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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클라이밍센터 연산점 원문보기 글쓴이: 김용석
너무 오래만에 들어온 거 같군요.
그동안 쭉 알프스에 묻혀 있었는데 이렇게 집에 오리라곤, 참으로 빠르게 두 달이 흘렀네요.
사실 실감이 안 가지만 실감이 갑니다. 목요일 저녁에 들어왔으니, 이제 인사도 할 시간이 나네요.
가끔 적어났던 몇 문장 올리며 빠른 시일 내에 암장에 놀러 갈께요~~~^^
샤모니 야영장
혼자 몽블랑을 갔다온지 3일째다. 다시 야영장에 도착하고 저녁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오늘까지 비가 오고 있다. 이 비는 16일 일요일까지 계속되리라는 샤모니 지역 일기예보에 나와있는걸 연신 보았다. 아마 가을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거다. 7월 초만 하더라도 거의 40년만에라나, 햇볕 쨍쨍한 폭염에 가까운 샤모니였는데, 7월 중순 이후부터 비가 좀 오더니, 8월부터는 비가 잦아졌다. 이제 나도 돌아가야 한다는 상념에 잠길즈음이 된 것이다. 야영장 식탁에 앉아 처량하게 몇 자를 끄적거리고 있는데, 몇 마리의 새가 재잘거리며 곁에 다가온다. 나를 알아보는 것일까. 나의 텐트에 들락거리는 서너 마리 새 일 것이다. 자식들 날씨도 싸늘하고 비가 내리니, 춥고 배가 고픈갑다. 먹고 남은 바게뜨 빵을 부스려 던져준다. 어이~~~!
연일 비오는 날이 많아지고 한낮의 때때로 따가운듯한 햇살 말고는 서늘해지는 날씨에, 샤모니도 이제 끝물이라는 누구의 말마따나 등반의 성수기를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근처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알핀로즈의 한인 게스트하우스도 눈에 띄게 찾던 트래커와 클라이머들이 잘 보이지가 않고 왠지 적막하다, 나의 옆에 그렇게 늘어 서 있던 각국의 텐트들도 자국만 남기고 어디론가 갔다.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스페인, 독일 그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진지한 시간은 없었지만 그들이 얼마나 산을 좋아하는지는 이곳에 와 있었다면 대충 그 느낌으로 바라보곤 했다.
짧게나마 정들었던 일본의 어느 클라이머가 남기고 간 풀 죽은 자국을 밟고 지날갈 때면 새삼 시간이 빠르고 다소 쓸쓸함이 밀려오곤 했다.
우리는 첫 등반지로 잡고 의기양양하게 마터호른을 찾았고, 나는 ER(익스트림 라이더), BBC팀과 어울려 즐거운 등반을 찾아 떠났었다. 동석과 정구형과 함께 한 마터호른은 그야말로 첫술에 배부르지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솔베이까지 오르고 남은 400미터 정상까지는 올라도 안 올라도, 부족함이 많았을 것이다. 그냥 쉽게 생각하였지만, 결국 포기하고 나은 경험을 얻은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았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나는 너무나 아쉬워서, 나중에는 혼자서라도 오를려고 8.3mm 40M 자일을 샤모니 장비점에 들락거리며 싼 가격에 사서 준비하며 열정을 더했다. 우리가 올랐던 마터호른 훼르니 루트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익혔고, 솔베이까지는 올랐던 길이 생생하게 떠올렸다. 그 나머지 정상까지의 400미터는 긴장과 집중의 자신감만 잃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고, 어느 날엔 이틀 후에 체르마트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아마 바로 그날인가, 떠나기 이틀 전인가 BBC 형윤씨한테 카톡으로 '혼자있느니 ER팀이 샤모니 가까운 데에 있으니 그 팀과 합류하여 같이 지내라' 하는 문자를 받았다. 그래 혼자 가느니 차라리 팀과 어울려 더 멋진 등반이 기다릴 것 같았다.
그때부터 ER팀과, 이어 BBC팀과 계속 같이 보내면서 나의 마터호른 등반은 후일로 미뤄지게 되었다.
이제 그 동안 마음 속 간간히 담아 두었고 언제 기록해 놓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고 해서, ER팀과 BBC팀과의 짧었던 등반 이야기를 되짚어보려 한다. 샤모니 주위에는 등반지가 무진무궁하였다. 서점에는 등반지의 루트 맵이 실려있는 책들이 숱하게 꽂혀 있었다.
나중에, 거의 샤모니를 떠날 이삼일 전인가 구입하였지만 나는 등반의 열정을 여기서 또 한번 꺼집어 내는 것 같다. 내년이나 또는 그 이후에 찾을 때면 꼭 이 책에 나오는 몇 군데를 꼭 찾아 오를 마음으로 책을 꼭 앉았다.(Mont Blanc Massif Envers des Aiguilles 영문 버전)
우리는 이곳을 찾는 등반지 중에 가장 인기있는 곳에 올랐는데 이제 그 이야기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서술하기는 내가 무척 어려움을 느끼고 실력이 초짜이기에 이해하기를 바란다.
당뒤지앙 Dent du Geant 4013M
처음 당뒤지앙을 가자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주홍이었다.
소개를 받고 버스정류장에서 처음 그가 나를 마중 나와서 만났을 때, 악수를 하며 손을 잡았을 때 뭔 손이 이렇게 두텁지 이거 굉장히 두터운데, 이거 기가 좀 질리는데. 나중에 그가 트럭운전 일을 한다고 했는데 굳은 일도 하고 홀드도 많이 잡아서 그렇구나, 나는 생각했다.
