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보살(普賢菩薩) / 보고 싶은 불.보살
보현보살(普賢菩薩)
행위야 말로 완성이다
지혜란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
완전하면서도 탄탄하게 현실에 발을 굳히기 마련이다.
행위를 통해서 삶은 가장 완전하게 성취되는 것이다.
사실 육체가 없는 정신은 공허하지 않은가.
지식과 지혜는 잘 살기 위한, 잘 행위 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이든 현실 참여를 통해서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머리로 지혜를 간직한 채 가슴으로 현실의 고통을 껴안으면서
보편적 선행과 종교적 결단을 보여준 인물이 보현보살이다.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짝을 이루어 그 무애자재한 지혜를
이 땅 위에서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해 낸다.
그래서 『화엄경』은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는 선재가
보현보살을 만나 뵙고,
그 드넓은 행원(行願)의 바다로 들어가는 것으로
대단원의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보현보살과 보현행원
보현보살의 산스크리트 명은 사만타 바드라(Samanta bhadra)이다.
사만타란 완전한,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보(普)·편(編), 내지는 보편(普編)으로 한역된다.
바드라란 행복한, 좋은, 아름다운이라는 의미로 현(賢), 현선(賢善),
선(善), 묘(妙) 등으로 의역되었다.
이 의미대로 본다면 보현은 이 세계 곳곳에
어질고 아름다우며 완벽하게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그래서 『대일경소(大日經疏)』에서는 이르길,
'보(普)란 편일체처(編一切處)의 뜻이고
현(賢)은 최묘선(最妙善)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 세계 곳곳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나타나는 모습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바로 문수의 지(智)와 대응하는
실천적이고 구도자적 행의 보살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문수가 사자를 타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서는
어떠한 장애도 베어 버리고 모든 번뇌를 없애는 데
그침이 없는 지혜를 나타내는 보살이라면,
보현은 월색(月色)의 몸을 한 채 여섯 개의 상아를 지닌
흰 코끼리를 타고 두루 일체의 장소에 몸을 나투어
청량의 빛으로써 중생을 길러내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인 것이다.
이렇게 보현보살이 흰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그려지는 근거는
『법화경』「보현보살권발품(普賢普薩勸發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장면을 떠올려 보겠다.
보현보살은 사바 세계에서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방의 나라에서 와서는 그 말씀을 설해 주시길 간청한다.
그러자 그 부처님은 자신이 부처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굳건한 신념, 선행을 쌓는 일, 바른 사람의 무리와 어울릴 것,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설한다.
이 가르침을 들은 보현보살은 말세 때 그 험악한 세상에
이 『법화경』을 믿고 간직하는 이를 굳게 보호할 것임을 다짐하면서
이렇게 서원을 세운다.
'이 『법화경』을 믿어 간직하는 사림이
혹은 걷거나 서서 『법화경』을 읽고 외우면
저는 이때 여섯의 상아를 가진 희고 큰 코끼리를 타고
큰 보살들과 더불어 그가 있는 곳에 찾아가
스스로 몸을 나투어, 그 사람의 수행에 감사하고,
그 수행이 훌륭하게 실현되도록 지켜주며,
그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겠노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현보살의
그 숭고하며 장엄한 실천적 구도자로서의 길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간명하면서도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이를 일러 불교의 골수요 대도(大道)의 표준이라 했다.
그 열 가지 하나하나를 새겨보면 이렇다.
⑴ 예경제불원(禮敬諸佛願) : 과거 현재 미래에 거쳐 이 세계에
두루 계시는 모든 부처님께 예를 표하고 공경하기를 원.
⑵ 칭찬여래원(稱讚如來願) : 지고한 부처님께 간절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최상의 영광과 찬양을 올리는 원.
⑶ 광수공양원(廣修供養願) : 모든 부처님께 두루 공양함은 물론
진리를 펴고 올곧은 수행을 하며 여러 중생을 이익케 하는
공양을 널리 닦아나가기를 원함.
⑷ 참제업장원(懺除業障願) : 탐욕과 질투,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신이 지은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원.
⑸ 수희공덕원(隨喜功德願) : 항상 불 보살과 이웃이 지은 공덕에
감사를 표하며 기뻐하는 원.
⑹ 청불세주원(請佛世住願) : 불 보살님이 열반에 드시지 말고
항상 이 세계 머물러 계시기를 간청하는 원.
⑺ 청전법륜원(請轉法輪願) : 진리의 수레바퀴가 이 세상에서 언제나
굴러갈 수 있기를 청하는 원.
⑻ 상수불학원(常修佛學願) : 항상 치열한 각오로 불도를 닦기를 원함
⑼ 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 : 언제나 모든 중생의 바람을 보살펴
섬기기를 부모님이나 스승, 부처님 모시듯 하는 원.
