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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경전연구회 임제록 강좌 제9강 -2(2010.01.04)
33 定上座(정상좌)가 크게 깨닫다 有定上座(유정상좌)하야 到參問(도참문), 如何是佛法大意(여하시불법대의)오 師下繩床(사하승상)하야 擒住與一掌(금주여일장)하고 便托開(변탁개)하니 定佇立(정저립)이라 傍僧云(방승운), 定上座(정상좌)야 何不禮拜(하불예배)오 定方禮拜(정방예배)에 忽然大悟(홀연대오)하니라 定上座(정상좌)가 크게 깨닫다. 有定上座(유정상좌), 무슨 정인지는 모르겠어요. 정일인지 정온지 하여튼 定 자가 들어가 있네요. 정상좌가 있었는데. 到參問(도참문), 와 가지고 참문하기를, 如何是佛法大意(여하시불법대의)오 師下繩床(사하승상)하야, 임제스님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내려가 가지고서 擒住與一掌(금주여일장)이라, 멱살을 잡고 一掌(일장)을 주었다, 말하자면은 손바닥으로 한번 후려 쳤어요. 이건 어디를 후려 쳤는지 등짝을 후려 쳤는지 얼굴을 후려 쳤는지 어디를 후려 쳤는지는 모르지마는 멱살을 잡고 손바닥으로 한번 후려 쳤다. 그리고는, 便托開(변타개)라, 그리고 잡고 있던 멱살까지 밀치면서 놓아버렸다. 그러니까 정상좌(定)가 佇立(저립)이라, 우뚝 서 있었어요. 우뚝 서 있었어. 참 이 정상좌의 정진력이 대단했던 것 같애요. 우뚝 서 있었어, 가만히. 그렇게 했는데도. 멱살을 잡아도, 또 한번 후려 쳤어도, 그리고 밀쳐 버렸는데도 이 정상좌는 요지부동으로 가만히 있었어. 아마 삼매에 들어갔던 모양이에요. 傍僧云(방승운), 옆에 있던 어떤 중이 말했어요. 定上座(정상좌)야 何不禮拜(하불예배)오, 왜 큰스님 만나갖고 예배도 하지 않느냐, 예배해라 얼른. 그렇게 말하니까 定方禮拜(정방예배), 정상좌가 바야흐로 예배를 하다가, 忽然(홀연)히 大悟(대오), 크게 깨달았다, 그랬습니다. 참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죠. 아주 멋진 풍경입니다 이것은. 그 정상좌가 와서 여하시불법대의오 라고 이렇게.. 참 그게 만고의 화두 아닙니까? 진정한 불법이 뭐냐? 임제스님도 처음에 황벽스님에게 ‘여하시불법적적대의오’ 그걸 가지고 황벽스님을 친견하고 그걸로 깨달았죠. 뭐 경전에서 배운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 피가 튀고 가슴이 뛰는 그런 불법대의, 진정 그러한 불법대의가 뭐냐, 이게 중요한 거죠. 그래서 그걸 물었는데, 정말 그 질문에 정말 자기의 모든 그 어떤 인생을, 그리고 모든 정신력을 다 경주했었나봐요.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뭐라고 승상에서 내려와 가지고 멱살을 잡고 손바닥으로 한번 후려치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데도 가만히 있었어, 그만. 그저 불법적적대의가 궁금했을 뿐이야. 그런데 옆에 중이 있다가 왜 예배를 해라, 큰스님에게 왜 예배 안하냐? 그러니까 그 소리 듣고 예배를 하고 일어나면서 홀연히 크게 깨달았다. 참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어디에든지 이렇게 몰두를 하면은, 몰두하면 뭐 당연히 깨닫죠. 34 어느 것이 바른 얼굴인가 麻谷到參(마곡도참)하야 敷坐具問(부좌구문), 十二面觀音(십이면관음)이 阿那面正(아나면정)고 師下繩床(사하승상)하야 一手收坐具(일수수좌구)하고 一手搊麻谷云(일수추마곡운), 十二面觀音(십이면관음)이 向什麼處去也(향십마처거야)오 麻谷轉身(마곡전신)하야 擬坐繩床(의좌승상)이라 師拈拄杖打(사염주장타)한대 麻谷接却(마곡접각)하야 相捉入方丈(상착입방장)하니라 그 다음, 어느 것이 바른 얼굴인가. 麻谷(마곡)이 到參(도참)하야, 마곡스님이 이르러서 참예를 하니까, 敷坐具問(부좌구문), 좌구를 이렇게, 방석을 내 놓고는 물었어요. 