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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 2005. 1. 7(금)>
*직업 기술학교 방문-시내 관광-개선문-샹젤리제-에펠탑-루브르 박물관-빠리 야경
- 아침 산책
새벽 1시 30분쯤에 눈을 떴다. 시차 적응이 안되어서이다. 한국 시간은 9시 30분쯤이니......
한참을 누워서 시간을 보내다가 5시경에 창문을 열어보니, 바로 바깥이 잔디밭이었다. 순간 창문을 그대로 뛰어넘어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새벽 산책을 나섰다.
낯선 곳에서의 느낌, 상큼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는 길가의 화단, 새파란 잔디, 훈훈한 바람, 그리고 무엇보다 예쁜 가로등 불빛이 눈에 띄었다. 가로등마다 예쁜 꽃모양의 네온사인이 반짝거렸고, 동네 어귀마다 네온사인으로 들어가는 입구 부분을 장식해 놓았다.
프랑스는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초록의 물결이다. 그리고 이름 모를 꽃도 많이 피어있고.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아침 산책은 단장님을 모시고 여행 내내 이어졌는데, 우리가 묵은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사람 사는 구경을 하며 우리의 자취를 남기는 기분도 색다른 여행의 한몫을 했다.
- 학교 방문
호텔에서의 뷔페식 아침을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첫 번째 방문 학교는 빠리의 직업 기술학교이다. 약 900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공고나 실업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곳인데, 주 특색교육은 건축, 건설경영, 체육, 응용예술 등이었으며, 체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 관련이 아니라 곡예사처럼 건물에 매달려서 하는 일, 또는 잠수 건설, 수상 건설 등에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지상 작업을 위한 설치장, 철골 재료를 보관하는 창고를 따로 두고 있었는데, 본관 건물에서 따로 떨어진 동네 곳곳에 각종 실기실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가 철골 실험실에 갔을 때 학생들이 한창 실습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취업은 100%라고 하며 임금도 많이 받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습실은 학급당 16명 정도 인원이며, 일반 수업은 32명 정도라고 한다. 먼지를 덮어쓰고 뭔가를 의논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컴퓨터실은 시설면에서 우리보다 많이 뒤떨어진 느낌을 주었다. 확실히 우리 나라가 컴퓨터 관련 부문에서는 세계 최강이라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모니터는 모두 LG 제품이었다. 독일 괴테 김나지움의 모니터는 SAMSUNG 제품이었고.
몇 군데의 실기실 중에서 매우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미술실이었다. 바깥에서 보면 무슨 창고같은데, 들어가니까 학생들과 교사들의 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어찌나 학생들이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는지 사진을 찍기가 미안했지만, 그래도 기념촬영을 했다.
분명 외관상의 시설은 우리보다 못하지만 수업을 받는 학생의 태도와 수업의 방법은 우리와 차이가 많이 났다.
2학년 미술실기실에 우리가 들어갔을 때 수업내용은 ‘앙리 무슈의 문학 작품에 나오는 곤충을 표현해 보기’였다. 교사가 던져준 주제에 맞춰 학생들은 각자 개성껏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신문지로 오려 붙이며 형상을 만들고 있는 학생,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 학생 등.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 낸 작품들은 전부 다 스크랩으로 보관하여 바칼로레아, 대학 입학시험 때 제출하여 구술시험 자료가 된다고 하였다. 또한 이것으로 논술 시험까지 연결해서 한다고 하였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부문의 공부를 한다는 것, 엎드린 학생 한 명 없이 모두 각자의 학습 활동에 열중해 있는 모습, 그리고 따로 교과서 없이 교사가 주는 주제에 맞게 표현해 나가는 것 등이 새롭게 와 닿았다. 또한 교사들도 자부심이 아주 강했는데, 교사의 자율성을 인정해 주고 행정업무가 없는 환경이 우리들의 부러움을 샀다.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행정적 교육이 아닌, 실질 적인 교육, 학생을 위한 교육,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 이래서 프랑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빠리 시내 관광
학교를 나와서 우리 일행은 버스-이 곳에서는 장거리 버스의 차내에 화장실이 있는 게 특이하다. 사용은 잘 안하지만.-를 타고 파리 거리를 관광했다. 그림엽서에서나 보던 건물들, 아주 오래된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1850년에 도시 설계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빌딩의 높이는 보통 7, 8층 정도이며, 1층은 가게, 2층부터 아파트였다. 모두 개인 소유로, 외관이 모두 달랐다. 외부 조각, 발코니, 창문, 그렇게 많은 건물들이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예술 작품이었던 것이다. 물론 외부는 절대 고치지 못한다고 한다. 내부 수리는 가능하지만. 그들은 오래된 조상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고 있는 민족이었다. 그리고 건물 외벽이 때가 타서 지저분해지면 그들은 외벽 청소를 하는데, 자외선으로 처리하는 방법과, 샌딩, 즉 모래에 압력을 가해서 물을 뿌리며 청소하는 방법이 있으며, 전자는 비싸서 주로 후자의 방법으로 건물 청소를 한다고 한다.