⑽ 보개회향원(普皆廻向願) : 모든 공덕을 이웃에게 베풀기 위해
중생의 세계로 되돌아오는 원.
열 가지 행원을 곰곰히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이 세계를 정토,
즉 불국토로 가꾸는 일이기에 이러한 행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가 극락정토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선재동자는 보현보살로부터 이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고 깨달음을 얻어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
이 보현의 10가지 원은 그 폭이 너무나 광대해서
모든 보살의 행원이 그 속에 포함되므로,
그래서 그 원이 마치 바다와 같으므로 보현의 원해(願海)라고도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불자라면, 아니 종교의 길로 나선 사람이라면
보현행원은 반드시 새겨 넣어야 할 핵심 알맹이요 골수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보현보살은 이어 이러한 원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며,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면
나의 예배와 공경도 다하려니와 중생계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이 행원은 다하지 않으리니,
생각마다 잊지 않고 되새겨서 몸과 말, 생각으로
꺼리거나 싫증냄이 없으리라'고 거듭거듭 다짐한다.
바로 이 열가지 원을 행함에 있어 깨닫지 못한,
내지는 구원받지 못한 중생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데,
그 길이 비록 끝없을 지라도 결코 그 일을 꺼리거나
싫증내지 않는다는 비장한 각오이다.
사실, 이러한 맹서는 이 땅을 보다 기름지고 아름다운 세계로
만들어가려는 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마음 자세라고 본다.
우리 마음이 보현의 마음을 닮아갈 때
이웃들은 황홀한 진리의 동반자가 되고
그들이 풍기는 향기는 세상을 아름답게 밝힐 것이다.
고려 시대의 균여(均如) 스님은 보현행원을 노래로 부르게 해
그것이 국민가요로서 공전 절후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 세상을 아듬답게 만든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를 가슴 속 깊이 새겨보자.
중생계가 다하면 나의 원 다할 날도 있으리
중생 깨움에 끝 모를 행원의 바다
이렇게 가면 가는 대로 선(善)의 길이여
아아 보현행원이여, 부처님의 일이어라
아아 보현의 마음 알아
이 밖의 다른 일은 버리고 저
보현보살이 머무는 곳
티베트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사천성에는 해발 3000미터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아미산(峨眉山)이 우뚝 솟아있는데,
바로 이곳으로 보현보살이 찾아들고부터
불교의 성지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더욱이 이 산의 맨 꼭대기 금정(金頂)에
보현보살이 항상 계셔 거기서 불광(佛光)이 서기하므로
대광명산(大光明山)이라 했을 정도로 보현보살의 발자취가
이산 여기저기에 그득히 배어 있다.
우리나라 보현보살의 대표적인 성지로는
묘향산(妙香山) 보현사를 들 수 있다.
묘향(妙香)이라, 그것은 올바르고 선하며 아름다운 향기로서,
그러한 행위가 몸에 배인 사람에게서 나는 향운(香雲)이라면,
그곳은 바로 보현보살의 주처. 그러기에 얼마전 텔레비전을 통해서
우리들의 눈 속으로 아름답게 들어온 보현사의 8각 9층탑은
그곳을 스치우는 바람으로 거기 달려 있는 풍경을 흔들어대
묘한 소리로 울려주는 모양이다.
굳이 남한 땅에서 보현보살의 성지를 들라면 대관령 자락인
강릉의 선자령(仙子嶺)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보현사를 꼽을 수 있으련만
지금은 나한 기도 도량으로 더 알려진 상태이다.
그러나 보현보살의 모습은 사찰의 본당의 외벽을 에돌아 가면서
그려져 있는 벽화에 코끼리를 타고 앉아 있는가 하면,
석가모니불이나 비로자나불의 협시보살로서
법당 안에 당당히 버티어 서서는 너무 자주 머뭇거리는
우리의 비겁함을 질책하면서 아름다운 삶, 완성된 삶을 향한
강한 실천 궁행을 독려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상과 마주하는 방향으로
보현보살상이 서 있다.
그러니까 본존불의 좌측, 대범천상 다음에 자리 잡고 있다.
오른손은 위로 꺽어 올려 손바닥 위에 보발을 얹고 있으며,
왼손은 자연스레 내려서 손가락을 멋있게 구부리고 있다.
흡사 매력적인 귀부인의 자태로 육체를 감싼 천의가
상긋하게 흘러내리기도 하고
구름처럼 부드럽게 양 손에 걸쳐 늘어져 있다.
본존불을 아미타불로 볼 경우 관세음보살로 지칭되기도 한다.
(조계사)
[출처] 목야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