十二面觀音(십이면관음)이 阿那面正(아나면정)고, 어떤 것이 바른 얼굴인가. 師下繩床(사하승상)하야, 승상에서 임제스님이 내려와 가지고 一手收坐具(일수수좌구)하고, 한손으로는 좌구, 마곡스님이 펴 놓은 좌구를 걷어들이고 一手搊麻谷云(일수추마곡운), 한 손으론 마곡을 거머쥐고 말하기를, 十二面觀音(십이면관음)이 向什麼處去(향삼마처거)오, 어느 곳을 향해서 갔느냐. 십이면관음, 십이면관음 중에 어느 얼굴이 됐든지 간에 네가 십이면관음 이야기를 했으니 네 입으로 ‘십이면관음’ 하는 것은 곧 너야. 십이면관음이 됐든지 백이십면관음이 됐든지 그 관음은 바로 너야. 네 입으로 말했으니까. 그러니까 임제스님께서 그런 의도로 십이면관음이 어디로 갔느냐 라고 그렇게 물은 거죠. 麻谷(마곡)이 轉身(전신)하야, 몸을 돌려가지고서. 擬坐繩床(의좌승상)이라, 승상에 앉고저 했다. 승상에,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앉았던 그 평상에 앉으려고 했어요. 師拈拄杖打(사염주장타),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주장자를 잡고는 후려쳤어, 친대, 麻谷(마곡)이 接却(접각)이라, 마곡이 그 주장자를 딱 잡아버렸어. 잡아서, 相捉入方丈(상착입방장)하니라, 둘이 잡고 같이 방장실로 들어갔다. 마곡도 여기서는 아주 도가 높은 분이니까 두 분의 그런 모습이 아주 그럴 듯하고 또 도가 같으니까 아마도 주장자를 둘이서 잡고 같이 방장실로 들어간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35 여러 가지 喝(할) 師問僧(사문승)호되 有時一喝(유시일할)은 如金剛王寶劍(여금강왕보검)이요 有時一喝(유시일할)은 如踞地金毛師子(여거지금모사자)요 有時一喝(유시일할)은 如探竿影草(여탐간영초)요 有時一喝(유시일할)은 不作一喝用(부작일할용)이니 汝作麼生會(여자마생회)오 僧擬議(승의의)한대 師便喝(사변할)하다 그 다음에 할이 많이 되는데 여기 ‘여러 가지 喝(할)’이라 그랬어요. 여기 이제 師問僧(사문승)하되, 師가 어떤 스님에게 묻되, 有時一喝(유시일할)은 如金剛王寶劍(여금강왕보검), 그랬어요. 어떤 때의 하나의 할은, 할을 해도 할의 뜻이 여러 가지다 이거지. 금강왕보검이다, 금강왕 보검, 금강신장이 차고 있는 보검과 같은, 큰 칼과 같아서 거기는 조금만 뭐 삿되다는지 조금만 무슨 도둑기가 있다든지 하면은 사정없이 후려쳐서 두동강을 내버리는 그런 할이 있다 이거요. 그러니까 뭐 누가 와서 묻든지 법거량을 하든지 할 때 그렇게 상대를 사정없이 죽여버리는, 무시해 버리는, 그의 소견을 깡그리 말살해 버리는 그런 할이 있다 이거여. 할을 통해서 그를 제압하고 그 소견을 버리게 하는 거죠. 그런 할이 있고, 有時一喝(유시일할)은, 또 어떤 때의 한 할은, 如踞地金毛師子(여거지금모사자), 그랬어요. 땅에 턱 버티고 있는 금빛 털을 가진 사자와 같은 그런 할이 있다. 말하자면 하나의 위엄, 하나의 위세를 드러내는 그런 할이 있다. 또 有時一喝(유시일할)은, 어떤 때의 한 할은. 사종 할이 나오는데. 如探竿影草(여탐간영초)라 그랬어요. 이건, 探竿(탐간)은 고기 잡을 때 작대기에다가 대나무를 꺾어가지고 대나무 잎을 가지고 물에다 이렇게 넣어가지고 고기 먹이처럼 낛시밥처럼 이렇게 해서 고기가 그 대나무 잎을 보고 슥 이제 나오도록 그렇게 고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떠보는 그런 것을 탐간이라 그래요. 탐정한다 이 말이죠. 알아본다는 얘기죠. 影草(영초)라고 하는 것은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도둑질할 때 달빛이 이렇게 환하게 밝으면은 방에는 으레 불이 없으니까 나무를 이렇게 풀을 가지고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창문에다 대고 이렇게 그림자를 드리워서 흔들어본다는 거에요. 