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운명이다."라는 말이 있다. 설리반 선생이 헬렌캘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던 것처럼 사람에게는 대체로 삶에 영향을 준 스승이 있는 법이다.
아들에게도 그러한 생에 은인과 같은 스승 한 분이 계시었다. 다름 아닌 스티븐 교수이다. 아들은 그 분을 캐나다 동부 몬트리얼에 있는 맥길 대학원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때 그 교수님은 이제 막 두 명의 제자를 배출시킨 40대 중반의 영국계 남성이었다. 아들이 지도 받기를 원했던 교수는 다른 분이었으나 대학원생이 초과되어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며 친구 교수를 소개해준 모양이다. 그것이 아들에게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된 셈이다.
아들의 지도 교수가 된 그 분은 이내 연구한 학문이 온 세상에 알려지면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자연스레 아들에게는 후광이라는 행운이 다가왔다.
한번도 뵌 적이 없는 그 분을 만나는 날이었다. 마침 2001년 8월 하순, 서울에서 세계통계학회가 개최된 바람에 그 분이 주최측인 한국의 초청으로 서울에 왔다. 아들 역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고 나 또한 교수님께 인사도 드릴 겸 입국했다.
행사가 열리고 있는 코엑스 빌딩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약속장소인 만국기 아래에서 나를 보고 천천히 다가오던 아들, 그 뒤로 아들보다 큰 키의 중년 외국 남자가 보였다. 그 사람이 아들의 교수님이라는 걸 한눈에 알았다. 얼른 보기에는 마음씨 좋은 털보 아저씨 같지만 어딘가 학자의 인품이 풍겨 나왔다. 처음 만난 분인데도 자식과의 인연 때문인지 낯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그 근처의 전통 민속음식점 "한미리"로 모셨다. 한식을 잘 드시더라는 아들의 귀띔에 망설이지 않고 우리 고유식당을 택했다. 식당 입구에 이르자 교수님은 가방에서 상의를 꺼내 티셔츠 위에 입었다. 식사 초대에 예의를 갖추는 그 분의 태도 또한 학자다웠다. 계량 한복을 단정히 입은 중년 부인이 우리를 아담한 방으로 안내하였다. 식탁에는 전통 수저와 젓가락이 금빛을 띄우며 가지런히 놓여 있고 고풍스런 놋 식기에 음식이 담겨져 나왔다. 신선로가 식탁에 놓이자 숯불을 들여다보며 신기한 듯 가정에서도 이것을 사용하느냐고 물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문화 하나를 보여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반주(飯酒)로는 백세주를 골랐다. "One hundred years wine"이라는 술 이름이 좋아서다. 교수님은 3만원 이상의 민속주 가격표를 훑어보며 "Oh, expensive, expensive"를 연발한다. 상대에게 가능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백세주에는 인삼과 같은 10가지의 한약재가 들어 있어서 건강을 도와 마시면 백세까지 살 수 있다는 아들의 설명에 흥미로워하며 술맛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앙증스런 사기 주병에 붙어 나온 설명서를 떼어 상의 주머니에 넣는 모습이 참으로 순수하고 정감스러웠다. 매사에 호기심을 갖고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며 기념하려는 평소 그 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아들이 먼저 교수님 앞에 놓인 전통 술잔에, 다음은 어머니의 잔에 백세주를 따랐다. 교수님도 제자의 잔에 건강주를 따라 붓고 축배한 후 대화가 이어졌다. 어미로서 참으로 흐뭇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동족도 아닌 타국인들끼리 그렇다고 아들이 이민 2세들 마냥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도 못하는데 그들 사이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스승과 제자 사이라면 응당 가로 놓여있을 권위라는 벽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친구 같았다. 아니 큰형과 아우 같다고 할까. 이들은 분명 학문으로 근 4년 동안 만났다고 하나 이토록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그 이면에 따스한 인간의 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언젠가 교수님이 제시한 문제에 아들은 수개월을 매달린 적이 있었다. 결국 그 문제는 풀 수도 없었을 뿐더러 문제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사과를 하며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오히려 송구스러워 쩔쩔맸다고 한다. 또 한번은 하계학교에서 조교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아들이 출제한 시험문제에 말썽이 생겼다. 경험이 없다보니 시험문제를 너무 어렵게 낸 모양이다. 한 학생이 잘못 출제한 시험지라며 학과장을 찾아가 항의했다. 아들의 교수님은 제자와 함께 한 문항, 한 문항을 확인한 후 곤경에 빠진 제자를 대변해 주었다. 그 때 만약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들은 학위를 취득하는데 타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국내외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공항에 가야 할 때는 차 없는 제자를 언제나 실어다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퍽 자상하고 진지한 분이다. 이 사람에게는 자기위주의 고집과 독선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의 능력을 찾아내어 개발시켜주고 창의성을 살려주는 산 교육자로만 내 눈에는 비친다. 이제 학문에 있어 분신과도 같은 한 제자를 자기 울타리 밖의 세상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스승인 본인보다 더 훌륭한 교수가 되어달라며 등을 두드려준다. 세상이 바뀌어도 무너지지 않는 관계를 꼽으라면 그것이야말로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들이 스티븐 선생님을 만난 건 분명 축복이었다고 나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분은 Moo같은 학생을 만난 것이 오히려 자기에게 행운이었다고 겸손해한다. 한끼의 식사대접과 조그만 도자기 선물 하나로 그 동안의 감사함을 표한다는 게 너무 염치없고 죄송하였으나 교수님은 달랐다. 아주 행복해하며 자리를 옮겨 차(茶)를 사겠노라고. 누가 저 분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라고 하겠는가. 모든 인간이 날로개인주의화하며 냉랭해진다고들 말한다. 서양의 문명 사회에서는 그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스티븐 교수를 만나본 다음 나의 의식은 조금 바뀌었다. 서양이야말로 인간을, 인재를 지극히 귀중히 여기는 사회가 아닐까. 그 중에서도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키워냄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인정하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오늘 날 서구 사회가 세계의 문명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존경할 만한 스승이 많았다는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학문을 사랑한다는 것은 한 명의 학자가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 학문을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줌으로써 의의가 있을 것이다. 스티븐 교수가 있음으로써 캐나다가 향상하고 세계가 발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속으로 탄성을 울렸다. 그리고 나아가 욕심을 부려본다. 내 아들도 언젠가 저런 학자의 대열에 낄 날이 있으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