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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came the war, old sport. It was a great relief and I tried very hard to die but I seemed to bear an enchanted life. I accepted a commission as first lieutenant when it began. In the Argonne Forest I took two machine-gun detachments so far forward that there was a half mile gap on either side of us where the infantry couldn’t advance. We stayed there two days and two nights, a hundred and thirty men with sixteen Lewis guns, and when the infantry came up at last they found the insignia of three German divisions among the piles of dead. I was promoted to be a major and every Allied government gave me a decoration–even Montenegro, little Montenegro down on the Adriatic Sea!”
- Argonne Forest(아르곤느 숲)은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광대한 숲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 중요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로 유명. 특히 1918년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뫼즈-아르곤느 공세(Meuse–Argonne Offensive)에서 연합군과 독일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 이 전투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로, 약 26,000명이 전사, 95,000명 이상이 부상.
https://www.gettyimages.com/search/2/image?page=2&phrase=forest+of+argonne
two machine-gun detachments : 초판에는 the remains of my machine-gun battalion 라고 되어 있었다.
개츠비는 "Lost Battalion" 이야기를 가지고 이 부분을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ost Battalion”은 1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유명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건은 1918년 10월, 미국의 77 보병사단에 속한 병력 일부가 프랑스의 아르곤 전투 중 독일군에 의해 포위된 사건이다. 당시 약 550명의 미군 병력이 독일군에 포위되어 생사가 불확실한 상황에 빠졌다. 이들은 "Lost Battalion"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들의 고립된 상태와 절박한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은 미국 군사 역사에서 중요한 전투로 기록되며, 특히 군인들의 용기와 끈질긴 생존 의지로 유명하다. 결국 5일 동안의 격렬한 전투 끝에 194명의 병력이 구출되었고, "Lost Battalion"의 명칭은 이들의 놀라운 용기와 함께 전투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Montenegro : 라틴어 "mons"(산) + "niger"(검은) / 이탈리아어로 "Monte"(산) + "Negro"(검은색). 이 이름은 이 지역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그 산맥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어둡게 보이는 특징에서 유래
몬테네그로는 1878년 몬테네그로 공국으로 독립하였고, 1910년에 왕국이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승 국가가 되었으나,
1918년 11월 세르비아에 통합되어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원이 되었다.
1941년에 추축국의 점령, 1945년 공산군에게 점령 당해 1991년까지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되었고,
1992년부터 2006년 5월까지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 속해 있었다.
2006년 5월 21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분리 독립 투표가 실시되어 투표권자 86.5%의 투표와 투표자 55.4%의 찬성으로 독립이 가결되었다.
1차대전과 몬테네그로 ==========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시기에 이 나라의 역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정치적 변화와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몬테네그로의 참전
동맹국: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강한 문화적, 역사적 유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국(Triple Entente) 측에서 참전했습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포함된 연합국 진영에서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대항했습니다.
전쟁 초기: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를 지지하며 전쟁에 가담했습니다.
2. 군사적 활동
몬테네그로 군대는 주로 자국 방어와 세르비아의 지원에 집중했습니다.
1914년 모인 전투(Battle of Mojkovac): 몬테네그로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맞서 싸워 성공적으로 지연전을 펼쳤으며, 이로 인해 세르비아군이 철수할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이 전투는 몬테네그로의 주요 공적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의 군사력은 세르비아보다 작고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았습니다.
3.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점령
1916년,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몬테네그로를 침공했고, 몬테네그로는 결국 점령당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니콜라 1세(Nikola I)**는 망명하여 이탈리아로 떠났고, 몬테네그로는 사실상 연합군의 지원 없이 고립되었습니다.
4. 전후 정치 변화
전쟁이 끝난 후 몬테네그로는 독립국으로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1918년, 세르비아와 함께 새로운 **유고슬라비아 왕국(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에 통합되었습니다.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통합을 지지하는 세력 간에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몬테네그로 봉기(Christmas Uprising, 1919)**와 같은 저항 운동이 발생했습니다.
