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에서
가을 기다리고 있었니
동트기 힘든 긴 밤
빼꼼히 내려다보며
너를 기다렸단다
배꽃처럼 하얀 이슬 맺히네
정외숙
l해설l
일본을 대표하는 특유의 문학 하이쿠는 5,7,5의 3구 17자로 된 단시(短時)입니다.
특정한 달(계절)이나 자연 현상을 묘사한 운문 문학의 일종인 서정시입니다. 각행은 5,7,5음으로 모두 17음절(자)로 이루어진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이쿠는 함축적이고 애매하여 언뜻 보기에는 난해할 수 있지만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단 몇 마디 말이 자연과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이쿠에는 계절을 담당하는 언어인 키고(계어)가 큰 특징이며 어느 한 부분을 끊어 단절을 만드는 '키레지(切九字)'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툭 자름으로써 그 애매하고 뜬금없음에 독자의 상상력이 개입되고 짧은 시의 시공간이 확장되는 것으로, 서술을 극도로 생략하면서 함축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절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하이쿠처럼 순간 포착하여 그 느낌이 날아가기 전에 문자 재현과 함께 순간 소통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디카시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시인의 눈에서 촉발된 감흥을 소통하는 것입니다. 정외숙 선생님의 디카시 [산 너머에서] 감상해 보십시오.
-맹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