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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2:7~10(298)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라 2022.10.2.
한때 세계 최고의 스포츠 스타 중에 미국 출신의 랜스 암스트롱(1971~)이 있습니다. 그는 '투르드’ 라고 불리는 프랑스 도로일주 사이클 대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경기는 섭씨 35도의 폭염 속에서 해발 2,000m 이상의 피레네산맥과 알프스산맥 구간을 포함한 총거리 3,400㎞에 이르는 코스를 23일간 일주하는 인간 한계의 시험장입니다.
그는 암을 극복하고 사상 최초로 7년 연속(1999년~2005년) 투르드 프랑스를 우승하면서 이전의 기록이었던 5회 우승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많은 찬사를 받은 선수였습니다. 비록 선수생활 말년에 도핑 때문에 쌓은 명성에 금이 간 것은 사실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세계최고의 선수였습니다.
그가 세계최고의 스포츠스타로 꼽히는 이유는 ‘단지 자전거를 잘 탄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고난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96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생존율 50%의 고환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 쪽 고환과 뇌의 일부를 떼어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눈물겨운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하여 마침내 재기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기라고 부르는 ‘투르드’ 에 출전하여 지난 99년부터 무려 6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언론은 그를 가리켜 ‘인간 승리의 대명사’ 이자 ‘전 세계 암 환자들의 희망’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현재 그의 이름을 따서 미국에 ‘암스트롱 암 연구재단’ 이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자기를 선전하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제가 보니까 모든 사람이 자기 자랑에 깊게 빠져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자랑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은 자기의 학식을 자랑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힘을 자랑합니다. 무엇 하나라도 자랑할 거리를 찾아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데 모든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 자랑 때문에 분수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 자동차를 타고 대형아파트에 살고 명품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려고 합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고 자랑해야 하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 기준과 정도를 지나쳐 버리면 어느 순간 자신의 본질은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치우쳐 갈아가는 허상의 모습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런 모습을 경계하고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라고 단정해도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랑거리를 만들고 또한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풍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등장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수많은 자랑거리와 장점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숨기려고 하는 자신이 가지 ㄴ가장 약점과 약한 것을 바울은 도리어 자랑한다고 공포합니다.
바울이 가진 자랑거리가 무엇일까요? 본래 바울에게도 자랑거리는 많았습니다.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에서 태어났고, 율법에 비추어 보아도 전혀 흠 잡힐 데가 없을 정도로 율법에 철저했던 사람입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공부를 하였기에 학문적으로나 율법에 대한 지식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자랑거리를 열거한다면 바울보다 앞서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바울은 단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자랑거리로 온 몸을 감싸고 있던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에 사고방식이 180도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기 이전에 최고의 세상 자랑거리는 자신에게 유익함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세상 모든 자랑거리를 자신은 더럽게 여기는 배설물이라 판단합니다. 그런 세상 적인 것이 결코 자신에게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없음을 알았기에 오히려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고후 11:30절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7절 보세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바울더러 자만하지 않게 하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었다’고 말합니다.여기에 사용된 가시는 단순한 형태를 가진 장미 가시나 찔레 가시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냥 찔려서 살짝 고통을 느끼는 그런 나무 가시가 아닙니다. 원문을 보면 ‘스콜로프스’라는 말인데, 그 뜻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뾰족한 말뚝, 뾰족한 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단순하게 살짝 찔러서 피 조금 나는 정도의 가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육체의 가시가 바울의 몸에 있으니,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를 두고 ‘사탄의 사자’라고 설명을 덧붙입니다. 비록 하나님에 의해 쓰임을 받지만, 고통을 당하는 바울은 너무나도 괴로워서 ‘사탄의 사자(a messenger of Satan), 사탄의 메신저’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의 몸에 뾰족한 창처럼 박혀서 바울이 살아 있는 동안 지독하게 괴롭혔던 육체의 가시는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자신에게 사탄의 사자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만 말할 뿐, 그것이 어떤 내용의 가시라고 밝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육체의 가시를 ‘끔찍한 두통이나 사람을 망가뜨리는 간질 , 그리고 눈에 찾아온 질병 중의 하나’라고 추측합니다.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것이 없습니다.
그냥 왔다가 쉽게 사라지는 <두통>도 사람을 끔찍하게 괴롭힐 수 있습니다. 두통이 너무나 극심하면 아무리 두통약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통이 심하면 사람이 미쳐 버린다고 합니다. <간질> 또한 멀쩡한 사람을 밑바닥까지 떨어뜨리게 만듭니다. 간질로 인해 발작하는 분들을 보십시오. 요즈음에는 간질에 대한 워낙 좋은 약이 많아서 발작하는 것을 보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흔하게 보이던 질병이었습니다. <안질> 눈에 질병이 와서 생활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이보다 비교되는 질병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로 인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두통이 되던, 간질이나 안질이 되던, 이런 질병이 바울에게 있었지만,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런 질병의 연약함 때문에 더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한 것들을 드러 내놓고 자랑합니다. 바울이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숨기고 싶은 치명적인 약점인 것을 자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1. 약한 것들이 있기에 나는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8절,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 때문에 바울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두통이나 간질이나 안질이던 이러한 질병이 복음을 전하고자 사방팔방으로 분주하게 다니던 바울에게 너무나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이 육체의 가시 때문에 복음전파가 너무나 큰 방해는 받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만 없다면, 날라 가듯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가 자신에게서 사라지도록 세 번 하나님에게 기도하게 됩니다. 세 번 기도했다는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단순하게 숫자를 세면서 한번 기도하고 두 번 기도하고 세 번 기도하였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세 번 기도했다는 말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 놓고 하나님에게 매어 달리는 기도를 세 번이나 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한평생 예수님을 믿으면서 내 목숨을 걸어 놓고 드릴 정도의 기도는 잘 하지 않습니다. 내 목숨과 맞바꿀 정도의 기도를 해야만 하는 그런 위기 상황이 잘 도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목숨을 건 기도를 세 번이나 합니다. 그처럼 육체의 가시를 없애기 위하여 바울이 기도에 매 달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가 가진 위력인 줄로 믿습니다.