너는 무슨 일 하지? 난 고층에서 줄 타는 일 좀 한다. 한 마디로 노가다지.
그는 나보다 한 두살이 어리다고 했는지, 호적이 잘못 돼서 한 두살이 어리다고 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먼 곳에서 그냥 친구 하기로 하고 편하게 지내게 됐다. 아참 그는 서울에서 산단다. 원래 고향은 경북 어디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ER 캠프에는 그랑조라스 등반을 떠난 3명의 인원 말고, 여러 형님들이 계셨는데, 전부 쟁쟁한 나이 만큼 편했다 . 주홍이가 제일 막내였다. 나는 처음 ER팀에 합류할 때 어느 정도 등반에 열정을 가질 만큼 파릇파릇한 캠프인 줄을 기대했었다.
5명이 가기로 했다. 충호형, 태홍형, 구일이, 주홍, 나.
우선 에귀디미디를 올라야 한다. 3800미터를 오르는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샤모니 중심가 근처 케이블카를 타고 에귀미디미를 오르고, 거기서 이탈리아 토리노 산장으로 가는 헬브론행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헬브론행 케이블카를 타고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을 횡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탄성을 짖게 만든다. 따궐, 몽모디, 그리고 그위로 솟은 몽블랑. 눈을 180도로 돌리면 그 반대편에 속속들이 솟은 봉우리에 그랑조라스가 있고, 거기서 조금 벗어난 같은 줄기에 우리가 오를 '당뒤지앙'이 보였다. 어찌보면 그랑조라스의 조카쯤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데, 어원인 '거인의 이빨' 처럼 뾰족한 게 '과연 오른다면' 하는 설레임이 일었다.
우리는 1박 2일 일정으로 생각하고 토리노에 도착하였다. 오전에 도착한 후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떼우고 곧 바로 오를 예정이었지만 그곳 산장지기가 말린다. 오후부터는 낙석이 심하니 절대 안된다 라고. 내일 새벽 일찍부터 오르는 게 최선의 등반이고, 지금 모두가 그렇게 등반을 한다고 우리에게 조언을 한다.
밤 늦게라도 등반을 마치고 토리노산장에서 1박을 한 후 내일 오전에 샤머니 숙소로 돌아갈려고 계획을 짰지만, 예상치 못한 사실에 등반대장을 맡은 주홍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일단은 정찰을 먼저 하기로 하고 내일 새벽 일찍부터 등반을 하겠다며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대략 실제적인 벽 등반이 시작되는 곳까지 얼마나 소요되고, 또한 에귀디미디에서 횡단해 왔기 때문에 이곳 역시 높은 곳이어서 고소 적응에도 좋을거라는데 의견이 일치하여 우리는 바로 앞에 보이는 당뒤지앙의 뾰족한 벽 근처까지 가 보기로 하였다.
한참을 걸었다. 눈 앞에 잡힐 거 같은데, 걸어도 한 두시간을 걸어도 좀 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걸까.
충호형이 포기를 한다. 나 내일 안 갈 거니깐 너희들 끼리 갔다온나. 구일이도 힘 들어 한다. 그도 ER 동문으로 어제 샤모니에 도착 한 후 겨우 하루 밤 보내고, 시차며 고소에 적응이 안 된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그도 등반이면 한가닥 한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곳 3000미터 이상, 하물며 히말라야보다 위도가 높아서 2000미터 더 높게 보아야 한다는 이곳 한국인 가이드 허긍열씨의 말 처럼 고산에서는 그 누가 장담 못한다. 나 역시 언제나 항상 긴장을 하고, 약간 고소의 느낌을 느끼지만 그저 묵묵히 표현을 안 할뿐, 지켜나가다 보니, 지금은 완전할 만큼 적응이 되었다지만, 또 한참을 지나면 어느 한계를 느끼고 또 넘어서는 상황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장담은 못하겠다.
우리는 길지도 않은 설원을 걸어 그까지만 갔다. 그 위에 급경사의 설원을 조금 넘고 너덜지대를 한 두시간 통과하여야 진짜 당뒤지앙 벽 앞에 설 수 있지만, 모두의 체력을 고려하여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거의 3시간이 걸렸다. 바로 앞인거 같은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미리 밝혀 두지만 우리가 다음 날 새벽에 긴장으로 무장하여 나설 때는 거의 절반의 시간만에 방금 갔다온 곳까지 갈 수 있었다.
