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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설거지는 했는가?" - [활안스님] 선 법문집
활안 대선사 선(禪) 법문집
여보게, 설거지는 했는가?
“입은 끝없이 터졌는데 소갈머리가 없으니 어쩌랴.
거지야, 설거지나 하고 가시게!”
거침없는 할(喝)과 방(棒), 몸소 실천하는 운력(運力),
엄격한 수행가풍으로
뭇 선객들의 큰 귀감이 되시는 활안 큰스님 법문집.
■ 활안(活眼) 대선사
1926년 전남 담양 출생. 1945년 순창 순평사로 출가했으며,
1953년 월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58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상원사 청량선원 지리산 칠불암, 범어사, 용화사 등
제방선원에서 40안거를 성만했다.
1977년부터 송광사 천자암 조실로 있으면서
새벽 2시부터 5시 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수행되는 예불과 천도재,
그리고 정초와 백중 때 1주일간 하루 17시간을 꼿꼿이 서서 하는 사분정진(四分精進),
매년 1백 일간 방문을 잠그고 수행하는 폐관정진(閉關精進)으로
엄격한 수행가풍을 확립하여 뭇 선객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99년에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불립문자(不立文字)’틀 깬 활안 스님의 첫 법문 집
활안 스님은 인터뷰하기가 가장 어려운 스님으로 손꼽힌다.
인터뷰 전에 묻는 스님의 말씀에 여차 잘못 대답하거나
조금 아는 체를 하면 친견은 고사하고 곧바로 쫓겨나기 일쑤다.
그래도 조금 싹수가 보이면 공양간에서 공양이나 들고 가라고 한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인터뷰도 못하고 하산한 기자들이 부지기수다.
설혹 인터뷰를 시작했다 해도 곧 몇 마디 질문도 못하고
조실방을 나와야 한다. 질문과 대답이 어느 정도 착착 죽이 맞아야
인터뷰가 이어지는 것이다. 스님과 인터뷰할 때 가장 난감한 부분은,
선(禪)이 무엇이고, 어떻게 닦아야 하며, 깨달음이 무엇인지 하는
질문은 한 마디도 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활안 스님은 주로 나라의 안위와 민생 걱정을 화제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끝끝내 불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다.
세상에 드러난 선사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왜 참선이니,
수행이니, 화두니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입에 대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스님 나름대로 대선사다운 불립문자(不立文字)식의 응대이다.
부처님께서도 팔만대장경을 설하시고도
“한 마디도 설한 바 없다”고 하셨듯이,
선(禪)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면 이미 어긋나 버리고 마니,
차라리 딴 소리를 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인은 “길에서 도(道)를 아는 사람을 만나거든,
무엇보다 도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 했던가.
오죽했으면, 임제 선사는 경전과 어록을 ‘똥 닦는 휴지’라 표현했을까.
활안 스님 역시,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화제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사량ㆍ분별하지 않는 평상의 마음이 바로 도이다)를
일깨우거나, 수행자의 마음상태에 따라 고함을 치거나,
절에서 쫓아내는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설혹 기자들이 끈질기게 불교의 깊은 도리를 일러 달라고 요청해도,
“그동안 법문은 수도 없이 했지 않나.
실천하지 않는 법문 들어서 뭣해!”라며 인터뷰를 중단하는 까닭은
불교에 입문해 배운 것 하나라도 실천한다면 그것이 요긴한
‘법의 문[法門]’이라는 스님의 일구(一句)인 것이다.
실천이 없는 불교, 이타행(利他行)이 없는 자리행(自利行)은
절름발이 수행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활안 스님의 대중 법문과
언론과의 인터뷰, 구도기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다.
평생 일체의 법문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활안 스님이 법문집 발간을 허락한 것은 중생제도의 방편상
베푼 큰 자비심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스님의 첫 선(禪) 법문집인 이 책은
활안 선사의 수행과 사상, 언행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인 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노 선사의 불립문자의 가풍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언어도단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滅)의 자리로 들어가는
문없는 문의 관문이 될 것이다.
일상적인 선문답으로 자성(自性)을 깨닫게 하는 힘
“네 설거지나 잘 하고 살아라.”
‘여보게, 설거지는 했는가’란 책 제목처럼,
천자암 조실 활안 스님은 스님이나 불자들이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닦아야 합니까?” 등의 질문을 해올 때면
이렇게 퉁명스레 답하시곤 한다. 깨달음을 찾고 구하면서
요리조리 따지고 망상하고 분별하고 집착하는
너의 전도(顚倒)된 생각부터 비워서 설거지하라는 가르침이다.
천자암에서는 언제 어디서 누가 찾아오든
즉석에서 ‘설거지 법문’과 같은 법거량이 펼쳐지곤 한다.
공양시간을 막론하고 노동, 산책하는 시간도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진리를
체현하도록 일깨우는 것이 스님의 자비심이다.
