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 8. 30. 15:10
질의자 : 이수
휘 봉생(鳳生)의 호는 헌재(軒齋)로 1325년 문과에 급제하고 보문각의 제학(정 3품)과 제거(종2품)에 올랐으며, 손자 휘 술(述)은 소윤(종4품)으로 3형제를 두어 호군공의 증손에서 3종중을 이루는데 장손 휘 포(布)는 찰방공파, 휘 습(襲)은 진사공파, 휘 기(綺)는 사정공파로 분파되어 계대되고 있으나 후손은 미약한 편이다.
☞ 이상과 같이 이암공과 호군공의 족보와 사적을 살펴보았으나, 현존하는 묘소나 단소, 비갈, 묘갈 등 전함이 없고, 행적이나 후계들도 특
별함이 묘연하고, 후손들의 무지로 자세히 설명 드리지 못함이 애석하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휘 鳳生의 아드님으로 기록된 휘 술(述)은 광흥창주부를 역임하신 분인데, 이분의 후손이 뿌리를 찾지 못해 경주이씨 일부 파보에 이와 같이 기록되었다가 옛 문헌이 발견되어 현재 재령이씨로 뿌리가 밝혀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휘 鳳生의 아드님으로 기록된 정확한 문헌은 저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휘 술(述)이란 분이 재령이씨라는 증거는 이분의 증손자 두 분의 문과방목과 성종실록 및 옛 묘비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또 1497년 아들에게 남긴 유계(遺戒)의 내용이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재령이씨 원주파로 후손이 원주영월 제천 일대에 살고 있으며 묘소는 원주 만종과 영월 수주면에 있습니다.
휘 布의 손자이시고 휘 文發의 차자는 1483년 丙科 급제하였으며 장자는 휘가 전이며 이분의 묘비는
1517년에 세운 부인과 합장 묘비이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초등학교 뒤에 있다.
재령인 휘 전은 증조 廣興倉 丞 述이시고 조는 선무랑 무안현감 布이며 아버지는 학생 文發이라는 글
씨가 사진으로도 거의 판독이 가능한 비이다.
댓글 : 이수11.09.01. 22:59
원주원씨족보에 원효연( ? -1466)의 아우 원효이의 배위는 1600년대 운창 조종운선생이 기록한 씨족원류에 재령인 현감 李布의 따님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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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이용희(淨再) 01:41
호군공 지정-헌재공 봉생-소윤공 술- 포. 습. 기 로이어지나 후손의 정확한 계보는 미약합니다.
재령이씨의 계보엔 근재공 맹현-진사공 구- 은술- 포.기 로이어지지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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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이수11:39
그렇게 되어 있지만 잘못된 것이지요. 위의 비문을 보면 아시겠지만 재령이씨 족보(1850년 간행 경술보)가 述이하 원주파를 잘못 계대하였기 때문에 필자가 수년에 걸처 이파의 원 뿌리를 찾고 있었는데 위 휘 전 묘비에 이분의 생년이 1440년으로 또 1486년 영춘현감 발령(왕조실록) 받은 사실이 있고 근재공 李孟賢公(1436-1487)과 불과 4살 차 이밖에 없는데 그 아드님의 진사공 구의 후손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선명신록(1920년대에)에는 재령이씨의 또 한파 즉 광흥주부 述派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가 생각큰대 경주이씨 甲譜에 수록 안 되었다가 그 후 경주이씨에서 재령이씨로 분적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1850년에 재령이씨족보에 수록할려니 일시적으로 진사공(諱 玖) 후손으로 실려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인데 묘비와 여러 문헌으로 재령이씨가 확실하며 광흥주부 휘 述은 고려 말의 선조입니다.
원주원씨묘비에 주부공의 손녀가 1405년생으로 되어 있지요. 술 이하 현재까지의 계보와 묘소 배위 등은 거의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