토리노 산장에 돌아온 후 각자의 컨디션을 점검하였다. 충호형은 고령의 나이로 열정은 충만하고 그 자체를 즐거워 하신다든 듯, 구일이는 나는 아직 적응이 안 되었고 하니 다음 기회로 미룬다고 한다. 태홍형은 지금 무척 힘들다고 한다. 고소 때문인지 기력도 없고 기침도 심하고 입맛이 없어서 산장에서 숙박비에 포함 되어 나오는 저녁을 거의 먹지 못한다. 형은 나는 내일 새벽에 판단할께. 형은 타이레놀인가 하는 약 2알을 먹고 7시 무렵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등반 대장인 주홍이가 구일이와 나한테 살며시 오더니, '이거 그만 포기해야 겠는데. 두 사람이 고소로 완전 포기했고, 태홍형도 또 저러니, 도저히 나아질 상태가 아니라서 둘이서 오르기가 뭐 하잖아'
그때 구일이가 아니, 괜찮아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소리야! 두 사람이라도 올라야지. 하면서 강하게 용기를 복돋웠다. 그러나 주홍은 샤모니 캠프에서 주고받은 상황에서 강하게 못하겠다는 것이다. 캠프에서 그냥 포기하고 주위의 간단한 등반을 하라는 메세지를 받았었니, 이해하기 바란다는 거였다. 구일이가 '그 무슨 소리야, 등반의 주는 너희들인데 너희들이 판단해야지, 베이스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구일은 본인이 고소에 적응이 안되어 포기를 했지만 등반의 열정일까, 정신을 강하게 피력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망설였다. 나는 바로 앞에 보이는 우뚝 솟은 거인의 이빨을 오르고 싶었다. 마터호른의 아쉬움이 있었기에. 다른 무슨 이유가 없었다. 그랑조라스에서 뻗어나온 작은 봉우리 당뒤지앙, 거인의 이빨을 뜻하는 봉우리를 본다면 누구나 한번쯤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주홍아 오르자, 내일 새벽 우리 둘이 될지, 태홍형이 좋아진다면 셋이서 오르자!'
주홍이가 씩 웃는다.
새벽 4시에 다들 일어났다. 이곳에서 알았지만, 등반팀이 새벽 몇 시고 출발한다면 산장지기는 그 시간에 맞혀 아침을 준비해준다. 물론 그냥 손수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마다 다르니, 우린 짐을 되도록 가볍게 하고자 했을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그랑조라스 등반팀에 참가할 때는 아침을 새벽 12시에 준비하도록 산장지기에 부탁했었다. 그러면 산장지기는 아마 등반팀의 부탁을 존중하며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산장의 아침 식사로 빵, 커피, 주스, 요거트가 나왔다.
태홍형이 어제 저녁과 달리 거의 아침을 비웠다.
"형님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그래, 푹 자고 일어나니 좋아졌는데, 같이 가자."
우리는 성공을 기원하는 충호형, 구일이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5:15분이다. 우리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마음으로.
후레쉬의 불을 밝히고 맑은 공기를 가르며 경쾌하게 걷는다.
우리는 거의 3시간만에 당뒤지앙 벽 앞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네 시간보다 좋았다.
이미 많은 유럽팀들이 벽 앞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직감했다. 인수봉 만큼 많은 팀들이 찾는 곳이리라. 그래서 정체의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내내 오르는 동안 다른 팀과의 얼키고 설키는, 등반 자체의 난이도보다는 교통체증의 어려움을 겪었다. 선등은 실력과 풍부한 경험을 겸비한 주홍이가 앞섰고 내가 세컨, 태홍형이 마지막으로 줄을 묶었다. 우린 멀티로 올랐다. 주홍은 나와 태홍형을 동시에 확보를 했는데, 나와 태홍은 거의 동시에 거리차를 불과 2~3미터를 두고 올랐다. 주홍은 두 줄을 이미 묶고 올랐기에 8.3mm 60미터 두 자일로 두 사람을 동시에 페츨의 튜브에 통과 시켜 확보를 보았다. 우린 신속하게 올랐다. 다른 팀과 자일이 서로 얽키는 상황도 많았다. 인수봉의 인기에 버금가는 등반지라 생각되었다. 우린 그렇게 4000미터 조금 넘는 정상을 올랐다. 등반 자체의 난이도보다는 고소의 극복, 체력전이었다.
산장을 떠난 후 내내 우린 행동식으로 좀 먹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자유시간 따위의 쵸코바 두 개, 물 몇 모금이 전부였다.
누가 샤모니를 찾는다면, 헬브론의 횡단 케이블을 타고 설원을 지나면서 당뒤지앙을 본다면 한번쯤 오르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가 산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4시가 좀 넘었다. 거의 11시간이 소요 된 등반이었다.
에귀디미디행 마지막 케이블카가 4시15분 이었다. 서둘러도 타기가 애매하다.
녹초가 된 우리는 하루 더 머물고 내일 아침에 가겠다며 저 설원을 바라본다.
드루 Les Drus 3754M
드루는 우리가 날마다 본다. 아침에 눈을 뜨고 마당으로 나오면 바로 앞에, 저 멀리 기이하게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드루다. 한 눈에 보더라도 '와' 하는 단어가 튀어 나온다, 며칠이 지나서 주홍이가 야 드루 안 갈래. 그래, 가자 했다.
형들은 안 간다고 하니, 우리 둘이서 가자. 주홍이 그렇게 말하자, 우린 다음 날 늘 눈 앞에서만 바라보던 드루를 향해 떠났다. 주홍은 ER 출신답게 실력과 경험이 풍부했다. 몽땅베르행 산악기차를 타고, 꽤 많은 직벽의 쇠 사다리를 내려서, 빙하지대를 가로질러, 또 숱한 직벽의 쇠 사다리로 해발을 높이고 또 몇 시간을 걸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전에 조사를 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거의 4~5시간의 어프로치를 하여 드루 바로 앞에 자리잡은 오롯한 산장인 사르푸어에 도착했다.
