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선소마을과 공룡화석
7월 18일 아이들과 함께 세계기후구와 대동여지도 탐구를 보충하기로 했다.
19일 저녁 비가 내리고, 전용호님이 주관한 스토리텔링 모임에 참석했다. 그간 뵙지 못했던 글쓴이 선후배님들을 만났다(이훈, 김선출, 정명혜, 김선기외 10여분 더).
21일 광해모임은 지리산으로 갔다. 회장님이 함께 하자는 전화가 왔다. 향사연 모임에 나경수 교수님, 윤여정 님과 함께 참석하여 용아 생가와 송호영당을 견학하고, 충주박씨 후손의 얘기를 들었다. 뒷풀이 저녁행사까지 하고 돌아오니 즐거움과 피곤이 교차했다. 밤에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진행되었다.
22일 역사교사모임이 계속되고, 아버님이 점심식사 차 집에 오셔 가족과 함께 삼계탕을 먹었다. 이후 나주 석현동 산정마을에 무슨집이 있다고 방문했더니, 만봉천 상류에 새동네를 꾸미는 분이었다. 저녁에 이레동생과 함께 식단에 대하여 얘기 나누고, 친척을 통해 초밥요리를 배우기로 결심을 했지만, 어렵겠다.
23일 각화동 지역을 답사했다. 안병국님으로부터 고분위치를 비롯하여 지역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산물판매소도 취재했다. 갈증이 무척 나는데 수박을 그냥 막 먹으라고 한 노점사장님께 감사 감사(사진을 찍었는데, 아직 보내드리지 못함). 인생살이 고생했던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24일 각화동 지역이 행정동으로 문화동에 속한다는 내용을 비롯하여 고분의 위치, 사진촬영지의 문의를 위해 이종일, 김학휘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괌디브디 자료 선물로 받았다. 문과 심이 광주땅이야기 구입했다(1/4로).
25일 진부장과 중복다림이라고, 금호지구에 가서 맛있는 생선회를 먹었다. 40대 남성이 혼자 운영하는 가게로 단골이 있는 집으로 보였다. 이라크와 축구해서 승부차기에서 졌다.
26일 최정기 교수 연구실에서 나주자료수집에 관하여 문의가 왔다. 동참여부를 물어왔지만, 상세내용 메일로 요청했다(아직까지 받지 못했다).
27일 1차 보충을 마감했다. 하루 4시간씩 이어지는 시간이 조금 힘들었지만, 1학기 중 미진한 부분을 더했기에 의미는 있는 듯하다. 아이들이 얼마나 관심을 보였을까. 오후 시청 마케팅본부실에서 광주스토리텔링에 관해 회의가 열렸다. 선후배님들(박선홍, 정구선, 정철, 이서영, 송기동)과 함께 열띤 토론을 했다. 광주최초의 서점에 관한 얘기를 비롯 광주에 관한 스토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송기동 교수님은 위디피아백과사전에 우선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이사님 부친상에 들려 임성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대학졸업 후 처음만난 학우들이었다. 봉선동 부채골 일대가 상전벽해다.
28일 화려한 휴가를 아내와 함께 보고, 울고, 웃었다. 오후 윤여정님이 주관한 나주보름날행사에 참석했다. 물회와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복암리 고분위에서 달구경했다. 강과 이, 강부부, 유총장과 함께했다.
29일 영문과 함께 익산 송학동 삼합요리 취재차 갔다. 고진감래 험한 길 개척한 누나를 만났다. 그 특별한 맛과 독특한 가게 운영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특히 홍어애국 맛은 일품이었다.
30일 김위원님이 배드모임에 나오셨다. 신발과 아내 라켓손질 차 샵에 들렸다. 해남 변남님이 오셔 박사학위 논문 준비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영산강일대의 포구에 관심이 많고, 토기파편이 주 연구 분야라고 했다. 고대 한일 간 문화교류에도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31일 허민 교수님과 함께 득량만 공룡알터를 탐사했다. 해변 바위에 공룡알이 여기저기 노출되어 있어 신기했다. 주민, 해당 관청 사람들을 만나 진행되고 있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신 분들이 존경스럽다. 비봉리 어민이 서대를 잡았으니 구입했으면 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다음으로 미뤘는데, 값은 5-6마리가 1만원이었다. 갯벌체험장과 전시관을 둘러보고, 지중해 식당으로 갔다. 나와 이름이 같은 주인장을 만났다. 남해 풍광을 담은 집이었다. 조성하는데 꽤 고생을 많이 한 듯 보인다.