5. 제1차 세계대전이 몬테네그로에 미친 영향
전쟁으로 인해 몬테네그로는 심각한 경제적, 인구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왕국으로서의 독립을 잃고 세르비아 주도의 유고슬라비아에 통합되면서 몬테네그로는 독립국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개츠비가 각국에서 훈장을 받았는데 유독 몬테네그로에서 받운 훈장만 보여준다. 가장 작은 나라이고, 이 나라는 이 때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였다. 개츠비가 자기를 꾸미는데 서재를 꾸며놓은 것처럼 100프로 꾸미는 것이 아니고 책들 가운데 안 읽은 부분은 안 읽은 채로 그대로 보이도록 해놓는 것처럼 뭔가 부족해 보이게 꾸민다. 이것은 개츠비가 균형을 맞추는 것이기도 하고 참된 realism의 실천이기도 하다.
Little Montenegro! He lifted up the words and nodded at them–with his smile. The smile comprehended Montenegro’s troubled history and sympathized with the brave struggles of the Montenegrin people. It appreciated fully the chain of national circumstances which had elicited this tribute from Montenegro’s warm little heart. My incredulity was submerged in fascination now; it was like skimming hastily through a dozen magazines.
He reached in his pocket and a piece of metal, slung on a ribbon, fell into my palm.
“That’s the one from Montenegro.”
To my astonishment, the thing had an authentic look. “Ordei di Danilo,” ran the circular legend, “Montenegro, Nicolas Rex.”
- Danilo I Petrović-Njegoš : 1851~1860 통치.
- Nicolas I: 1878~1918
Montenegro has an order called the Order of Danilo. Is there any possible way you could find out for me there what it would look like - whether a courtesy decoration given to an American would bear an English inscription - or anything to give verisimilitude to the medal which sounds horribly amateurish?
"몬테네그로에는 다닐로 훈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나에 게 찾아주실 수 있을까요? 미국인에게 수여된 우대 훈장에 영어 제명이 새겨 져 있는지 등등요. 굉장히 서툴게 제작된 메달이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 말 이지요."(피츠제럴드가 퍼킨스에게, 1924년 12월 20일)
“Turn it.”
“Here’s another thing I always carry. A souvenir of Oxford days. It was taken in Trinity Quad–the man on my left is now the Earl of Doncaster.”
- Trinity Quad : quad는 quadrangle (특히 대학에서 건물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사각형 안뜰. 개츠비가 보여주는 사진은 옥스퍼드 대학 Trinity College의 사각형 안뜰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피츠제럴드는 1921년에 이곳을 방문했다.
Earl of Doncaster : 닉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말한 Duke of Buccleuch(3:11-12)가 가졌던 다른 작위. 닉은 자기 조상의 작위가 언급되는 것을 보고 우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닉은 그런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 개츠비에게서 모종의 진심을 보았기 때문일까?
It was a photograph of half a dozen young men in blazers loafing in an archway through which were visible a host of spires. There was Gatsby, looking a little, not much, younger–with a cricket bat in his hand.
Then it was all true. I saw the skins of tigers flaming in his palace on the Grand Canal; I saw him opening a chest of rubies to ease, with their crimson-lighted depths, the gnawings of his broken heart.
Grand Canal : Grand Canal of Venice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베네치아(Venice)의 가장 중요한 수로. 수로변에 부호들의 저택들이 즐비하다.
“I’m going to make a big request of you today,” he said, pocketing his souvenirs with satisfaction, “so I thought you ought to know something about me. I didn’t want you to think I was just some nobody. You see, I usually find myself among strangers because I drift here and there trying to forget the sad thing that happened to me.” He hesitated. “You’ll hear about it this afternoon.”
“At lunch?”
“No, this afternoon. I happened to find out that you’re taking Miss Baker to tea.”
“Do you mean you’re in love with Miss Baker?”