그럼 예를 들어서 안에서 사람이 깨어있으면은 그 그림자를 보고 인기척을 할 것이고 만약에 깊이 잠들어 있을 것 같으면은 그림자를 가지고 아무리 흔들어봐도 말하자면 나무풀 그림자를 아무리 흔들어봐도 아무 인기척이 없을 것이다. 자는지 안 자는지 도둑들이 떠보는 거죠. 그러면 탐간이나 영초나 같은 의미인데 말하자면 상대의 견해가 어떠한지를 이렇게 한번 떠보는 그런 할이 있다는 거에요. 할을 한번 해 보는 거라, 우정 한번 할을 해 보는 거요. 그게 이제 탐간영초할이라. 또 有時一喝(유시일할)은, 어떤 때 할은, 不作一喝用(부작일할용)이라 그랬어요. 한 할의 용도 짓지 않는다. 글은 그런데 이건 할을 했으되 할이라고 하는 어떤 그 작용, 또 할을 한 그 의미에 떨어져 있지 않은, 할을 하나마나한 할, 할을 했으되 할이 없는 할을 하는 그런 경우의 할도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시일할은 금강왕보검, 유시일할은 거지사자, 금모사자, 또 유시일할은 탐간영초, 유시일할은 부작일할용. 그런 네 가지 종류의 할이 있는데 汝作麼生會(여자마생회),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僧擬議(승의의)라, 승이 머뭇거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師便喝(사변할)이라, 師가 곧 할을 했다. 요 할은 그러면 그 네 가지 할 중에 어느 할에 해당되겠어요? 그것도 한번, 비록 사량분별이고 그저 사변으로 궁리해보는 것이지마는 궁리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아마 제일할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는. 36 比丘尼(비구니)를 點檢(점검)하다 師問一尼(사문일니)호되 善來(선래)아 惡來(악래)아 尼便喝(니변할)하니 師拈棒云(사염방운), 更道更道(갱도갱도)하라 尼又喝(니우할)이어늘 師便打(사변타)하다 比丘尼(비구니)를 點檢(점검)하다. 師問一尼(사문일니)호되, 師가 어떤 한 비구니 스님에게 묻되, 善來(선래)아 惡來(악래)아, 네가 여기에 잘 왔느냐, 잘못 왔느냐. 尼便喝(니변할)이라, 비구니가 곧 할을 하니. 師拈棒云(사염방운), 방망이를 잡고 말하기를, 更道更道(갱도갱도)하라, 다시 한번 일러봐라, 다시 한번 일러봐라. 아마 이것도 그냥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은 비구니가 제대로 알고 할을 했는지 더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라고 해서 말하는 것인지, 이 임제스님 속을 알 수는 없어요, 갱도갱도란 말을. 尼又喝(니우할), 그러니까 비구니가 있다 또 할을 했어요. 그러니까 師便打(사변타)하다, 師가 곧 치다. 이 打도요, 임제스님도 할도 잘하지만 때리기를 더 잘해요 보면은. 임제할 덕산방 그렇게 합니다마는 더 잘 칩니다. 왜냐. 항상 주장자가 손에 잡혀 있으니까 자기 표현하는 거요. 다시 말해서 자신의 전체작용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간편하니까 가장 손쉬우니까 가장 간단하니까. 그래서 불자를 잘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늘 불자를 들고 있으니까. 봄에서부터 가을까지는 벌레가 늘 있으니까 늘 그거 쓸어내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하고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조실은 그걸 들고 사니까 가장 자기 표현하기가 간편한 거요. 방석을 활용한다든지 내려와서 멱살을 잡는 거라든지 이게 결국은 전체작용이라, 자기 자신의 전체에 대한 한 표현, 이게 전체작용이거든요. 자기 표현 뿐이지 뭐가 있습니까, 사실은. 불법이 됐든지 도가 됐든지 뭐 그걸 부처라고 하든지 조사라고 하든지 뭐가 됐든지간에 자기 표현 거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거 선불교라고 하는 것은. 