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평어, 경어와 문장
‘나는 세상을 비관하지 않을 수 없다.’
‘저는 세상을 비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이나 ‘없다’는 평범하게 나오는 말이다. ‘저는’과 ‘없습니다’는 상대자를 존칭하는 정적(情的) 의식, 상대의식이 들어 있다. ‘나는’과 ‘없다’는 들띄워놓고 여러 사람에게 하는 말 같고, ‘저는’과 ‘없습니다’는 어떤 한 사람에게만 하는 말 같다. 평어(平語)는 공공연하고 경(敬語)는 사적인 어감이다. 그래서 ‘습니다 문장’은 읽는 사람이 더 개인적인 호의와 친절을 느끼게 한다. 호의와 친절은 독자를 훨씬 빠르게 이해시키고 감동시킨다.
어떤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더러 뒷동산에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곧 가자고 하니까
“들어가서 어머님께 허락 맡고 온.”
하십니다. 참 그렇습니다. 나는 뛰어들어가서 어머니께 허락을 맡았습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다시 세수시켜주고 머리도 다시 땋고 그리고 나를 아스러지도록 한번 몹시 껴안았다가 놓아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온.”
하고 어머니는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아마 사랑 아저씨도 그 소리를 들었을 게야요.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나긋나긋 읽는 사람의 귀 옆에 와 소곤거려 주는 것 같다. 내가 안들어주면 들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퍽 사적인, 개인적인 어감이다. 그래서 경어는 일인칭(나)으로 쓰는 데 적당하고 내용을 독자에게 자세하고 찬찬하게 호소할 필요가 있는 회고류, 정한류(情恨類)와 권격류(勸檄類)에 적당하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정(情)으로써 나설 필요가 없는 일반기록, 서술에서는 경어는 도리어 아첨하는 듯한 흠이 될 수 있는 것은 주의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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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선(吃水線) 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배와 수면이 접하는 경계가 되는 선. 위선(爲先) 우선.
미명(未明) 날이 채 밝지 않음. 또는 그런 때,
투어리스트 뷰로우(tourist bureau) 여행사.
십이분(十二分) 충분한 정도를 훨씬 넘는 정도로.
권격류(勸檄類) 권하여 널리 알리는 종류.
-이태준 『문장강화』 중에서
2025.3.17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