근세기 중국역사에 있어서 너무나 유명한 목사이며 교회지도자였던 위치만 리(1903-1972)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너무 약했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하나님의 일을 마음껏 하다가 주님께 가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하나님에게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환상 하나를 봅니다.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는데 갑자기 강 가운데 큰 바위가 놓여 있어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 장애물이 있어서 갈 수가 없으니 이것을 없애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음성이 들리기를 “내가 바위를 없애주랴, 아니면 강물이 넘쳐서 넘어가게 하랴”. “오 주여, 강물을 불려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자 강물이 불어나 배가 그 바위 위를 지나갈 수가 있게 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는 환상에서 깨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감사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나의 가시가 뽑혀지기를 기도하였는데, 가시보다 더 크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시를 극복하게 하시니 감사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이 바로 하나님에게 기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렇게 하나님에게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니 감사하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가시 때문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가시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시 앞에서 고민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시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기도하고, 가시가 뽑히기를 기도하고, 가시를 감당하고도 남는 은혜 주시기를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에게 기도할 수 있는 약점이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져서 기도할 것이 전혀 없다면, 그리고 내가 너무 완벽해서 그 완벽함과 번영이 나에게서 기도를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도리어 나에게 저주가 된다는 점을 잊어서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약한 것들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고, 그 약함 때문에 내가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유익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나의 약한 것들이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길게 적혀져 있는 9절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잘라서 살펴 볼 때에 더 이해가 쉽습니다.
①‘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 상반절 말씀은 바울에게 매우 섭섭하게 들릴 수 있는 내용입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에게 세 번이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내은혜가 네게 복하다’는 말은 이런 뜻이에요. ‘바울 너가 가지고 있는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니 더 이상 이 문제를 두고 기도하지 말라’는 말로서 듣기에 매우 섭섭한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지 않았다고,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나님에게 불평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면서 투정부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비록 하나님이 이루어 주지 않으셨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나를 약한데서 더 온전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반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②‘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 하반절 말씀은 바울의 살아 있는 신앙고백이며 바울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큰 믿음의 소유자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목숨을 걸었던 내 기도가 하나님에게 거절되었는데 도리어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약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할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개 머물기 때문에 더 귀하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이 자신을 망치는 단점이 되어서 자신의 목에다가 칼날을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가진 연약함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그래서 하나님에게 더 기도하는 것 때문에 감사하다고 바울은 판단한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 뿔이 잘 생긴 숫 사슴 한 마리가 연못으로 내려와 물을 먹고 있었습니다. 사슴은 물을 먹다가 연못에 비쳐진 이리저리로 화려하게 뻗어나간 자신의 아름다운 뿔을 보고 완전히 넋을 잃고 맙니다. 어찌나 이렇게 화려하고아름다운지, 자신이 보아도 자신의 뿔은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다리를 보게 됩니다. 자신의 피골이 상접한 가냘픈 다리를 보고는 너무나 못생겨서 이내 실망하고 맙니다. 늦은 오후, 들에서 풀을 뜯어먹던 사슴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사자를 보고, 날렵하고 빠른 다리를 이용하여 여유 있게 숲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하지만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뿔이 그만 나뭇가지에 걸리고 맙니다. 결국 뒤따라오던 사자밥이 됩니다. 뿔이 나무에 걸려 죽어가는 순간 사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부끄러워한 다리는 내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내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뿔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의 연약함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이끌어 내는 통로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에게 기도할 것이 없다는 것은 결단코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이솝 우화의 사슴 이야기에서 교훈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망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교만함 때문에 넘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은 교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약한 것들이 있습니까? 낮아지며 겸손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연히 우리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약한 것들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내가 가진 내 연약함은 하나님에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단 하나하나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여러분 앞에 서서 설교하는 김목사도 연약하기 그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덕민교회 또한 연약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역시 세상에서 자랑거리가 되어 내세울 수 있는 분들이 없습니다. 모두들 연약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고 한주간을 살고, 일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약한 것들을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부끄러운 것이 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약한 것들로 인해 절망하지 마십시오. 해결되지 않는 약한 것들 때문에 고민하지 마십시오. 부디 바울처럼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는 10월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간 ‘약한 나로 강하게 찬양’을 화면을 보시면서 힘 있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 찬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