어떤 세상에 어떤 깊은 도리를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자기 떠나서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 세상의 모든 중심은, 그리고 모든 것의 근본은 자기라고요. 자기라고 하는 것은 현재, 그리고 지금, 여기, 지금 여기입니다. 그럼 지금 여기에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은 할도 가능하고 불자도 가능하고 방망이도 가능하고 묵묵히 있는 것도 가능한 거에요, 묵묵히 있는 것도. 이런 설명들이 다 엉터리지마는 어차피 어록을 가지고 강의를 하면은 이렇게 엉터리로 풀어서 해설하는 거, 그러자고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이해를 해야 됩니다. 이게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마는 그러나 이것을 우리가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기로 하면은 이렇게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37 아직 祖師(조사)의 뜻은 없다 龍牙問(용아문), 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오 師云(사운), 與我過禪板來(여아과선판래)하라 牙便過禪板與師(아변과선판여사)한대 師接得便打(사접득변타)라 牙云(아운), 打即任打(타즉임타)나 要且無祖師意(요차무조사의)로다 牙後到翠微(아후도취미)하야 問如何是祖師西來意(문여하시조사서래의)오 微云(미운), 與我過蒲團來(여아과포단래)하라 牙便過蒲團與翠微(아변과포단여취미)한대 翠微接得便打(취미접득변타)라 牙云(아운), 打即任打(타즉임타)나 要且無祖師意(요차무조사의)로다 牙住院後(아주원후)에 有僧(유승)이 入室請益云(입실청익운), 和尚行脚時(화상행각시)에 參二尊宿因縁(참이존숙인연)을 還肯他也無(환긍타야무)아 牙云(아운), 肯即深肯(긍즉심긍)이나 要且無祖師意(요차무조사의)로다 아직 祖師(조사)의 뜻은 없다. 龍牙問(용아문), 용아스님이 묻기를, 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오,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냐. 師云(사운), 與我過禪板來(여아과선판래)하라, 나에게 선판을 건네주게. 過 자는, 나에게 선판을 가져오너라 이런 뜻입니다. 선판이라고 하는 것이 꼭히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를 못해서 그 용도를 잘 모르겠는데 그 설명에 의하면은 좌선할 때 기대는 도구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깔고 앉는 거, 방석 밑에 놓는 깔고 앉는 것이라고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을 알린다든지, 입선 방선을 알리는 두드리는 그런 것을 또 선판이라고도 하고 설명이 구구해요. 지금 중국 선방에 가보면은 시간을 알리고 입선 방선을 알리는 그런 판이 걸려 있는 것은 있어요, 보면은. 그런데 이 기대는 도구니 무슨 깔고 앉는 것이니…옛날 중국서 공부하던 스님이 해인사에서 어떤 스님 보니까 바닥이 차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니까 옛날에 군불 때니까 그러니까 깔고 앉는 것을 이렇게 스케이트 비슷하게 그렇게 만들어가지고 그렇게 깔고 앉는 건데 그것이 선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쉽게 꼭히 이것이다라고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기대는 도구라는 표현이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요. 