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우코스 왕들(마카베오기 시대)
356-323:그리스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더는 18세 장군, 20세 왕, 25세 페르시아 정복, 29세 인도 침공하였다. 33세 바빌론에서 사망 후 그리스 제국은 20여년간 왕권 다툼이 있었다. 처음에는 7명이 각축을 벌이다 크게 3왕국으로 분할되었다.(1마카 1,1-9). 안티오코스의 후손들은 마케도니아를, 프톨레마이오스 후계자들은 이집트, 셀레우코스는 소아시아와 팔레스티나를 다스리게 되었다.
305-281: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 재위
셀레우코스는 기원전 320년경 바빌론 지역 식민지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북쪽 오론테스강 유역에 수도를 건설하고, 자기 아버지 이름을 따서 ‘안티오키아’로 명명하였다. 기원전 281년에는 마케도니아 리시마코스를 물리치고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셀레우코스 왕조를 시작했다.
223-287: 안티오코스 3세 대제大帝
이 시대 셀레우코스는 가장 강력한 왕국과 땅을 점령하였다
187~175: 셀레우코스 4세 (필리파토르)
셀레우코스 4세 (필리파토르), 마카베오 하권에 나오는 임금으로 부하 헬리오도로스를 시켜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2마카 3,7-40)
175-164: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재위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친형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의 왕권을 찬탈하였다.
169-164:안티오코스 4세 대박해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통치 기간 대대적 박해(1마카 1,10-63;2마카 5,11-27)로 이어졌다. 부하 필리포스에게 어린 아들의 왕권을 위임(1마카 6,14-17),리시아스를 섭정에 임명하여 박해를 시도했다.(1마카 3,27-37).164년에 사망하였다(1마카 6,1-17; 2마카9.1-9).
*대사제직 암투:
*170:유다인 대사제 오니아스 암살(+170)되면서 이후 주전 64년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될때까지 암투가 계속되었다.
*오니아스 대사제-유다인 시몬의 대립(2마카 3,4-6.13-23;12,26)
*야손(오니아스 동생)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사제직(2마카 4,7-29;5,1-10)을 차지하고 그리스 문화를 적극 끌어들임
*야손에게 메넬라오스가 대립하다. 메넬라오스는 임금에게 더 많은 뇌물을 바치고 대사제직 확보함(2마카 4,24-5,7;13,3)
-알키모스는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162-150)를 꾀어 대사제직을 얻었다(2마카 14,1-6 ;1마카 7,1-9)
*167년:
모데인 지역, 유대인 마카베오 가문의 반란 발발됨(1마카베오 2장~유다-요나탄-시몬)
*166-160:
마타티아스 하스모네오스와 그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의 지휘 아래 독립 투쟁이 전개됨
164년:성전 탈환과 재봉헌 거행함
160년: 유다 전사함(1마카 9,18-22)
164-162: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아들)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 통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테스는 부하 필리포스에게, 어린 아들 에우파토르를 잘 키워 왕위 계승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왕족 리시아스가 임금으로 세우고 섭정하였다.(1마카 6,14-17;6,55-56;2마카10,11) 안티오코스 5세와 리시아스는 2마카베오 10-14장까지 많이 등장한다. 리시아스와 에우파토르 왕은 셀레우코스 4세의 필리파토르(187-175)아들이며 자신의 사촌인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에게 암살되고(2마카 14,2).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가 왕권을 차지하였다.
162-150: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164) 아들로 161년에 로마에서 나와 왕위에 올랐다. 그는 혈족인인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와 그의 섭정 리스아스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다. 또한 유다인 말살을 위해 사령관 바키데스와 니카노르 팔레스티나에 파견한다(1마카 7,1-4;1마카 7,8-49).
*160: 유다 마카베오 사망(1마카 9,1-22)
160-143:유다의 사망(160)으로 그의 동생인 요나탄이 지도자가 되어 바키데스와 전쟁에서 승리하였다(1마카 9,23-53;10,6-20). 요나탄은 시리아에서 왕권을 두고 대립하는 두 가문 사이에서 전투와 외교 수완을 겸비하여 자신과 유대인의 영향력을 증가하였다(1마카 9,58-73).
*왕권과 땅을 두고 찬탈을 일삼다 힘을 잃은 두 왕권 데메트리오스 1세 정부와 알렉산드로스 발라스 왕조는 서로 요나탄을 회유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발라스 요나탄을 유다인 대사제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이스라엘 대대로 차독 가문에서 대사제직이 상속되던 전통도 깨어졌다.(1마카 10,1-21).
150-145: 알렉산드로스 에피파네스 발라스 재위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에피파네스 발라스가(1마카 10,1;10,52),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162-150)를 살해하고 왕위에 앉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결혼동맹을 맺었으나(1마카 10,51-58), 추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장인의 배신으로 암살된다.(1마카 10,1; 11,1-13<11,14-19) 알렉산드로스는 요나탄을 대사제로 임명하였다(1마카 10,20;65-66).
145-141/129-125: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162-150)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가, 크레타에서 나와 자기 왕위에 앉았다(1마카10,67). 그는 알렉산드로스 왕을 없애고 왕위에 앉고자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6세와 동맹을 맺고(1마카11장), 알렉산드로스 에피파네스 발라스를 암살했다. 사흘 뒤에 프톨레마이오스도 살해되자(1마카 11,14-17), 147년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가 왕위에 앉았다. 그는 통치 초기에 지도자 요나탄과 유다인들에게 특권을 주었지만 나중에 배신하였다(1마카 11,52-53).
*143년: 요나탄 암살됨
*143-134:유다 마카베오 형 시몬이 유다 독립 쟁취(1마카 13-16장).
*142: 시몬이 데메트리오스 니카토르와 화친,대사제 및 지방 총독으로 시리아 왕조의 승인을 받는다. 문서와 계약서:시몬 대사제 제 1년이라고 기록하기 시작했다(1마카 13,3-41).
*대사제 시몬부터 유다 정통 왕조로 기록하고 마타티아스 가문을 일컬어 ‘하스몬 왕조’라고 한다.
*143-134:유다 마카베오 형 시몬이 유다 독립 쟁취(1마카 13-16장).
145-142: 안티오코스 6세 에피파네스
알렉산드로스 에피파네스 발라스(150-145)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부하 트리폰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그에게 암살되었다.
142-138:트리폰
알렉산드로스 발라스 에피파네스(150-145)의 부하였던 트리폰은, 주군인 선왕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6세(145-142)를 왕위에 앉힌 다음 데메트리오스 2세의 왕권을 빼앗고 섭정으로 실권을 행사하였다(1마카 11,38-40;54-55). 그는 유다인 지도자 요나탄을 포로로 잡아 살해하고, 안티오코스도 6세 에피파네스도 살해한 후 왕위에 앉았다(1마카 12,39;13,31-32;1마카 15,10-14).
138-129:안티오코스 7세 시데테스
137년 데메트리오스 1세의 아들 안티오코스 7세 시데테스가 트리폰을 제압하고 왕위에 앉았다.
*134:대사제요 총독인 시몬이 예리코에서 암살됨(1마카 16,11-17)
*134-104:하스몬 왕조)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 재위 (1마카13,53;16,23-24장)
64: 하스몬 왕조 가문의 내전을 막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온 로마제국 장군 폼페이우스 휘하의 부대가 유다를 합병함
참조:성서 백주간 도움책, 예언*교훈편; 빈세튼 P 브래닉 지음,임숙희 옮김 구약성경의 이해 역사서.
입력: 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5년 1월 19일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