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오늘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탄생일이에요!
소년 윤동주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
났습니다. 당시 명동촌은 민족교육, 독립운동, 신앙생활을
지향한 조선인 공동체의 터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동주는 이러한 고향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한글, 한학,
신앙심을 함양하며 자라났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탄생
윤동주 생애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시집이 되어버린
유일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작품을 모은 시집입니다.
한글 출판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던 상황이라 출판을
하지 못하고 자필로 3부 작성하여 1부는 자신이 가지고,
스승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증정했습니다.
그중 정병욱에게 선사한 한권이 남아 윤동주의 시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청년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27살의 나이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형무소측이 밝힌 사망 원인은 '뇌일혈'.
하지만 진짜 사인은 미국 국립도서관의 기밀 해제문서에서
확인됐습니다.당시 규슈제국대학이 후쿠오카 형무소 재소자
들을 상대로 바닷물을 수혈하는 생체실험을 했다는 증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생 한글로 시를 쓰고, 독립운동이라는 죄목으로 수감되어
생체실험을 당하다 27세로 생을 마감한 윤동주는 중국도,
일본도 모두 사랑하는 시인입니다.자신들이 죽인 윤동주의
시를 교과서에 실어 가르치고 있는 일본.윤동주의 국적이
중국이라고 우기고 있는 중국.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윤동주
는 우리의 보석 같은 시인입니다.
영원한 청년 윤동주의 생일에는 윤동주의 시 한편 정도는
읽어보고 지나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해요.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독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및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1942년 3월, 시인은 일본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쳐야만 했다. 이른바 '창씨개
명’으로, 당시 일본 유학을 하려면 반드시 그 과정을 거
쳐야 했다. 그 결과, 시인은 '히라누마 도쥬(平沼東
柱)'가 되었다.
창씨개명을 닷새 앞두고 쓴 〈참회록〉은 그때의 참담
함과 괴로움을 담은 작품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
고 성찰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이
시는 그가 그것을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보여준다. 그리
고 그 감정은 일본 유학 시절 내내 이어졌다.
시인의 도시샤대 동기에 의하면, 시인은 수줍음이 많아
서 수업 시간이면 항상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수업을 들었으며, 노래를 부를 때면 항상 '아리랑'을 불
렀다고 한다. 그런데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펜을 통해 일
제에 저항하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줬다. 더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시인은 죽는 날까지 오직 우리 말로만 시를 썼다. 이는
나라를 잃었을지 모르지만, 정신과 문화만큼은 절대 잃
지 않겠다는 시인의 마지막 저항이자 다짐이기도 했
다.
이 작품은
거울을 매체로 망국민의 삶을 부끄러워하고
치열한 자아 성찰의 의지를 나타낸 시이다.
치욕스러운 역사와 암울한 시대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무기력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느끼는 부끄러움과 고뇌를 형상화하고 있다.
성찰의 매개체는 거울로, 특히 ‘녹슨 구리 거울’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성찰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화자는 망국민으로서 살아온 자신에
대해 욕됨을 느끼고, 욕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인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해 참회의 글을 쓰는 한편, 조국 광복이 된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또 써야 할 참회록을 생각한다.
윤동주 시에 나타난 ’부끄러움‘은 삶과 시를 지탱해
주는 근원적인 힘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