‘그대가 바로 부처’임을 스님은 일상적인 말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일깨우는 것이다.
천자암에서 이러한 생생한 법거량이 언제나 펼쳐질 수 있는 것은
스님이 세간과 출세간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세간이니, 출세간이니 하는 구분 자체가 없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문을 열고 들어와 스님에게 법을 구하고 문답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그 문답이 사구(死句: 죽은 말)나 기행(奇行)으로 떨어지면
“이 멍충아!” “이 거지야!” 하는 고함과 함께 여지없는 벼락이 떨어진다.
스님의 가풍(家風)은 임제, 덕산 선사의 그것처럼
할(喝: 고함치기)과 방(棒: 몽둥이질)의 거친 언행 속에 깃들어 있다.
이처럼 언제 어디서나 예리한 취모검(吹毛劍)의 기봉을 드러내는
활안 스님의 풍모는 늘 제자들과 신도들을 압도하게 마련이다.
생과 사의 근원과 생사로부터의 해탈 방법을 묻는 제자와 수행자들에게
스님은 평상시의 생활 속에서 철저할 정도로
무섭게 그 허상을 박살내고 진상을 깨닫도록 채찍질하는 것이다.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백장 가풍 몸소 실천
선문답을 통해 후학들에게 일러주는 활안 스님의 가르침은
철저하게 몸소 보여주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실천행으로 더욱 무게 있게 다가선다.
겨울나기 준비를 할 때면 스님은 손수 벌목할 나무를 골라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대비한다.
거의 매일 훨씬 나이가 젊은 대중들과 운력(運力: 노동수행)을 함께 하는 것도 말없는 가르침이다.
일과 수행이 둘 아닌 스님의 하루 일과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이
그대로 깨달음의 여정임을 확인시켜주는 무언의 법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순이 넘은 세수에도 스님은 일을 할 때도 정진하듯 매진하며
새벽 2시에 일어나 도량석을 돌며 예불목탁까지 직접 잡는다.
심지어 젊은이들도 힘에 겨운 농사를 손수 짓는다.
여름에는 고추농사, 가을에는 추수를 하고, 겨울에는 손수 나무를 하니
젊은 수행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기력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수행가풍에 따라 천자암은 어느 대중사찰보다 일과시간이 촘촘하게 짜여 있다.
새벽 2시에 도량석을 시작, 새벽 3시에 예불을 마친다.
이후 스님은 새벽 5시 30분까지 무주고혼의 영가천도 기도를 한다.
오전 6시에 아침공양을 마치면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의
‘백장청규(百丈淸規: 당나라 때 백장 스님이 만든 선원의 규율)’에 따라 노동을 하거나,
수시로 찾아오는 제방의 수행자를 제접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스님은 오후 8시쯤에 잠자리에 들어 2시간 30분만 주무시고
오후 10시 30분부터 수행 일과를 시작하신다.
새벽 2시까지 참선과 기도를 하시는 큰스님은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직접 도량석과 조석예불, 천도재를 주관하시니 고금(古今)에 보기 드문 정진력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출가 후 60여 년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참선과 기도로 정진하는 수행력은 젊은 제자들에게 무언의 큰 가르침이 되고 있다.
열심히 정진하고 노동하고 근검절약하는 일상 속에서 자기를 비워가는
하심(下心) 공부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평생을 무소유의 정신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수행을 보여준 큰스님은
수행자들에게 불교의 참뜻을 스스로 되새기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고 죽는 이전의 이것은 무엇인고?
활안 스님은 수행자들이 일생동안 참선해도 진전이 없는 것은
일념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늘 쉼없는 정진을 강조하신다.
“매일 앉아서 쓸데없는 망상으로 세월을 보내려 하지 말고
간절한 원력으로 ‘이뭣고’를 참구하면 시간도, 공간도, 형상도, 음성도 모두 잊게 됩니다.
화두 일념이 흐르는 물과 같이 지속되면 천사람 만 사람이 다 진리의 눈을 뜨게 되는 법입니다.
가고 오고 말하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 몸뚱이를 지배하는 참 주인공이 무엇입니까.
일념으로 뼈에 사무치고 오장육부를 찌르는 대의심(大疑心)으로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자신도 모르게 공부가 무르익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하루 한 생각만 또렷이 드러나게 됩니다.”
스님은 참선 수행자에게 생각생각에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신다.
“세간의 모든 것이 한마음(一心)을 좇아 생겨나니 미물(微物)을 생각하면 곧 미물이요,
축생(畜生: 사람이 기르는 온갖 짐승)을 생각하면 곧 축생이며,
부처의 마음을 내면 곧 부처인 것처럼 마음은 참으로 미묘한 것입니다.
한 생각도 놓치지 않을 때 비로소 본래 고향에 도달하니
생각생각에 화두를 간절히 붙잡아야 합니다.