그걸 가져오너라 건네주게 라고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까 용아스님이 말하기를, 문득, 牙便過禪板與師(아변과선판여사), 선판을 임제스님에게 건네 준대. 師接得便打(사접득변타)라, 그것을 받아가지고는 곧 때렸다. 牙云(아운), 용아스님이 말하기를, 打即任打(타즉임타)나, 때릴려면은 때리십시오마는 要且無祖師意(요차무조사의)로다, 거기에는 내가 조사서래의를 물었는데 조사서래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했어요. 龍牙後到翠微(용아후도취미)하야, 취미스님에게 뒤에 용아스님이 또 갔어요. 가서 또 물었어요. 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오 하고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微云(미운), 그리고 취미스님이 말하기를, 與我過蒲團來(여아과포단래)하라, 요건 분명히 방석이죠. 나에게 방석을 가져오너라, 건네주어라 그랬어요. 牙便過蒲團與翠微(아변과포단여취미), 용아스님이 곧 포단, 방석을 취미스님에게 건네줬어. 翠微接得便打(취미접득변타), 그런데 취미스님이 그것을 받고는 곧 때렸다. 牙云(아운), 그러니까 용아스님이 말하기를, 打即任打(타즉임타)나, 때릴려면은 때리십시오마는 要且無祖師意(요차무조사의)로다, 요컨대 또한 조사의는 없습니다. 내가 조사서래의를 물었는데 조사서래의는 없습니다, 그 말이에요. 용아스님이 住院後(주원후)하야, 주원후에 선원에 머문 후에, 주원후에, 有僧(유승)이 入室請益云(입실청익운), 이건 이제 말하자면 용아스님이 조실이 됐을 때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선원에 머문다고 이렇게 봐야 하겠네요. 어떤 중이 입실청익이라, 조실방에 들어가가지고 청익, 법문을 청했다. 和尚行脚時(화상행각시)에, 이거 조실 할 때네요. 화상이 행각할 때에 參二尊宿因縁(참이존숙인연)을 還肯他也無(환긍타야무)아, 두 존숙을 참예한 인연에 대해서 임제스님하고 취미스님 두 분을 만나서 조사서래의를 물었죠. 거기에 대해서 또한 그들을 긍정합니까, 안 합니까? 그렇게 물었어요. 牙云(아운), 그래 용아스님이 말하기를, 肯即深肯(긍즉심긍)이나, 긍정한다면은 곧 깊이 긍정하지마는 要且無祖師意(요차무조사의)로다, 요컨대 또한 조사의 뜻는 없다. 끝까지 차요무조사의 차요무조사의 세번이나 차요무조사의라고 한결같이 용아스님은 이렇게 일관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스님의 선풍이고 이 스님의 아마 가풍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임제스님에게도 가서 차요무조사의, 누가 뭐라고 대답을 해도 조사의 뜻은 없다, 또 어떤 중이 와서 옛날 이야기를 물었는데 글쎄 뭐 긍정할려면 긍정할 수 있지마는 그렇다고 조사의 뜻은 거기 없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38 徑山(경산)스님을 點檢(점검)하다 徑山有五百衆(경산유오백중)호되 少人參請(소인참청)이어늘 黄蘗令師(황벽영사)로 到徑山(도경산)하고 乃謂師曰(내위사왈), 汝到彼作麼生(여도피자마생)고 師云(사운), 某甲到彼(모갑도피)하야 自有方便(자유방편)이니다 師到徑山(사도경산)하야 裝腰上法堂(장요상법당)하야 見徑山(견경산)하니 徑山方擧頭(경산방거두)라 師便喝(사변할)한대 徑山擬開口(경산의개구)어늘 師拂袖便行(사불수변행)하다 尋有僧問徑山(심유승문경산)호되 這僧適來(자승적래)에 有什麼言句(유십마언구)관대 便喝和尚(변할화상)이닛고 徑山云(경산운), 這僧從黄蘗會裏來(자승종황벽회리래)하니 儞要知麼(이요지마)아 且問取他(차문취타)하라 徑山五百衆(경산오백중)이 太半分散(태반분산)하니라 그 다음에 徑山(경산)스님을 點檢(점검)하다. 徑山有五百衆(경산유오백중)호되, 경산에 오백 대중이 있으되, 少人參請(소인참청)이어늘, 사람들이 가서 참예해서 법문 청하는 일이 없어. 