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4:1-11
찬송가 154장 ‘생명의 주여 면류관’
앞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각 교회를 향한 징계와 칭찬이 각각 다르지만, ‘이기는 자’가 되라는 주님의 도전은 모든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이는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올 극심한 갈등의 시기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환난 가운데 필요한 위로와 용기를 얻기 위해 사도 요한은 성령에 이끌려 하늘의 문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역사의 과정은 정치적인 힘이 아니라, 왕으로 좌정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기에 이 땅의 교회는 그 어떤 핍박과 시련, 그리고 유혹 속에서도 소망이 있습니다.
보좌 위에 앉으신 이(1~3절)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사도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하늘에 올라가서 놀라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1장 19절에서 주님은 요한에게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시며, 지상의 일곱 교회를 향해 말씀하셨다면, 이제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십니다. 요한이 본 환상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땅히 실현될 내일에 대한 환상인 것입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기원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의 기원이 하늘에 있기에, 이 땅에 있는 교회를 향해 말씀하셨던 주님은, 이제 하늘의 교회를 보여주심으로 이 땅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을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사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이 되어 보게 된 것은 ‘하늘에 보좌’와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입니다. 여기서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은 ‘성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주와 역사를 통치하시는 왕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보좌는 왕이 앉는 의자를 말합니다. 왕은 보좌에 앉아서 자신의 나라를 통치하며 심판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이 왕으로서 우주와 역사의 통치자이자 심판자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대한 배경은 이사야 6장과 에스겔 1장, 다니엘 7장에서도 등장합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도 사도 요한처럼 하나님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하늘의 보좌는 지상에 있는 보좌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당시 지상에서는 로마 황제가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는 ‘주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자신에게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당연히 로마 황제가 로마 제국을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의 보좌에 앉은 황제로 인해 사도 요한은 유배를 당했으며, 성도들은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분이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땅의 모든 왕들의 왕, 황제 중에 황제가 바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요한으로 하여금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늘 보좌를 보게 하셔서 요한을, 그리고 성도들을 위로하십니다.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사람이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요한은 보석의 아름다운 색깔로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묘사했습니다. 이 보석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벽옥은 수정같이 맑고 투명한 보석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보여줍니다. 홍보석은 붉은 보석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여줍니다. 무지개는 노아 홍수 심판 이후에 종말까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켜주며, 그렇기에 녹보석은 푸른 보석으로 심판이 시행되는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먼저 당시 성도의 눈으로 하늘 보좌의 장면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세상 권력의 중심에 있는 로마의 황제로 인해 교회는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박탈당했으며 그 시련의 강도는 커져만 갔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벽옥 같고, 홍보석 같고, 녹보석 같은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그들은 은혜를 받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과 세상의 모든 풍파를 뛰어넘어 하늘의 보좌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악이 지배하고, 불의가 성행해 보이는 이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땅의 보좌에 앉은 자들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짓밟는다 할지라도, 악한 파도가 우리를 엄몰할때에도, 우리는 하늘의 보좌에 앉으사 여전히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 보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역사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하며, 주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 일곱 등불, 네 생물(4~9절)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십사 장로들과 네 생물을 보고 그들의 찬양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 보좌 주위에 이십사 보좌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십사 장로가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전체에 걸쳐 이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이들로 묘사되며, 두 번에 걸쳐서 그들 중 한 명이 해설자의 역할도 하며, 그들이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일에 동참하는 경우도 등장합니다.