산장지기는 여자였다. 아가씨인듯 했지만, 뭐 아는 언어가 먹고 자는 등에 필수인 생존 문장에 불과해서 친밀한 대화는 엄두도 못냈다. 아가씨는 드루의 루트를 잘 아는 듯 했고, 우리는 노멀 루트로 오를 예정인데, 벽에 걸린 드루의 사진을 보고 물어보자, 그녀는 손짓을 해 가며 알려주었고, 제법 많은 시간인 11~13시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한 듯 하다. - 아마 내가 잘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그리 호락호락한 등반지가 아니니, 그렇다고 제법 높은 고도에 엉뚱한 길만 비켜간다면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내내 힘들어 하던 주홍이가 저녁이 되어도 그 기미가 나아지지 않는다. 기침이 더욱 심해지고, 열이 나고, 입맛도 영 나지 않아서 제대로 먹지를 못한다. 그는 밤새 기침을 했고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도 덩달아 감염이 된 듯 새벽에 일어났을 때, 우리는 힘이 없었다.
"너 몸살이 심해서 안 되겠다.
너 거의 지금 힘이 없는데, 이거 만만하게 볼 드루가 아냐!
겨우 다 오르고도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을텐데."
나는 걱정스레 말했다.
"그래 기력이 하나도 없어서 안 되겠다.
어떻게 오른다고 하더라도 이곳 고산에선 내려올 때가 더 어려우니, 몸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
바로 앞에 두고 이러니 너무 억울한데."
주홍은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지혜라고 생각한다.
어제 저녁 산장에서 만난 프랑스인듯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새벽 일찍 드루로 향해 떠났다. 아버지는 아주 경험이 풍부한 나이 지긋한 클라이머로 보였고 아들은 대학생인 듯 했다.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니, 그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익살을 부리며 포즈를 취했다.
부자지간에 산을 오르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아버지와 아들이 뇌리에 남았다.
그랑조라스 Grandes Jorasses 4208M
환희와 흥미가 펼쳐질 것 같은 이야기를 우리 BBC 그랑조라스팀 만들어 내지 않을까 하는 극적인 상상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이제 그 지나온 여정을 되짚어 보겠습니다만 하나부터 백까지 들추어 내려 했지만 그때 간간히 메모를 하면서 가졌던 마음과는 달리 어떻게 시간이 훌쩍 지나다 보니, 흔적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
10여일 조금 넘게 머물고 ER 캠프를 떠나는 날, 여러 형과 친구 주홍의 인연을 고마워 하며 BBC팀이 모일 한인게스트하우스 알핀로즈로 돌아왔다.
우리 식구들은 제네바를 거쳐 이곳까지 예정보다 두어 시간 늦게 도착했다. 새벽 1:30분.
다음날까지 거의 하루 반을 쉬고, 그 다음날 바로 그랑조라스 베이스캠프에 가자는 것이었다. 가는 게 고소 적응이니, 일정도 있고 해서 빠르다 쉽을 정도로 전진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2차로 들어오는 여성팀들이 5일후에 들어오면 또 거기에 다른 등반 일정을 맞혀야 하니 넉넉한 마음일 수 없었다.
하루 정도 에귀디미디를 통해 발레브랑쉬 설원으로 내려가 코스믹 릿지나 따궐 등반으로 고소 적을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하루 이틀 정도의 휴식을 갖으며 자연스런 컨디션 조절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샤머니에 들어온지 거의 한 달이 되면서, 마터호른, 당뒤지앙, 드루등반을 겪어면서 고소적응과 시차적응의 중요성을 잘 담고 있었지만, 나는 조심스럽게도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었다.
베이스까지 가는 자체가 고소적응이니 말이다.
나의 생각으론, 2차팀의 일정은 하루 이틀 늦어지더라도, 우선은 큰 일을 앞두고 있는 그랑스조라스팀의 넉넉한 일정을 잘 살려 최상의 컨디션으로 오르기를 마음 속으로 바랬지만, 일정상 우선 밀어 붙이기로 한 것을 깊이 이해했다.
우리는 샤모니 중심가로 나가서 등반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
다음 날 우리는 몽땅베르로 가는 첫 산악열차를 탔다.
물론 나는 지원조다. 상철형도 나와 함께 포함 되었다. 나의 임무는 등반팀이 원활히 힘을 비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의 배낭엔 며칠 지낼 나의 개인적이거 말고도, 자일, 텐트 등 공동으로 사용할 장비들을 담았다. 마음은 가벼웠다. 공격조는 아니지만 알프스의 3대 북벽 중의 하나인 그 이름 앞에 선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드루로 갈 때 가 본 그 길로 앞장을 서서 경쾌하게 나아갔다. 몽땅베르에 내려 빙하지대를 본격 걷는다. 몇 분을 가로지르다 빙하지대를 완전히 건너간다면 드루로 가는 길이다. 천천히 고도도 높아가고 각자의 짐은 어느 만큼 무거워서 지리산 처럼 편안한 길이 아니다.
빙하와 너덜지대를 거의 5시간을 걸어니, 어디서 본 듯한 고고한 벽이 너무나 깨끗하게 서 있다. 저게 그랑조라스인가. 상단부는 하얀 눈이 쌓여있다. 바로 앞에서 벽까지는 완만한 설원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때 "다다다다~~" 소리에 헬리곱터 한 대가 벽의 하단을 지나간다. 너무 작아서 장난감 헬기로 착각을 할 정도로 벽은 웅장했다.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차릴 베이스 캠프에서 얼마나 멀까? 바로 눈 앞에 벽인데. 본격 등반을 하는 벽까지는 한 두 시간 정도 걸으면 될 것 같았다. 고산지대의 사물을 바라보는 착각(왜곡)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떨어진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대해 좀 처럼 측정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랑조라스 벽까지는 선명한 한뼘의 거리였다.