그런 소문을 듣고는, 黄蘗(황벽)이 令師(영사)로 到徑山(도경산)하고, 황벽스님이 스승이죠, 임제스님 보고 네가 경산에 가 가지고서 이에 이렇게 이렇게 한번 알아봐라 그랬어요. 乃謂師曰(내위사왈), 네가 가서 이렇게 해봐라. 汝到彼作麼生(여도피자마생)고, 네가 거기 가서, 이르러서 어떻게 할 것인가. 師云(사운), 某甲到彼(모갑도피)하며 自有方便(자유방편)이니다, 네가 한번 가 보라 그랬어. 오백명이라고 하는 대중을 거느리고 있는 그런 조실이 있었어요. ‘가서 네가 어떻게 할래?’ 하니까 ‘아 나는 나대로 방법이 있습니다. 알아보는 그 사람이, 그 조실이 진짜 법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했어요. 師到徑山(사도경산)하야, 스님이 이제 경산에 이르렀어. 임제스님이 갔어요. 裝腰上法堂(장요상법당)이라, 장요, 여행복장을 걸망을 짊어진 채로 법당에 올라갔어. 見徑山(견경산), 그리고 경산스님을 만났어. 徑山方擧頭(경산방거두)라, 경산스님이 바야흐로 머리를 이렇게 들어. 서로 인사를 하고 나서 머리를 드는데, 師便喝(사변할)이라, 임제스님이 곧 할을 했다. 徑山擬開口(경산의개구), 경산스님이 뭘 입을 뗄려고 했어요. 의개구, 입을 막 떼려고 하거늘, 師拂袖便行(사불수변행)하다, 임제스님께서 소매를 떨치고 옷깃을 휘날리면서 곧 가버렸다, 그랬어요. 尋有僧問徑山(심유승문경산), 그리고는 곧 어떤 중이 경산스님에게 물었어요. 這僧適來(자승적래)에, 아까 그 어떤 중이 와서 둘이서 스님하고 법담을 하던데 이 중이 마침 와 가지고 有什麼言句(유십마언구)관대, 무슨 말이 오고 갔기에, 便喝和尚(변할화상)고, 곧 화상에게다가 할을 했습니까? 그렇게 물었어요. 대중이 오백명이나 되니까 우리 조실스님에게 뭐라고 하고 갔는가 궁금해하는 대중이 또 많이 있을 것 아닙니까. 徑山云(경산운), 그러니까 경산스님이 말하기를, 這僧從黄蘗會裏來(자승종황벽회리래)하니, 이 중이 마침 황벽스님 회상에서 왔다 말야. 儞要知麼(이요지마)아, 너 혹시 그 사람을 알고 싶어 하느냐? 且問取他(차문취타)하라, 그 사람 알고 싶거든 쫓아가 가지고 그 사람에게 물어 보아라,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경산스님이. 경산의 방장이라 말하자면, 오백 명을 거느린 그 방장이 그렇게 대답을 했어. 그러니까 徑山五百衆(경산오백중)이, 그 經 자가 틀렸죠. 거기 두 인 변 해야 하는데 오자가 생겼네. 경산의 오백 대중들이 太半(태반)이 分散(분산)하다, 오백명 대중이 그 후로 태반이나, 반 이상이나 흩어져 버렸다. 정말 한 산중의 조실이 될려면은 요즈음은 그런 것도 별로 없습니다마는 요즘은 뭐 권속 힘만 있으면은 조실이 되지마는 옛날에는 안목이 있어야 조실을 했고 안목이 없이 대중만 모아 놓으면은 또 이러한 일도 생기고 그렇습니다. 선불교의 어떤 특징은 참 아주 정말 독특하죠. 아주 뛰어난 정신 세계고 그렇습니다. 여기에 정말 자기 인생의 모든 가치를 다 바쳐가지고 여기에 심취하고 여기에 깊이 그 내면의 세계에 들어갈려면은 이건 정신적으로 상당한 어떤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야 그게 가능해요, 사실은. 그렇지 않고는 이게 뭐 그렇게 꼭 세상에 큰 그런 영향을 끼친다고 봐서가 아니라 뭐 설사 그런게 없다 하더라도 정말 선불교가 만들어낸 정말 뛰어나고 위대한 그런 정신 세계인 것만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달마스님 이후로 이게 차츰 차츰 발전이 돼서 지금 임제스님, 황벽스님 이 시기에까지 오기까지 아주 고도로 사실은 발전을 했죠. 