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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관용의 실천 — 5절
신앙의 외적 표현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Ⅲ. 기도의 권면 — 6절
염려에 대한 신앙적 대응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라.
Ⅳ. 하나님의 평강 — 7절
기도에 뒤따르는 하나님의 보호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이 구조는 명령(4–6절)과 약속(7절) 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4–6절에서 바울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하고,
7절에서는 그러한 기도의 삶 가운데 누리는 하나님의평강을 선포합니다.
다만 7절은 기도를 통해 평강을 기계적으로 얻는다는 공식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은혜를 나타냅니다.
Ⅰ. 4절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명령 1 — 기뻐하라
기쁨의 근거: 주 안에서
명령 2 — 항상 기뻐하라
기쁨의 범위: 모든 상황과 시간
반복 강조 —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쁨의 중요성을 재확인함
1) “주 안에서” — 기쁨의 근원
헬라어는 엔 퀴리오(ἐν κυρίῳ)로, “주님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기뻐할 이유를 외부 환경에서 찾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찾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기록된 서신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은 고난이 없어서 생기는감정이 아닙니다.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 기쁨입니다.
주석적 의미: 기쁨의 중심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2) “항상” — 기쁨의 지속성
‘항상’이라는 표현은 기쁨이 특정한 예배 시간이나 형편이 좋을 때에만 제한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고 성도가 슬픔이나 고통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적 기쁨은 슬픔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태도입니다.
3)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반복의 강조
바울은 같은 명령을 반복함으로써 기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기쁨은 단순히 성격이 밝은사람의 특징이 아니라,주님을 신뢰하는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신앙적 태도입니다.
해설: 4절은 이어지는 모든 권면의 출발점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감정만을 앞세우지않고,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나타내며,
자신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Ⅱ. 5절 —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나타내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명령: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근거: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1) “관용” — 단순한 친절 이상의 의미
헬라어 에피에이케스(ἐπιεικές)는 문맥에 따라 관용, 온유함, 너그러움, 합리적인 배려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언제나 끝까지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며 온유하게 대하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2) “모든 사람에게” — 관용의 범위
바울은 관용을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만 제한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은 교회 안의 성도뿐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관용을 드러내야 함을 강조합니다.
4절의 기쁨이 내면의 신앙이라면, 5절의 관용은 그 신앙이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3)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관용의 신학적 근거
헬라어 호 퀴리오스 엥귀스(ὁ κύριος ἐγγύς)는 “주께서 가까이 계신다” 또는 “주께서 가까우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맥상 두 의미를 서로 완전히 분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어느 한 의미만을 확정하기보다는,
주님의 가까우심이성도의 현재 삶과 미래의 소망 모두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해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고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신다는 믿음은 성도가 자신의 감정과 권리를 절대화하지 않도록 합니다.
관용은 약함이나 불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묵인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온유한 태도입니다.
Ⅲ. 6절 — 염려 대신 기도와 간구와 감사를 드리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 절은 본문의 논리적 중심입니다. 바울은 염려를 금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염려를 대신할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합니다.
부정적 명령
염려하지 말라
염려에 사로잡히는 태도를 경계함
긍정적 명령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와 간구와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감
범위의 대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아뢰라.
1)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 염려에 대한 권면
‘염려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메림나오(μεριμνάω)입니다.
여기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임 있게 생각하는행위 자체보다, 염려에 지배되어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를 경계하는 문맥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그리스도인은 걱정이나 불안을 느껴서는 안 된다”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의권면은 인간의 감정을 부정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염려를 궁극적인 지배자로 삼지 말라는 초청입니다.
2) “모든 일에” — 기도의 범위
기도할 수 있는 문제에는 크고 작은 구분이 없습니다.
생계와 건강, 인간관계,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공동체의 문제까지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와 ‘모든 일’의 대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3) “기도와 간구로” —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
본문에는 서로 연관된 두 단어가 사용됩니다.
바울은 막연히 마음을 비우거나 문제를 잊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실제적인 필요를말씀드리라고 권면합니다.
4) “감사함으로” — 기도의 태도
감사는 기도에 덧붙이는 형식적인 문구가 아닙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신 은혜와 현재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그분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감사한다고 해서 고통스러운 상황 자체를 좋은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탄식과 간구를 드리면서도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5) “하나님께 아뢰라” — 기도의 대상
기도의 궁극적인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통제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솔직하게 맡깁니다.
해설: 6절은 염려를 기도로 전환하는 영적 원리를 보여 줍니다.
염려가 생길 때마다 구체적인 필요를하나님께 아뢰고,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문제가 반드시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된다는약속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다는 초청입니다.
Ⅳ. 7절 —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7절은 6절의 권면에 이어지는 결과이자 약속입니다.
본문의 문장 구조
주어: 하나님의 평강
특징: 모든 지각에 뛰어남
동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심
영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1) “그리하면” — 6절과 7절의 연결
기도와 간구와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권면 뒤에 평강의 약속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연결을 기도의 양이나 강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평강을 얻는다는 공식으로 이해해서는안 됩니다.