멀찌감치, 아니 바로 눈 앞에서 벽을 바라보는 우리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기가 질렸을까, 오를 수 있을까, 미지의 세계에 담담했거나 설레였을까.
사실 나는 벽 앞에 서서 바라보는 그런 입장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엑스트라의 입장이었다. 또는 이 극의 주인공이 아닌 관객의 입장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만큼 마음은 편안했다. 그때 나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러웠고 다음에 꼭 오르고 싶다는 거였지만.
한 동의 텐트를 쳤다. 거기에 건이형, 형윤, 광쌍이가 자고, 나와 상철형은 근처 산쪽에 자리한 렛쇼산장에 자리를 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먹구름이 조금씩 끼드니, 곧 하늘에는 온통 먹구름이 몰려왔다.
나는 여기서 지내 온 직감으로 비가 곧 내릴 것 같으니, 편안하게 산장에서 하루쯤 지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 말했다. 그 블랙다이아몬드 2~3인용 텐트는 비잡고 비가 샌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은근히 걱정을 했다.
결정은 된 듯 내일 새벽 4시에 벽에 붙겠다고 한다. 우리는 성공의 악수를 나누며 나와 상철형은 렛쇼산장으로 갔다. 우리가 헤어지고 렛쇼산장으로 갔을 때가 거의 저녁 시간이었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리야 산장에서 따뜻한 끼니를 편하게 먹는다지만, 아래 텐트에선 비도 오고 그 비좁은 데서 어떻게 먹을까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잠도 제대로 ......, 내일 새벽에 오르는 데 푹 쉬어야 할텐데.
상철형과 나는 지금의 운명은 자연스러우니 어쩌겠냐 하며 이해하기로 한다.
밤이 깊어지자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다 깨고를 반복할 때마다 비 소리를 듣는다.
눈을 떴을 때, 시간은 늦었다. 텐트쪽으로 보며, 나는 무전을 날렸다. 비는 이미 개었고 하늘은 맑았다.
먼저 그 쪽에서 이야기가 날라온다. 쪼그리고 한 숨도 못 잤고, 새는 바람에 많은 장비들이 젖었다. 그래서 좀 말리고, 차라리 잘 됐다. 정찰이나 갔다오게. 하는 것이었다. 상철형은 밤새 설쳐는지 느긋하게 누워있다.
나는 빠르게 움직여 텐트쪽으로 수직의 쇠사다리를 수 없이 내려갔다. 정찰을 함께 할 마음으로 달려갔다. 여기는 다 쉬운 길이 없다. 코 앞의 텐트에도 거의 30분이 걸린다.
우리는 바로 앞의 설원을 걸었다. 완만한 경사이지만 곳곳에 크레파스가 많았다. 걸어도 언제쯤 벽 앞에 다가설지 모른다. 그저 서너 시간쯤이면 되겠지. S자 형태의 선을 그으며 오르고 믾은 크레파스를 피해 약간의 크레파스를 넘어 서너 시간을 걸어서야 마침내 벽 앞에 섰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새벽 일찍 왔더라면 6~7시간은 그냥 걸릴 것 같다. 밝은 시간에 와도 이렇게 헤매는데 컴컴한 새벽에 왔더라면 미로 같은 크레파스에 갇혀 얼마나 헤매을지. 하는 말로 우리는 위로를 하였다. 그래, 하루가 늦은 게 아니었다. 다행이다. 이렇게 정찰을 하여 벽까지의 길을 어느 정도 익혔으니 말이다. 저 밑에서 보는 시야로는 여기까지의 길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크레파스가 그렇게 미로 처럼 엮어져 있어서 좌로 가야할지 우로 가야할지 직접 걸어보지 않고서는 낭패를 보기 쉽상이다. 우리는 거의 4~5시간의 정찰을 끝내고 산장으로 돌아왔다.
한낮의 햇살은 따스하고 따가웠다. 모두들 내일의 일전을 앞두고 햇살을 맞으며 휴식을 취한다.
왜 그리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나니 내일의 시간 밖에 남지 않은듯 했다. 다들 일찍 잠을 청했지만 제대로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느긋했다. 벽까지 짐만 들어주면 되기 때문에. 잠을 자든 안 자든 말이지. 거의 10시가 됐었을까, 겨우 잠이 온듯했다.
일어날 시간인 새벽 12시에 산장지기도 같이 일어났다. 산장지기는 눈 비비는 기색없이 아침을 준비 해 준다. 커피, 빵 몇 조각, 주스 등. 커피 한 잔이나 주스만 마시고 빵은 행동식으로 챙긴다.
나는 자일 두 동과 등반에 필요한 몇 가지의 물품을 배낭에 넣고 벽까지 따라 나섰다.
캄캄한 시간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어제 정찰을 했기 때문에 잘 찾아갈 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쉽게 나아가지를 못했다. 크레파스의 미로에 갇혀 몇 번이나 돌고 돌아서 겨우 벽 앞에 선다. 시각은 거의 4시 30분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설원은 완만한 경사도 아니고 급경사도 아니고 수수께끼 같은 길을 내포하고 있었다. 정찰 없이 나선 어느 팀은 6~7시간 정도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는 진한 악수를 나누었다.
