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미
김붕래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매미의 허물은
- 마쓰오 바쇼
바쇼는 17세기 일본 시인으로 하이쿠(俳句)의 대가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
이런 촌철살인의 명구로 유명합니다. 하이쿠는 3행시이지만, 행마다 5, 7, 5의 음수율을 가진 17글자로 쓰여진 짧은 시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니 그 음수율이 맞질 않습니다.
지상에서 매미의 일생은 길어야 한 달입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할까요. 생존할 기간이 얼마 남지 못한 매미 수컷은 여름 내 풍성하게 울어댑니다. 노래한다고 해야 할까요? 암컷을 유혹하는 소리입니다. 더 크게 울어야 암컷과 조우할 확률이 높다 합니다. 수치를 좋아하는 현대인이 그 음가를 재 보았나봅니다. 70 - 90 데시빌, 서울 한복판에서 들으면 완전 소음이지만, 원두막, 서늘한 바람과 함께 들으면 나른한 오후를 견디게 하는 청량한 음향이기도 합니다.
소나기 멎자 매미 소리
젖은 뜰을 다시 적신다.
비 오다 멎고
매미 소리 그치다 다시 일고
또 한 여름 이렇게 지나가는가.
소나기 소리 매미 소리에
아직은 성한 귀 기울이며
또 한 여름 이렇게 지나는가 보다.
- 김종길. <또 한 여름>
입하 소만, 초여름이 되면 앞산 뒷산에서 뻐꾸기가 적막하게 울기 시작합니다.
긴 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 증복 말복이 되면 매미가 그 울음을(노래를) 이어 받습니다. 처서가 되면 모기 주둥이가 삐뚤어진다 합니다. 이 때부터 귀뚜라미가 울어 가을을 알립니다. 그러면 한 여름은 또 가 버리는 겁니다.
암놈이 나무껍질 사이에 낳은 매미 알은 2-3주 후면 부화합니다. 그 놈은 2mm의 애벌레가 되어 땅 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의 수액을 빨아 먹으며 7년을 삽니다. 북아메리카의 매미는 13년, 17년을 땅 속에서 살기도 한다고 합니다.
곤충학자들의 관찰 기록에 의하면 땅 속 기온이 일정 온도에 이르면 매미 애벌레는 해가 진 뒤 저녁 어스름이 깔릴 시각(포식자로부터 안전한 시각입니다) 지표를 뚫고 나와 나무에 기어오릅니다. 나무껍질에 굵은 앞 다리로 몸을 고정하고 허물을 벗기 시작합니다. 번데기의 등이 갈라지고 새로운 몸과 머리가 나오고 이어서 고운 날개도 펼쳐집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탈피 과정은 자정쯤이면 끝납니다. 날개에 습기가 다 마른 매미는 자신이 들어가 있던 허물을 버려두고 안전한 나무줄기를 찾아 날아갑니다. 아침이 되어 사방이 밝아오면 수놈 매미는 암놈을 부르며 줄기차게 울기 시작합니다.
이같이 매미의 끝없는 변태 행위를 옛 사람들은 불사와 재생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이집트의 불사조 전설과 같습니다. 생의 종말을 예감한 불사조는 신전에 날아와 타오르는 불길에 몸을 불사릅니다. 타서 재가 되면 그 재 속에서 다시 한 마리 새가 탄생하여 날아오릅니다.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의 고사나, 병법 <36계>에 나오는 금선탈각(金蟬脫殼)은 매미의 변태 과정을 닮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미 머리는 갓끈이 늘어진 모습 문인의 기품이 있고 頭上有緌 則其文也
천지의 기운을 머금고 이슬만 마시니 청정함을 갖추었네 含氣飲露 則其清也
사람이 먹는 곡식을 축내지 않으니 청렴함을 갖추었고 黍稷不享 則其廉也
별도로 집을 짓지 않고 사니 검소함이 있네 處不巢居 則其儉也
철 따라 허물을 벗고 절도가 있으니 신의가 있네 應候守常 則其信也
- 육운(陸雲), <한선부(寒蟬賦)>
육운은 진(晉)나라 사람입니다. <삼국지>를 통하여 우리가 잘 아는 오나라의 명장 육손의 손자이기도 합니다. 오 나라가 사마의가 세운 진나라에 패하면서 자연 진나라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한선’은 가을 매미란 뜻입니다. 왜 여름 매미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한선부>란 시가 나오면서 ‘매미오덕’이란 말도 생겼습니다. 그 오덕이란 위 시에 나와 있는 ‘文, 淸, 廉, 儉,信’의 다섯 가지 덕목입니다.
우리나라 만 원짜리 지폐에는 세종대왕이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계십니다. 모자 양쪽으로 매미 날개 모양의 장식이 위로 뻗쳐 있습니다. 임금이란 모름지기 매미가 지닌 5덕을 실천해야 된다는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대신들이 쓰고 있는 사모(紗帽)도 역시 매미 날개가 달려 있는데 익선관과는 달리 옆으로 퍼져 있습니다. 군왕이건 신하이건 청렴의 모범을 보이라는 무언의 암시이자 압력일 것입니다.
나도 매미처럼 시원스럽게 울다 갔으면
경로석에 앉을 자리도 없는데
내가 서서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
동대문? / 서울역? / 아니면 한강 건너 / 노량진?
영등포에서도 자리가 나지 않는데
어디까지 갈 작정인가
내가 너무 오래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매미처럼 사흘만 울다 갔으면 좋겠네.
- 이생진. <매미처럼 울다 갔으면>
제 한 평생, 매미처럼 기차게 소리쳐 본 기억이 없습니다.
숨죽인 채 전철 인파에 파묻혀 어디쯤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매미처럼 사흘쯤은 노래하다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나도 매미처럼 사흘만 울다 갔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