평강은 기도라는 행위 자체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2) “모든 지각에 뛰어난” —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평강
헬라어 휘페레쿠사 판타 누운(ὑπερέχουσα πάντα νοῦν)은 인간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사람이 모든 문제의 이유를 이해하거나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해야만 누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여전히 어렵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누릴 수 있는 평강입니다.
이는 이성이나 분별력을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이해와 통제 능력에 한계가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의 평강” — 평강의 근원
평강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성도가 스스로 마음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얻는평안과는 다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평강은 단지 감정이 차분해지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안정과 신뢰, 그리고 그분의 보호 아래 있다는 확신을 포함합니다.
4)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평강의 보호 기능
여기서 ‘지키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루레오(φρουρέω)는 경비를 서거나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군사적 경비와 관련해서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바울의 표현은 하나님의 평강이 성도의 내면을 보호하는 파수꾼처럼 작용한다는 그림을 보여 줍니다.
즉, 하나님의 평강은 감정뿐 아니라 생각과 판단의 영역까지 보호합니다.
문제 자체가 즉시 사라지지않더라도,
두려움과 염려가 성도의 내면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붙드신다는 의미입니다.
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보호가 이루어지는 영역
이 표현은 평강을 누리는 삶이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평강은 단순한긍정적 사고나 자기 암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뿌리를 둡니다.
해설: 7절은 본문의 절정입니다.
성도가 모든 문제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 때문에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을 연결하는 핵심 논리
네 절을 하나로 묶으면 다음과 같은 흐름이 드러납니다.
4절 — 기쁨의 근원
주님 안에서 기뻐함으로써 환경을 넘어서는 신앙의 토대를 갖습니다.
5절 — 기쁨의 표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사람들을 대하는 관용으로 나타납니다.
6절 — 신뢰의 실천
염려와 필요를 기도와 간구와 감사로 하나님께 맡깁니다.
7절 — 신뢰의 열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이 흐름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5절과 6절의 관계입니다. 관용과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인간관계와 내면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 줍니다.
문맥적 배경: 왜 이 권면이 필요한가?
빌립보서 4:4–7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앞뒤 문맥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 문맥을 고려하면 본문을 개인의 불안 관리에만 한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관용을 실천하고,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삶을 함께 가르칩니다.
설교나 성경공부를 위한 구조 요약
설교 제목 : 염려를 넘어 누리는 하나님의 평강
본문: 빌립보서 4:4–7
대지 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4절)
대지 2.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나타내라 (5절)
대지 3.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 (6절)
대지 4. 하나님의 평강을 신뢰하라 (7절)
결론
빌립보서 4:4–7의 중심 메시지는 환경이 평안해져야 기뻐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뻐하고 관용을 실천하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절은 기쁨의 근원을,
5절은 그 기쁨의 삶의 표현을,
6절은 염려에 대한 신앙적 대응을,
7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보호와 평강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묵상할 때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이 질문들은 본문을 단순히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신앙의 변화로 연결하는 데도움을 줍니다.
행복한 교회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교회입니다
본문 : 빌4:4–7
Ⅰ. 서론: 행복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우리는 모두 행복한 교회를 꿈꿉니다.
성도들 사이에 사랑이 넘치고, 예배에 기쁨이 있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 주는 교회를 원합니다.
누구나 그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행복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교회에 문제가 없는 교회일까요?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없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으며, 모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교회일까요?
물론 교회에 어려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교회의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되며, 모든 가정에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의 행복은 문제가 없다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라도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성도들 사이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교회의 재정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수고했는데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질병과 경제적인 문제, 자녀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려움이 찾아오느냐 찾아오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전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자신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그것도 한 번만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반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바라보는 기쁨의 근거는 환경이 아니라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붙들어야 할 말씀도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의 기쁨은 상황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가 어떻게 기쁨을 회복하고,
염려를 기도로 바꾸며,
감사로 서로를 세우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1. 환경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은 그냥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 때문에 기뻐한다면 환경이 바뀔 때 우리의 기쁨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일이 잘되면 기뻐합니다.
건강하면 감사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사역의 열매가 나타나면 기쁩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교회에 어려움이 찾아오면 기쁨이 흔들립니다.
환경에만 근거를 둔 기쁨은 환경과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차원의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어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당장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쁨이 상황에 달려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주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형편은 흔들릴 수 있지만 주님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외적인 조건만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을 향한 믿음과 기쁨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봉사할 때 주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고,
서로를 만날 때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교회가 기쁨을 잃어버리면 봉사는 의무가 되고, 예배는 습관이 되며, 사역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기쁨을 회복하면 같은 예배도 은혜가 되고, 같은 봉사도 감사가 되며, 같은 만남도 축복이 됩니다.
행복한 교회는 문제가 없는 교회가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문제에서 주님께로 돌립시다.
불평할 이유만 찾지 말고 감사할 은혜를 찾읍시다.
상황이 좋아져야 기뻐하겠다고 미루지 말고,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2.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6절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도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찾아옵니다.
교회에도 염려가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 다음 세대는 어떻게 세워 갈 것인지, 성도들의 믿음은 어떻게 지켜 갈 것인지 고민합니다.
