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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만(灣) 의 그윽한 풍경으로 기억될 무학산
1. 일자 : 2012. 5. 12 (토)
2. 장소 : 무학산(762m)
3. 행로 및 시간
[마재고개(12:03) -> 낙남정맥 분기점(12:34) -> 525m(12:51) -> 평상(13:00) -> (간식 -13:100) -> 시루봉(13:22) -> 시루바위(13:39) -> 무학산(14:12) -> (헬기 구경) -> 서마지기(14:30, 관해정 2.9km) -> 전망바위(15:00) -> 이정표(15:14, 관해정 1km) -> 서학사(15:20) -> 관해정(15:33)]
4. 동행 : 홀로, 뫼솔산악회
< 무학산 산행을 준비하여 >
무학산은 마산 시가지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크고 작은 능선과 여러 갈래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이름은 풍장산이었는데 신라 말 최치원이 이곳에 머물면서 산세를 보니 학이 나는 형세 같다 하여 무학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한 편이나 그리 험하지는 않고 산줄기 곳곳에 바위가 노출된 아기자기한 능선을 이루고 있다. 정상 동북쪽 지척의 널따란 대지는 ‘서마지기’라 하여 산행 시 휴식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무학산은 산 전체에 걸쳐 넓게 펴진 진달래 밭으로 유명하다. 다른 산에 비해 키가 큰 나무가 적어서 일부 산록은 분홍 물감을 쏟아 부은 듯 장관을 이룬다. 진달래 군락은 학의 머리에 해당하는 학봉과 능선 일대가 장관이다. 4월말이 절정이라 하니 한창인 계절은 지난 듯 하다.
여러 루트를 통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무학산은 마산 도심에 위치한 산으로 봄철 진달래가 유명하고 정상 능선에 서면 마산만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좋은 산이다. 정자가 많고 서마지기라는 커다란 인공 쉼터도 있지만 조망 좋은 자연 바위 전망대도 많은 다이나믹한 곳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산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무학산이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오른 이유는 “도시민의 휴식처로서 경관이 좋은 아기자기한 능선과 다도해를 바라다보는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정상 북서쪽에 있는 시루봉 일대의 바위는 좋은 암벽등반 훈련장임. 예전부터 양조업이 성할 정도로 수질이 좋음. 서원골 입구에 최치원의 제자들이 세운 관해정(觀海亭)이 있고 부근 원각사, 백운사 등이 유명” 이라는 것이다.
무학산을 함께 하는 산악회는 '뫼솔'이다. 지난해 2월 능동산-가지산-상운산 산행을 함께 했었다. 대간꾼들과 어울려 몹시 추운 겨울 날, 눈 덮인 낙동정맥을 따라 나섰다가 3개의 큰 산을 넘었다는 성취감보다는 '꾼'들의 무서운 속도에 기가 죽었던 기억이 생생한 산행이다. 오랜만에 대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6시 50분 사당 출발, 이번에는 시간으로 출발 전부터 기를 죽인다. 차분히 토요일 새벽을 기다린다.
< 희망사항 >
무학산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마산이란 지명이 함께 따라 붙는다. 어릴 적 수 없이 들었던 '물 좋은 마산의 무학 소주' 란 광고 카피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 만큼 무학산은 지명과 붙어 다니는 마산의 진산이다. 마산/진해/창원이 창원으로 통합되어 지금은 지명이 사라지고 있지만, 내게는 여전히 마산이 70-80년대 수출을 주도하던 큰 도시로 남아 있다. 대학시절 학번으로 내 다음이었던 동기 여학생의 고향이 마산이다. 고교 시절에는 소위 짱 소리를 듣던 활달한 학생이었다는데 웬일인지 대학생활에는 적응을 하지 못해, 교양 과목을 함께 듣다 보면 수업에 열중하기 보다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안쓰러웠고 그래서 친해지고 싶었는데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그녀를 두고 난 늘 '내 짝' 이라는 말로 친근감을 표하곤 했다. 군 시절, 마산 인근 군 병원에 입원한 동기를 면회하러 마산을 찾았을 때 잠깐 얼굴을 보고는 다시는 연락하지 못했던 그 친구 얼굴이 불현듯 떠오른다. 사랑은 분명 아니고 우정이라기 하기엔 만남이 적었고, 아마도 그 감정은 연민이었을 것이다. 한 도시의 산을 찾으며 그 도시와의 실낱 같은 인연을 찾으려 하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사람도 그렇지만 도시에도 부침이 있다. 한 때 잘나가던 도시가 변화된 여건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을까를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겠다.