그리고는 차츰 차츰 이러한 선의 정신이 또 쇠퇴의 길을 걷고 그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안목이 특출하지 못하면은 이렇게 경산의 오백 대중이 태반이 흩어지듯이 이런 사례들도 있는 거죠. 39 普化(보화)스님의 涅槃(열반) 普化一日(보화일일) 於街市中(어가시중)에 就人乞直裰(취인걸직철)하니 人皆與之(인개여지)호대 普化倶不要(보화구불요)라 師令院主(사령원주)로 買棺一具(매관일구)하고 普化歸來(보화귀래)에 師云(사운), 我與汝做得箇直裰了也(아여여주득개직철요야)로다 普化便自擔去(보화변자담거)하야 繞街市叫云(요가시규운), 臨濟與我做直裰了也(임제여아주직철요야)니 我往東門遷化去(아왕동문천화거)하리라 市人競隨看之(시인경수간지)하니 普化云(보화운), 我今日未(아금일미)요 來日往南門遷化去(내일왕남문천화거)하리라 如是三日(여시삼일)하니 人皆不信(인개불신)이라 至第四日(지제사일)하야 無人隨看(무인수간)이어늘 獨出城外(독출성외)하야 自入棺内(자입관내)하야 倩路行人釘之(청로행인정지)하니라 即時傳布(즉시전포)하야 市人(시인)이 競往開棺(경왕개관)하니 乃見全身脱去(내견전신탈거)하고 秖聞空中鈴響(지문공중영향)이 隱隱而去(은은이거)하니라 그 다음에 이제 普化(보화)스님의 涅槃(열반) 이라고 해서 감변의 마지막 단계인데 아주 특별한 그런 열반의 모습입니다. 보화스님은 그 동안도 보아 왔지마는 재를 지내는 신도집에 재를 지내는데 가 가지고 젯상을 사정없이 발로 걷어차기도 하고 그 이튿날 가서 또 두번째 같이 걷어차기도 하고 하는 그런 아주 출객장부이면서 아주 격 밖의 소식을 거침없이, 거침없이 보여주는 그런 도인이였죠. 열반도 역시 남다릅니다. 普化一日(보화일일)에 於街市中(어가시중)에, 보화스님이 하루는 시내에서, 就人乞直裰(취인걸직철)하니, 사람들을 만나면 乞直裰(걸직철)이라, 직철을 구걸을 했다, 직철은 장삼입니다. 장삼을 한벌 해주세요 하고 이렇게 말했어요. 人皆與之(인개여지)라, 아 스님이 장삼 해달라는데 장삼해주기 좋아하잖아요. 꼭 뭐 법의니까 장삼은. 사람들이 다 해달라는 대로 해줬어. 普化倶不要(보화구불요)라, 보화스님이 아, 아니야, 아니야, 하고 받지 않았어요. 내가 장삼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 장삼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師令院主(사령원주), 그래서 임제스님이 있다가 원주로 하여금, 買棺一具(매관일구)라, 널을 하나 사오게 했어요. 그러니까 普化歸來(보화귀래), 보화가 돌아오니까, 師云(사운),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我與汝做得箇直裰了也(아여여주득개직철요야) 내가 너에게 일개 직철을 만들어 놨다. 장삼 한벌 잘 만들어놨다, 그랬어요. 普化(보화)가 便自擔去(변자담거)하고, 보화가 가서 보고 스스로 좋다고 그걸, 널을 짊어지고는 繞街市叫云(요가시규운), 그랬어요.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부르짖기를, 臨濟與我做直裰了也(임제여아주직철요야)다, 임제스님이 나에게 직철을, 장삼을 한 벌 만들어줬네, 임제스님이 나에게 장삼을 한 벌 만들어줬네, 하고 자랑 자랑 하면서 널을 메고 돌아다닌거죠, 시내를. 我往東門遷化去(아왕동문천화거)하리라, 내가 동문에 가서 열반에 들 것이다, 천화할 것이다. 市人競隨看之(시인경수간지), 그러니까 시내 사람들이 그냥 다투어서 그 보화스님을 쫓아가 보는 거요. 普化云(보화운), 보니까 보화스님 말하기를, 我今日未(아금일미)요, 에이 오늘은 내가 열반에 안 들란다, 내일 저 남문에 가서 천화할 거다, 이렇게 말하는 거야. 來日往南門遷化去(내일왕남문천화거)하리라. 如是三日(여시삼일)하니, 이와 같이 삼일을 그렇게 하니까, 人皆不信(인개불신)이라, 사람들이 다 그 말을 믿지를 않게 됐죠. 至第四日(지제사일)하야, 사일 째 이르러 가지고서는 無人隨看(무인수간)이다, 아무도 이제 저 노장 미친 노장이다 하고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어. 그래 獨出城外(독출성외)라, 홀로 성 밖으로 나가 가지고서는, 自入棺内(자입관내)라, 스스로 관 안에 떠억 들어가 가지고는 倩路行人釘之(청로행인정지), 지나가는 사람 보고 여기다가, 내가 관 안에 들어갔으니 여기다 못질 좀 해라 그랬어요. 청 노행인, 길 가는 사람을 놉을 해 가지고서 못질을, 정지, 못질을 했다. 