이십사 장로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로, 뒤에 등장하는 네 생물과 마찬가지로 천사들의 한 그룹이라는 해석이며, 또 다른 해석은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가 결합 된 구약과 신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 전체를 대표한다는 해석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장로의 모습이 보좌에 앉아 있고,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실 때 ‘보좌에 앉게 해주시겠다’는 약속, 사데 교회를 향해 ‘흰 옷을 입게 해주겠다’는 말씀, 서머나 교회를 향해 ‘면류관을 주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동시에 역할에 있어서는 요한계시록 안에서 분명 성도와 구분된 역할과 존재로 등장하기에, 이십사 장로를 구약과 신약 시대의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천상의 존재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는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시내산에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때 강림하실 때 동일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벌어지는 곳에 나타나는 현상이기에 세상을 향한 심판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과 반드시 심판이 일어난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설명합니다. 일곱 등불과 성령님과의 관계는 스가랴 4장에 등장합니다. 스가랴 4장에서 ‘일곱 등불’이 새 성전 건축의 원동력이었듯이,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 계획이 성취되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6a)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는 모든 피조물로부터 엄연한 거리를 가진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에스겔 1장 22절에 ‘수정 같은 궁창’이 등장하며, 이는 보좌와 네 생물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7절에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와 위를 구분하셨습니다. 구약의 솔로몬 성전에 있는 ‘놋으로 만든 바다’는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들의 손발을 씻는 물을 담는 기구였습니다. 성전에 있는 바다는 성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한 것으로 성소 안과 성소 밖 마당을 구별시켜주는 경계선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늘 보좌에 앞의 '수정 같은 유리 바다'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거룩성과 위엄을 보여주며, 나머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된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6b-8)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앉아 계신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에 대해 증거합니다. 이는 에스겔 1장과 이사야 6장에 등장하는 그룹과 스랍을 떠오르게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동식 전차 보좌를 타고 오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보았는데 하나님의 보좌를 모시고 있는 네 생물의 형상도 보았습니다. 각각 네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각각 사자, 소, 독수리, 사람 등의 네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스겔 10장에서 이 네 생물의 이름을 ‘그룹’이라고 불렀고, 이 그룹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천사들을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이때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보좌에 앉으신 분을 향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며 찬양을 드리는 존재를 보았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스랍’이었고, 스랍도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모시는 천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요한이 보았던 네 생물은 에스겔이 보았던 ‘그룹’과 이사야가 보았던 ‘스랍’이 결합된 형태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이십사 장로가 보좌에 앉아, 흰 옷을 입고, 머리에 면류관을 쓴 모습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했다면, 이 네 생물은 동물의 대표인 사자, 가축의 대표인 소, 새들의 대표인 독수리, 모든 피조물의 대표인 사람의 형상을 함으로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네 생물의 역할은 모든 피조물의 대표로서 보좌에 앉으신 분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특징은 항상 예배하는 곳이며 예배가 끝나지 않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우리는 하늘 보좌의 영광을 경험하며, 세상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선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10~11절)
(9-10)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네 생물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모습에서 다시 이십사 장로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네 생물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했다면, 이십사 장로는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관을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는 속주의 왕들은 황제에게 복종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황제 앞에 자기의 왕관을 벗어 놓았습니다. 이십사 장로는 자기들의 머리에 금으로 된 관을 벗어 보좌 앞에 드렸습니다. 이것은 복종의 의미로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충성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경배의 행위입니다.
우리의 면류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굴복하며, 하나님만을 경배할 때,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 표현은 당시 로마 황제를 향해 지칭했던 표현들을 가져왔습니다. ‘당신은 합당하다’라는 표현은 황제가 승리의 행진을 하며 들어오는 것을 환영할 때 사용했고, ‘우리 주 하나님’은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서 황제를 신으로 숭배했던 표현입니다.
그러나 진정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신 ‘우리 주 하나님’은 로마의 황제, 즉 세상 권력이 아닌 하늘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셨고, 만물이 주님의 뜻대로 있었으며, 또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소아시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이 지상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함께 살펴본 하늘 보좌의 환상은 천상 교회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이 땅의 교회는 그 어떠한 핍박과 유혹 속에서도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시다는 참된 예배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인류의 역사가 진행된다는 하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그 어떤 고난과 염려가 우리를 연단한다 하여도, 두려움이 아닌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믿음으로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모든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이 세상의 권세 앞에 우리의 마음이 빼앗겨, 염려와 두려움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천상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만 우리의 면류관을 드리며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용기 있게 살아내며 ‘이기는 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이 아무리 거대해 보일지라도 하늘의 시선으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보좌 앞에서 예배하는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처럼 참되게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이 이 땅의 성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2. 이십사 장로는 어떤 존재이며, 그들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찬양하며 경배했습니까?
3. 네 생물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대표하고 있습니까?
4. 하늘에서 드리는 예배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어떠해야겠습니까?
(작성: 최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