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협태안지부 태안문학회
수필가 시인 조 규 훈
1950년 태안군 원북면 출생하였다. 한세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였고 36년간 경찰공무원
으로 근무하고 경정으로 정년퇴직하였다. 녹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국무총리선정 모범공무원포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서울소재 (주)삼락 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1년 계간 <문예한국>지 수필부문으로 등단하였고 각종문예지와 신문 등에 다수의 수필을 기고하고 있고 <태안문학> 창립회원으로 창간호부터 다수의 수필과 시를 발표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네”가 있다.
한국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태안문학 2010년 하반기호 제25집 본문중에서
다른 세상을 경험하면서
조규훈
지난 6월 30일 나는 36년 동안 재직하였던 경찰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명예로운 정년퇴직 을 하였다. 36년은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긴 세월 같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그렇게 짧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간 세월이었고 찰라와 같이 짧기만 한 세월로 생각된다.
금년 초 까지만 하여도 아직 6개월이 남았구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람 있고 소중하게 보내자고 나에게 수없이 다짐하곤 하였는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정년퇴직을 한 것이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나는 공직에 있는 동안 수많은 분들의 격려와 충고 속에 무사히 공무를 수행할 수가 있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녹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고, 많은 분들의 따뜻한 격려 속에 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하여 수많은 동료와 주위 분들에게 고마운 마을을 표하고자한다. 나는 사회에 나오고서야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직장의 고마움을 절절히 느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고, 또 공무원조직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나를 보호해주었나 하는 것을 실감하였다.
며칠간 아내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매일을 집안에서 보내야하는 따분함이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호사스런 말로 현직에 있을 때는 “한번 실컷 쉬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 말이 공연한 호기였음을 새삼 깨닫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직장이, 그리고 일이 보배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보이지 않는 직장의 보호막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허전하고 외롭고 슬픈 생각은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서울에 소재한 회사에 출근 하고 있다. 전직 교육감과 교육계 간부들이 설립한 학교 관련 회사의 운영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비록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200여명의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면서 일은 살아가는 활력소이고 보배라고 생각한다. 36년여를 틀에 박힌 듯이 살아왔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다양한 세상 경험을 해보고 있는 것이다.
<한 섬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자기 가솔을 굶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열 섬지기 짓는 사람은 이웃에 배 곯는 자 있으면 거두어 먹여야 한다.
백섬지기 짓는 사람은 고을을 염려하고 그 보다 또 다른 어떤 몫이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고 “혼불” 의 작가 최명희는 주인공 청암 부인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이제 나는 제1의 직장을 잘 마무리하였기 때문에 제2의 인생길에서 만난 이 직장을 통하여 좀 더 세상을 넓게 보고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그게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저녁 전철을 타고 출 퇴근 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회사에서 만나는 동료들 또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따뜻이 격려 해 줄 수 있는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이제부터의 직장은 덤으로 들어온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사회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여직원이 가져오는 커피를 받고 나도 일어나 커피를 타서 수고하는 여직원에게 함께 마시자고 권했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고 또한 나도 조그마한 것이라도 베풀면 이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따뜻하게 바뀌고 살맛이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무엇인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아직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만 으로도 행복하고 살맛나는 세상인 것 같다.
이제 다가오는 가을에는 며칠간 휴가를 내어 충청도 서천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친지를 찾아보고 인생에 관한 많은 대화를 하고 와야겠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1. 버려지는 아이들
몇 해 전 수원중부경찰서 경무과장 으로 있을 때 경찰서를 대표하여 관내에 있는 경동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약 150여명의 아기들이 몇 사람의 보모들에 의하여 보호 받으며 커가고 있었다.
