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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시대에서 벗어나 지식 노동자시대에 확실하게 적응했음을 보여준 2005년-
부자와 가난한 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보수와 진보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져 빈곤, 양극화, 실업의 문제가 더욱 첨예해졌다. 이런 사회적 불안감은 개인의 무장을 촉구했다. 하지만 경쟁에서 지친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되 자신만의 능력을 표출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임파워먼트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에게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주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2005년 9월에 출간돼 곧바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바람의 딸’ 한비야의 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구호 활동 경험담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깨닫고 상상력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드디어 자기만의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임파워먼트를 지향하는 개인이 추구한 것은 어젠다다. 2005년에 나타난 어젠다는 세 가지 유형이다. 첫째, 2005년에 유일하게 밀리언셀러가 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같은 평범한 개인의 ‘실천매뉴얼’이다. IMF구제금융 무렵 돌풍을 일으켰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와 이 책의 차이는 평범한 감동서에 ‘액션’을 가미했다는 점이다.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감동마저 실행이 전제되어야 했다. 둘째, 미래담론이다. [10년 후, 한국], [공병호의 10년 후, 세계], [10년 후, 일본]과 [10년 후, 중국] 등 해냄의 ‘10년 후’ 시리즈는 모두 합해 50만 부를 넘어섰다. 또 [대한민국 2010 트렌드]도 상반기 내내 베스트셀러 상위를 달렸다. 이들 책들 외에도 ‘10년 후’가 들어간 책이 줄지어 출간되었다. 셋째, 동양고전을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소개한 [강의]를 비롯한 ‘요다형 책’으로, 쉽게 말하면 압축·요약본이다.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 영화 [스타워즈]의 선지자 요다처럼 지혜를 담아 요약한 책으로, 요약하는 이의 주관성이 많이 가미된다. 이제 개인은 산업화 시대에서 벗어나 지식노동자시대에 확실하게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 빈치 코드]와 [해리포터] 등 외국 블록버스터, [연금술사]를 비롯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 같은 일본소설 등의 인기는 지속됐지만 종합 20위 안에 든 국내 소설로는 19위에 오른 김별아의 [미실]이 유일할 정도로 국내 소설이 침체됐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대부분 외국시인들의 시인 것을 감안하면 상위 11위 안에 국내 저자의 책은 단 한 권도 들어가지 못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소개된 [모모]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등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가 영상과 책의 결합의 중요성을 한층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스펀지]를 비롯한 ‘잡학’을 다룬 책들의 인기, 리메이크 출판의 잇따른 성공, 임프린트와 1인 출판의 성행 등도 2005년 출판시장이 보여준 특징이다. |
부모님 발 닦아 드리기, 은사님 찾아뵙기, 소중한 친구 만들기, 혼자 떠나보기 등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랑, 우정, 가족애, 희망, 자신감 등을 다룬 49가지 테마의 행동강령을 사계절의 순환원칙에 맞춰 배열했다. 50을 눈앞에 둔 49는 100이라는 완성을 위한 과정을 의미한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류의 제목이 유행할 때 역으로 가면서 권유와 명령형이 아닌 자발적인 실천력을 이끌어내고자 한 제목의 힘이 컸다. 2004년에 절박한 처지를 확인한 개인들은 ‘10억 만들기’나 ‘억대 연봉’같은 평범한 개인이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가 제기되자 오히려 환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한경쟁에 지친 그들은 감동과 소박한 실천을 동시에 제시하는 이 책에서 희망과 자신감을 동시에 얻고자 했다. 2004년 12월에 출간된 이 책은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새 각오를 새기는 연말연시 심리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1997년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의 맥을 이은 대형 감동서이지만,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탤런트 한가인이 ‘사랑에 송두리째 걸어보기’를 읽고 연예인으로서의 경력을 쌓는 것 이상으로 사랑이 중요하다며 결혼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출판사는 블로그를 만들고 출간일에 맞춰 대표적인 몇 꼭지를 전자책 형태의 샘플북으로 만들어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드는 한편, 부모님 발 닦아드리기 캠페인과 살아있는 동안 할 일을 실천하고 수기 올리기 등의 이벤트도 벌였다. 출간일에 맞춰 전략적으로 기획한 ‘블로그 마케팅’의 효과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출판사들의 블로그 개설이 한때 줄을 이었다. 출간 1년 만에 100만 부를 돌파했지만 짜깁기 시비 등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다 빈치 코드]는 50여 개 언어로 번역돼 모두 9000만 부가 팔렸다. 