나는 거의 5시에 벽에 붙는 것을 보았다. 아까는 총총한 밤하늘 이었지만, 벽을 바라보며 내려올쯤 하늘은 차츰 밝아진다. 뚜려지게 주시해도 거대한 검은 벽만 보일뿐 사람의 형태는 찾을 수 없었다.
7시가 갓 넘는다. 렛쇼 산장에서 상철형과 나는 아침을 먹으며 망원경으로 벽을 관찰한다.
겨우 사람의 형태를 찾을 수 있을 만큼 개미의 움직임 같은 형태가 보일듯 말듯 하다.
광쌍은 나에게 어느 한 지점에서 잘못 드는 경우가 많다고, 그러면 거의 한낮절이나 고생할 수 있으니, 이 지점에 이르면 꼭 무전을 달라고 했다. 나는 어제 루트의 지형을 외우다시피 보았다. 그들이 오르는 길을 망원경으로 뚫어지게 보는데, 알려 달라는 그 구간이 나왔다. 트레파스하는 그 구간이었다. 무전기를 켠다. "여기는 베이스 캠프,
........
........
첫 번째로 애매할 수 있는 루트를 정확하게 무전으로 알려 주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정확한 루트를 인지하여 찾아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한번은 잘못 알려줘서 삼사십 분 동안 지체되기도 했지만 첫 날은 다소 별 어려움 없이 3600미터에 거의 다다른 지점에 비박을 하겠다는 무전을 받았다.
'검은 슬랩' 까지 가겠다고 했으나, 다소 못 미치는 지점이다. 그래도 첫날로는 비교적 괜찮은 높이다. 세 명의 작은 점들이 좁은 테라스에서 비박을 준비하고 있는 움직임이 보인다.
저 곳은 어떨까? 저 미로 같은 바위에 붙어서 자는 마음은.
그들의 등반은 망원경을 통해서 치열하게 느껴졌다.
때때로 나의 생각은 이러한 게 많았고 떠나질 않았다.
'그들의 등반은 인간드라마 처럼 나의 감정으로 들어오고, 성공적으로 정상에 오르고 지친 육체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내려온다.
물론 우리는 환희던 좌절이던 여하에 관계없이 결과에 살아있다는 고마움에 부둥켜 안을 것이다.'
그리고 베이스 캠프까지 지원해 준 노력에 고맙다. 조촐한 뒤풀이를 한다. 다소 쉬운 생각으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틀 동안 벽에 붙고 삼일째 이태리 꾸르마이어로 하산하는 계획을 세웠다.
벽에 붙은 이튼날에 비가 내려도 그런 상상은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이틀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자, 한치 앞도 알 수 없다. 구름은 벽을 가리고, 비는 온 몸을 잡았을 것이다. 또 어떤 높이의 지점은 눈이 내려 얼어 붙었을 것이다.
비가 내려도 어떤 세계가 열릴지 그렇게 두려워 하지 않았다.
계속 오르는데 문제 없고 적당한 곳에 이르면 비를 피해 비박할 수 있는 곳을 찾겠다.는 무전을 몇 번이고 받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낙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주연이 아니어서 문제가 안 올거야 하는 탁상공론의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닥치보면 아는데 벽에서는 걱정스런 말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을 가졌다. 우리가 그렇게 날씨의 영향으로 성패를 간과한 것일까?
우린 분명 날씨가 가져다 줄 등반의 결과에 철저히 준비를 안 했지만 그렇다고 간과한 것은 아니었다. 좀 낙관적이고 쉽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3일의 날씨 중에 중간에 낀 날의 비가 좀 애매했지만 다른 이틀은 날씨가 좋은 편이었다. 중간에 낀 날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염려 하지 않았다.
알프스는 그날에 철저하리 만큼 비를 뿌렸다. 거대한 자연의 힘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움직일 뿐, 우리는 또 우리대로.
몸과 장비는 가랑비에 아랑곶 없이 오르고 또 오르고, 설령 우리의 한계선이 나타날까?
오후로 되자 비는 거센 비바람과 눈바람으로 돌변하여 불어 닥치니 정상 바로 밑에서 두 번째 비박만 하면 내일 오전 정상에 서고........ 꾸르마이어에서 만나자.
이런 생각들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는 순간은 오후가 깊어질 쯤이리라.
암벽도 빙벽도 아닌 길에 어떻게 오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어느새 알 수 없는 위쪽은 하얀 눈이 깔려있다. 나와 상철형은 비가 퍼붙고 온통 가스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랑조라스를 쳐다본다. 그 뿐이다.
무전으로는 아무 이상없이 오르고 있다는 말뿐, 우리는 그 한계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태연하다.
어제 이야기가 있었던 바, 오늘 베이스 캠프의 텐트 및 짐을 짊어지고 철수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오늘 거의 정상 밑까지 도달할 것이니, 혹시 좀 지체가 되더라도 베이스 캠프의 역할은 충분하다. 고생이 많았다. 미리 인사를 받았다. 상철형과 나는 베이스 캠프로 내려가 거세지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텐트며 짐들을 챙겨 배낭에 넣고 마지막 무전을 날린다.
"괜찮습니까?"
"네 할만 합니다."
"건이형, 형윤아, 광쌍아 조심하고, 정상 올라가고 꾸르마이어에서 봅시다."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빙하 위를 걸었다. 고어텍스의 이중화도, 자켓도 무용지물이었다. 흠뻑 젖은 몸은 으시시 할만큼 추웠다. 무시무시한 비바람이 우리를 때리고 빙하를 뜷는 듯 하다. 나는 괜스레, 이러다가 빙하 속에 빠지는 거 아냐. 그럴 때도 나는 벽에 내리는 비는 우리들에게 아랑곳 하지 않는 잠시 내리는 비, 피해 가면 되는 비쯤으로 여겼다.
