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향 시조집, 『그 곳에서도』, 동학사, 2000.
李一香
1930년 경북 대구 출생, 효성여대 국문과에서 수학, 1983년 시조문학 추천완료
2024년 11월 2일 별세(향년 94세)
자유시와 시조 함께 모은 시집, 자유시가 더 많음.
序詩
시가 아니었으면
나 어찌 살았을까
사랑하는 이 보내고
눈보라치는 강 언덕에 서던
그 날
시가 아니었으면
나 슬픔을 무엇으로
달랬을까
젖 물려 키운 아들
어이없이 땅에 묻고
쏟아지던 그 통곡을
시가 있어
긴 밤도 쓸어 넘기고
피는 꽃 지는 달도 보는
오늘 있어라
나 살고 있어라.
<이근배 해설>
시는 애 쓰는가라는 물음은 허다하게 쏟아지지만 ‘시가 있어’ ‘나 살고 있어라’ 같은 대답은 들어 본 일이 없다. 아니 그런 대답이 나온다 해도 그것은 관념적 헌사일 뿐, 이 「序詩」처럼 핍진한 생명의 언어로 가슴에 박혀 드는 화살은 없을 것이다.
이일향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죽음을 넘어서는 종교이며 신에 대한 고백성사이다. 또한 유명(幽明)을 달리한 사랑하는 사람과 아들을 향해 부르는 끝없는 영가(靈歌)이다. 마치 용암이 깊은 지층에서 들끓다가 불길로 터져 오르듯 마음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아픔이나 슬픔들을 거침없이 쏟아 내는 것이지만 이 한 편의 시가 될 때는 말을 깎고 다듬어서 투명한 결정(結晶)을 이룰 것이다.
詩人
나는 詩人의 딸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詩人이었고
내기 詩人이 된 뒤에도
아버지는 詩人이었다
내가 어려서 본 아버지는
오직 詩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집안 살림은 어머니의 몫이었고
아버지는 책과 원고지와 씨름하는 것으로
나날을 보내셨다.
외동딸인 나에 대한 사랑만은
하늘 닿게 뻗쳐 올라서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향기라고
이름도 일향(一香)이라 지어 주셨다.
시집 와서 오남매를 낳기까지
나는 詩人이 되리라는 꿈도 못 꾸었는데
내 인생의 반려(伴侶)를 여윈 뒤에
아버지는 詩를 통해 공부하라 일러 주셨고
부끄럽지만 나도 아버지 같은
詩人이란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이 나라의 詩人으로서는 가장 오래 사시어
이제 아흔다섯을 병석에 누운 아버지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외에
詩人까지 되게 하셨으니
이 은혜 무엇으로 보답하리요
아직도 詩의 날개 펼치시는
학처럼 고고하신 그 모습에
가슴만 무너져 내린다.
<이근배 해설>
한 시인이 시인이 되기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를 이렇게 시로 쓴 것을 나는 아직 본 일이 없다. ‘ 내 인생의 반려(伴侶)를 여윈 뒤에/ 아버지는 詩를 통해 공부하라 일러 주셨고’에 밝혔듯이 시인의 딸은 삶의 한 여울목에서 아버지가 가르쳐 준 길에 들어서서 또 다른 생의 불꽃을 피우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서리를 이고 피는 국화가 불꽃보다 더 오래 아름다움을 뿜내듯이, 어린 시절부터 붓을 잡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이 나라 여인들이 지켜 온 미덕과 안으로 다스려 온 묵은 향기가 찬 바람 속에서도 매웁게 번지고 있다.
<시조>
맷돌
내 가슴은 맷돌
시를 갈다가 갈다가
풋콩 같은 사랑을
갈아도 보았었는데
지금은
핏덩이만 갈리는
아픈 세월만 갈리는
<작품 해설>
하늘에 닿는 영혼의 울림
-이일향의 혼 재우는 노래
이근배(시인, 재능대 교수)
이 시집 『그 곳에서도』에서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어머니가 만나야 하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시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말을 해야 살아서는 닿지 못하는 저 세상에 못다한 사랑이나 슬픔을 다 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시인으로서 느끼는 영혼의 극대화가 하늘을 찌른다.
‘시는 영혼의 음악’이라고 볼테르의 말은 이일향의 시에 와서 더욱 빛을 낸다. ‘시은 영혼의 언어’라고 하지 않고 왜 ‘영혼의 음악’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시는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는 것’이라는 T.S. 엘리어트의 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시는 언어로 표기되지만 언어 이상의 영혼의 울림이 있어야 한다. 내 영혼의 울림을 가지지 않고서는 다른 영혼을 울리지 못한다.
꽃은 지기로
피는 것이냐
그토록 눈부시게
흰 빛으로 뜰 안 가득히
명주 몇 필 짜내더니
진솔옷 한 벌
짓기도 전에
무슨 바람이
심굴궂게 거워 가는 것이냐
진규야
목련꽃 지는 날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듣는구나.
-「목련이 지는 날」 전문
몸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영혼에서 솟아 나온 울림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옷을 지으려고 명주를 짠다. 그런데 비단옷을 짓기도 전에 아들은 떠났다. 목련이 피었다 지는 일에도 이 시인은 무심할 수가 없다. 꽃잎을 떨구는 심굴궂은 바람이 원망스럽고 꽃다운 나이에 지고 만 혈육을 그리는 모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쏟는다. 말을 찾느라 애쓴 흔적도 없이 들었다 놓는 가락이 예사의 솜씨가 아니다. 또 ‘진규야/목련꽃 지는 /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듣는구나.’에 와서 진술적인 듯한 이 절규는 한층 더 높은 하늘에 닿고 있다.
산을 바라보며
생각 하나를 만들고
물을 바라보며
노래 하나를 숨겼다
그리던 섬을 찾아가도
물 소리 바람 소리만
가슴에 차오르고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
밤도 낮도
섬처럼 홀로 떠 있다
먼 길 돌아와
눕는 텅 빈 방
바람만 따라와서
얼굴을 부빈다
눈물은 타오르지 않는
어둠일 뿐.
-「바람만 따라와서」 전문
워즈워스는 ‘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바탕을 둔다’고 했다. 이 시는 겉으로는 잔잔하게 흐르는 깊은 강물과 같다. ‘산을 바라보며/ 생각 하나를 만들고/ 물을 바라보며/ 노래 하나를 숨겼다’는 도입부에서는 화두를 짊어지고 변벽하는 수도승의 선시(禪詩)처럼 조용한 사유가 흐르지만, ‘지워지지 않는/그리움/ 밤도 낮도/ 섬처럼 홀로 떠 있다’와 ‘눈물은 타오르지 않는/어둠일 뿐.’에 오면 빠르고 거세게 흐르는 유속(流速)이 느껴질 뿐 아니라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영혼의 불꽃을 살갗으로 느끼게 한다.
이것은 철저한 감저으이 절제와 시적 탐구의 오랜 경험에서 얻어 낸 시인의 묘방(妙方)이다. 일상의 체험과 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내면 세계와 교감하여 하나의 의미를 탄생시키고 공감의 물결을 일으켜 긴 파장을 끌고 간다.
(참고: 아들 진규는 43세에 죽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