차도도 150여 년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방 통행이 많으며, 주차는 주로 길가에 하는데 면적이 좁기 때문에 앞차에 거의 붙여서 주차를 하며, 주차시 작은 접촉 사고는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주차되어 있는 차도 거의 낡은 소형차였다.
하수도는 세계에서 최고로 잘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 길이가 무려 2,200KM나 되며, 그 하수도관으로 가스 시설, 전기 시설이 되어 있다고 한다.
창밖을 보니, 흐릿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회색 건물들 속에서 걷는 인파의 행렬이 정지 화면을 보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행인들의 옷차림도 거의 검은 색과 회색이다. 가장 눈에 띄는 옷, 바로 내 윗도리였다. 노란색에 가까운 겨자색이었으니.
짐을 적게 가져가느라 여벌옷도 윗도리를 하나 더 가져갔는데 그것도 진분홍색이었다. 사진이 우중충하게 나오지 않도록 일부러 밝은 색을 가져갔는데, 빠리에서는 영 어울리지가 않았다. 한 번 입고는 짙은 색깔에 내가 질려 버렸을 정도이니. 하나같이 수수한 옷에 수수한 색깔이었던 것이다. 날씨와 도시 분위기와 행인들의 모습이 삼위일체가 되어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 개선문 앞에서
개선문 앞에서 자유시간을 얻어 하차한 우리는 단체 기념 촬영을 하였다. 단체라는 말을 여행 중 자주 하게 되어, 이제는 정겨워진 말이 되었다.
드골 광장에 있는 에뚜왈 개선문은 1806년 나폴레옹 1세가 휘하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우도록 명했으나, 나폴레옹 사후인 1836년에 완공되었으며, 큰 아치 중앙 아래에는 1920년 이래로 1차 대전에서 전사한 무병용사의 묘비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매일 저녁 6시 30분에 이들을 기리는 불꽃이 타오른다고 한다. 개선문의 벽면에는 뤼드의 조각 <라 마르세예즈(진군)> 등의 부조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당시 신고전주의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개선문에 장식되어 있는 섬세한 조각품은 금방이라도 살아서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 개선문과 그 주위를 둘러싼 샤를르 드골 광장은 샹젤리제를 비롯한 12개의 대로가 이곳에서 출발하는데, 에뚜왈(etoile: 별, 방사형의) 광장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 샹젤리제에서
개선문에서 바로 뻗은 시원한 도로, 바로 샹젤리제이다. ‘오, 샹젤리제’라는 노래 가사로 유명한 이 거리는 빠리의 상징도로로서,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거리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 의미는 샹(Champs)과 엘리제(Elysees)라는 두 단어가 합해진 것으로, 샹은 ‘앞마당’, 엘리제는 ‘천국’이라고 한다. 천국의 앞마당이니, 낙원으로 생각했더니, 가이드는 ‘지옥에서 영혼들이 쉬었다 가는 장소’라는 뜻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현재 프랑스 대통령 관저로 쓰고 있는 엘리제궁이 바로 이 길 중심부 옆에 자리하고 있어서 엘리제의 앞마당이라고 한다.
이 길은 빠리의 중심부 시떼섬에서 출발하는데, 계속 가면 꽁꼬르드 광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오벨리스크가 있고.
거리에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유명한 리도 극장도 눈에 띄었으며, 그 길 건너편에는 커다란 가방 모양의 루이비똥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간이 상점들이 큰 건물의 맞은편에 군데군데 있어 여행객들을 맞고 있었다. 나도 열쇠고리 몇 개와 엽서 몇 장을 사서, 널따란 인도를 행인 속에 따라 걸으며 이방인으로서의 짜릿한 쾌감에 젖어들었다.
바쁘지 않은 걸음걸이, 서로를 구경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샹젤리제에는 있었다. 그래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나 보다.
할 수만 있다면 더 걸어가고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서 우리는 차로 돌아왔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의 라빅과 조안의 사랑을 떠올리며.
그리고 에펠탑으로 향했다.