정오 쯤에 베이스 캠프를 떠난 우리는 5시가 좀 못 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젖은 모든 것을 벗기고 샤워를 하고 나니 살 맛이 났다.
휴식의 여유도 없이 난데없는 소식이 알펜로즈 사장 입에서 나온다.
"일행들이 헬리곱터 구조 요청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해도 해도 도저히 위험해서, 더 어두워지기 전에 판단을 했답니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는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다. 다시 그가 태연하게 말했을 때 우리는 지금 상황을 받았들일 수 밖에 없었다. 분명 현실인데. 헬리곱터 구조요청이라, 나에게 현실이 아닌 듯 했다.
헬기에 탄 모두가 말하기를, 벽으로 멋진 헬기가 다가오더니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첩보 영화에서 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더라는 것이다. 우린 웃었다. 야 진짜 극적이다.
그렇게 막은 내렸다. 3박 4일 동안 그랑조라스의 등반을 나는 작은 이야기라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다 만들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고, 내가 박관장으로부터 빌린 8.4미리 60미터 자일 하나가 3600미터쯤에 꽁꽁 얼은 채 매달려 있으니,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내년이나 내 후 년에 찾으러 갈까.
이야기는 항상 이어지고 새로워지는 것 같다.
어쩔땐 나 자신을 어떤 이야기 속에 집어넣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지나가는 행인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는 함께 하는 것이리라.
코스믹릿지 Cosmiques 3800M
며칠 간의 휴식이 지나고 2차로 합류한 여성팀들과 등반을 떠난다. 아침은 맑고 새로운 등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어찌 설레이지 않을 수 있으리. 우리가 오를 에귀디미디까지, 2800미터의 고도차를 단 삼사십 분 만에 올려주는 케이블카를 타고 간다. 아마 지상 최고의 케이블카 만큼 놀이 동산의 바이킹에서 타는 그런 가슴 쓸어내리는 구간들이 있다.
3840미터 제일 높은 곳에 도달한 우리는 발레브랑쉬 설원으로 아이젠을 싣고 어느 정도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내려 간다. 마터호른에 간다고 당뒤지앙을 간다고 두 번을 찾았기 때문에 별 새로움이 없지만, 그때도 지금도 고도는 항상 긴장되기 때문에 늘 새로운 기분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드넓은 설원이 펼쳐져 있지만 몇 동의 텐트가 에귀디미디 남벽 바로 앞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띄엄띄엄 있다. 아직 숨이 찬지 몇 사람이 돌아가며 겨우 삽질하여 눈을 적당히 걷어내 둘러쌓고 세 동의 텐트를 짓고 보니, 남벽에는 벌써 몇 팀이 붙었다. 마테호른 때 정구형이 저 벽, 재미겠는데, 다음에 오면 한 번 붙고 싶다야, 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난이도는 5.10급~ 5.11급의 루트가 주류인데 고도에 섰을 때의 느낌, 다음에 꼭 붙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 쪽으로 시선을 오래 둘 수가 없다. 우리는 뭄풀기에 좋은 릿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 본 무명릿지 만큼 이다 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고도에서 하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알프스를 처음 찾는다면 고소적응의 차원에서 도움이 많이 될 듯 하다.
우리는 세 팀으로 나눴다. 팀 당 세 명이었다.
이 등반은 내내 작렬하는 태양이 정오의 한 가운데 떠 있을 줄만 알았는데, 어느 새 마치고 9명이 캠프에 귀환해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따궐 Mont Blane du Tacul 4248M
다음 날 캠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따궐등반은 눈얼음과 바위가 혼합된 등반인데, 따가운 햇살 아래 펼쳐지는 장엄한 알프스의 묘미를 제대 느낄 수 있었다. 아이스바일를 휘두르는 경쾌한 동작은 가슴터질듯 시원하고, 크램폰의 발 동작은 얼음과 바위를 경쾌하게 다듬고. 마지막 드넓은 설원을 내려오는 것까지, 거의 10시간 정도의 몰입감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를 만큼 매력있는 믹서등반이었다.
내가 아마 알프스를 찾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누군가가 계속 찾을 것만 같았다.
몽블랑 Mont Blane 4810M
혼자 남았을 때, 마지막으로 한가하게 오를까 했다. 클라이밍보다 걷는 게 전부라 생각했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쉬운 만큼 예상치 않은 큰 어려움이 닥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여기서 몽블랑 등반 관련 몇몇의 큰 사고 소식을 들었다.
몽모디 쪽으로든 구떼쪽으로든 결코 쉽지 않은 길임을 알고 가기를 다짐했다.
나는 그마나 준비가 단촐해도 되는 구떼 방향으로 잡았다. 혼자라서 안전장비는 거의 갖추지 않았다. 카라비너 두 개, 슬링 두 개, 바일 한 자루, 크램폰. 파일 자켓, 다운 자켓.
샤모니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우쉬로 간다. 거기서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다리가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의 3시간을 걸어 물어물어 벨빗까지 올랐다. 거기는 산악기차가 있다, 기차로 니데글(일명 : 독수리 둥지)로 오른다. 니데글에서 설산 먼 위쪽으로 바라보면 떼떼와 구떼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제 본격적인 몽블랑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니데글이다. 언제나 새로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는 왠지 긴장이 된다.