언제부턴가 명불허전 이란 말을 좋아졌다. 물 좋은 고장의 산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여기까지는 산행 전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이고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마산 가는 길에 >
요즘 부쩍 가까운 기억이 도마뱀의 잘린 꼬리처럼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신 먼 기억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고 또렷하다. 치매로 고생하시는 장인어른의 영향인지로 모르겠다. 늘 그렇듯 토요일 아침이라 일찍 눈이 떠졌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모처럼 찾은 사당역 10번 출구 앞은 관광버스들로 몹시 번잡하다. ‘화이트 관광’을 찾으려 몇 번이나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버스에 올라서자 여자 대장의 모습이 눈에 익다. 순간적으로 지난 겨울 가지산 넘어 힘겹게 도착한 운문령에서 늦은 식사를 준비하던, 말 많던 그녀가 떠오른다.
서초구청 앞에서 버스는 U턴을 한다. 양재에서 고속도로로 바로 진입한다. 복정역을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미친다. 덕분에 지난 주 밀양 가는 길보다 1시간 가량 일찍 서울 톨게이트를 지난다.
남녘으로 향하는 차창으로 바라다보는 풍경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모내기를 위해 물에 흥건히 젖은 논이다. 바야흐로 본격 농사철이 시작되었나 보다. 들녘에 하나 둘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굽이진 속리산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화서휴게소를 지나며 커다란 원형 안테나를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 그 길을 지나 올랐던 구병산의 기억이 아침 햇살에 실려 뇌리를 스친다. 기억은 참 무서운 놈이다.
버스 어딘가에서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처음엔 ‘웬 에어컨’ 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천정 환풍구가 열려 있다. 그 밑에서 중년 남자들의 수다가 오래도록 계속된다. 빈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이어폰의 용도는 꼭 음악을 듣는 것만은 아니다. 남자들의 수다는 그 후로도 한참을 계속되었다. 누군가 환풍구를 닫는다. 수다가 잦아든다.
11시 20분경, 마산 시내로 들어온다. 오래된 도시의 외곽은 항상 번잡하다. 어지러운 간판, 좁은 도로, 다양한 상점. 다시 맞은 마산의 인상이다. 기사가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 낙남정맥 팀을 먼저 내려 주고 마재로 향하는 길, 차량 접촉사고가 있었고, 급기야 택시로 마재로 이동한다. 낯선 도시에서 참 여러 경험을 한다.
< 마재고개에서 무학산 >
12시가 막 지난다. 그늘진 숲 안으로 들머리를 알리는 산악회 리본이 20여 개 붙어있다. 낙남정맥 팀에서 빠진 6명의 ‘떨거지’와 여장 대장이 길을 나선다. 대장 왈, 정맥팀은 속도가 무지 빠르니 우리보다 먼저 내려올 수도 있다. 그 경우 관해정에서 밥을 사 먹고 서마산IC로 갈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오늘 산행코스는 체 4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텐데 왜 이리 서두르나 하면서도, 일단 마음은 바빠진다.
시작고도가 얼마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100미터 수준일 것이다. 무학산이 762미터, 고도만으로 볼 때는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초반 오르막, 뒤처지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속도를 조금 냈더니 종아리가 당겨온다. 아무리 떨거지라 하지만 그들도 대간/정맥꾼, 그리 만만한 이들은 아니다. 출발 30여분 만에 첫 이정표를 만난다. 낙남정맥 분기점이다. 마재에서 1.2km를 왔고 무학산까지는 3.5km가 남았다 한다. 가쁜 숨을 몰아 쉰다. 낮은 산을 얕보아서는 아니 된다.
벤치 쉼터에서 일행들이 쉬고 간단 했을 때, 난 계속 길을 간다. 속도를 만회하려면 남들보다 발걸음을 내 놀려야 한다. 숲 길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바람이 지나고 나면 서늘함이 느껴진다. 이 맘 때의 산행이 주는 선물이다.
< 마재 들머리 / 525봉 부근 >
정맥 길에 들어섰다는 들뜬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 여전히 오르막의 연속이다. 20여분 후 벤치 쉼터가 나타난다. 아마도 이곳이 525봉인가 보다. 머지 않아 이정표도 나온다. 시루봉 1km, 무학산 2.2km, 이제 고도에 대한 부담감은 덜었다. 길을 나서다 커다란 평상이 보이길래 자리를 깔고 앉는다. 간식을 먹고 가야겠다. 옅은 누런 색의 송진 꽃가루와 작은 전투를 벌이며 허기진 배를 채운다. 송진 묻은 바지를 털고 일어나며 산에서는 모두가 다 털털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가 머금어 졌다.