한창 부모 손에 커야할 아기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맡겨 져 남의 손에 커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 순 하디 순한 아기들의 눈망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 혹시 자신을 버리고 간 부모들이 다시 찾으러 오지나 않았을까 하는 눈빛 같아 정말 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원장님은 얼마간의 위문금과 위문품을 가지고 간 나에게 아기들이 있는 방을 안내하며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도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에 맡겨지는 아이들은 대개 미혼모에 의하여 버려졌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맡겨진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기들의 부모들이 처음 맡길 때는 몇 달만 맡아주면 반드시 찾으러 오겠다는 말을 하지만 찾으러 오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고 한다. 어른들은 어찌하여 무책임하게 아기들을 낳아놓고 이렇게 버리는 것일까? 나는 그날 밤 아기들의 눈망울이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지금도 그때의 아기들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나는 아프리카의 빈국 우간다나 소말리아 등에서 굶주림에 지쳐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힘없이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어린이들의 참혹한 광경을 TV나 신문보도를 통하여 보는 날이면 명치끝이 아릿해 옴을 느낀다. 과연 그들에겐 무슨 희망이 있는가! 인간의 기본권을 말한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계속되면서 한동안 우울하게 지내게 된다.
요즈음 경제적으로 무척 어렵다고들 한다. 이 와중에 각 보호기관에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기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버림받아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기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자라나 건전한 사회생활을 하고 사회에 적응할지 의문이다.
천진스럽고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사회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건강하게 자라나 건전한 시민으로 살아갈 때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2. 동물들을 보면 슬프다.
작년엔가 아내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가슴 뭉클하게 보았다. 평생 논밭을 지키며 살아온 팔순의 농부 최 노인과 붙임성 없어 보이는 그의 아내, 그리고 이들과 30여 년 간 일 해 온 늙은 소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 “워낭소리”는 퇴폐적인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 요즈음 우리 사회에 각별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이라고 하는데 이 소는 40여년을 살면서 최 노인에게는 최고의 친구이며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최 노인이지만 희미한 워낭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불편한 한쪽다리를 절며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하여 매일 산을 오르고 들을 헤맨다.
그리고 소에게 해가 갈까봐 논과 밭에는 절대 농약을 치지 않고 고집스럽게 유기 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그 짚과 콩깍지를 썰어 쌀겨와 함께 무쇠 솥 에 정성스레 삶아 소에게 먹인다. 평균 수명을 훨씬 넘긴 소 역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최 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무겁고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죽 을 힘을 다 하곤 한다.
늙은 소와 할아버지는 많이 닮아 있었다. 불편한 다리로 땔감을 소와 나누어지고 걷는 최 노인의 삐 적 마른 다리와 늙은 소의 앙상한 다리는 이를 잘 말하여 주고 있다. 가끔 최 노인이 늙은 소를 구박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구박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에서 오는 푸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 노인 내외가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라고 땔감 나무를 잔뜩 실어 나른 어느 겨울날, 힘겹게 마지막 숨을 내 쉬며 평생을 따뜻하게 대해준 최 노인 내외와 이별이 아쉬운 듯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죽어가는 소, 그 소의 선한 눈망울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 하게한다.
30여년을 부려온 소의 임종 순간과 그 소를 자신의 아끼는 양지바른 텃밭 에 묻어주면서 “좋은
데 가라이“하는 최 노인의 한 마디는 예전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를 보는 것 같이 진한 감동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
왜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환호하고 또한 그리 워 하는가! 이는 우리의 가슴속에 잠재하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삶을 최 노인에게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주인공도 내용도 별로 없는 최 노인 부부와 늙은 소의 꾸밈없는 이야기가 왜 이렇게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일까!
소의 목에 달인 방울, 워낭소리를 귀가 밝은 현대인들은 잘 들 을 수 없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최 노인은 어떻게 어김없이 들을 수 있을까? 그것은 빠르고 편리함 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앞서 가던 트럭에 가득 실려 가는 순 하 디 순한 소의 큼지막한 눈망울을 보았다. 아마 도살장으로 실려 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름철이면 철장 속에 갇혀 도살장으로 실려 가는 수많은 개 들 의 슬픈 눈빛을 자주보곤 한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난 날이면 하루 종일 우울해 지곤 한다.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들이지만 그 들의 선한 눈망울 과 그리고 또한 버려져 불행하게 보호되고 있는 아기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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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교통관광신문 인천지사 부지사장 <interpeed49>
2011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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