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꽃가루받이 지수' 를 상상한다 ㅡ머스크•베이조스•저커버그의 공유부 장부를 재보자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동료들
꿀벌은 꿀만 만들지 않는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얀 물리에 부탕(Yann Moulier-Boutang)은 흥미로운 계산 하나를 소개한 바 있다. 양봉이 만들어내는 가치 가운데 꿀의 시장가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꿀벌의 진짜 일은 채밀(採蜜)이 아니라 수분(受粉), 곧 꽃가루받이다. 벌이 꽃 사이를 오가며 만들어내는 농업생태계 전체의 가치는 꿀값의 수십 배를 훌쩍 넘지만, 시장은 꿀에만 값을 매긴다.
부탕은 여기서 오늘의 경제를 읽는 열쇠를 찾았다. 디지털 시대의 부(富)는 공장의 굴뚝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의 앎과 관계와 소통, 곧 사회 전체에 흩어져 있는 꽃가루받이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결실은 꽃밭을 가꾼 이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꽃밭 위에 채밀장치를 설치한 소수가, 곰이 꿀단지를 통째로 가져간다. 그는 이것을 인지자본주의(認知資本主義)라 불렀다.
이 렌즈로 우리 시대의 세 거부(巨富)를 들여다보자. 베이조스와 저커버그와 머스크. 세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비범함으로 설명한다. 과연 그런가.
세 마리 곰의 해부
제프 베이조스의 발밑에는 값을 치르지 않은 꽃밭이 겹겹이 깔려 있다. 인터넷 자체가 미국 국방부와 대학의 공적 연구에서 태어났고, 아마존의 물류는 국가가 깔아놓은 도로망 위를 달린다. 클라우드 사업(AWS)은 수십만 프로그래머가 대가 없이 가꾼 오픈소스 위에 세워졌고, 그 유명한 추천 알고리즘은 수억 고객의 리뷰와 클릭, 곧 이용자의 무상노동을 채집해 코드로 응고시킨 것이다. 심지어 수백만 입점 소상공인이 가꾼 상품의 꽃밭에서 수수료를 걷고, 잘 팔리는 꽃은 자체브랜드로 베껴 심는다. 그의 천재성이 있다면 꽃을 피운 천재성이 아니라, 만개한 꽃밭에 채밀기를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설치한 천재성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어떤가. 베이조스에게는 그래도 물류라는 실체가 있었다. 저커버그는 나르는 상자조차 없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콘텐츠는 전부 이용자가 만들고, 그것을 보러 오는 것도 이용자이며, 광고주에게 파는 '시선'도 이용자의 것이다. 그의 천재성은 다른 곳에 있다. 우정, 혈연, 동창, 이웃 — 인류가 수만 년 가꿔온 가장 오래된 공유지인 '사회적 관계망' 그 자체를 사유지로 등기(登記)하는 솜씨다.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는 것은 서비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관계가 볼모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채밀장치는 꽃밭에 병을 옮긴다. 분노와 자극이 체류시간을 늘린다는 것을 알고 알고리즘을 그쪽으로 몰아간 결과가 정치의 양극화요, 청소년의 정신적 붕괴요, 공론장의 부패다.
일론 머스크는 가장 역설적이다. '정부 없이 홀로 해낸 천재'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노골적으로 공공의 젖을 먹고 컸다. 테슬라는 미국 에너지부의 대규모 저리융자로 살아났고, 초기 흑자의 상당 부분은 배출권 — 공공정책이 만들어준 지대(地代) — 을 팔아서 나왔다.
스페이스X는 NASA가 60년간 세금으로 축적한 로켓공학 위에 서 있으며, 매출의 기둥도 정부 계약이다. 그래 놓고 정부를 비효율의 화신으로 조롱하니, 공유지의 최대 수혜자가 공유지 무용론을 설파하는 무임승차의 완성형이다. 나아가 그는 지구 저궤도라는 인류와 미래세대의 공유지에 수만 기의 위성을 선점해 깔았고, 채밀한 꿀로 이번에는 소셜미디어와 선거, 곧 공론장과 정치권력을 사들이고 있다.
유형은 셋이되 서사는 하나다. 수분의 결실을 사유화하면서, 그 성공을 자신의 비범함으로 이야기한다는 것. 뿌리는 사회 전체의 꽃가루받이인데 열매는 채밀기 주인의 능력으로 둔갑하는, 본말전도(本末顚倒)다.
공정을 기하자면, 이들이 사회에 내보낸 것도 크다. AWS(아마존웹서비스)는 뭇 산업의 디지털 기반이 되었고, 스페이스X는 우주 진입의 문턱을 크게 낮췄으며, 메타(페이스북)의 플랫폼 위에서 수십억 명이 값없이 소통한다. 이런 '기여'도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벌인가 곰인가. 바로 여기서 문제의 정체가 드러난다. 가져간 것도 내보낸 것도 값이 매겨지지 않았기에, 그 잔고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 장부 없는 논쟁은 영원히 각자의 심증만 오갈 뿐이다. 그래서 잣대가 필요하다.
새로운 경제지표 '수분지수'를 상상한다
부탕의 이론에는 공인된 급소가 하나 있다. 비판자들은 곧바로 찔렀다. "좋다, 수분의 가치가 그리 크다면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잴 것인가?" 부탕은 수분의 가치가 인정되도록 회계기준을 바꾸자는 데까지는 갔지만, 잣대 자체를 만들지는 못했다.
