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데 없이 화창한 날씨의 토요일 오후.
지난 밤의 과음을 털고 일어나 만남의 장소 송정역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보다 20여 분 늦었다. 세비, 정훈 외에 집안 일로 불참한다던 월선까지 먼저 와 있었고. 나보다 더 늦은 동방까지 챙기니 3시.
먹거리를 준비해 놓은 광동의 회사에 들렀는데 결코 작지 않은 아담한 크기의 건물이 인근의 여느 공장들과는 달리 건물이며 조경수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그야말로 지은 이의 정성이 물씬 풍기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품새의 공장이다.
준비한 음식을 싣는 동안 로비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있는데 건물 앞 농구대 높이 낮춰 연신 덩크슛을 꽂아 넣는 동방이 신났다.
대명 포구에 들러 제철이라는 쭈구미를 넉넉하게 사니 곁에 있던 세비 기어코 숭어회까지 사게 만든다.
이미 아침에 도착해 산행 중이라는 양봉과 현원을 강화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고 초지대교를 넘어 강화에 들어서니 서울을 향해 빠져 나오는 차들이 눈이 닿는 곳까지 줄지어 늘어서 있어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내일은 일찍 산행하고 점심 전에 강화를 빠져 나가야 한다고 저마다 한 마디.
바다 바람 들이켜며 터미널을 향하는데 오 승헌 선배 전화.
아침까지만 해도 일이 바빠 동참할 수 없으시다던 승헌 형님 우리보다 먼저 강화 터미널에 도착해 계시단다.
터미널에서 형님과 양봉, 현원과 함께 약 1키로 남짓 떨어진 윤 웅모(이하 熊毛?곰털) 군의 집을 향했다.
오른쪽에 마니산 줄기가 길게 누워 있고 왼쪽에도 마니산 만한 높이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는(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음 ^^) 사방이 뻥 뚫린 너른 벌판에 동쪽을 향해 앉은 아담한 2층 가옥.
차고 겸용의 창고와 온실을 양 옆에 끼고 마당 건너에는 전 주인이 양계장 축사로 사용했다는 제법 큰 창고 하나가 또 자리하고 있고 약 천 여 평의 밭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검은 비닐을 덮어 씌어 잘 정돈된 밭 이랑은 이미 파종 준비 완료 상태로 바지런한 주인의 성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앞뜰 잔디 위에 테이블 2개를 잇대어 자리를 만들고 집 주인의 능숙한 솜씨로 데쳐낸 쭈꾸미에 서쪽 하늘로 기우는 버얼건 저녁 햇살을 배경으로 소주 일잔하니 세속의 번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광동의 공장에서 준비한 두릅 나물과 골뱅이 무침, 집주인이 특별히 꺼내 놓은 묵은 김치와 강화 특산의 순무 김치. 순이 낭자님께 종로 3가에서 일보고 있노라 뻥(?)치시고 강화까지 달려오셨다는 승헌 형님의 입담. 양봉의 물총 무용담(?)… 모두가 한껏 흥을 돋구는 술 안주였다.
바람이 상당히 세게 불어서인지 해 떨어지기 무섭게 한기가 엄습하여 제법 쌀쌀해 지는데 마침 어제 베었다는 주목 등 집채만큼 쌓여 있는 나무들로 불을 피우기로 했다. 마르지 않은 생나무라 여간하여 불이 붙질 않았지만 가히 신들린 듯 불놀이에 빠진 동방의 부지런으로 뜻하지 않은 캠프 화이어를 즐기게 되었다.
반나마 넘치게 차오른 누우런 달이 둥실 떠오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연신 후두둑 소리내며 불꽃 날리는 모닥불이 길게 흰연기를 드리우는데 넉넉하게 준비한 육개장에 밥 말아 먹는 우리네 정담은 끝이 나질 않았다. 벌겋게 이글거리는 잉걸 속에 감자와 고구마를 호일로 싸 구워 먹는 재미도 또 다른 재밋거리였다.
굳이 막차라도 타고 돌아가야 한다는 승헌 형님과 월선, 세비를 배웅하는데 내일 목욕이라도 하라며 승헌 형님 거금을 쾌척하셨다. (손 작은 광동 배웅하는 양봉 편에 반을 돌려드렸음^^)
이사, 일 등으로 마지막에 참석하기로 한 본두와 금수, 아귀, 으악새, 백두는 서울에서 저녁을 먹고 8시쯤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고.