- 에펠탑을 보며
에펠 탑이 잘 보이는 곳에 도착한 우리는 훤하게 트여 있는 주변 광경을 먼저 접했다. 말끔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는 광장, 시원스레 펼쳐진 도로, 그리고 분수대가 탑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돔이 인상적인 건물, 나폴레옹의 무덤인 앵발리드도 보였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돌 기념으로 빠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철탑이다. 높이가 약 320m로 격자형인데, 건축가 알렉산드르 구스타프 에펠(1882~1923)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탑 꼭대기 방에서 에펠이 2년 정도 살았다고 한다. 지금 그 방에는 밀랍 인형이 만들어져 있는데, 에디슨이 축음기 전시 후에 에펠에게 선물로 주고 에펠과 담소하는 모습을 만든 것이라 한다. 그리고 탑 위에 3개소의 전망대가 있는데, 저녁에 빠리의 야경을 볼 때 올라가 보기로 하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루브르 궁전으로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프랑수아 1세로 시작하는 역대 왕의 수집품이 루이 13세, 14세 때에 크게 불어나 1793년 국민의회가 소장품들을 공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정식 미술관으로 발족하게 되었고,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정책에 의해 본격적인 공사로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완성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건물 중앙의 안뜰에 커다란 유리 피라미드가 있었는데, 이것은 신축 공사의 일환으로 1989년에 완공된 것으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루브르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이 피라미드는 밑변 35m, 높이 21m이며, 지하시설의 채광이나 각 진열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기능을 고려하여 설계된 것이라 한다. 현재 소장품은 약 30만 점이며, 전시 작품은 약 5만점이라고 한다.
루브르의 3대 걸작으로 알려진 밀러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니케’,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을 비롯하여 세계적 명작을 소장하고 있는데, 특히 모나리자 앞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제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기원전 2~3C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비너스’나, 기원전 190년 쯤으로 보는 ‘니케’ 앞에서는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 빠리의 밤 풍경
빠리의 밤은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에펠탑은 거대한 다이아몬드 덩어리였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에펠탑의 모습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탑의 꼭대기로 오르는 승강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우리 뒤로 사람들이 끝을 모를 정도로 줄을 서 있었다.
드디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승강기를 탔다. 승강기는 첫 번째 전망대에서, 두 번째 전망대에서 잠시 세웠다가 이내 꼭대기 세 번째 전망대로 향했다. 요금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층마다 타고 내리고 이동이 있었다.
승강기가 아주 빠르게 올라가는 바람에 긴장이 되었지만 눈 아래 펼쳐지는 빠리의 야경에 이내 넋을 놓고 빠져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63빌딩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도 이와 별 차이 없으리라. 하지만 서울의 야경을 못 본 나로서는 눈 아래 정연하게 펼쳐지는 빠리의 야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더군다나 산도 없는 넓은 평지의 도시인데다가 높은 건물도 없으니, 사방을 다 돌아봐도 거대한 원 속에 반짝이는 불빛들만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대로 별이었다. 둥근 하늘에 뿌려진 별처럼.
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 보았다.
탑의 꼭대기에 밀랍으로 만든 실제 사람 크기의 인형, 에펠과 에디슨이 있는 것을 보고는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내려왔다.
그리고 세느강변으로 가서 유람선을 탔다. 노트르담 성당, 알렉산드르 3세 다리, 오르세 미술관 등이 보였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2층 객실에 서서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낮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플래쉬를 많이 터뜨린 탓에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되어 사진 찍을 수 없음을 몹시 안타까워하며. 혹시나 하고 미리 준비해 갔던 필름식 카메라도 숙소에 두고 와서 이날 밤은 바보 같은 행동을 자책하며 그냥 발만 동동거려야 했다. 하지만 일행 중에 사진 전문가인 사천고등학교 황진기 선생님이 사진을 담당하고 있어서 내심 마음은 놓고 있었다.
에펠탑은 정말 눈에 잘 들어왔다. 어디서나 고개만 돌리면 화려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푸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소설가 모파상은 철로 이루어져 있는 에펠탑의 흉물스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안 보려고 해도 어찌나 눈에 잘 띄는지, 에펠탑이 안 보이는 곳, 바로 에펠탑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겨 했다고 한다.
밤은 정말 아름다웠다. 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도록 빠리는 밤을 예쁘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프랑스 인구 6,000만명에 연간 관광객 7,500만명을 불러들이며, 그리고 관광수입 300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많이 보고, 많이 느낀, 빠리에서의 두 번째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
첫댓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 주지 말고, 해외 여행을 보내라시던 교수님 생각이 납니다. 틈틈이 읽어 보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