“No, old sport, I’m not. But Miss Baker has kindly consented to speak to you about this matter.”
I hadn’t the faintest idea what “this matter” was, but I was more annoyed than interested. I hadn’t asked Jordan to tea in order to discuss Mr. Jay Gatsby. I was sure the request would be something utterly fantastic and for a moment I was sorry I’d ever set foot upon his overpopulated lawn.
He wouldn’t say another word. His correctness grew on him as we neared the city. We passed Port Roosevelt, where there was a glimpse of red-belted ocean-going ships, and sped along a cobbled slum lined with the dark, undeserted saloons of the faded-gilt nineteen-hundreds. Then the valley of ashes opened out on both sides of us, and I had a glimpse of Mrs. Wilson straining at the garage pump with panting vitality as we went by.
With fenders spread like wings we scattered light through half Astoria–only half, for as we twisted among the pillars of the elevated I heard the familiar “jug–jug–spat!” of a motor cycle, and a frantic policeman rode alongside.
Astoria : 실재하는 Astoria에는 여기 서술된 ‘고가 철도’(elevated [railway])가 없으므로 ‘Long Island City’라고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소설에서 허구의 공간으로 설정할 수 있으므로 작가가 처음에 쓴 대로 Astoria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jug–jug–spat! : jug: (나이팅게일 등의) 지저귀는 소리, 짹짹 울다, 지저귀다.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가 오늘날 불모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더러운 귀에 '적 적'(jug jug) 울린다고 적고 있다. 낭만주의를 비판한 모더니즘의 기수인 엘리엇이 이 의성어를 통해 S. T.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의 「나이팅게일」(“The Nightingale")에 묘사된 "음악적인 날렵한 적 적 소리"(musical swift jug jug)를 비판하고 있다면, 때가 묻은 이 의성어에 피츠제럴드는 '침'까지 뱉으면서 더욱 더럽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신현욱, p.171)
They answer and provoke each other’s song,
With skirmish and capricious passagings,
And murmurs musical and swift jug jug,
And one low piping sound more sweet than all
Stirring the air with such a harmony,
서로의 노래에 화답하고 또 노래하라고 부추기면서
박자에 맞춰 빠르게 ‘적, 적’ 웅얼거리지.
그러다가 낮게 지저귀는 가장 감미로운 한 소리가
절묘한 화음으로 대기를 휘저어
- Coleridge(1798년) “The Nightingale”
So rudely forced; yet there the nightingale
Filled all the desert with inviolable voice
And still she cried, and still the world pursues,
‘Jug Jug’ to dirty ears.
나이팅게일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목소리로 전 황야를 가득 채우며
여전히 울고 있고, 세상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하고 있다,
추잡한 귓전에 ‘적 적’.
- Eliot(1920년) “The Waste Land”
“All right, old sport,” called Gatsby. We slowed down. Taking a white card from his wallet he waved it before the man’s eyes.
“Right you are,” agreed the policeman, tipping his cap. “Know you next time, Mr. Gatsby. Excuse me!”
“What was that?” I inquired. “The picture of Oxford?”
“I was able to do the commissioner a favor once, and he sends me a Christmas card every year.”
Over the great bridge, with the sunlight through the girders making a constant flicker upon the moving cars, with the city rising up across the river in white heaps and sugar lumps all built with a wish out of non-olfactory money. The city seen from the Queensboro Bridge is always the city seen for the first time, in its first wild promise of all the mystery and the beauty in the world.
