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교회의 문제점 중에서 은사가 그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방언과 예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방언이 더 많은 말썽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14장은 방언 보다는 예언 쪽을 더 권하고 있음을 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진정한 의미의 예언은 없어 보입니다.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방언을 가지고 사람들이 구원 운운하는 실정인데 유치해서 기가 찰 노릇입니다.
14장은 방언과 예언에 관한 말씀입니다.
1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사랑을 강조하고 신령한 것 곧 은사 중에도 예언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방언도 하라고 바울은 권합니다. 구한다는 말은 추구하고 좇는 상태입니다.
사모함이란 추구하는 열심인데 잘 못하면 시기나 욕심으로 치달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사랑을 좇아가라 흡사 바울 자신이 다메섹으로 달려가는
모습같이 추구하라는 말입니다. 사랑과 신령한 것들은 서로 다른가 하는 질문입니다.
사랑은 존재입니다(헤 아가페) 그러므로 사모함이나 열심이나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마땅히 추구할 대상인 겁니다. 신령한 것은 은사(카리스마)이므로
기능이며 직분자들에게 사역을 위해 주어지는 겁니다. 일종의 도구입니다.
예를 들면 병아리 감별사에게 병아리 암수를
잘 구별해 내는 것 같은 특별한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고전12:31절 ‘더욱 큰 은사’는 예언의 은사입니다(14:1)
그런데 사랑은 존재이므로 12장과 14장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에 은사와 은사의 사이에 싸여 있습니다.
사랑과 예언의 관계성은 어떠할까요? 예언은 점쟁이 같은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바로 사랑에 의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고 난 뒤의 예언의 은사가 가장 좋은 것이며 온전한 것이 됩니다.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은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골2:2절 비밀은 곧 그리스도입니다. 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하십니다.
엡5:30절 이하 이 비밀이 크도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마13:11절 주께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다고 하십니다.
3절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예언(설교)의 성격은 권면과 안위이며 덕을 세웁니다.
집을 세운다는 의미인데 그리스도인 하나하나의 몸이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고후10:8 세우려 하신 것이니, 엡2:21 건물마다(집)-성도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거하실 작은 건물이며 전체 건물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빅텐트 안에 한 사람씩의 작은 텐트라고 보면 됩니다.
엡4:12,16 그리스도의 몸을 세웁니다.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벧2:5 신령한 집은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예언이 중요합니다. 대언의 영을 받은 선지적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4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방언은 자기 자신을 세우는 은사이며
역사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유익이 있습니다. 반면에 예언은 교회를 세우는 은사요
역사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혼자만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수가 없는 개인적인 신앙은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5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방언은 속의 비밀인데 통역으로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방언하는 자 보다 예언하는 자가 더 큰 자입니다.
방언의 진정한 가치는 통역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농아의 수화를 통역해 줘야만 알아들을 수 있음과 같습니다. 방언의 통역은 예언과
같은 성격이 됩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
6절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게 하리요”
계시 지식 예언 가르치는 것들이 언어가 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안 됩니다.
7절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다른 잡동사니 소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겁니다.
8절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나팔소리가 분명치 않으면 전투를 예비할 수 없습니다.
방언으로 돌격 앞으로나 사격개시 하는 명령을 전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무슨 소리든지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전쟁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나팔소리와 전쟁은 관련이 있습니다.
마24:31절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고전15:52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한 것으로 다시 살고
살전4: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계1:10절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사실 언제나 구원은 하나님의 나팔과 함께 일어나는 전쟁자체입니다.
지금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팔로 들릴 겁니다.
9절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알아듣기 쉬운 말’은 분명하게 제시하는 말을 말합니다.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말, 잘 표현되는 말입니다. 바로 제대로 부는 나팔소리입니다.
주의 일꾼들은 천사들의 방언 곧 그리스도의 비밀인 진리의 복음을
잘 표현해야 합니다. 계시나 지식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을 위한 영적전쟁을 준비시키는 일이며 지금은 나팔을 크게 분명하게 불 때입니다.
9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 됩니다.
10절은 세상에 소리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가 없습니다.
11절은 야만(외국인) 꼭 타잔과 같은 소리를 내면 누가 그 소리를 알아듣겠는가?
소리의 뜻(meaning)이 다 있는데 만약 소리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면 야만입니다.
말은 그 소리의 아름다움보다 능력이 중요합니다(고전4:20) 한 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나는 야만인(그리스도 밖의 외국인)이 되기 싫다는 말입니다. 결과 없는 말은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말이지요. 소리 곧 말의 능력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양식이 됩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