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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완석 현종님께서 직접 올리신 자료 입니다
개화기 대미외교의 선구자
외아문 미국주재 공사관 서기관 장 봉 환
副領公 張鳳煥
부령공은 백씨 운강공과 한날 구한국 고종6년(단기 4202년) 기사 7월27일 외가인 경북 의성 비정리(飛亭里)에서 쌍태로
태여나시다 정해년 4월에 개로면 상동 안동권씨와 성혼 하시고 2월에 상경 북문밖 금선암(錦仙庵)에서 찬정 민상호(閔商鎬)씨와
같이 수학하시게 되니 이때부터 형제분이 각거(各居)하시게 되었다 무자년8월에 육영공원 유수한 청년을 특별교육하는
곳에 입학 기축년4월에 왕명으로 이친왕궁에 드러가셔서 수학 8월에 전라도감시에 합격 기사년 정월에
외아문주사(外衙門 主事)가 되여 미국주재 공사관 서기관이 되시어 상사 이참판 승수(承壽)
수행원 이현직(李玄稙)씨와 같이 출발하실때
상감께서25세이라 넓고넓은 태평양을 건너타국에 가라하였으나 너의 신상이 매우걱정된다 그러나
국사이니 너는 성심으로봉직하여라 하시면서 관복1벌과 약을 하사하시다 공손이 대답하고 떠나시게 되니
그날은 기사2월 초4일 동월10일에 일본에 도착 조선 공사관에 유숙하시고 15일에 미국 보스톤에 도착
만국박람회에 참석하시고 4월10일에 華盛頓(워싱턴) 조선공사관에 도착하시다 공은 영어를 잘하시어
언어동작이 하나하나 법도가 있음으로 외국인들도 탄복하였다 공무 여가에 풍속지 라는 책을 지어 오셨는데
그책속에는 서양각국 도시상황과 음식 남여 풍속이 기록되여있다 어느날 망명역적 서광범(徐光範)이 공사관에와
면회를 청하니 상사가 면회를 허락코저 말하되 이사람은 불기일에 귀국하면 권력을 잡을자이니라함에
공이 항거해 가로되 그사람들은 비록 고관이 될자라도 오늘은 역적이 아니냐 우리들이 특명을 받아온
신하로 역적을 가끼이 하면 대의에 틀린다하여 강경히 거절하였다
갑오년 7월에 칙명으로 상사와같이 귀국하여 상감앞에 복명을 하니 상감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지금 간신들이
조정에서 국정을 롱단하랴 함으로 충량한 신하중에 많이 파면당하고 궁중은 찬바람이 나는듯하다 국사가 날로
그릇되니 멀리있는 경들의 낯이 보고싶어 불렀다 하시어 공도 땅에 업드려 방성통곡 하시다 상감께서 말씀히되
너의 부친이 영덕서 무단히 파면을 당하고 곤란을 당한다 하시며 재하의 네가 잘주선 하라 하시면서 내장금 4천양
하사하시며 눈물로 받아 부친께 고한후 빚을 청산 군신간의 이런일은 드문것이다 너도 임금과 친한 사람이니
불이의 화를 면하라 하시면서 돈을 하사하는지라 고하되 신의 부자가 상감의 큰 은혜를 입으니 목석이 아닌이상
어찌 임금을 잊고 멀리 가겠아오리까 또한 국가가 위급한이때 물러가는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 하시니
상감께서 가상한 말이라 하시고 원외랑을 시키시다 8월에 서광범의 죄가 용노(容怒)되여 법부대신이 되였다
서씨의 말이 네가 전일 미국에 있을때 장모의 의리가 정직함을 잘알고 있다 하며 그부하에 임명하는지라
공이 가로되 군명이 아니라 하시면서 사양하였다 을미년에 통훈대부 법부주사(通訓大夫 法部主事)가 되셨다가
사면 귀향하였다 병신년 8월에 육군부위로 군부외국과에 봉직 정유년3월 궁내부 물품사장 7월에 궁내부
영선사장 차차 승진 내사과장을 겸임하시다 그달에 비밀칙령으로 외국경재를
정찰키위하여 상해로 가셨을때 露國(쏘련)인이 우리나라 지도 관제 총호구등을 알려주면 이백오십만원을
