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完璧), 문경지교(刎頸之交)란 고사성어의 유래
‘옥에 티’라는 말이 있습니다[瑕疵].
*瑕 허물/티/옥의 티 하, 疵 허물/흠/흉/재앙 자
여러 광물질들이 합성되는 과정에서 티가 섞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티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정직한 덕성을 옥이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 ‘玉’이라는 글자가 본래는 ‘王’처럼 생겼었는데 그곳에 있는 티를 나타내자고 ‘玉’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오랜 사전인 《설문(說文)》에 실려 있습니다.
초나라 사람 화씨(和氏)가 어느 산중에서 옥의 원석을 발견해서, 그걸 소중히 받들어 임금(여왕)에게 바쳤다.
임금이 전문가를 시켜 알아보게 했더니 돌맹이일 뿐이라는 감정이 나왔다.
왕이 웬 미친놈이 장난질이냐면서 화씨의 왼쪽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내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다시 그 원석을 받들어 임금에게 바쳤다.
무왕이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 본즉 여전히 돌맹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이번에는 화씨의 남은 오른쪽 발꿈치가 잘려나갔다.
무왕도 죽고 문왕이 즉위하자, 화씨는 그 원석을 끌어안고 초산(楚山) 아래서 사흘 낮 사흘 밤을 통곡하는데, 눈물이 다하자 피가 배어 나왔다.
왕이 그런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물어보게 했다.
“세상에 벌을 받아 발이 잘린 사람이 너 하나뿐이 아닌데 어인 일로 그리 비통하게 울고 있단 말이냐?”
“발꿈치 때문이 아니옵니다. 보배로운 옥인데도 돌맹이라고 우기고 정직한 사람을 미친놈 취급하는 것이 비통해서 그럽니다.”
왕이 세공인을 시켜 다듬어 보게 했더니 영롱한 보배가 나왔다.
이것을 이름하여 화씨의 옥(和氏之碧)이라 한다.
마침내 이 구슬은 장안에 제일 가는 장인의 손을 거쳐 휘황찬란한 빛을 뿜게 되었습니다.
그 구슬은 수백년간을 천하의 보배로 내려오다가 전국 중엽에 우연히 조(趙)나라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사마천이 지은 불후의 역사서 《사기(史記)》에는 그때에 일어난 사건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화씨구슬의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왕(昭王: 기원전 307-251)이 이 소문을 듣고, 인편에 편지를 보내 초나라 성 열 다섯을 줄 테니 구슬과 맞바꾸자고 했다.
이 문제를 놓고 조나라 왕이 여러 신하 장군들과 의논을 벌였다. 제의를 받아 들이자니 진나라가 성을 내놓을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안 주자니 그걸 구실로 군사를 몰고 쳐들어 올 것 같고... 사기를 당하느냐 전쟁을 벌이느냐로 조정이 고민에 빠졌다.
진나라에 보낼 마땅한 사람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환관들의 우두머리였던 목현이 나서서 식객으로 있던 인상여(藺相如)란 사람을 추천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용기도 있고 지모(智謀)도 있어 이번 일에 적임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보냈다.
인상여가 공손히 받들어 올린 구슬을 보고 진나라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이쪽저쪽 궁녀들에게까지 돌려가며 구경을 시켰고, 여기저기 만세(萬歲)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아하니 성을 내 놓을 눈치가 아닌지라 인상여가 앞으로 다가가서는,
“그 구슬에는 티가 있습니다. 제가 보여 드리지요” 했다.
왕이 아무 생각 없이 건네 주자
그는 구슬을 불끈 잡아 쥐고 기둥에 착 붙어 서서 성난 기세로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 구슬을 갖고 싶다 했을 때, 조나라 왕과 여러 신하들은 한결같이 ‘욕심 많은 진나라가 세력을 등에 업고 공수표로 구슬을 챙기려는 수작’이라고 극구 반대할 때, 저 혼자 ‘미천한 백성들도 서로 속이는 법이 없는데 하물며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을 저버리겠느냐’고 두둔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왕께서는 닷새를 목욕재계하시고 저에게 구슬과 편지를 들려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이 모두는 대국에 대한 경건한 예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일국의 신하를 자기 아랫사람 보듯이 거만을 떨었습니다. 보아하니 대왕께서는 성을 내줄 의사가 없으신 듯 하와 구슬을 도로 챙긴 것입니다. 만일 힘으로 빼앗으려 하시면 이 기둥에다 머리와 구슬을 한꺼번에 부딪쳐 깨버리겠습니다.”