간 줄 알았던 월선과 세비, 놀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니 이내 합류한 금수, 본두, 으악새, 아귀와 함께 강화의 봄날 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그렇게 깊어갔다.
흥이 도도해지니 내일 산행은 때려 치우고 대충 사우나나 하고 가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는데 안동 소주 챙겨 오마던 금수의 공염불로 스무병 남짓 준비했던 소주도 동이 났고 집채만 하던 땔감도 어느새 동이 나버렸다.
몇이 잠을 핑계로 자리를 뜨니 몇몇 선수 밤을 새울 오락거리 화투판을 벌이려 했는데….
……
….
소란스러움에 눈을 뜨니 5시30분. 문 열고 보니 아귀 등 몇이서 때 아닌 아침을 먹고 있다. 첫차 타고 귀경하는 세비, 월선이 아침을 서두른 탓이었다.
전날 밤의 무용담을 들어 본즉, 세비와 월선은 금수(金收)의 단 일합에 지갑채 내주고 말았고 광동은 처음 몇 판 기세를 올리나 했더니 이내 두어 합에 오 선배 찬조금까지 몽땅 털려야 했었다고. 그나마 본두 만이 목표액 5만냥을 채우지 못한 8천냥을 잃었다나(?).
산등성이를 짚고 불끈 솟아 오른 아침 해를 벗삼아 첫차 팀이 떠나고 난 강화 들녘엔, 채 6시도 되지 않았건만 이곳 저곳 부지런한 농부들이 채우고 있었다. 전원의 일상은 시계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해 뜨고 지는 것으로 움직임이라.
대충 정리를 하고 마음씨 넉넉한 주인장이 차려 주는 따끈한 아침으로 속을 풀고 나니 7시 어름. 잘 지내고 간다는 인사에 찾아 주어 고맙다는 답례에…
곰털 군의 집을 나서 마니산 주차장에 8시쯤 도착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차들이 너른 주차장을 반나마 채우고 있었다.
직선 코스인 계단길을 피해 우회로인 단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군데 군데 진달래며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가끔은 때늦은 산벚이 흰 꽃잎을 뿌리고 있었다.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연두빛으로 피어 나는 새순들이 보송보송한 솜털에 쌓여 아침의 싸늘함에 떨고 있는가 하면 일찍 돋은 녀석들은 제법 푸른 빛을 띄고 따가운 햇살을 피할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삼십 여분 후에 능선에 오르니 한 눈에 깅화 전체가 들어 온다. 산 등성이 숲이 끝나는 곳에 게딱지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이며 썰물에 검은 속살 드러내고 있는 갯벌이며 이곳 저곳 바다에 떠있는 이름 모를 섬들이며…
한숨 돌리고 능선을 따라 걸어 9시쯤 참성단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작년 언젠가 밴댕이 철에 반대쪽 정수사 쪽에서 올랐던 곳이다. 사위를 살피는데 이곳에서는 어젯 밤을 지낸 곰털 군의 집도 보였다. 두 손 흔들며 인사했는데 곰털은 우리를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서울로 돌아가는 길 막힘을 피하기 위해 서두르기로 한 터라 계단길을 따라 하산했다.
10시 경 주차장을 벗어나 잠시의 막힘도 없이 김포공항 인근의 식당에 이르렀고 이른 아침으로 시장했던 속을 맛깔스러운 묵은지 돼지 고기 찌개와 고등어 찌개로 채웠다. 시장하던 터라 더 맛있었겠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는 손색없는 점심이었다.
반주 삼아 두 어 잔의 술이 오갔으나 어제의 즐거움이 큰 탓인지 맥주 세 병과 소주 두 병으로 끝이었고 당구 한 게임 어떠냐는 말이 오가기도 했지만 채 1시도 되지 않아 흩어졌으니 산술당 창당 이후 초유의 일이 아니었을 지…
2시도 되지 않아 집에 들어 서니 오히려 식구가 놀란다. 땀 털어 내고 소파에 드러누워 TV 보다 설핏 잠들려 하는데 요란한 전화벨 소리.
세비 군이다. 심심한데 어디 있느냐고. 나가겠노라고………………………^^
흥겨운 모임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곰털 윤 웅모 군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또한 여러가지 먹거리 준비에 소홀함이 없었던 광동의 준비에도 감사하자.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곰털네 뜨락”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고..
기회가 된다면 서울에서 우리 산술당이 곰털 군과 어울릴 수 있었으면 좋겠고…
오늘도 뜨고 지는 해를 벗하며 마음 넉넉한 전원 생활에 젖어 있는 곰털 윤 웅모 군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