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2장 1-15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갓지파 소속이자 길르앗 사람 입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 자손의 위협과 도발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켰습니다. 입다가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서 그들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이내 평온의 시기로 진입하지 못하고 또 다른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1절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이번에는 입다가 이방 암몬 사람들의 위협과는 달리 동족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하나인 에브라임 사람들로부터 ‘너와 네 집을 불사르겠다’는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의 위협의 이유는 입다가 암몬 사람과 싸우러 갈 때에 자신들을 불러 함께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들이 주장하지만 그것은 합당한 이유가 되지 않으며 억지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입다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2절입니다.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입다의 주장은 암몬 자손과 싸울 때 에브라임 사람들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히려 어떤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입다의 주장입니다. 3절입니다.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입다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열세를 안고 암몬 사람들과 싸웠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 싸움에서 승리는 자신이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기에 가능하였음을 강조함으로 승패의 원인이 사람의 수와는 무관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입다는 자신의 이름 내려고 암몬 사람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입다는 믿음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2절을 보면 입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데 입다는 믿음으로 나라를 이긴 사람이 되기도 하며(히11:33)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친(히11:34)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비천한 출신으로 여겨졌던 입다는 신분상승을 위하여 쉽게 빠질 수도 있었던 자신의 이름을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믿음의 행동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의 행동에는 그 과정이 매우 어렵고 힘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경을 이긴 후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의 행동에 따른 고난에는 동참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믿음의 행동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이 임할 때 거기에 편승하려고 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처럼 고난 후 영광을 받은 사람들에게 찾아와 그 사람들을 시기하며 그 때 왜 나를 부르지 않았냐며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정말 몰라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알고도 고난의 과정에 동참하기 싫어 모른 척하였다가 나중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시기와 위협적 행동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사사기 8장 1절을 보면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말하며 기드온과 크게 다투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내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었기에 남을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임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언제나 자기 이름과 명예를 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행태를 보였던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 때와는 달리 입다 때에는 엄청난 비극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에브라임 사람 42,000명이 죽었습니다(6절).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그들의 분노를 격발시켰던 원인은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4절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비록 에브라임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 위협을 가하였더라도 과거 기드온과의 시비 때처럼 당하는 처지에서 좋게 말로써 그들을 진정시켰다면 유혈 사태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브라임 사람들이 도가 지나치게 입다를 포함해서 길르앗 사람들의 가장 취약한 점을 건드렸습니다.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의 유혈 사태 원인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였습니다. 이는 길르앗 사람들의 정체성 문제를 건드린 것입니다. 길르앗은 지역적으로 대략 위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아래로는 사해까지 뻗은 요단강 줄기 동편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길르앗 사람들을 소속이 불분명한 도망자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대만 국민을 중국에서 나온 도망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큰 정당에서 탈당한 작은 정당 사람들에게 큰 정당 사람들이 변절자, 도망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발언입니다. 시시비비를 떠나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이로 인해 유혈 사태가 일어나 큰 인명 피해가 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잘못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기드온처럼 에브라임 사람들의 위협에도 잘 타협하였다면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형제지간이었지만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신념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간에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의 하나님만을 믿는 자들 간에는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기에 소통과 화합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 안에서 우리 하나님을 믿을 때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이해함으로 소통과 화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비록 에브라임 사람들이 바르게 행동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 사람들도 사랑하셨습니다. 사사기 12장에는 입다 외에 사사 3명이 더 등장합니다. 그 중에 사사 압돈은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비라돈은 에브라임에 속한 한 성읍입니다. 사사 압돈은 에브라임 사람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길르앗 사람들과 싸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에브라임 사람들 중에 사사 압돈이 나와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영원한 패자나 영원한 죄인은 인간이 정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회개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자비를 베푸시고 회복과 평화를 주십니다. 내가 에브라임 사람의 입장 있든지 아니면 길르앗 사람의 입장에 있든지 ‘우리’가 아닌 ‘나의’ 하나님만 믿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소통과 화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크리스토스(그리스도)의 첫글자 X의 전형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구현하는 크리스티아노스(그리스도인)이 되어 소통과 화합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을 따라 행할 때 영광만 생각하지 않고 먼저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타인이 이룬 선한 결과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으며 시비를 걸지 않게 하옵소서. 반대로 억울한 입장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저희들의 믿음이 나의 하나님 안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하나님으로 확장되게 하시옵고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사랑이 사람 사랑으로 이어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