두 권으로 된 한국어판은 4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다 빈치 코드]의 대폭발 이후 2000년에 발표한 그의 전작 [천사와 악마]도 다시 화제를 끌면서 전 세계에서는 4,500만 부, 한국어판은 90만 부가 팔렸다. [다 빈치 코드]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 [성혈과 성배],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다 빈치 코드의 비밀], [다 빈치코드에 숨은 거짓과 진실] 등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에서는 관련 서적이 100여 권 이상 출간된 바 있다. 이 책들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 막달라 마리아의 출신과 지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아이작 뉴튼 등이 주도한 시온수도회의 존재, 예수 후손의 프랑스 잠입설 등 [다 빈치 코드]가 제기한 각종 이슈의 진실과 허위를 다뤄 소설과는 다른 지적 재미를 제공했다. 이 책의 기본 구도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성혈과 성배]의 공동 집필자 세 사람은 댄 브라운을 상대로 표절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설을 실제처럼 여긴 사람들이 비밀문서가 묻혀 있는 곳으로 지목된 생쉘피스 성당에 몰려드는 바람에 성당에서는 “베스트셀러의 내용과는 달리 이곳은 이교도들이 비밀을 감춘 곳이 아닙니다.”는 안내문까지 내걸어야 했다. 외국에서는 소설에 언급된 파리, 로마, 런던, 스코틀랜드, 뉴욕 등지를 오가면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관광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9년 말에 출간된 댄 브라운의 신작 [로스트 심벌]을 번역 출간한 문학수첩은 국내 최초로 선인세 100만 달러에 계약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치는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매력적인 동화는 우리에게 행복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시간은 곧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여 있다고 말한다. 헝클어진 머리의 소녀인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그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이렇게 끊임없는 이야기와 모험과 상상력 속에서 행복과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색신사들이 마을을 방문한 뒤 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거나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삭막한 인물로 변해갔다. 시간이 없어진 마을 사람들은 모모에게 갈 시간조차 없었다. 오지 않는 친구들을 찾아 나선 모모는 호라 박사와 반시간 후의 일을 알고 있는 거북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으로 회색신사들을 물리치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된다. 시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주제에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모모]는 일상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들었다. 미하엘 엔데가 1970년 발표한 [모모]는 국내에서 수없이 중복 출판되었는데 비룡소가 정식 계약을 통해 출간한 것은 1999년 2월이었다. 2005년 7월 21일 50.5%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삼순이’와 ‘삼식이’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한 아이템으로 몇 차례 등장한 이 책은 7월 한 달 동안 20만 부나 판매됐다. 드라마에 등장하기 전 7년 동안 팔린 22만 부와 맞먹는 부수였다.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모모]의 인기는 식지 않고 지속돼 2006년 말에는 100만 부를 돌파했다. [어린 왕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꼬마 니콜라], [성자가 된 청소부] 등과 [모모]는 인생의 비밀을 들려주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철학적 우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류시화가 1998년에 펴낸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후 두 번째로 펴낸 치유와 깨달음의 시 77편을 모은 시집.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서기관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41세기에 걸쳐 시대를 넘나드는, 메리 올리버,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장 루슬로, 옥타비오 파스, 이시카와 다쿠보쿠 같은 현대를 대표하는 시인들, 잘랄루딘 루미, 까비르, 오마르 카이얌 같은 아랍과 인도의 중세 시인들, 이누이트 족 인디언들, 일본의 마막신 직공, 티베트의 현자 등의 시들이 실려 있다. 류시화는 시야말로 영혼의 상처를 달래주는 치유의 언어라면서 치유시(Healing Poem)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표지를 3단으로 접는 독특한 제책 방식을 도입하는 등 편집자로서의 새 면모를 보여주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알프레디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마지막 편 제목으로 내세우고 삼순으로 하여금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 투닥투닥 싸우고 화해하고, 웃고, 울고, 연애질을 한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열심히 케이크를 굽고 열심히 사랑하는 것.