구슬이 깨질까 염려한 진나라왕은 그를 어쩌지 못하고 땅을 넘기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인상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인상여는 시봉에게 구슬을 주어 조나라로 보내 버렸습니다. 인상여는 진나라왕이 구슬에만 욕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자신이 죽을 각오를 하고 구슬을 몰래 고국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진나라왕은 그를 죽이려 했지만 구슬도 없는 터에 외교적 문제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줍니다.
조나라왕은 구슬과 함께 무사히 돌아온 인상여를 높이 기리고 상대부(上大夫)라는 벼슬을 내렸습니다. 구슬 사건은 진나라도 성을 내 놓지 않고, 조나라도 구슬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결국 인상여는 사신으로 가서 구슬도 뺏기지 않고 나라의 체면도 손상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 완벽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完璧歸趙]
인상여는 훗날 진나라왕과 두 번째 회합에서도 조나라왕과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하여 ‘완벽’이란 고사의 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게 합니다.
그리고 이 당시 조나라에는 "염파(簾波)" 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그는 이웃한 연나라와 연합하여 조나라 군대의 위력을 떨친 공로로 대장군 겸 상경벼슬에 올랐고, 이러한 공적과 관직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앞에 미천한 출신의 "인상여" 란 인물이 자기보다 높은 재상자리를 꿰차고 앉으니 배알이 꼴리고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고, 언제고 그를 만나면 크게 모욕을 주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리라 하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인상여" 는 그때부터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병을 핑계로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조회에 일절 참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염파" 장군을 만 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상여" 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는데 저쪽 편에서 "염파" 장군이 오고 있었다. "인상여" 는 황급히 수레를 골목길로 피하였다가 "염파" 장군이 지나간 후에야 큰길로 나왔다.
이렇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수하들은 "인상여" 에게 항의하듯 아뢰기를, "우리가 고향을 떠나 相公을 섬기는 것은 높으신 의로움과 용기를 흠모해서인데 상공께서는 "염파" 장군보다 지위가 높으신데도 어찌 그를 두려워하며 피하십니까? 도대체 우리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부끄러워서 더 이상 상공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 이만 하직하고 고향으로 돌아 갈까 합니다."
"인상여"가, 떠나려는 부하들을 만류하면서 "염파" 장군을 피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사정한다.
"그대들은 염 장군과 秦왕 중 누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오?"
"그야 진 왕이 더 무섭지요."
"맞았소. 지금 천하에 진 왕을 누를 나라는 없소. 그럼에도 나는 지난날 두 번씩이나 진 왕을 꾸짖고 모욕을 주었소. 이러한 내가 염 장군을 두려워할 리 있겠소?
지금 진 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장군이 건재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만일 나와 "염파" 장군이 다투게 되면 두 사람 다 큰 피해를 당하게 되오. 그렇게 되면 진 왕이 군사를 내어 우리 조나라를 칠 것이오.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사사로운 서열 다툼 때문에 어찌 나라를 위급 지경으로 몰아 넣을 수 있단 말이오? 이제 그대들은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이유를 아시었소?"
뒤 사람들을 통해 이 말을 들은 "염파" 장군은 자신의 옹졸한 소견을 부끄러워하며 그 길로 "인상여" 의 집으로 달려 갔다. 대문 앞에 이르러 윗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짊어진 채 엎드렸다.
"이 몸이 워낙 그릇이 작아 상공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이제 그 벌을 청합니다."
문 앞에 "염파" 장군이 와서 죄를 청한다는 말을 들은 "인상여"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달려나가 "염파"를 부축해 일으켰다.
"우리 두 사람은 다 같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받드는 신하입니다. 장군께서 저의 뜻을 알아 주시니 오히려 제가 감격스럽습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술상에 마주 앉게 되었고, "염파" 장군은 술을 마시기 전에 하늘에 대고 외쳤다.
"나 ‘염파’는 이제부터 ‘인상여’와 생사를 함께 하는 벗이 되겠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 온다 해도 이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을 해와 달에 맹세합니다."
그러고는 ‘인상여’에게 큰절을 올렸다. ‘인상여’도 얼른 일어나 답례함으로써 두 거인은 둘도 없는 벗이 되었다.
이 고사로 하여, 생사를 같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벗을 가리키는 말로서 문경지교(刎頸之交)가 탄생하였다는 "韓非子"에 있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