시한 `가사 정신`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겠고요.
그런데 내가 차 안에서 가끔 들으며 참 재미있고 이채로운 신식 국악이구나라고 생각해 오던 노래도 알고 보니 이 친구들 노래 [하여가] 였다고 비서가 귀띔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태평소 소리 한 자락이 시원스럽게 깔리면서 흥겹게 펼쳐지는 이 노래를 차 안에서 들으면 나는 왠지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활력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참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더욱이 서태지씨는 음악을 하려는 뜻이 있어 대학에 가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밝혀 입시교육에 주눅 들거나 패배 한 많은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주고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역할도 자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서태지씨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가슴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우리 신세대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싹틈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밑바탕되어 이들의 4집 앨범 [시대유감]이 공윤심의에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을때 나름대로 나는 국회 차원에서 노력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들의 은퇴 이후 서기회에는 행사에 나를 초대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뭘 모르는 기성세대들은 곧잘 이 친구들이 `텔레비전을 망쳐 놨다`고 비난합니다. 아마도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범람하게 된 댄스 그룹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 한 토막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TV에서 배우 박중훈씨가 `랄라라`하고 흐느적거리며 트위스트 춤을 추는 무슨 맥주 광고를 보다가 생각난 일화입니다. 내가 젊은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내한한 클리프 리처드라는 인기 가수의 공연을 보고 한국일보에 기고했던 글에 담았던 일화이기도 합니다. 당시로는 대사건이었던 클리프 리처드의 공연이 근 2,30년전의 일이니 그러고 보면 그때 당시 기성 세대의 비난을 받으며 열광했던 소녀들이 지금 신세대 자녀들을 걱정하는 어머니 위치쯤 되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후(세계 제2차 대전)에 프랑스에서 트위스트가 한창 유행했을때 프랑스의 늙은 배우 장 마레는 "트위스트는 춤이 아니라 야만인의 광태다. 25세 이상의 남녀들은 추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열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젊은 여류 작가 프랑소 아즈 사강은 트위스트는 "스텝이 간단하고 홀로 출 수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는 문명을 건너 뛴 원시의 호흡이 있다"라고 되받았다고 합니다. 요즘의 신세대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이야기겠지요.
세대간에는 항상 단절의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얼마전 신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신세대들 3명중 1명이 `전쟁이 나면 도망가겠다`고 응답했다는 결과가 신문에 실려 기성 세대들을 경악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명문 대학 정외과 교수는 `이승만과 김구는 한 클래스에서 고작 몇명 정도만이 알고, 여운형과 장준하를 아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라고 탄했었습니다.
솔직하고 개성 강하고 창의적인 우리의 신세대들이 어째서 그랬을까?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책임 많은 정치인으로서 나부터가 많은 반성을 해야겠지만,나도 솔직히 우선은 암담하고 허탈했습니다. 그때 문득 서태지씨가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시대유감]에 앞서 나 역시 `서태지 부재유감`이 먼저 찾아 던 셈입니다.
서태지씨 팬들의 요청에 달리 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를 고민하다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너무 작위적일지 모르겠으나 [발해를 꿈꾸며]에 화답하는 [신광개토시대]를 한시 바삐 열어 민족사의 비전을 밝혀 주는 것이 어떨까라고요. 아울러 신세대들의 예술적 창의가 만개하도록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으며..... |
우리의 각성이 깨어지는 순간 정신적 노령화는 비로소 시작되고, 신체적 연령과 상관없이 기성세대로 편입합니다. 스무살이 되면서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의외로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동남아 사람들과 미국인, 그리고 한국인이 동일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바로 당신의 정신 속에서 상당한 수준의 노령화가 진행됐음을 의미합니다. (크세)
|
첫댓글 태국의 "클래쉬" 멤버들은 아무래도 재미교포들 아닌가 싶습니다..
태국 국내파로만 저 정도는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되네요..
아니 아직 피시방입니까? 피곤할텐데 들어가 쉬셔야져^^
락 음악을 잘 모르지만 들어보니 일본이 제일 수준이 쳐지는거 같네요. 서태지의 창의성이 제일 돋보이구요 태국은 보통...
피시방에 온지 얼마 안됩니다.. ^ ^ 저는 태국 의 클래쉬가 가장 요즘 유행에 접근한 것 같고, 일본의 B'z는 고수틱하고, 서태지는 창의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 ^
http://gallery.mediathai.net/viewgallery265
오, 클래쉬에 대한 사진들이 있군요..
근데 열리지가 않고 작은 사진들만 보입니다..
울노님, 인터넷 익스플로러 브라우져 사용 하시는군요...
파이어 폭스를 사용해 주시라는...>_<...
그게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네요..
소유한 컴퓨터가 없어서 말이죠..
피시방에서 사용하시는 컴에 파폭을 다운로드 받으셔서 사용 하시면 됩니다...
하여간 꼭 한국 음악들만
저작권 지키기를 엄청나게 해대는데..
이런 건 좀 풀어놔야
해외진출에 유리한건데 그걸 모른단 말이죠...
요즘 SM 엔터테인먼트 미국 공연도 다 <유튜브> 덕분 아니냔 말이죠...
미국 젊은이들이 유튜브로 한국음악과 익숙해지면서 나온 현상이죠..
그러니 좀
돈받고 공개할 부분과
무료로 공개할 홍보용 동영상을 구분해서
배포를 해두면 좋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