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나 김삼순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사를 읊게 만듦으로써 드라마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했다. 2005년 3월 출간 이후 20만 부가 팔리며 류시화의 명성을 재확인한 이 시집은 드라마에 등장한 이후 하루 주문이 4~5,000부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해리포터’의 인기가 커지자 ‘해리포터’ 팬들을 자사 웹사이트로 끌어들이기 위한 아마존, 반스앤노블, 보더스, 월마트 같은 책 쇼핑 사이트들의 시장점유 확보경쟁은 과열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존은 어떤 업체보다도 먼저 자사 웹 사이트의 트래픽을 증대시키기 위해 ‘해리포터’ 사전 주문 도서를 정가에서 40~50% 할인된 가격에 내놓았다. 아마존의 이런 전략은 ‘해리포터’의 판매를 통해 얻어지는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자사 웹 사이트에서 ‘해리포터’를 구입하는 독자들이 다른 책도 함께 구입하기를 기대하며 내놓은 결정이었다. 2005년 7월 16일, 시리즈 6권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가 발매되었을 때 월마트는 아마존과 반스앤노블의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가격보다 1달러 33센트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특가매출의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부터 가격 인하, 무료 배송, 상품권 제공 등 할인경쟁은 갈수록 격화됐다. 이런 ‘막가파 경쟁’은 ‘해리포터’의 상품성은 키웠지만 결국 책의 다양성을 저하시켜 책 시장을 황폐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전략이 도입됐지만 지금은 신간이 아닌 구간에까지 적용되는 바람에 책의 다양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출판사들이 빅 타이틀만 추구하게 만들어 출판시장의 황폐화를 불러왔다. ‘해리포터’ 시리즈 6권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의 발매를 앞두고 불룸스베리와 스콜라스틱은 서점들로부터 발매일인 7월 16일 자정 이전에 그 어떤 책 상자도 개봉하거나 판매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았다. 또 이 상자들을 매장 뒤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덮어서 보관할 것을 요구했다. 6권은 63개 언어로 번역돼 발매 첫날 미국에서 690만 부(6권의 미국 초판 발행부수는 1,080만 부)가 팔렸고, 영국에서는 200만 부 이상이 판매되는 등 각종 출판기록을 갈아치웠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이 해 10월 4일 세계적으로 3억 부가 판매됐다고 집계됐다. 아마존과 반즈앤노블을 통한 6권의 사전주문 부수는 150만 부에 이르렀다. 이는 그 해 아마존 3분기 매출의 1퍼센트인 1,940만 달러에 해당하고, 반즈앤노블은 사전 주문분이 2005년 2분기 매출의 2%를 차지했다. ‘해리포터’의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매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들 회사의 주가가 상향조정되곤 했다. 문학수첩이 10월 말 발행한 6편의 초판부수는 100만 부였는데 마침 영화 4편인 [해리포터와 불의 잔]이 개봉돼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책은 출간되자마자 종합 1위에 올랐다.
표지의 제목에서 ‘여자’와 ‘20대’의 두 단어를 굵게 처리함으로써 20대 여자라는 뚜렷한 독자를 파고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막 30줄에 접어든 여자 남인숙은 미모도 경쟁력이니 성형수술도 할 수 있을 때 하라, 조건 좋은 남자는 무조건 잡아라, 직장생활이 어렵다면 능력을 키워 빨리 옮겨라, 30대가 되면 속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니 20대부터 이왕이면 하루라도 빨리 속물로서의 삶을 깨달아 행복에 빨리 다가가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는 20대 여성용 자기계발서라는 거대한 흐름의 물꼬를 텄다. 2004년 7월에 출간된 뒤 베스트셀러 순위에 단 한 차례도 오르지 않았는데도 1년 동안 1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그러다 2005년에 뒤늦게 순위에 오르면서 20대 여자들이 소비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이후 출판기획자들이 ‘20대 여자’를 대상으로 한 책을 기획하기 시작해 2006년의 20대 자기계발서 호황을 누렸다. 취업 5종 세트를 따느라고 ‘교양’과는 거리를 두고 살지만 남보다 빨리, 그리고 쉽고 단순하게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20대 여자들에게 핵심만을 간략하게 제시함으로써 ‘20대 여자를 위한 성공 바이블’로 자리매김했고 속편까지 출간되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는 “바람(Wind)의 딸에서 바람(Hope)의 딸로”라는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 잘 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7년에 걸쳐 오지 여행을 하고 펴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 배낭족들의 교과서가 되면서부터 한비야는 겁 없이 오지를 여행하는 ‘바람의 딸’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후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800km에 이르는 우리 땅을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쓴 49일간의 국토종단기인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와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1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겪은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비야는 자유로운 영혼과 열정의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한계와 틀 안에서 살 수 없었다고 말하는 한비야가 다시 선택한 길은 대가없이 약자를 돕는 구호의 삶이었다. 43세가 되던 해인 2001년 10월에 한비야는 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이 되면서 드디어 오지여행가에서 긴급구호활동가로 변신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한비야가 긴급구호 팀장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5년 동안의 현장 보고서이자 자유롭고 거침없이 살았던 삶의 기록이다. 