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사비(晴岡寺碑) 비문 해설
<청강사 비 앞면(위)과 뒷면(아래)>
晴岡寺者, 故晴岡居士鄭氏諱逵洛之所刱始,
而其嗣君邦海之所完成之者也.
居士貫草溪, 晴岡其別字, 孝子白棗堂之裔, 以上皇 辛未 三月十一日, 生于三嘉鄕第.
청강사(晴岡寺)는 고(故) 청강거사(晴岡居士) 정규락(鄭逵洛)이 짓기 시작하고, 그의 대를 이은 아들 방해(邦海)가 완성하였다. 거사의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청강은 그의 별자(別字, 號)이며, 효자 백조당(白棗堂)의 후손으로 고종(高宗) 신미년(1871년) 3월 11일에 삼가(三嘉) 고향집에서 태어났다.
甫踰弱冠, 中進士科. 中年偶欲干祿, 一日謁當路通意, 當路可之, 將以某日, 有河東知府之除授已決矣.
而居士, 前夕自願罷之, 大驚當路.
스무 살을 갓 넘어 진사과(進士科)에 합격하였다. 중년이 되어서 느닷없이 벼슬을 구하고자 하여, 하루는 당로자(當路者)를 만나 뜻을 알리니 당로자가 들어주어 장차 아무 날에 하동(河東) 부사에 제수하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거사는 제수되기로 한 전날 저녁에 스스로 포기하기를 원하여 당로자를 크게 놀라게 하였다.
居士顔貌洪偉, 宇度權奇, 寬能說人, 猛足威衆, 而城府潭深, 用意微默.
其居家理産, 人未嘗見其有運一籌記一帳, 穆然黝然而已, 惟酷愛花鳥, 蒐羅栽飼之, 至若已甚然者, 而亦能增潤其産, 不翅倚蓗.
其或有事, 會相扇薄, 在危隘之塗, 則一俛仰之間, 而已自疾捉其生機, 直接其任, 督導之, 使卽於本無一事之初.
거사의 용모는 크고 튼튼했고, 국량이 넓고 권도와 기궤를 잘 했으며, 관대함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었고, 굳세고 엄격함은 대중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속내가 깊고 마음씀이 좀체 드러나지 않았다.
그가 집에서 치산(治山)할 때에 사람들은 그가 산대를 놓거나 장부 적는 일을 본 적이 없었으며, 편안하고 그윽할 뿐이었다. 다만 꽃과 새들을 매우 사랑하여, 널리 수집하여 심고 키우면서 너무 지나칠 듯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해마다 그 재산을 불려 풍부하게 할 수 있어서 몇 갑절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혹 일이 생겨 서로 우왕좌왕하며 위태로운 경우에도, 한번 굽어보고 올려다보는 잠깐 사이에 스스로 신속히 그 살길을 파악하고서 손수 그 임무를 맡아 감독하고 지도하여 애초에 아무 일도 없었던 상태로 돌려놓곤 했다.
其敎子之恒言曰 : “禍卽是福, 福卽是禍, 若須處於不福不禍之間, 平生托懷於瞿曇氏之所以爲敎.”
蕭散其外, 奮迅其中, 遍禮名岳, 勤參長德, 彌密用工, 潛契奧義.
凡諸若此, 人故莫得以測知其涯際, 而以其精專善終, 足以證其有然也, 壬午之臘, 預言將以明正月之中, 辭玆娑婆, 及期, 果畢治遺命, 招僧觀化, 翛然示寂.
綜基行事顚委, 可謂奇異矣.
그가 아들을 가르치며 항상 하던 말이 있다. “화(禍)는 곧 복(福)이고, 복은 곧 화이니, 너는 반드시 복도 아니고 화도 아닌 사이에 처신하며, 평생 구담(부처님)의 가르침을 주시는 바에 마음을 의탁하도록 하여라.”
그는 밖으로는 소탈하고 안으로는 항상 분발하며, 신속한 기분으로 명산을 두루 참배하고, 덕이 높은 어른들을 찾아뵈면서, 공부할 때는 면밀하게 하고, 심오한 이치에 가만히 깨달음이 있었다.
무릇 이와 같은 모든 것은 사람들이 그의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정하고 오붓하게 임종을 잘 하였는데, 그가 그러함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임오년(1942년) 섣달, 그는 장차 내년 정월에 이 사바세계(俗世)를 떠나겠다고 미리 말했는데, 그 때가 되니 과연 유언을 제대로 남기고 스님을 불러 관화(觀化)하고 유연히 입적하였다.
그가 행한 일의 시말을 종합해보면 가히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寺在於三嘉之墟窟山下, 其西曰金城山, 其北曰岳堅山, 三山之名, 固已艶稱自古矣.
墟窟以黃梅初支, 饒有巖泉洞壑之美, 爲三山之最, 而寺在於是, 尤足以增長其輝采矣.
절은 삼가(三嘉)의 허굴산(墟窟山) 자락에 있는데, 그 서쪽은 금성산(金城山)이고, 그 북쪽은 악견산(岳堅山)으로서, 세 산의 명성은 참으로 옛날부터 아름답게 칭송되었다. 허굴산은 황매산(黃梅山)의 첫 가지로서, 바위와 샘, 골짜기와 구릉의 풍부함이 세 산 가운데 최고가 된다. 그리고 청강사가 여기에 있으니 더욱 그 빛과 정채가 더하게 될 것이다.