가정과 직장, 건강과 경제적인 문제도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바울은 그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은 성도에게 걱정이나 슬픔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말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염려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 이어 곧바로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염려를 없애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행동은 염려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염려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염려가 생기면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생각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를 오래 마음에 담아 두며,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밤낮으로 붙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한다고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의 평안만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염려가 찾아올 때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가정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자녀가 걱정되면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교회에 어려움이 있으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도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서로를 비난하기 전에 하나님께 지혜와 사랑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바울은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감사는 문제가 모두 해결된 다음에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은 불안하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 교회를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감사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염려를 나누는 공동체가 아니라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공동체가 됩시다.
문제를 만났을 때 서로의 불안을 더 크게 만드는 교회가 아니라, 함께 하나님께 무릎 꿇는 교회가 됩시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때 “왜 그렇게 걱정하느냐”고 쉽게 판단하지 맙시다.
대신 이렇게 말해 줍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불평이 기도로 바뀌고, 걱정이 간구로 바뀌며, 낙심이 소망으로 바뀌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의 교회는 단순히 문제를 함께 겪는 공동체를 넘어,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함께 신뢰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본론3. 감사는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기쁨은 전염됩니다
본문 7절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바울은 기도와 간구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한 다음, 하나님의 평강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문제만 바라보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평강은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해서 얻는 평강이 아닙니다.
상황이 여전히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믿음에서 오는 평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감사가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면, 감사하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교회의 분위기는 건물이나 시설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말과 태도,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는 만나기만 하면 불평이 이어집니다.
“왜 이것밖에 하지 못했습니까?”
“누구는 왜 저렇게 합니까?”
“우리 교회는 왜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교회는 문제를 정직하게 살피고 필요한 부분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결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반복적인 비난과 불평이 공동체의 언어가 되면, 성도들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공동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리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들이 오가는 교회는 어떻겠습니까?
감사하는 말은 수고하는 사람에게 힘을 줍니다.
격려하는 말은 낙심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줍니다.
작은 헌신을 알아주는 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사람에게 위로가 됩니다.
반대로 비난과 불평은 사람을 위축시키지만, 감사와 격려는 사람을 세웁니다.
물론 감사한다고 모든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일을 무조건 덮거나 필요한 문제 제기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세우는 말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감사가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기쁨은 전염됩니다.
한 사람이 밝은 얼굴로 인사하면 주변 사람의 마음도 밝아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감사하면 다른 사람도 감사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하면 굳게 닫혀 있던 관계에도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불평도 전염됩니다.
한 사람이 불만을 쏟아 놓으면 다른 사람도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불평을 퍼뜨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감사를 퍼뜨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낙심을 더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 될 것인가?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 사람 안에 있는 은혜와 수고를 발견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우리 한 사람의 말과 태도가 교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직분자만 교회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교회의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내가 건네는 인사 한마디, 내가 표현하는 감사 한마디,
내가 먼저 드리는 기도 한 번이 공동체를 세우는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감사가 전염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쁨이 전염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지쳐서 찾아오더라도 비난과 불평이 아니라 사랑과 격려를 경험하고 돌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 불평 한마디 대신 감사 한마디
오늘 우리는 빌립보서 4장 4–7절 말씀을 통해 행복한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행복한 교회는 문제가 전혀 없는 교회가 아닙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교회입니다.
행복한 교회는 염려가 없는 교회가 아닙니다. 염려가 생길 때 서로를 탓하기보다 함께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행복한 교회는 모든 사람이 완벽한 교회가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끼리도 감사와 격려로 서로를 세워 가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은 분명합니다.
“행복한 교회는 문제가 없는 교회가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봅시다.
마음에 염려가 있습니까? 기도로 하나님께 아룁시다.
감사할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다시 헤아려 봅시다.
그리고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운동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불평 한마디 대신 감사 한마디” 운동입니다.
거창한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말 한마디를 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불평이 나오려고 할 때 감사할 이유를 하나 찾아보십시오.
누군가의 부족함이 보일 때 그 사람이 수고한 일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교회의 아쉬운 점이 보일 때 개선할 방법을 생각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도 기억해 보십시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먼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루에 한 사람에게라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건네 보십시오.
“오늘도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우리 교회의 한 가족이어서 감사합니다.”
이 작은 실천이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말이 달라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교회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질 것입니다.
감사가 불평을 대신하고, 기도가 염려를 대신하며,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낙심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쁨과 평강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7절의 약속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봅시다. 주님 안에서 기뻐합시다. 모든 일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룁시다. 감사하는 말을 선택합시다.
우리 교회가 세상에 이런 고백을 들려주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 교회는 문제가 하나도 없는 교회가 아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저 교회는 모든 일이 순조로운 교회가 아니지만,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교회입니다.”
“저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아니지만, 감사와 기쁨으로 서로를 세워 가는 교회입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염려를 기도로 바꾸십시오. 감사로 서로를 세우십시오.
우리의 불평이 감사로 바뀌고,
우리의 염려가 기도로 바뀌며,
우리의 기쁨이 이웃에게 전해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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