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연구회(회장 이명진)는 지난 7일 제19차 연구모임을 가졌다. 이날 강의를 한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의사가 의료소송에 걸리는 잘못 10가지'에 대해 소개하며 '의사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30여 명이 참석한 이날 연구회는 김필수 의료윤리연구회 운영위원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강의 후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강의와 토론을 요약, 정리했다. | 의료소송 예방 두 개의 열쇠는 의무기록·소통 기록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현대 사회는 '실력있고 소통 잘하는 의사' 요구
이윤성 서울의대 교수 법의학교실
미국 의료전문지인 메디칼이코노믹스에는 의료소송 전담 변호사들이 꼽은 '소송에 걸리거나 패소하는 의사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 10가지'를 소개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Rice, B. 10 ways to guarantee a lawsuit. Medical Economics. July 8, 2005. pp65-9). 여기 소개된 10가지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 의무기록을 자세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② 설명하고 동의 받기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③ 무언가 잘못 되었다면, 의무기록을 고친다. ④ 의사가 지시하면 환자는 잘 따르리라 믿는다. ⑤ 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다. ⑥ 처방할 때 과거에 진료한 기록을 참고하지 않는다. ⑦ 직접 보지 않고 판단하거나 지시한다. ⑧ 환자가 자신을 믿고 따르는지를 상관하지 않는다. ⑨ 어떤 환자든 몇 분만 할애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⑩ 환자가 불평하거나 사고가 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항목들은 모두가 의무기록과 환자 소통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만큼 철저한 의무기록과 환자와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의무기록은 빠짐없이 남겨야 의무기록의 경우 실제로는 어떤가? 환자의 상태에 대한 내용보다 비용항목이 더 많지는 않은가? 의료법에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상세히 적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상세히 적을 경우 의사 입장에서는 피해를 보게 된다는 선입견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록이 없으면 과실 유무를 판단할 근거가 없게 된다. 의무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면 의사는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다. 의료사고가 났을 경우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측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학병원들을 예로 들자면, 이 경우 담당의사가 환자나 그 가족을 만나도록 한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배상하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잘못이 없다면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를 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의료진의 과오가 확인된다면 책임질 것이라고 밝히고, 과오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환자측은 이를 받아들여야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아주 객관적으로 조사를 해야만 한다. 환자들은 사과를 요구하지만 결국은 배상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진상을 제대로 알려주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줄어든다.
의료소송 대부분이 소통부재 때문 의사들이 왜 소통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가? 60년대에는 의사에게 환자와의 소통에 대한 부분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소통을 요구하며 사회가 원하는 의사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냥 의사면 됐었지만 지금은 국민이 의료를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언제 어디서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됐다. 아는 것도 많고 기술도 좋고, 친절하기까지 한 의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공급자 우선이던 시대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이 획기적으로 높아졌고,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까지 요구되고 있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야만 한다. 권위계층에 대한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는 사회에서 의사들이 20세기 후반에 누렸던 지위·권위는 아마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의협의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오는 의사 회원들의 글들을 보면 무엇엔가 굉장히 짜증이 나있는 것 같다. 그런데 뚜렷한 주장보다는 불만이 더 많아 보인다. 의사들끼리의 소통을 넘어서 환자·환자 가족들에게까지 이런 식의 소통이 이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건강보험공단이 끼어들어 마치 공단이 의사를 움직여 환자를 치료해주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다. 의사들은 공단뿐 아니라 복지부, 보험회사, 그외 파라메디컬 분야까지도 상대해야 한다. 대형 의료기관 중심으로 움직이는 의료체계에서 파라메디컬 분야까지 리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상대적 지위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에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소통하느냐는 것인데, 이는 상대편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의료 현장에는 정답은 없고 최선이 존재하는 상황도 있으므로 언제나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므로 보는 시각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내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 환자와의 공감이 중요하므로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한 후 이를 요구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의사들이 지금보다 더 존경받고 신뢰받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은 제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적 집단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
■ 토 론 - 정형외과 전문의로 의료소송의 경험이 있다. 의료과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가진 자'니 보상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억울하지 않겠나? - 억울한 부분도 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어떤 환자, 어떤 환자가족을 만나는가가 중요하다. 의료사고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의료사고가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다. - 현장에서 봤을 때 의료사고가 났을 경우 분쟁으로 이어지는 원인은 거의 대부분 소통의 문제 때문이다. - 환자들이 자기가 당한 일이 사고라고 단정하는 중요한 원인은 불만에서 기인한다. 대학병원의 예를 들자면, 특정 의사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그 병원을 찾아갔는데 의사와 제대로 대화하기 어려워 불만이 생기게 된다. 게다가 만일 병이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사가 환자를 얼마나 성실히 대했는가가 의료분쟁을 예방하는 첫 걸음이다. - 환자와의 소통뿐 아니라 의료진간의 소통도 중요하다. 환자가 보고 있는데 후배 의사들의 처방내용을 질책하는 일은 환자와의 소통에 나쁜 요소로 작용한다. - 의대 교육과정에 소통에 대한 부분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는가? - 의대교육에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이 이뤄져 있다. 그러나 시간 배분에 있어 다른 과목과의 조율이 쉽지는 않다. 의대생들은 환자들처럼 의사들이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사고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와의 의사소통에 대해 아직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 효과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 아직은 많은 의사들이 소통, 협상의 기술이 부족하다. 그러나 의사들이 소통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진료에 더 쏟고, 소통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의 경우도 회장이 바뀔 때마다 집행부가 몽땅 바뀔 것이 아니라 업무의 연속성, 전문성을 위해 연임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실무적·전문적인 분야는 과감하게 전문가를 기용하고 의협 직원들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의사들이 직접 투사로 나설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환자와의 대화 내용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지만 놓치는 부분이 많다. 좋은 대안은 녹음을 하는 것인데 현행법상 이는 불법이다. 나쁜 의도로 쓰려는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데 앞으로 이의 허용을 추진했으면 좋겠다. -
동료·직원들과의 소통에서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의료법에 정당한 사유 없이는 환자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게 한 조항 때문에 진료하기 어려운 환자인데도 어쩔 수 없이 봐야만 하는 어려움도 있다. - 진료거부금지조항은 어떠한 경우에도 진료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응급환자를 돌려보낸 경우가 아니라면, 진료금지조항에 따라 처벌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환자를 설득해서 다른 의료기관으로 보낸 경우는 정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