鄭君以今歲仲春, 嘗北上漢師, 又西折而訪余於主夫吐之山廬, 囑爲一文刻碑視后者.
視君亦一落落不苟, 爲能善述先志人.
乃序次之如上, 系以四言, 以足其未罄之旨, 曰
그의 아들 정군(邦海)이 올해 음력 2월에 북쪽으로 서울에 올라왔다가, 다시 서쪽으로 꺾어서 주부토(主夫吐)의 집으로 나를 방문하여 글을 지어 비석에 새겨 후세에 보여주게 할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정군을 보니 역시 우뚝하고 얽매임이 없어서 능히 아버지의 뜻을 잘 이어받을 만한 사람이다.
이에 위와 같이 엮은 다음 사언(四言)으로 덧붙여 그 다하지 못한 뜻을 이어두기로 한다.
嘉有三山 삼가에 세 산이 있으니
墟窟金岳. 허굴과 금성과 악견이로다.
墟窟最奇, 허굴산 가장 기이하여
鬼剜神劚. 귀신이 깎고 다듬은 듯.
晴岡之作, 청강이 출생함에
稟德瑟懿, 덕성을 타고남이 엄숙하고 성실하여
夜行密勿, 밤길 가듯 면밀하고 침착하니
與山爭卓. 허굴산과 높음을 다투도다.
噓出淨財, 맑은 재물 시원하게 내놓아
爲梵宮渥, 범궁(사찰)을 위해 베푸니
重昏之揆, 어두운 세상 바로잡고
陋俗之濯. 비루한 풍속을 씻었구나.
亦厥肖子, 역시 그를 닮은 착한 아들
紹之有覺. 이어받아 깨달음이 있었네.
奉影奠骨, 영정을 모시고 유골을 제사 지내니
孝忱純樸. 그 효성과 정성 순수 질박하도다.
庤書盈萬, 쌓아둔 책 만권이 넘어
用惠來學. 후학들에게 은혜를 베푸네.
有是父子, 이 부자에게
疇能與角. 누가 능히 겨룰 수 있을까?
豈弟之流, 화락하고 단아한 물줄기
爲百代沃. 백대의 옥토를 이루리.
佛紀 二千九百七十一年 甲申年 首夏之月
* 甲申年(1944년) 음력 4월
密陽后人 卞榮晩 撰幷書
밀양후인 변영만 짓고 쓰다.
<참고>
백조당(白棗堂) 정옥량(鄭玉良, 1395~1447) 자는 곤보(崑寶), 호는 경재(耕齋). 세종 때 효행으로 천거되어 봉직량행하양현감(奉直良行河陽縣監)에 임용되었으나 돋 향리에 은거하였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편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별세하시자 종신토록 아침저녁으로 사당(祠堂)에 음식을 올렸는데, 이 사당 옆에 홀연히 흰 대추나무가 일곱 그루가 돋아 한 자 넘게 자랐다는 이야기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삼가현’ 조에 기록돼 있다.
성부(城府) : 다른 사람에게 터놓지 않는 마음속에 쌓은 담.
觀化(관화) : 죽어 귀신이 된다는 불교 용어.
主夫吐(주부토) : 오늘날 부천(富川)과 부평(富平) 일대 지역을 말함.
범궁(梵宮) : 범천왕(梵天王)이 사는 궁전. 부처님을 모신 절, 사찰을 높여 부른 말.
<지은이 卞榮晩>(1889년 ~ 1954년)
문장가, 한학자며 변호사로 성균관대 교수 역임
동생 逸石 卞榮泰(前 외무부장관/국무총리, 고려대 교수)
樹州 卞榮魯(성균관대 교수 역임, 시인으로 '논개', '생시에 못 뵈올 님을' 등
다수의 작품을 남김)
중국 북송시대 문장가이며 정치가였던 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 삼부자를 일컬어 삼소(三蘇)라고 했는데, 변영만(卞榮晩), 변영태(卞榮泰), 변영로(卞榮魯) 삼형제도 그와 비견되는 천재성을 가진 명문장이란 의미에서 ‘한국의 3소(三蘇)·변씨삼절(卞氏三絶)·삼변(三卞)’으로 불렸다. 국어학자인 이희승은 이들 삼형제를 가리켜 “변문(卞門)에는 별 셋이 있어/ 별마다 뚜렷하여/ 다 같이 별이로되/ 빛은 또한 각각이로다”라고 하였다.
이들 형제는 모두가 문학과 어학에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고 천재적인 풍모를 지녀 숱한 일화를 낳았고, 창씨개명 정책에 저항하여 끝까지 이름을 바꾸지 않아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후반에 삼형제 모두 고향인 경기도 부천에 내려가 은둔하였다.
특히 변영만에게는 ‘우리나라 한문학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문장대가', '한문고전을 기반으로 서양의 문학과 사상을 폭넓게 수용하여 독특한 정신세계를 개척', '식민지 시대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 지성', '조선의 천재', '회색 괴짜'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 글 올린이( 정현규, 법명 정도, 대병 장단 출신으로 행정자치부 퇴직)
: 청강사 입구에 세워진 비로서 비문의 일부가 흘림체로 쓰여져 있거나 오늘날 잘 사용되지 않은 글자들이 많아 이를 해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서울의 고전과 불교경전에 눈 밝은 몇 분의 도움을 받아 해독, 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