한비야는 2009년에 펴낸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2005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출간된 이후 4년간 이 책을 읽고 해외 아동 후원을 신청한 사람이 6만 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공중파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서 월드비전 해외구호 이야기를 하자 그날 하루 동안 해외 아동 정기 후원 신청 1,000건에, 일시 후원금 등을 합해 무려 6억 원의 지원금이 모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갖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젊음, 아름다움, 남자친구, 직업, 가족 등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있어 부족함이 없었던 24세의 베로니카는 1997년 11월 21일 죽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죽으려 한 이유는 자신의 삶이 너무 뻔하다는 것과 자신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두 가지다. 권총 자살, 투신자살, 목을 매는 방법 등은 여성스런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베로니카는 네 통의 수면제를 삼킨다. 하지만 그녀가 눈뜬 곳은 정신병원 빌레트. 죽음 대신 그녀에게 허락된 것은 일주일 남짓한 삶이 전부다. 그는 빌레트에서 제 몸 안에 든 광기를 어쩌지 못해 바깥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을 만나며 삶과 죽음, 사람들에 대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수많은 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베로니카는 그녀가 진정 꿈꾸었던 세계와 조우한다. 젊은 시절 여러 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경험을 모티브로 죽음 앞에 선 인간의 광기와 생에 대한 열정을 그린 작품이다. 2001년 2월에 국내에 번역 출간됐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2004년에 인간본성을 탐구한 [연금술사]와 [11분]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코엘료 신드롬이 일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동반해서 상승했다. 코엘료 붐은 2005년에도 식지 않고 이어지면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인기 또한 지속됐다.
이라부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동. 살갗이 흰 바다표범 같고 100kg이 넘는 독특한 용모에 상상 불허의 캐릭터인 엽기 의사 이라부 이치로와 사계절 핫팬츠 차림의 섹시하지만 터프하기 짝이 없는 간호사 마유미가 ‘치료’를 한다는 미명하에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요절복통할 사건들이 전개된다. 뾰족한 걸 보기만 해도 몸이 뻣뻣하게 굳고, 땀이 바작바작 배어나오는 야쿠자의 중간 보스 세이지, 최근 3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공중그네에서 번번이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 고헤이, 병원 원장인 장인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등 강박신경증을 앓고 있는 젊은 신경과 의사 타츠로, 연습시합에서 젊은 신인 루키에게 야유를 듣고 폭투한 이후 1루에 제대로 송구할 수 없게 된 프로입단 10년차의 베테랑 3루수 신이치, 도시남녀의 심리상태를 잘 그려내지만 심원성 구토증을 가진 소설가 아이코 등 경쟁에서 뒤처질까봐 불안해하는 다섯 명의 특별한 환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이라부의 엽기적인 심리치료를 옴니버스식으로 그린 이 소설은 제131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무겁고 진지한 사회문제를 기발한 구성과 유머라는 코드로 풀어냄으로써 작품성과 대중적 재미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인 더 풀], [남쪽으로 튀어!], [걸] 등 후속작들이 모두 좋은 반응을 얻은 오쿠다 히데오는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일본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공중그네]는 밀리언셀러 등극을 앞두고 있다.
백설공주 같은 미모의 언니와 지적이지만 양치기 소녀 같은 외모로 콤플렉스를 느끼는 동생이 중심이 되어 밤 11시 56분부터 다음 날 아침 6시 52분까지, 7시간이 조금 못 되는 밤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인간과 사회의 축소판 같은 이야기다. 집에 돌아가기 싫은 열아홉 소녀 마리는 언니 에리의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인 다카하시의 소개로 러브호텔 ‘알파빌’에서 손님에게 맞아 쓰러진 중국인 매춘부의 말을 통역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마리는 기묘한 별세계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현실 속의 평범한 인물들이 ‘우리’라는 시점을 통해 현대 사회의 폭력 구조에 천착하면서도 어떻게 현실 속에서 관계성을 회복할 것이냐는 주제를 진지하게 모색한다. 소설적 시공간을 도시의 하룻밤으로 제약하고, 주인공들의 일상을 카메라처럼 따라가는 독창적인 영상 표현기법을 도입해 고도자본주의 사회의 기묘한 일상과 그 이면을 세련되게 포착했다.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 등으로 이미 많은 국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키 문학 25년 만의 획기적 전환을 알리는 작품’인 [어둠의 저편]은 2004년 일본에서 원제 애프터다크(AFTER DARK)로 출간됐다. 한 신문에서 “하루키는 언제나 보증수표일까? 거대 도시의 낮은 신음 소리로 오염에 가득 찬 새벽의 잉태를 짐작케 하는 하루키의 솜씨를 믿는가.”라는 의문을 표시했지만 한 달 만에 가볍게 10만 부를 돌파함으로써 하루키의 국내 독자층이 탄탄함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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