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7)
2007-04-16 09:35:32
[136차] 정기 산행기(강원도 홍천 팔봉산)
2007. 4. 15. / 기팔 김호범
산행일 : 2007. 04. 14. (토), 안개 후 맑게 갬.
참가자 : 병효/택술/진운/인섭/문수/광용/덕영/호범 - 8명
산행코스 : 주차장-1봉-2봉-3봉(정상)-4봉-5봉-6봉-7봉-8봉-주차장. (4km, 3시간45분)
금번 산행에 대장을 맡으신 병효 대사님께서 산행에도 초짜, 삼공산우에도 쫄다구인 나에게 이르시길
“기팔아, 이번 산행기는 니가 써 보아라.”
라는 지엄하신 분부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힘을 느끼며 순종, 졸고(拙稿)를 올리고자 합니다.
지난 2007년 4월 13일의 금요일. 영조 숯불갈비에서 시작된 재경 용마 30회 동기생들의 만남은 ‘밤이 와 이래 짧노?’라 카지 않을 수 없는 화기애애하고 융숭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또한 이 날을 위해 막 상경한 부산의 동기회 회장(진수), 총무(홍제)의 우정 출연은 만남의 場을 더욱 달궜다. 10년, 20년, 30년간의 시차까지도 무색케 하는 부담 없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2007. 4. 14. (토) 아침 7시. 눈을 떴지만 간밤 술에 절인 몸뚱아리는 ‘조금만 더 자자’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여러모로 반듯한 우리 산강님과의 해후 묵약이 있었고, 삼공산행에 동참하고픈 마음이 앞섰기에 육신의 아첨과 유혹을 물리치고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8시 30분, 수서역 6번 출구에서 근 30년 만에 만나는 산강님과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세상만사님도 동승하고 있었다. 등산하기에 참 좋은 날씨였다.
아침 9시 경, 집결지인 나라선사님 사무실에는 벌써 선달님/ 김총/ 단풍님이 도착해 있었고 이내 병효대사님/ 산그림자님께서 도착하였다. 산그림자님과는 ?집 놀방에서 몇 시간 전까지 함께 했더랬지만 가뿐한 모습이다. 도인이 따로 있나 권박이야말로... 기다렸던 굿맨은 전날 술독에 빠지뿌렸는지 끝내 보이질 않는다. 병효대사님과 단풍님과는 고딩 졸 이후 30 여년 만에 얼굴을 뵈(?)었다. 선달님은 이 날 개인적 일정을 다음날로 변경하면서 등장하였다.
우연하게 된 일이지만 금번 산행이 안성맞춤이 된 것은 우선 八峰山에 여덟 개의 棒(?)이 입산하게 된 일이다. 팔봉산 공원 출입구에 딱 버티고 있는 거시기한 돌 말뚝도 여덟 산봉우리를 거시기와 관련 짓고 있다. 또한 나중에 일이지만 산행 후 가락시장 뒤풀이 장에서 기팔에게 산행기를 써 보라고 한 병효대사님의 품은 뜻도 팔봉산/팔 명/기팔(起八)의 ‘쓰리 팔’(발음을 잘 해주셔야 함/ 삼팔)의 묘합을 도모코자 한 게 아닌가.
9시 출발. 나라선사님 사무실에 차들 파킹시키고 여덟 장정(?)은 두 대 차량에 편승하여 강원도 홍천으로 고고... 단풍님은 차를 정말 잘 몬다. 예방운전을 한다고 보여진다. 단언컨대 다들 단풍님의 운전습관 60%만 닮으면 우리나라는 교통문화 선진국 되뿌릴 것이다. 두 시간 가량 고고한 뒤 강원 홍천군 서면 팔봉리 팔봉산공원 주차장 도착.
11시경 등반 시작
병효 대사님 선두로 ‘팔봉산’이라 씌여진 작은 아치를 통과하며 산행은 시작되었다.
전 날의 술로 콘디숀이 별로지만 팔봉산(300고지)은 지난번 호명산(600고지)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된다고 단순 계산, 건방지게 마음 속으론 숩게 생각하고 조금은 촉촉한 팔봉의 일봉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아이구, 150m 쯤 오르니 숨도 차고 땀물이 안경을 적시기 시작하며 고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헥헥거리는 나를 보며 ‘일마 이거 와 이라노?’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본다. 고맙구로 고참 산강님이 은근히 뒤로 쳐져 혹시나 초짜배기 잘못될세라 내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온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산행 처음엔 좀 고되지만 ‘조금씩만 버티면 몸의 조건도 레벨업 되어 나아질 끼다’라고 생각하며 선두를 바로 보며 따라 붙고자 애를 썼다.
쫄다구 에스코트, 또한 사진사를 자청한 산강님께선 둔덕에 막 피어난 이름 모를 잡초들도 사랑스러운지 바라다보고 샤터도 부지런히 눌러댄다. 반갑구로 200m쯤 올라간 지점에서 대장님과 선두 그룹이 쉬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한 타임 쉰다고 생각하며 출력을 올렸다. 그런데 나와 산강이 그 휴식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소리, ‘추울발’...... (얼매나 야속하든지/ 일봉 중턱에서 누가 추울발 했노?)
초심자가 우짜겠노. 제대로 쉬도 몬하고 오직 배우는 자세/ 일념으로 일봉을 향해 계속 고고... 드디어 일봉의 정상에 이르니 오를 때의 땀과 숨가쁨은 모두 구름 위로 날아가 버린다. 집에 있었으면 작취미성인 상태에서 찌짐이나 뒤비고 있었을 것을... 캬~~ 이 맛에 사람들 산에 오르는 갑다.