그리고는 即時(즉시)에 傳布(전포)라, 그러니까 길 가는 사람이 그렇게 해 달라는 대로 도인 스님이 뭐 미쳤는지 뭐 진짜 도인인지 알 길은 없죠. 해 달라는 대로 해 줬어요. 그리고는 곧 그 이야기를 널리 전하게 된 거죠. 즉시에 전포해서, 市人(시인)이 競往開棺(경왕개관)하니, 시내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와서 관을 열어 본 거야. 아 스님이 여기에 들어가서 열반에 들었다니까, 경왕개관, 다투어 와 가지고서 관을 열어보니, 乃見全身脱去(내견전신탈거)하고, 이에 전신탈거라, 전신이 벗어버렸더라, 이건 이제 온 몸이 없어졌다 이 뜻입니다. 분명히 관에 들어갔고 그 관에다 못질까지 했어요. 그런데 열어보니까 몸이 하나도 없어. 몸마저 없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는 秖聞空中鈴響(지문공중영향)이 隱隱而去(은은이거)하니라, 다만 들리는 소리는 저 공중에서 요령소리가, 요령 흔드는 소리만 은은하게 들릴 뿐이더라, 이렇게 이제 열반에 들었습니다. 참 이 정도 열반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으면은 참 지금 만약에 있다 해도 대단한 일이죠. 실지로 이렇게만 된다면은. 온 몸을 다 벗어버렸으니까 그리고 시체는 남기지 않고 화장할 일도 없고 무슨 다비한다고 번거롭게 자시고 할 것도 없고. 이렇게 해서 감변까지 이제 마쳤습니다. 남은 게 行錄, 임제스님의 그런 행적하고 그리고 塔記하고 두 가지만 남았습니다. 이건 오늘 마침 날씨가 문제가 많아가지고 못 오신 분들도 많고 또 빨리 돌아가야 할 분도 많고 오늘 이제 금년도 일월 달이니까 같이 의논해야 할 이야기도 있다고 아까 입성스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사바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사바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사바하 _()()()_
乃見全身脫去(내견전신탈거)하고, 祇聞空中鈴響(지문공중영향)이 隱隱而去(은은이거)하니라.ㅡ몸 전체가 없어지고 다만 공중에서, 보화 스님이 평소에 들고 다니던 그 요령소리만 멀리서 은은히 들릴 뿐이더라. 고맙습니다._()()()_
요령 흔드는 소리만 은은하게 들릴 뿐이더라...禪慧珠 님! 수고하셨습니다.._()()()_
秖聞空中鈴響이 隱隱而去하니라...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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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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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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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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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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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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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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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