대세 오르막에 짧은 평지길이 나오는 능선을 10여분 오르자 시루봉이 나타났다. 누군가 스테인리스 기둥에 써 둔 조그만 표식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숲을 헤치고 작은 바위에 서니, 서쪽 멀리 거대하고 평평해 보이는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루바위이다. 그 모습이 무척 특이해 보인다. 내려서는 길을 찾았으나 쉽지 않다. 가지 말라나 보다 하고 길을 내려서는데 얼마 후 시루바위 갈림 이정이 보인다. 망설이다, 우측으로 길을 꺾는다.
< 시루봉에서 / 시루바위 원경 >
시루바위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10여분 작은 오르내림을 지나자 시루 모양의 원형 바위가 떡 허니 모습을 드러낸다. 진입방향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절벽이다. 개방감이 참 좋다. 고속도로 변으로 마산 외곽의 마을들이 보이고 무학산 정상 능선도 한 눈에 들어온다. 서남쪽으로 멀리 희미하게 바다의 흔적도 보인다. 너른 반석 위에 어르신 몇 분이 막걸리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계시다. 나를 보고는 한 마디 한다. “보이는 곳이 창원 시가지입니다. 경치 참 좋죠?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라도 ‘마산’이라고 해야지!)” 변화된 지명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마산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 그 애착은 아주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 시루바위에서의 풍경 >
1시 50분, 다시 시루바위 갈림으로 돌아와 무학산 정상으로 향한다. 그 화려하다는 무학산 진달래는 다 지고 일부가 흔적을 남기고 있다. 2시 10분, 드디어 무학산 정상에 섰다.
< 무학산 정상에서 / 마산만 원경 >
사위가 트여 시원하다. 그 시원한 개방감에 모처럼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다. 무학산을 100대 명산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바로 이 풍광일 것이다. 마산만을 끼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고 바다 건너에는 두산중공업과 STX 선박 건조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먼 바다로 향하는 길에 최근 완공되었다는 마창대교가 우뚝 서 있다. ‘만(灣)’이라는 지형은 이러한 곳이구나 하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한가한 봄 날의 햇살을 받은 바다는 그윽하고 평온했다. 시루봉에서 정상으로 올라오며 언뜻 보이는 풍경이 사당 하산 길의 관악산을 닮았다고 한 말은 바다를 보고는 쑥 들어가 버린다. 한강과 남해는 스케일의 크기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 무학산 정상에서 마산 바다를 배경으로 >
< 무학산에서 관해정 >
한참이나 정상 주변을 서성인다. 하산 길을 가름해 보니 늦어도 1시간 30분이며 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무학산 안내 표지판을 본다. 이곳과 이웃 산의 형상을 날개를 편 학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장이 있는 것 같아 그냥 지나치고 관해정으로 향하는 계단 길을 내려 선다. 서마지기 라는 특이한 이름의 쉼터 뒤편으로도 개방감이 좋은 풍광이 펼쳐진다. 마산 사람들은 참 좋겠다. 답답한 마음을 풀 무학산의 풍광이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큰 도시들은 한 곳도 어김없이 명산을 끼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인근에 산수 좋은 명산이 없으면 도시를 형성하지 않는 것이 우리 풍수의 기본일 지도 모르겠다.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법이니, 멋진 산이 있는 풍광이 도시 형성에 한 조건임이 틀림없다.
< 서마지기 하산 길에 본 풍경 >
한가한 마음으로 나무계단을 내려서는데, 소방 헬기 한 대가 하늘을 나는 모습이 보이더니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온다. 웬 일이지 하고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서마지기 공터 한 켠에서 누군가 붉은 수건을 흔들고 있다. 응급환자가 있나 보다. 긴장감이 돈다. 누군가의 생사를 가름할 구조현장을 생생히 목격한다는 흥분과 함께 산 정상에서 내 눈 바로 앞에서 나는 비행물체를 보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선회하던 헬기가 구조대원을 하강시키고 다시 날아오른다. 그 사이 대원은 환자를 옮긴다. 먼 거리를 돌아 다시 날아온 헬기는 뽀얀 먼지를 내며 환자와 대원을 끌어 올리고는 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불과 5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헬기가 머물렀던 자리로 내려와 보니, 아무 흔적도 없었다. 모든 것이 다시 평온하다. 마치 서마지기의 너른 평원처럼 사위가 고요하고, 햇살만이 내리쬐고 있다.