뉴욕이라는 도시는 아메리칸 드림이 내장된 곳으로 묘사된다. wild promise라는 표현에서는 미개척지를 개척해나가는 개척정신을 느낄 수 있다. 금을 찾아서 서부로 향하던 것이 이제는 금융시장을 찾아서 동부로 몰려들면서 꿈을 꾸고 있다.
girder : 대들보(큰보)라고 불리며 Column(기둥)을 잇는 철제 부재
Queensboro Bridge : 맨해튼의 이스트 59번가(Upper East Side)와 퀸스의 롱아일랜드시티(Long Island City)를 연결한다. 다리 아래에는 이스트 강(East River)이 흐르고, Welfare Island를 지난다(1921년부터는 섬이 여러 공공 병원과 복지 시설의 중심지로 사용되면서 "Welfare Island"로 개명, 이전 이름은 Blackwell’s Island, 1973년부터는 루즈벨트 아일랜드(Roosevelt Island)).
non-olfactory : 非-후각의, 냄새가 나지 않는, 구리지 않은. ‘공장’을 뜻하는 factory와 다른 방식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뜻. 공장에서 생산하는 공산품이 아니라 주식이나 보험, 채권 등으로 돈을 버는 그런 생산체계라는 뜻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려는 의도로 흔히 사용되지 않는 단어를 사용했다.
A dead man passed us in a hearse heaped with blooms, followed by two carriages with drawn blinds and by more cheerful carriages for friends. The friends looked out at us with the tragic eyes and short upper lips of south-eastern Europe, and I was glad that the sight of Gatsby’s splendid car was included in their somber holiday. As we crossed Blackwell’s Island a limousine passed us, driven by a white chauffeur, in which sat three modish Negroes, two bucks and a girl. I laughed aloud as the yolks of their eyeballs rolled toward us in haughty rivalry.
이 단락은 앞 단락과 대비되기도 하면서 부연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아메리칸 드림을 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가능한 도시이지만 내적으로는 누구든 돈을 버는 사람들이 성공하지만 인종차별이 극심한 곳이라는 것.
- south-eastern Europe : 발칸반도와 그 주변 국가들이 포함되며, 주요 민족으로는 알바니아인, 그리스인, 불가리아인, 루마니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등이 있다.
buck : ‘수사슴’이라는 뜻과 더불어, 흑인 남성에 대한 경멸적 의미도 담고 있는 단어.
이 부분에서 닉 혹은 개츠비의 인종차별적 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흑인은 사람이라기보다 동물에 가깝다고 보는 것. 눈동자를 굴린다는 식의 표현은 어리석고 유치하며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게 행동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는 고정관념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닉이 묘사한 흑인들의 모습, 즉 맵시 있게 차려입고 기사가 딸린 리무진에 올라탄 채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매우 신경 쓰는 모습은 사실 개츠비를 말해 주는 거 울이자 그림자이기도 하다. 개츠비가 이 흑인들과 확실히 다른 점은 개츠비가 자신의 출신을 감출 수 있고 실제로도 감춘 반면에, 흑인들은 피부색 을 감출 수 없기에 출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 하나뿐이다.(로이스 타이슨, pp.836-7)
- Limousine : 프랑스어 Limousin에서 유래. 이는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리무쟁(Limousin)이라는 지역 이름에서 유래.
1. 리무쟁 지역과 옷
리무쟁 지역의 사람들은 독특한 스타일의 후드가 달린 망토를 입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망토는 머리와 몸을 덮으면서도 운전자가 머리를 감쌀 수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디자인이 초기 자동차의 운전석을 덮는 천막과 유사하다고 여겨졌습니다.
2. 마차와 자동차
초기 리무진은 고급 마차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마차는 승객이 편안하게 앉아 있는 공간과 운전사가 분리된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며, 승객 공간은 덮개로 보호되고 운전석은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이 이후 모터 자동차로 확장되었습니다.
3. 현대적 의미
20세기 초에 이 단어는 엔진이 장착된 고급 자동차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긴 차체와 운전석과 승객석이 분리된 차량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Anything can happen now that we’ve slid over this bridge,” I thought; “anything at all...”
Even Gatsby could happen, without any particular wonder.
Gatsby라고 하는 인물, 혹은 현상이 생겨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도시. 또는 Gatsby가 당하는 일들이 생겨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도시라는 것. Gatsby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포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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