8월1일 또 한 달이 지나갔구나. 점점 열대야는 심해지고, 어디론가 피서를 가야지 맘만 먹고, 막상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장흥 호계리 지역에 관해 문헌을 검토했다. 막상 글을 쓰려고 했지만, 답사를 다시 거쳐야 한다. 물난리를 호랑이가 지켜주라는 뜻을 가진 동네로 별신제와 마을역사를 200년 이상 기록해왔다. 동백정에서는 시회도 열렸는데, 양반의 공간이면서 동네사람들의 사랑방 구실도 했던 성 싶다. 김위원님이 보내준 내용을 옮긴다.
수신 장흥군수
참조 문화관광과장
제목 장흥 호계리 별신제 문화재 지정신청 의뢰
귀 군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우리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장흥 호계리 별신제>에 대하여 문화재 지정신청을 의뢰하오니 귀군에서 지정신청서를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O 문화재명 : 장흥 호계리 별신제(長興 虎溪里 別神祭)
O 신청종별 : 무형문화재
O 전 승 지 : 전남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
O 보유단체 : 장흥 호계리 별신제 보존회
O 신청사유(특징 및 가치)
- 장흥 부산면 호계리에서 전승되어온 마을 공동체 의례로서 조선시대 마을 형성 이후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 후기(1715년)부터 관련 기록물(<대동계책> 등)이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어 공동체 의례의 역사 연혁과 변천을 알 수 있음.
- 별신제라는 용어는 전남지역에서는 많이 쓰지 않은 용어이지만, 장흥 호계리 지역에서 매년 모시는 전형적인 마을제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특징이 있으며, 전남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민간신앙으로서의 당산제와는 크게 차이를 보임.
- 제의 형식은 유교식 제차로 진행되는데 제차, 제물, 제관 등이 <국조오례의>의 길례에서 볼 수 있는 관제(官祭)의 형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으며 호계리 별신제를 통하여 관제가 민간화되어가는 양상을 알 수 있음.
- 장흥 호계리 별신제는 1700년대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관련 자료가 현존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남도문화제등을 통하여 민속예술성이 확인되었고, 전문가들의 마을조사보고서와 논문등을 통하여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정리되었고, 별신제 보존회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음.
* 관련자료 : 호계리 대동계 책 20여책, 마을조사보고서, 논문 등
장흥 호계리 별신제 보존회
3일 전남교감연수반 답사안내를 했다. 국립광주박물관을 비롯하여, 신창동, 덕흥, 운수골, 평동공단, 봉호포, 승촌, 금천일대, 나주읍성, 내영산, 영산창, 재민창, 구진포, 회진, 복암리고분군, 정가, 동산(박인천고향), 죽지 소요정, 공산 재창포, 왕곡, 새끼네, 동척창고, 영산포 영일식당(점심), 우찌야마와 구르즈미가옥, 영산포 선창, 둥구나루, 나주대교, 남평, 한두재, 포충사, 대촌사거리, 서창, 풍암금호지구, 상무지구, 빛고을로를 거쳐, 비엔날레주차장에 16시에 도착했다. 목마름이 심하여 일곡상가 지역의 오베로에서 생맥 연거푸 마셨다. 명은이 공부 잘해 장학금을 받았다는 얘기와 함께 학교생활이 재미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기분이 좋았다.
4일 시골에 갔다. 허수아비 설치를 하느라 더위에 거의 탈진하신 아버님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동네 화장양반이 87세로 돌아가시고, 그 분 조문을 갔다 오다 이웃동네 영감님도 운명을 달리했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들었다. 부모님 모시고, 나주 물회집에 갔다. 그 맛을 본 아내부터 떨떠름했다. 올해 첫물 청포도를 따고, 오랜만에 상무지구를 답사했다. 1만원 정도의 옷들이 있었는데, 쉬 보면 그렇듯 했으나, 그냥 그값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뒤뜰이라는 곳에 들려 저녁을 먹었다. 친절로 손님을 모은다는 평가다. 특히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수준급이었다. 음식 맛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맞춤이었다. 이어 그 유명한 엠모밀집에 또 들려 마른모밀을 먹었다. 배가 찬 탓도 있지만, 맛은 소문보다 못했다. 누가 그렇게 극찬했는지 밖에서 기다리는 분이 있었다. 주인장의 약간 자신만만한 자세가 돋보였다. 아침 운동부터 저녁까지 푹 쉬었다고 본다. 피서다고 생각했다. 불이 나간 간판 전등을 교체하고, 차 깔판과 대자리도 설치했다.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불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