< 서마지지의 인명 구조 현장 >
이정표를 본다. 관해정 2.9lm, 마여중 xx km. ‘마여중’은 마산여중의 줄임 말이다. 마산 사람들의 자부심이 묻어 있음을 직감한다.
서마지기를 지나자 길이 급격히 좁아진다. 인적도 없다. 조용한 소로를 걷자니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착각마저 든다. 지도를 꺼내 살핀다. 분명 제대로 가고 있다. 혹 잘못 왔다 해도 관해정만 찾아 가면 될 일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오랜만에 본 올라오는 분에게 물으니, 관해정을 모른다. 다만 계속 가면 서원곡이 나온단다. 서원곡 끝에 관해정이 있으니 일단 가 보자. 돌 많은 소로를 20여분 걷자 비로소 시야가 다시 트인다. 마산만의 풍경이 더 가깝게 다가 온다.
< 서마지기 풍경 / 하산 길에 다시 본 마산 만 >
3시 도심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 전망대에 섰다. 바다가 손을 뻗을 위치에 있다. 다시 마음이 시원해 진다. 이어지는 하산 길, 서학사라는 절 집을 지난다. 축대를 쌓아 올린 지대에 선 절이다. 절의 건물보다는 내림 길에서 본 돌 축대와 그 끝없이 긴 비탈 길의 경사가 더 인상적이다.
< 전망바위에서 / 서학사 전경 >
거의 다 내려왔나 보다. 마지막으로 지도를 살핀다. 당초 서마지기에서 우측으로 내려와 팔각정을 서나 서원곡으로 하산하려 했는데 달맞이 방향으로 지능선을 타고 내려 온 것 같다. 서학사를 지난 온 것이 그 증거이다.
서원계곡 옆으로 길게 나무데크 길이 나 있다. 계곡을 끼고 음식점들이 서 있다. 익숙한 풍경이다. 터벅터벅 서원곡을 다 내려온다. 관해정의 큰 정자를 기대했는데, 관해정은 아주 작은 그 동네 분들도 존재를 잘 모르는 작은 옛 집이었다.
정자 앞 은행나무 밑에서 일행 중 한 분을 만난다. 곧이어 대장의 전화가 이어진다. 다시 택시를 타고 마재고개로 이동한다. 우리의 ‘운전 잘 하는 기사’는 도대체 뭐 하는 분인지 모르겠다.
< 에필로그 >
택시로 마재로 이동 중, 기사에게 이곳은 창원과 마산 중 어디입니까? 하고 물었다. 당연하다는 투로 ‘마산이지요!’라 한다. 마치 여차하면 마산인의 자존심을 건든 죄로 ‘내려’ 할 기세다. 세상이 바뀌며 지명도 도시의 모습도 변하고 있지만 마산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옛 영화의 자존심이 묻어 있음을 느꼈다.
마재에서 하나 둘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정맥꾼들을 맞는다. 모두가 고수인 것 같은 그들 사이에도 우열은 가려진다. 선두 대장이 도착한 후 1시간 이후에 후미가 도착했다. 산행을 마치고도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다. 고수는 작은 성취에 그리 요란하지 않나 보다.
귀경 길, 해가 많이 길어졌다. 이제 7시가 지나도 환하다. 그래도 땅거미는 진다. 어둠이 깃드는 차 창으로 산들의 실루엣이 들어온다. 길고 검은 그림자. 그림자는 광원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는 물체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빛을 가로막으면 그 뒤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 진리이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마음이 무겁다. 계획한 일을 목표대로 달성하는 것은 스스로가 만든 결정과 노력의 산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보다. 여러 번 생각해 보니, 성공하는 사람은 기회를 얻어야 하고, 그 기회를 움켜잡을 마음가짐과 힘이 있어야 한다.
푸엥레카는 ‘창조는 버섯과 같다.’고 했다. 버섯은 성장을 위해 땅 밑에서 뿌리가 뻗어가는 축적의 단계를 거치는데 외부 자극이 없으면 안주하여 축적만 하다 고사해 버린다 한다. 외부 자극이 있어야 포자가 종자를 만들어 땅 위로 뻗어 발전해 나가려 한단다. 불교의 인연이라는 말도 결국 ‘인(因)’은 뿌리에 축적된 것이고, 연(緣)은 축적을 실현시킬 외부조건이라 한다. 순연, 악연은 운명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의 노력과 더불어 외부상황을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소심심고(素心深考) 소박한 마음으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태도로) 깊이 사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