내리막을 거쳐 이봉을 향해 올라간다. 곳곳에 암벽과 철제 사다리 등으로 등산의 편의와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서총님이 말한 대로 팔봉산은 예쁘장한 분재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아기자기한 멋을 가진 산 같다. 팔봉산은 흔히 사람들을 두 번 놀라게 하는 산이라 카더라.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아름다워 놀라고, 일단 산에 올라보면 암벽이 줄지어 있어 산행이 만만치 않아 두 번 놀란다는 것이다.
이 날 팔봉산은 주말인지라 가족별, 팀별, 계모임별 각양각색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외길 등산로엔 아줌마들, 아이들도 제법 있었다. 덕분에 산행에 한 숨 두숨 돌리며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그들이 우물쭈물하면 우리도 그렇게... 우리 선두가 세게 go할라케도 외길에다가 사람들 행렬은 쭈욱 길게 늘어서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어떨 땐 행렬이 10분 동안 꼼짝도 못했을 정도였다.
막간에 귀한 막걸리 한 펫트 가지고 8명 사이좋게 쪼오옥. 지난 호명산 산행 때에 황선달님 가져왔다 남은 막걸리 - 김총이 한 병 아껴 두었다 가져온 것이다. 한 주 정도 냉장고에서 좀 더 숙성 시킨 셈인데 맛이 기차더라. (그런 술 동래산성에선 일명 ‘기똥메아리주’라 칸다) 발머시기 17년산과 30년산 차이 같더라. 쫄다구한테는 한 모금만 주고 더 안주나 싶어 속으로 끌덕거렸는데 김총이 눈치채고 한 잔 더 주더라. 십년지기는 다르고마이.
처음 1봉 오를 때 말고는 별로 힘들지 않고 타래실 술술 풀려 나가듯 설설 걸어가는 산행이 계속되었다. 2봉, 3봉, 제법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를 때 세상만사님이 한마디 거든다.
“호버마 밑을 쳐다보지 마래이(고소공포증이 있을까 봐 선배로서 한 충고)”
산행 초짜배기 기팔에게 새삼 조심하라고 살가운 한마디를 건네는 세상만사님. 왕쫄다구인 나에게 남의 일 같지 않은 생생한 체험담을 전수한다고 본다면 만사님은 삼공산우의 내 바로 위 직속 상관일 것이다라는 나의 추측에 김총 왈
“아따 기팔이 눈치 한번 빠르네”
라고 껄껄 웃는다. 나는 그 동안 너무 눈치 안보고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조금은 봐야 되겄제.
병풍을 펼친 듯한 팔봉산의 아름다운 산세는 예부터 "소금강" 이라 불리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주능선 좌우로 홍천강이 흐르고 있어 정상에 올라서 바라보는 전망은 차암 좋았다. 산행 후 물놀이도 겸할 수 있는 곳으로 보여진다.
팔봉산의 명물 중에 해산굴(일명 홈통바위)이 있는데. 이 굴을 통하지 않고선 봉우리로 오를 수 없는 관문인데, 그 굴을 통과하는 데에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과 같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곳을 지날 때 체증이 가장 심했음. 나는 재미만 좋더라.
마지막 팔봉에 오르기 전
“※ 8봉은 초보자에게 위험하므로 7봉과 8봉 사이에서 하산하는 것이 좋음”
라는 푯말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 말에 순종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팔봉산 공원 관리소에서 등반객들을 위해 군데군데 로프와 철제계단설치 등 관리소 측의 세심하게 배려와 정성을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팔봉산의 원시 상태는 위험성(특히 우천시)을 지니고 있지만, 현재 가꾸어진 팔봉산은 위험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휴가철 가족 산행지로서 상당한 매력과 적합성을 갖고 있지 않나 이 쫄은 생각해 봅니다.
오후 3시 경. 세 시간 여 산행을 마치고 공원 주차장 내 ‘시골집’ (무명산악회 카페지기를 한다는 여사장 경영)에서 묵과 감자전, 시원한 막걸리 한두 사발씩 먹고 삼공산우회 136차 팔봉산 산행 행사는 공식적으로 일단락.
오후 5시 반경. 아침의 파킹 장소, 나라선사님 사무실 도착. 선사님과 수 십 년 만에 반갑게 악수하였다. 아기자기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창고에 있는 아기자기한 고것들을 볼 때 나도 선사님 매출 신장에 일 점은 보탠 기억이 난다.
저녁 7시~10시. 부담 없는 토요일 저녁이라 가락시장에 들러 화기애애한 뒷풀이를 하였다. 등반참여는 못했지만 주차지를 제공하고 후식 자리까지 화사하게 빛내준 나라선사님과 산우회의 계통 확립을 위해 졸들을 통제하고 리드하는 애살 많은 쫄고(卒高)님에게 ~고맙데이~
- 끝 -
ps : 줄곧 마음은 산행과 가락시장에 있었지만 임플란트 시술과 회사 일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도착해 있던 솔욱에게 전화한 뒤 실례를 무릅쓰고 김총과 기팔은 가락시장을 나온 뒤 곧장 반포 솔욱의 집으로 한 시간 예정으로 가정 방문을 하였다. 솔욱의 마님께서 수십 년(?) 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고이 간직하고 있음에 놀랐다. 솔욱의 사랑하고 위함을 핵심으로 하는 가정경영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날 밤 솔욱이는 10일째 술과 담배를 멀리함으로 얼굴이 곱상하고 아주 좋아 보였다. 한시간 반 뒤(23:30)에 가정 방문을 마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