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을 연주할 때와 산조를 연주할 때 가야금의 연주조건은 다르다.
영산회상의 연주에서 가야금은 주로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음, 즉 조율되어 정해져 있는 개방현만을
박자에 맞추어 연주하면 되므로 오른손의 주법이 주가 된다. 그러나,산조의 연주에서 가야금은
이미 조율된 음보다는 연주해가며 만들어야 할 음이 더 많기 때문에 왼손주법의 훈련이 동시에 필요하며
이러한 왼손주법의 훈련을 위해서는 타고난 음감(음악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영산회상 합주에서 가야금이나 거문고등은 결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악기가 아니다.
선율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기능은 피리나 대금이며 가야금,거문고등은 주로 주선율에 대한 보조적인
리듬적 기둥역할만을 한다. 그러므로 가야금,거문고가 편성되지 않는 피리나 대금만의 영산회상 합주곡
(관악 또는 삼현 영산회상)은 별도로 있지만 피리,대금이 편성되지 않는 현악기만의 영산회상 합주는 없다.
현악기중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거문고가 중심이 된다는 현악 영산회상에서 조차도 상령산의 시작부분에
14박을 거문고가 담당하는것을 제외하고는 주선율은 관악기가 담당하고 있으므로 현악 영산회상이란 말은
명목상의 분류일 뿐 음악적인 관점에서의 분류는 아닌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조선왕조 사회에서
거문고가 선비들에게 중요한 필수악기였기 때문에 관념적 중요성이 후대의 음악 안에까지 연결된 이유도 클 것이다.
그러므로 영산회상을 주로 연주했던 가야금에 산조의 등장은 연주 기법상의 커다란 변혁이며
새로운 음악형식의 탄생을 의미한다.새로운 음악형식의 탄생이란 비판적 수용에서부터 비롯되며
기존의 것에 대한 불만족을 불만족으로 끝내지 않고,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창조적인 예술정신이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문화의 형성은 이러한 정신에 바탕해서 계속되고 있다.
산조는 바로 기존의 전통음악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되었으며,특히 가야금에 제일 먼저 생기게 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