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강좌 35강
'이시향, 박해경, 박동환' 세 분 시인의 디카시 감상 평설을 소개한다.
온산 공단과 울산 석유 화학 공단의 한계상황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을, 날아다녀야 하는 숙명을 뒤로 하고 결국 귀결되는 나의 정체성을, 공존 속에 살아가며 빛나는 화룡점정 같은 존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디카시
포화 속으로 / 박동환
저 길을 건너면
보이지 않는 총성 울리는
포화 속으로 들어간다
삶의 전장으로
-감상-
울산 12경에도 들어있는 울산 공단 야경을 보며 나는 대학 다닐 때 저런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그렇게 석유화학 공단에 있는 한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어 외계인이나 살법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밤에 밖에서 보는 야경은 아름다우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 포화 속으로 들어가 일을 한 지도 26년이 지났다.
지금도 매일 아침 출근하며 보는 온산 공단과 울산 석유 화학 공단의 풍경, 기온 차이가 크게 나는 겨울에는 올라오는 스팀 양이 많아져 더 전쟁터 같은 곳이다.
이 디카시를 쓴 박동환 시인도 보이지 않는 총성 울리는 저 포화 속으로 들어가 종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준 디카시를 읽게 해 줘서 힘이 난다.
글=이시향 시인
#디카시
보금자리 / 민정순
높이 날기 위해 날개를 펼치는
아름다운 아우라
날다 지친 시간을 고스란히 안고 와도
나를 온전히 받아 줄 든든한 배경이 있었네
-감상-
보금자리란 살기 편안하고 아늑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살기에 편안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피땀 흘려 공을 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하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니 그래도 대게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민정순 시인의 디카시 <보금자리>를 감상하다 보니 해마다 새 집을 짓어 옮겨 다니는 까치가 참 부럽습니다. 아마 빚을 내지 않아도 담보 없이도 마음대로 집을 짓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 좋은 나무들이 있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날다 지친 몸을 온전하게 받아줄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는 까치가 부럽기만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저 마음만 먹으면 편안하고 아늑하게 빚 걱정 없는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글=박해경 시인
#디카시
전학생 / 박해경
봄소풍 올 때에는
분홍색 입으랬지?
분홍색이 없어요
전학 왔거든요!
-감상-
분홍색 꽃밭에 노란색 꽃이 전학을 왔네요.
누군가 똑같은 색상의 꽃으로 꽃밭을 만들고 정원을 만들어 가꾸어 온 거겠죠.
정형적인 규칙에 홍일점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습니다.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마치어 일을 끝냄을 이르는 말이지요. 바람에 떠밀려온 작은 씨앗 하나를 화룡점정으로 빗대어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 모릅니다. 틀에 박힌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러운 불규칙성이 꽃밭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혹자는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나름의 이유, 틀리다는 이유로 뽑아버릴 겁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 할 덕목 중에 하나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에 대한 배려가 공존할 때 세상은 더 아름답고 활기찬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글=박동환 시인
'이시향, 박해경, 박동환' 시인 세 분의 평설을 통해 생계전선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공단의 삶을, 고단함을 다독일 수 있는 안식처를, 다름의 세상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빛나는 삶을 노래하고 있다.
디카시는 가장 짧은 한편의 영화다. 디카시인은 디지털 영화를 기획하는 감독이다. 디카시는 디지털 영화의 압축물이기 때문이다.
"디카시는 디지털 세상을 밝히는 현대판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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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디카시]에 성환희 님의 <말을 잃다>를 선정한다.
#금주의디카시
말을 잃다 / 성환희
성환희 님의 '말을 잃다'는 한마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발로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의미다. 대자연이 창조해내는 현상을 보고, 말을 잃게 되는 황홀경에 빠진다는 의미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데칼코마니 세상을 구현시키면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까지 도달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영상, 디지털 글쓰기, 디지털 제목 3종 세트를 연상시켜 대자연의 조화와 창조적인 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현상을 하나의 걸작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디지털문학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다.
디카시를 통해 마음 속 소란과 대자연의 고요를 합일시키는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디카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멀티 콘텐츠를 전달되는 디지털 보물이다. 스마트폰이 켜져있을 때 디카시 심장소리 즉, 디카, 디카, 디카 소리가 들리면 디카시를 사랑하는 진정한 디카시인이다."
정유지(부산디카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