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레스크의 지적 모험
배화열
문학의 목적이자 효용에서, 재미와 교훈은 중요하다. 문학은 교훈을 전달할 때, 재미라는 사탕이 필요하다. 이것을 소위 문학의 당의정설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문학의 주제로 자주 사용하는 권선징악도, 실제로는 반면교사로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재미있는 문학에는 피카레스크picaresque와 로망스romance의 요소elements도, 반면교사로서 교훈을 전달하기 위하여, 재미있는 여러 가지의 요소를 제시한다.
먼저 피카레스크란 장르는 건달소설(과거에는 악한소설임)이다. 특히 스페인에서 시작한 소설의 한 장르이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세계각국에서 환영받는 장르가 되었다.
피카레스크는 부조리한 사회관이 반영된다. 부조리란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무관심이 마찰하는 것이라고 까뮈는 말했다. 건달소설의 주인공 피카로(건달)은 부조리 영웅Absurd Hero 혹은 반영웅Anti - Hero이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피카로는 부조리한 영웅의 페르소나(가면. persona)이다. 피카레스크의 목적이 풍자(세타이어satire)에 있다. 페르소나란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즉 풍자를 대신 전달해주는 등장인물(조나탄 스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는 영국을 풍자하는 가면persona임)을 말한다.
소설이 나오기 전에 유럽에서는 로망스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19세기 대부분이 로망스였다고 리차드 체이스는 『미국 문학의 전통』에서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서구문학에서 현대문학의 대표라고 하면 소설이다. 소설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피카레스크는 소설문학의 초기 때부터 지금까지 약 300년간 최고의 인기 속에 있다.
예를 들면 최초의 소설인 <돈키호테>부터가 건달소설이었다. <돈키호테>보다 앞선 건달소설은 스페인의 작자미상인 『라자리로 드 토르메스』이다. 그러므로 문학사에서 보면 로망스의 반동으로 건달소설이 생겨났으며, 소설문학의 전신이 건달소설인 셈이다. 로망스가 소설문학의 전신이지만 리얼리즘의 특색이 결여되고 있다.
더 나아가 건달소설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리자리로 드 토르메스』도 문학 전통에서 볼 때, 행동인 -모험가의 <오딧세우스>의 희랍 전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우엘 바흐가 『미메시스』에서 두가지 영웅을 제시하였는데, 오딧세우스와 (사색인 - 참회자의)아브라함을 각각 희랍과 히브리 전통이라고 구분하였다. 따라서 서구사상에서 두 가지 전통을 문예사조에서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매슈아놀드가 지적하였다.
한편 우리 나라의 건달소설을 정비석은 <소설작법>에서 춘원의 『군상』과 김 동인의 『여인』이라고 했다. 도둑과 범죄의 소설이란 맥락에서 보면 김 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도 포함할수 있다.
더 나아가 피카레스크의 요소elements로는 도둑과 범죄 외에도 기아와 음탕한bawdy 이야기가 모험 속에 포함되면, 건달소설이 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봉건시대에(16세기) 건달(피카로)은 굶주림과 윗트와 관련된 모험이 계속되다가, 상전이 되는 수직적 신분의 상승 이동에만 그치고, 그나마 한가지 신분에서도 소외와 좌절, 그리고, 추방이 뒤따르는 희생자요 방랑자인 건달이 보통이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피카레스크는 영국에서 수입하여, 18세기초의 영국소설에서 개화하였다가, 세계각국으로 즉 불란서, 독일, 소련과 미국으로 영향력이 미치게 된 것이다. 미국은 프론티어frontier 정신과 결합하여, 바다와 강물에서 비행기와 우주에까지 개척정신이 이어진 건달소설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문학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과 『오기마치의 모험』은 허먼 멘빌의 작품(『백경』 포함)과 마이크 트웨인의 『헉클베리 핀』이후에 나타난 우수작으로 손꼽히고 있다.또한 현대의 멜라무드의 『피들먼의 초상』과 『새로운 인생』 그리고 『두빈의 이중생활』도 건달소설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피카레스크가 영국에서 개화할 때의 작품으로는, 다니엘 디포우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의 『몰프렌더즈』(여성건달picara. 김주영의 『빈집』도 여성건달임)와 헨리 필딩의 『탐 죤스』가 있다. 그 이전에 1594년에 토마스 내쉬의 『불행한 여행자』가 영국의 초기 건달소설이었다. 스몰레트의 『페르디난드』와 『로데릭 렌덤』 그리고 『험프리 크링커』도 건달소설인데, 헨리 필딩과 동시대인이다.
또한 피카레스크의 요소로서 고아와 이방인(아웃사이더outsider)의 개념은 중요하다. 건달이 고아나 이방인에서 출발하여 우스꽝스러운 모험이 계속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모험 속에는 범죄와 폭력 및 음탕한 에피소드가 계속된다. 건달소설은 에피소드소설과 비슷한 점은 모두모두 에피소드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건달소설은 부조리 영웅(사회의 희생자victims임)이라는 페르소나persona를 등장시켜서, 사회의 풍자에 강조점을 가진 것이 특색이다.
그런데 건달소설이나 에피소드소설은, 둘 다 장편이다. 건달소설은 에피소드소설과 다른 점으로, 작품에서 매저키즘masochism에 시달리는 주인공에 대한 휴머니즘humanism이란 철학이 깊이 있게 다룬 점이라고 생각된다. 단편소설에서는 에피소드가 몇 개되지 않지만, 건달소설의 에피소드는 염주알처럼 모험 속에 여러 개가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건달소설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고 있다. 건달은 소외자이기 때문에 고아나 국외자이므로, 건달이 가지는 직업도 소외된 직업을 택한다. 예를 들면 『피들먼의 초상』에서는 미국인이 이탈리아에서 포주가 되고, 권터 그라스(노벨문학상)의 『양철북』에서는 유리알의 파괴자가 되고, 『탐 죤스Tom Jones』에서는 살인미수까지 범한다.
작품에서 재미와 교훈을 전달하기 위하여, 건달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강박관념에 의해서 계속해서 움직인다. 따라서, 특이한 모험이 계속되며, 모험 속에는 여러 가지 부조리한 상황이 연출되고 폭력과 범죄 그리고, 음탕한 이야기들이 통해서 자신의 정체(아이덴티티identity)를 발견할려고 방황한다. 자신의 정체를 깨달았을 때, 건달의 정체성은 부조리 영웅이 된다.
다시 말하면 로망스와 대치관계에서 출발한 피카레스크는, 주인공인 피카로(건달picaro. 여성건달은 picara임)가 계속되는 강박관념, 즉 노마드(nomad. 유목민)으로서 한 곳에 속박되기를 거부하는 생각 때문에 모험이 연속된다. 따라서 주인공이 사회에 안착할 때까지 계속되는 모험을, 독자가 함께 할 때에 지적 모험이 따르게 된다. 사회생활의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지식인은 독서를 통한 지적모험이 계속됨으로써 각박한 강박관념을 떨어버릴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한국문학에서 <춘향전>과 같은 로망스 문학에 대치될 만한 피카레스크 소설이 나와야, 노벨문학상을 향한 우리의 집념들이 성공을 가져 올 것이다. 부분적이지만 『만다라』와 『사반의십자가』는 건달적 요소(picaresque elements)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건달소설의 성공은 강박관념을 최대로 받는 피카로가 여행을 멀리까지 하여, 지적 모험의 폭을 넓혀 주어야 성공적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