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 르네 마그리트 왕립 미술관과 집ㅡ이곳은 자체가 '마그리트'다
▲ 르네 마그리트가 자주 들렀던 카페 ‘라 플뢰르 앙 파피에 도레’. 벽에 마그리트(오른쪽에서 둘째)와 동료 작가들 사진이 걸려 있다. / 브뤼셀=최수현 기자
벨기에는 경상도 크기만 한 작은 나라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랑거리가 여럿 있다. 한입 크기 초콜릿 ‘프랄린’을 만들어낸 ‘디저트 왕국’이고, 만화 주인공 땡땡·스머프 등이 탄생한 애니메이션 선진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불리는 그랑플라스를 품었다. 또 하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고향이다. 20세기 초현실주의 거장 마그리트는 브뤼셀에서 거의 평생을 지냈다. 작은 도시 브뤼셀에는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그리트는 이곳의 '대표 상품'이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파이프와 중절모, 사과를 활용한 기념품을 판다. 2009년 문을 연 마그리트 왕립미술관은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지하철 파르크(Parc) 역에서 내려 공원을 가로지르면 왕궁 맞은편에 미술관이 있다. 3층에서 출발해 1층까지 연대순으로 정리된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니 마그리트의 생애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그리트 그림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예술의 개념을 바꾼 예술가'로 평가받는 마그리트는 익숙한 사물을 낯선 맥락 속에 배치해 상식과 선입견에 도전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혼란과 충격에 빠지면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 마그리트 왕립 미술관은 창문을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중절모 쓴 남성 실루엣으로 꾸몄다. / 고디바 제공
대표작 '빛의 제국'은 마지막 전시관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같은 제목의 작품을 여러 점 남겼는데 그중 1954년과 1961년작이 걸려 있다. 대낮의 하늘과 가로등불 켜진 밤거리가 공존하면서 마그리트 특유의 신비스럽고도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지하에는 마그리트 일대기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양복 재단사 아버지와 모자를 만드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어머니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그의 작품 세계가 어머니를 잃고 방황해온 내면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술관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벨지카(Belgica) 역에서 내렸다. 마그리트가 아내와 함께 1930년부터 24년간 살았던 집으로 가는 길이다. 'MAGRITTE'라는 문패가 달린 붉은 벽돌 건물 앞에 '빛의 제국'에 등장하는 것과 똑같이 생긴 가로등이 서 있었다. 18세 때 브뤼셀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간 그는 어느 날 이탈리아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1888~1978)의 작품을 보고 '그림이 그림 이외의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1927년 첫 개인전이 혹평을 받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화랑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면서 3년 만에 돌아와 이곳에 정착했다. 마그리트 부부는 3층 건물 중 1층을 썼는데 현재 미술관으로 복원돼 있다. 비좁은 집안에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창문, 계단, 벽난로 등 일상의 소박한 사물들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작업실은 부엌에 붙어 있는 작은 다이닝룸이었다. 마당 한편에 스튜디오가 있었으나 거기선 생계를 위한 광고 디자인만 했다고 한다.
▲ 마그리트 1928년작 ‘공간의 문제’. 전쟁 당시 사라졌던 작품을 복원해 그가 살았던 집에서 전시했다. /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 제공
마그리트가 동료 작가들과 함께 자주 갔다는 카페에 들렀다. 그랑플라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라 플뢰르 앙 파피에 도레(La Fleur en Papier Dor?·금빛 종이로 만든 꽃)'는 그가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곳이다. 예술 작품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카페에 앉아 벨기에 맥주를 마셨다. 마그리트가 동료들과 함께 찍은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출처 / chosun.com / 벨기에 브뤼셀 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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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人間의 條件 원문보기 글쓴이: 준호 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