니데글에서 떼떼산장으로 오르는 첫 길목에 큰 표지판이 서 있다.
떼떼산장 바로 위에 700미터 급경사로 떨어진 구떼산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낙석이 떨어지니 매우 위험하다. 등반을 제한한다는 문구였다. 나는 일단은 떼떼까지 가 보기로 하고 거의 두 세 시간을 올라 떼떼에 도착한다. 오전 천천히 야영장을 떠나온지라 떼떼에 오른 시각이 저녁이 거의 다 된 5:30분쯤이었다.
바로 그때 위쪽 구떼에서 흰 먼지를 일으키며 굉음을 지르며 돌덩이가 굴러 내려온다. 몽블랑 등반을 마치고 구떼에서 내려오던 몇몇이 급히 몸을 숨긴다. 거의 긴장의 시간이 이 삼 분간 지속 되었다. 나 말고도 옆의 몇 사람도 놀란 기색으로 눈이 휭두리며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나는 일단 의연한 마음을 가지며 내일 새벽 두 시에 혼자 오르기로 마음을 다졌다. 산장 숙박비를 지불하고 저녁을 먹고 우연히 외국인 가이드 처럼 보이는 사람이 혼자 가냐고 물어, 혼자라고 하니 그가 손을 이마에 대고 땅으로 내짓으며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소 그가 걱정한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정확한 것은 모른다.
나는 자는둥 마는둥 2시에 깨어 준비를 하며 캄캄한 밖으로 나왔다. 바로 그때 또 굉음을 내며 낙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소리만 들릴뿐, 어떻게 보이지 않는데 올라간다 말인가. 보여야 피하지. 나는 담담하게 룸으로 들어가 날이 좀 밝아질 때까지 잠을 청했다.
5시에 눈이 뜨졌다. 아침은 물을 끓여 즉석 스프로 때운다. 조용하다. 오르는 이가 없다. 나는 오른다.
700미터 급경사의 구떼가는 루트를 나는 거의 두 시간을 잘못 들었다.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30~40미터 정도 트레버스 하여야 하는데, 나는 낙석이 떨어져 미끌해진 그 루트를 미끄럽게, 다소 클라이밍이 포함된 어렵게 올랐다. 낙석을 주시하며 직등을 하였던 것이었다.
한참 오르는 도중에 구떼에서 내려오는 어느 등반가가 매우 위험하니 이쪽으로 트레버스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겨우 한참을 트래버스하여 제대로 된 그 루트를 오를 수 있었다.
구떼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설원을 걷는다. 멋진 알프스의 설원이 펼쳐진다. 인생 뭐 별 거 있나. 이런 설원 지겹도록 한번 걷자. 마음은 가볍다. 고도는 올라간다. 약간의 증상이 느껴지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발로 무인산장에 도착하였다. 아까부터 줄곧 보아왔던 독일인 친구 한 명이 있다. 일행 중 한 명은 고소로 구떼에서 아예 누워있다. 그는 나에게 같이 오르자고 한다. 자일을 꺼내어 나에게 안자일렌 하자고 한다. 나는 안전벨트가 없어서 보울라인 매듭으로 몸에 묶었다. 그는 굿 아이디어 라고 웃는다. 나는 아이스클라이밍을 좀 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자, 그는 'for me' 말하며 손짓으로 나에게 앞장을 서 달라고 한다.
앞을 보니 제법 날카롭고 경사가 있는 능선이 하늘 바로 아래 놓여 있는듯 했다.
우리는 아차 떨어지면 몇 백미터 아래로 미끄러 내려갈 수도 있는 칼날능선을 아주 조심스럽게 올랐다. 크램폰은 서로 부딪치지 않게 아이스바일은 만약을 대비하며, 그런 긴장의 칼날능선을 서너 개를 넘어섰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면 눈얼음이 온통 앞을 가린다. 고산의 느낌이 약간 이런 것일까.
막 오르자, 정상인듯 밋밋한 데 다가선다. 모든 하얀 봉우리가 아래에 보인다.
좌우 폭 거의 5미터, 길이 거의 30미터쯤 될려나 정상이다. 4810미터 몽블랑.
일상에서
두 달의 시간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다.
문을 열고 나서면 늘 보아 온 알프스가 보일듯 하지만 콘크리트의 시간만 보인다지만.
내가 어디를 갔다오건 그렇게 보아온 풍경만을 상상할 수 없다. 웃음이 나오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가장 좋다. 가장 행복을 꿈꾸는 곳인거 같다.
그곳에선 늘 바게트 빵에 치즈와 버터를 먹곤, 알프스를 바라봤지만
오늘부터는 늘 김치, 된장, 삼겹살이 맛있다. 이젠 이곳에 눈이 멀 것 같다.
이번에 많은 곳을 돌아다닐려고는 했지만 그냥 알프스 자락에 줄곧 눌러 지내왔다.
다행히 유럽 몇 군데는 동석과 정구형과 함께 마터호른 등반을 마치고 돌아다닐 수 있어서 추억에 들어가 있다. 묵, 금악이한테 연락을 할까 하다가 밖에 나온 목적이 달라서 그냥 그들의 자유로운 시간을 내버려 두었다. 나는 나대로 좋은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고 또 그들의 자유로운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쪽을 찾아가던, 알프스에서던 환한 웃음으로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ER팀, BBC팀과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새롭게 맞이한 인연에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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