측정되지 않는 가치는 과세할 수도, 배당할 수도, 다스릴 수도 없다. 그 빈자리에 하나의 잣대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수분지수(受粉指數)'다. 일기예보의 꽃가루 농도 지수가 아니라, 경제의 정산(精算) 지수다.
왜 필요한가. 꿀, 곧 개별 소득과 이윤은 잴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장이 값을 매기고 회계와 세무가 기록하는, 세상에서 가장 잘 측정되는 영역이다. 문제는 값이 매겨지지 않은 채 흐르는 것들이다. 값을 받지 않고 사회에 내보낸 것 —지식의 개방, 오픈소스 기여, 지역경제의 파급, 생태의 회복. 그리고 값을 치르지 않고 사회에서 가져간 것 —공적 연구의 무상 활용, 이용자 데이터의 수취, 보조금과 조세감면, 전파와 궤도 같은 공동자산의 점용.
기존의 어떤 지표도 이 두 흐름을 하나의 장부에 올리지 않는다. ESG 평가조차 기업이 '얼마나 얌전한가'를 볼 뿐, 공유부(共有富)와 무엇을 주고받았는가라는 정산의 관점 자체가 없다. 재지 않았기에,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어떤 모양인가. 이렇게 상상해보자. 모든 경제주체는 태어날 때부터 '공유부 계좌'를 하나씩 갖고 있다. 값 없이 사회에 내보낸 것은 입금이고, 값 없이 사회에서 가져간 것은 인출이다. 수분지수란 그 계좌의 잔고다. 숫자는 하나, 부호는 둘이다. 이 잣대를 들이대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위키피디아는 거대한 흑자 계좌다. 수백만 명의 무상 기여를 받되 인류 전체에 무상으로 되돌린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도 흑자다. 소액신용이 마을 경제에 일으키는 파급이 은행이 가져가는 이자를 훨씬 넘는다. 그리고 앞서 해부한 세 사람의 계좌는 어떤가. 입금이 없지 않으나 인출이 그보다 훨씬 깊다는 것이 나의 심증이다 — 그러나 심증은 심증일 뿐, 잔고는 장부가 말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잣대의 존재 이유다.
무엇을 바꾸는가. 잔고 하나에서 정책의 눈금이 줄줄이 나온다. 적자 계좌에는 정산을 요구할 수 있다. 디지털세와 공유부 배당은 시혜가 아니라, 인출한 만큼 갚으라는 청구서가 된다.
흑자 계좌에는 우대가 돌아가야 한다. 공공조달의 가점, 정책금융의 우대금리, 연기금 투자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시민에게는 나침반이 된다.
어느 기업이 벌인지 곰인지 한 숫자로 판별할 수 있다면, 시장의 선택 자체가 꽃밭을 지키는 힘이 된다. 그리고 궤도를 선점하고 데이터를 국경 너머로 빨아들이는 행위를 잴 잣대는,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지구촌이 함께 요구해야 할 물건이다.
물론 상상과 제도 사이에는 숙제가 쌓여 있다. 무엇을 입금으로 인정할지 누가 정하는가, 지수가 목표가 되는 순간 벌어질 눈속임을 어떻게 막는가. 그러나 그것은 설계자의 숙제이지 상상의 결격 사유가 아니다.
인출 쪽은 자료가 의외로 탄탄하다. 보조금, 조세감면, 정부계약, 주파수나 궤도 점용은 모두 공적 기록이 있다. 입금쪽도 몇개의 대리지표로 그리기 시작할 수 있다.
오늘날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GDP도 처음에는 조악한 추계와 뜨거운 논쟁에서 출발했다. 완벽한 잣대를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재지 않는 것보다, 거친 잣대라도 상상하고 연필로 그리기 시작하는 편이 낫다. 영어로 이름짓자면
Commons Contribution Balance Index(CCBI) 혹은 Net Pollination Index(NPI)가 될까.
꽃밭에도 장부를
이 잣대를 누가 먼저 상상에서 현실로 옮길 것인가. 필자는 한국이 그 첫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행정 전산망과 데이터 기반을 갖췄고, 기본소득과 기본금융의 논의를 가장 치열하게 벌여온 나라 가운데 하나다. 학계와 시민사회가 몇몇 산업부터 시험 삼아 재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지구촌에 내놓는 또 하나의 공공재가 될 것이다.
특히 금융부문은 시급하다. 이재명대통령의 당대표시절 초심에는 '횡재세'라는 개념으로 각인되어 있다.
경제학의 오랜 격언에 이르기를, 측정되는 것만이 관리된다 했다. 뒤집으면 이렇다. 재지 않았기에 다스리지 못했다.
꿀단지의 무게는 그램 단위로 재면서 꽃밭의 안부는 한 번도 묻지 않은 것이 지난 세기의 경제학이었고, 그 틈에 세 마리 곰이 자랐다.
이제 꽃밭에도 장부를 들이자. 입금과 인출을 적고 잔고를 물어야, 누가 벌이고 누가 곰인지 드러난다. 그 장부의 첫 페이지를 여는 상상 —그것이 수분지수, 바로 공유부를 재는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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