주겠다함으로 그에 간특함을 꾸짖으시고 후일 상감께 그사실을 보고하니 상감께서 칭찬하시다
기해년 6월에 육군 정위가 되시고 10월에 종이품 가선대부가되시니 배위 안동권씨 정부인되시다
경자년 2월에 평리원 칙임 검사(平理院 勅任檢事)가 되시니 5월28일 국적 안형수(安炯壽)권영진(權영鎭) 경무사
(명성황후 시해 역적)
심리 없이 先斬 하였다 온 장안 백성과 상감께서 통쾌하다 하였다 그러나 형식으로 황해도 황주군 철도에
유형을 하였다 일인의 위협으로 유형을 하였으나 법율순서를 밟으면 놓칠 우려가있어 선참을 한것을
상감께옵서 심산을 잘 아는지라 유형을 흠쾌이 가시었다 6월에 의정대신 윤용선(尹容善) 이하 모든 대신과
영남유림 정우묵(鄭佑默) 제씨들이 상소하여 유형을 취소토록 청하니 당월 26일 칙명으로 특사되시다
그해9월에 다시 육군정위가 되시고 11월에 충추원 의관이 되시다 그해여름 영남유림 권죽림(權竹林) 선생 과
이고산(李孤山)선생의 청시(請諡) 소두(疏頭) 상소에 그비답(秘答)으로 육군참령(陸軍參領) 으로 오르시고
10월에 친위1연대 제3대대장
이 되시어 군률을 바로잡고 애정으로 지도하니 불기일에 군졸이 부모같이 여기었다 제2대대장으로
계실적에 평양병정2백명과 서울병정간의 알력으로 위험한 지경에 놓이게됨에 상감께서 부장 민영환에게
물으시되 병졸이 요란함은 이면에 무슨 이유가 있는것이라 하시며 진무하지 않으면 않될것이니
적임자를 물으심에 민공이 대답하기를 군졸의 신망이 두터운 장모라하시니 상감께서도 동감 진무책임자로
명하시니 진중을 담넘어로 위무적절히 훈계 호령으로 열을 지워 광하문 까지 행군하니 상감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장수의 자질이라 하시다
이해 심험한 이유인(이양주)이 영남유림중 여러사람을 역모로 무고하여 상감께 이르기를 궁중에 거괴(巨魁)가 있으니
먼저 처리하라 함에 상감께서 놀라시며 부자의 이름을 삭제하시다 갑진년에 친일 세력가에 밀리어
대구 진위 대대장으로 가셔서 병인년 정월에 훈사등 팔괘장(勳四等八卦章)을 받으시고 정미년에 헌병대장이 되셨으나
날로 기우러저 가는 국운을 탄식하며 벼슬을 사양하시고 귀향 두문불출하시었다 기사 2월 초7일 향년(享年)이
61세로 돌아가시었다 묘는 팔미산 손좌(巽座)에 장사하였다
출처. 張基生家 家乘
장병창 논설위원
九. 개화기 장봉환 연구
1. 머리말
2. 출생과 육영공원 입학
3. 주미조선공사관 서기관 취임
4. 상해방문과 외국인 용병 영입사건
5. 제2차 미국방문
6. 평리원 검사와 을미사변 가담자 처리
7. 장봉환의 단종관
8. 예천 낙향
9. 결 론
∙ 참고문헌
∙ 요약_국문_영문
작가소개
이민식 경북 의성 출생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한미관계사 전공 박사
한신대학교 강사
한국교원대학교 강사
대림대학 교수
한국사상문화학회 이사
대림대학 재단이사
황조근정훈장
[저서]
한국사의 실체
여명기초 한미관계사 연구
最近史에 비친 韓國의 實體
근대한미관계사
세계박람회와 한국
개회기의 한국과 미국 관계
한국민족사의 실체
[논문]
미시건 湖畔 세계박람회에서 전개된 개화문화의 한 장면
여수 엑스포 문제를 계기로 살펴본 세계박람회와 한국
우리나라가 처음 참가한 세계박람회에 대한 연구
역사의 현장에서 전개된 한국과 세계박람회
보빙사 민영익의 보스턴 박람회 관람기
Korea로 처음 참가한 콜럼비아 세계박람회
콜럼비아 세계박람회에서의 문산 정경원의 활동
외 다수
고평 팔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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