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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읍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반석위에기둥
각 지자체마다 문화 콘텐츠 찾기가 한창이다. 그 콘텐츠는 축제로 이어지는데 뭔가 매력적 메뉴가 없으면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 정읍은 내장산과 단풍, 갑오동학혁명, 정읍사, 최치원 정극인의 상춘곡에 이어지는 태산선비문화권 등 너무 폭이 넓어 선택과 집중할 수 있는 콘텐르가 너무 많다. 행복한 고민일 수 밖에 없다. 몇일 전에 끝난 ‘내장산단풍부부사랑축제’의 이름만가지고도 그 행복한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다. 축제를 둘러싼 정읍 문화일꾼들의 문화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 가을 전북 문화계를 놀라게 한 책이 한 권 나왔다. 인구 2000여명의 정읍시 소성면에서 면지(面志)가 나왔는데 책의 내용과 디자인이 일찍이 없던 스타일을 과시한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모인 문화일꾼들 중 다섯명이 소성면지에 참여한 터였다. 누가 제일 고생했느냐고 물었더니 이 고장 지리 연구에 가장 활발한 글을 발표하는 박래철 교사(정읍중)를 비롯해 한결같은 답이 나왔다.
"다 고생했지만 곽상주 선생이 발로 뛰고 백운경 작가의 손의 힘이 제일 컸지요."
면지 발간을 위한 조사과정에서 곽위원은 영원(永元)면지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백제의 돌방무덤 등 고대 유적과 마을사를 밝혀내는 활약을 했다.
곽상주씨는 농민이다. 동학축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농민들이 가장 바쁜 때라서 시기적 문제점이 있지요. 사실 세계화로 갈 수 있는 기가 막힌 소재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동학축제는 결국 농민대회로 가야 합니다.”
이상섭 교사(배영고)는 종교적 성격이 있어서 타종교가 선뜻 수용하지 못하는 면을 지적, 행사가 지나치게 공연쪽에 집중되어 있어 문화적 접목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성면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사진과 디자인. 이 작업을 맡았던 사람은 소성면 중광리에 살고 있는 아트디렉터 백운경씨다. 제일기획에서 일했던 그는 지역의 문화가꾸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적지 않은 문화행사중에서 '정토사 산사음악회'를 의미있는 작업으로 꼽았다.
“마음이 움직이면 작은 예산으로도 사람들이 쉬고 기대는 음악회가 가능하죠. 소 돼지 키우는 분들이 십시일반해서 음악회를 주최합니다.”
박교사는 작은 축제 이야기가 나오자 ‘야생화 축제’를 좋은 축제로 소개했다.
정읍에는 문화정책과 문화기획에 관한 모임이 있다. ‘샘터문화집강소(상임대표 정창환)’ 다. ‘집강소’란 이름은 물론 동학혁명의 본향임에 착안한 이름이다.
“정읍의 지역 문화 자생력과 경쟁력 확보, 문화공간의 확충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입니다. 정읍문화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명칭으로 문화적 중앙집권주의에 대한 저항과 대안의 의미를 내포하지요.” 유종국 교수(전북과학대)는 11차례의 정기 포럼을 통해 정읍시의 문화정책에 대해 아젠다를 제시하려는 노력해왔다고 소개했다.
최근 논란을 몰고온 국립공원 명칭변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백양사토론회에 정읍시민대표로 참여한 사진작가 최영진씨는 30년 넘게 간직해온 이름을 바꾸는 일은 온당치않다고 말했다.
“정읍시민은 환경이 오염되는 공장을 멀리하고 내장산의 브랜드 가치를 살리기 위해 30년 넘게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 이름을 바꾸라니요.”
밤이 깊어지자 자연스럽게 예산 문제가 거론됐다. ‘굴러가는 돈은 많은데 이 지역 문화 인력은 들러리가 된다’는 뼈아픈 지적이 쏟아졌다. 시골서 문화일 하는 사람들의 기획력이 떨어진다고 용역 자체도 중앙에서 진공청소기로 쫙 빨아가는 행태를 두고 이들은 분노했다.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도 깊은 사람들이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는 ‘분노’란 생각이 들었다.
/신귀백 문화전문객원기자(영화평론가)
전북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