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를 먹으며 행복하기.
건천댁 이미경
난 심심할 때마다 카카오 쇼핑하기를 본다. 카카오 톡딜에 올라온 상품 중, 가성비가 좋은 걸 골라 종종 구매한다. 며칠 전, 태국 망고를 파는 톡딜이 올라왔다. 작년 베트남여행에서 먹은 망고가 너무 맛있어서,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가격도 비싸고, 마트에서 사 와 먹어봐도 그 맛이 안 나서 실망스러웠다.
이번 태국 망고는 항공 직수입이고, 상품평도 좋아 4킬로를 샀다. 배송 온 망고는 종이 상자에 10개가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크기도 제법 되고 포장상태도 좋아 기대가 되었다. 그중에 약간 몰랑한 거 하나를 까서 남편과 나눠 먹었다. 아직 완전히 숙성되진 않았지만, 당도는 괜찮았다.
남편이 출장을 가 한가한 오전을 보내다가, 사 놓은 망고가 생각났다. 숙성이 잘 되었나 확인해보니 제법 몰랑해졌다. 그중 작은 거 하나를 골라서 깎아 먹었다. 과도로 씨를 살살 비껴가며 한쪽 면을 잘라냈다. 네모나게 칼집을 넣어 티스푼으로 떠먹었다.
진노랑빛의 잘 익은 망고는 더없이 부드러웠다. 진한 향과 과즙이 올라온 망고가 입안 가득 퍼지며, 배시시 웃음이 났다.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정말 행복했다. 망고 하나로도 행복해질 수 있나? 싶었지만 행복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런 여유와 흔하지 않은 망고를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았다. 꼭 값비싼 것, 화려한 것, 눈물 나게 감동적인 것이 아니어도, ‘작은 망고 하나로도 행복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소확행’이란 말이 실감 났다. 그냥 애들이 쓰는 신조어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동안 나는 너무 큰 거로만 행복을 찾아왔던 것 같다. 돈 많이 버는 것, 좋은 집에 사는 것, 남편이 출세하는 것, 애들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는 것만이 ‘행복’이라 생각했다.
오늘 아침처럼 달콤한 망고 한 조각으로도, 마당 한쪽에 파란 이파리 사이에 송골송골 맺힌 빨간 앵두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할 수 있는데.
이제 독립해서 각자 삶을 사는 두 아들을 보면, 우리가 살아왔던 모습과 다른 면을 많이 본다. 결혼도 안 했는데 독립해서 살고, 명절, 제사도 우리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아들은 예전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처럼 아끼고, 열심히 저축하지 않는다.
장래를 위해 좀 참고 아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는다. 물건도 당장 필요하다고 샀다가 안 쓴다고 집에 가져다 놓는다. 좀 아껴 살라 하면 “내가 사고 싶은 거 사려고 돈을 버는 거예요” 한다.
지금의 삶이, 제 행복과 만족이 우선인 아이에게 뭐라 대답해야 할지 어떤 때는 말문이 막힌다. 나무란다고 듣는 나이도 아니고 세월 탓이려니 하며 나를 달래지만, 어쩌면 아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지금 아이가 사는 세상은 다르니까.
내가 20대 직장생활을 할 때 알던 아주머니 한 분이 생각났다. 당시에 너무나 놀랐던 그분과의 대화 때문이다. 1986년쯤, 당시는 바나나가 무척 귀했다. 명동 한복판에서 바나나 하나를 천 원씩 팔기도 했었다. 그분은 집에 바나나가 선물 들어오면 주방에 숨겨두고 혼자 드신다고 했다. 이유인즉, 내가 기쁘고 건강해야 애들과 남편도 잘 챙길 수 있고, 남편은 밖에서 좋은 걸 먹을 기회가 많고, 애들은 본인보다 살 날이 더 많고, 좋은 것을 먹을 기회가 더 많으니 본인이 먼저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양보하는 어머니상이 아닌, 그분 얘기에 많이 놀랐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모든 어머니가 다 희생적인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분은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했던 것 같다.
그때는 놀랐었지만, 지금은 그분이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태껏 나는, 나를 앞세우기보다는 남편과 아이들 우선으로 살아왔다. 집안일을 결정할 때도, 식당 메뉴를 고를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내 주장은 없고, 선택권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주고 살았다. 그래서, 내게 없는 것, 내가 가진 것보다 더 큰 것을 가지는 것,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온 거 같다. 나에게 큰 행운이 오기를 꿈꾸며 정작 내 주위에 행복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온 것이다.
두 분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고, 남편과 아이들 모두 건강하고 제 몫의 삶을 살고, 편안한 집이 있고, 하고 싶은 공부도 했다. 때마다 예쁜 꽃과 초록을 선물하는 작은 마당이 있고,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친구와 말동무가 있다.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행복을 누리고 사는데 말이다,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들을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가정은 정원과 같아서 내가 가꾸지 않으면, 금방 잡초투성이가 되어버린단다. 행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열심히 가꾸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날마다 행복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가꾸고 찾아야겠다.
오늘 아침에 먹은 부드럽고 달콤한 망고처럼, 달달 한 행복을 찾아, 내 주위 사람들과 나누며 아름답게 살고 싶다. 멀리서 가 아닌 내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