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장미
전재복
설마 그럴 리가요
메마른 자갈밭 꽁꽁 언 땅에
사나흘 봄날 같은 햇살이 비쳤다고
봄일 리가요
얼음장 틈새 실낱같은 물길이 생겼다고
봄일 리가요
설마 그럴 리가요
어딘가에 생각이 닿으면
바윗돌 심장이 제멋대로 콩닥대고
일없이 실실거리는 게
큰 탈이 붙은 건 맞는데요
설마 그럴 리가요
그것이 야들야들 사랑일 리가요
철없이 핀 겨울 장미
선 채로 얼음꽃이 된다 한들
봄인 양 장난을 걸어온
그대를 탓하다니요
맥없이 얼굴 붉힌 내 탓인걸요
한 조각 얼음으로 스러진다 해도
고마워요 그대,
한순간 꽃이었네요
-시집『개밥바라기별』 중에서
전재복 시인
군산 거주. 1993년 김기경 추천으로 『한국시』 시로 등단하고,
2005년 월간 『스토리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그대에게 드리는 들꽃 한 다발』, 『풍경소리』, 『연잎에 비가 내리면』,
『잃어버린 열쇠』, 『개밥바라기별』이 있고, 산문집 『한 발짝 멀어지기 한 걸음 다가가기』가 있다.
소년조선 동화 은상, 전북문학상, 바다와 펜문학상, 샘터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장미는 사랑을 상징한다. 더구나 겨울 언 땅에서 피운 장미꽃에 반하지 않을 자가 있을까?
시인은 “바윗돌 심장이 제멋대로 콩닥대고” 일없이 실실거린다고 한다. “설마 그럴 리가요”의
반복적인 부정으로, 봄일 리가 없다고도 한다. 이 부정은 점층적으로 강한 긍정을 동반하는 역
설이다. 그대 탓이 아니라고, 마음이 붉게 물든 내 탓이라고, 장난처럼 다가왔다고 한들 어쩌랴!
돌처럼 굳어버린 심장을 녹여버렸음으로, 얼음꽃으로 남아도 좋다. 사랑은 큐피드의 화살에게
관통당한 충만한 열정이다. 한순간 꽃이었으니 행복하지 않을 까닭이 있겠는가.
‘겨울장미’는 독자의 마음속에서도 붉게 타오르는 얼음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