화두를 놓치는 순간 곧 한 생각이 일어나니
한 생각 일어남이 무명이요 업의 굴레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생각생각 일념으로 간절히 ‘생멸미생전 시심마(生滅未生前 是甚磨)’ 화두를 놓치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수행하면서 늘 지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법거량을 하려고 찾아드는 제방의 수좌들에게 스님은
늘 자주 이렇게 경책하곤 한다. “장님이 눈뜬 사람을 그리려면 그려지느냐. 집어치워라.”
그러면서도 화두 하나를 던져주는 자비심을 잊지 않으신다.
“죽는 게 옳은가, 사는 게 옳은가?”
내가 수행한다는 생각, 내가 30년을 참구한 선객이라는 생각,
그러한 ‘나’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수행의 기본이다.
그래서 스님은 “아(我)가 공(空)해야 바른 공부를 할 수 있다.
나를 버리면 장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도를 닦든지, 염불을 하든지
제불성현과 똑같이 밝은 지혜를 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 엮은이 김성우(金聖祐)
경북 안동 생(生).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공부했다.
<현대불교신문> 취재부 기자 및 차장, 불교포털 ‘부다피아’ 총괄팀장,
일간 인터넷 ‘붓다뉴스’ 팀장, 계간 <불교평론> 팀장으로 일했다.
월간 <선문화> 및 월간 <차의 세계> 편집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격월간 <클리어 마인드> 편집위원, <현대불교신문> 객원기자,
∎ 본문 발췌
• 이 몸뚱이는 마음의 옷입니다.
몰랐을 때는 몸뚱이의 생사가 둘이지만, 알고 나면 생사가 본래 공한 것입니다.
마음의 옷이 더러우면 빨아 입고, 떨어지면 기워 입고,
못 쓰게 되면 미련 없이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무슨 마음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끝없이 빛이 날지, 판단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마음 근본의 흰 바탕 즉, 내 자성(自性)자리를 바로 보는 것,
조금도 틈을 주지 않고 자성자리를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지혜가 생겨서 내 마음자리가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 가고 오고 말하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 몸뚱이를 지배하는 참 주인공이 무엇입니까.
일념으로 뼈에 사무치고 오장육부를 찌르는 대의심(大疑心)으로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자신도 모르게 공부가 무르익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하루 한 생각만 또렷이 드러나게 됩니다.
매일 앉아서 쓸데없는 망상으로 세월을 보내려 하지 말고
간절한 원력으로 ‘이뭣고’를 참구하면 시간도, 공간도, 형상도, 음성도 모두 잊게 됩니다.
화두 일념이 흐르는 물과 같이 지속되면 천 사람 만 사람이 다 진리의 눈을 뜨게 되는 법입니다.
• 노장(老長)의 처소인 염화조실(拈華祖室)에 들어서자 묵향이 그윽하다.
마침 선필(禪筆)을 쓰고 있던 탓이다. 선필을 마무리하고 다탁(茶卓) 앞에 앉은 노장에게
“방금 쓰시던 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엉뚱하다.
“(종이와 글씨를 가리키며) 요거이(요것은) 흰 뜻이고 요거이 검은 뜻이여.”
입을 열면 본뜻을 그르치니 언어ㆍ문자에 매이지 말라는 의미일까.
딱 부러지게 감을 잡지 못한 채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금세 할(喝: 꾸짖는 소리)이 날아온다.
“너는 어째 직설(直說: 바른 말)은 모르고 가설(假說: 거짓 말)만 좋아하냐?”
그래도 뜻을 몰라 다시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몽둥이에 가깝다.
“야, 이 거지야. 이런 것도 모르는 주제에 뭘 들으러 왔어. 그냥 좋은 공기나 쐬고 가.”
법문을 청하기도 전에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힌 느낌이다.
서울에서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온 노력이 허사가 될 판이다.
이쪽의 난감함을 읽은 것일까, 잠시 갑갑한 침묵이 흐른 뒤 노장은
“그래 점심은 묵었냐?”
며 짙은 남도 사투리로 말문을 연다.
“지혜와 복은 종교나 천지자연이 주는 것이 아녀.
각자 생명이 타고난 성품을 밝게 하면 태양보다도 밝은 대우주의 무한한 지혜를 얻게 되지.
각자 생명이 그런 원리를 다 타고났어.
따라서 짧은 한 생(生)에 할 일 중에 선후가 있으니 한 생각의 판도,
즉 타고난 성품을 밝게 바꿔 놓는 것이 먼저여.”
노장은 이것을 목표로 오늘까지 살아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 타고난 성품을 바꿔 놓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또다시 할이다.
“네놈은 바꿨다 해도 못 알아듣고 바꾸지 않았다 해도 못 알아들어.
하나하나 말, 표정에 다 나타나는데
기다(그렇다) 해도 못 알아듣고 아니다 해도 못 알아듣고 그래.
여기서 욕이나 얻어먹고 가.”
역시 선사는 스스로 깨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출처 : 블로그 나를 찾는 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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