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제일 객잔》
# 제3부 ― 오늘도 영업합니다
## 제35화 ― 비아의 자장가
밤은 깊었다.
낮부터 내리던 비는 어느새 가늘어졌지만,
처마 끝에서는 아직도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객잔 안은 조용했다.
청아와 연호는 이미 잠들었고,
설령과 설아도 같은 방에서 새근새근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연우는 주방에서 마지막 화롯불을 정리하고 있었다.
설화는 그 곁에서 찻잔을 닦았다.
창가에서는 검은 고양이 모습의 묘묘가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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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낯선 방.
낯선 사람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는 않았다.
창문을 조금 열자 빗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작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달빛 따라 잠이 들면
별빛 따라 꿈이 오네
길을 잃은 작은 마음
집으로 돌아오렴... ♪
노랫소리는 아주 조용했지만,
객잔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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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있던 묘묘의 귀가 쫑긋 섰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황금빛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노래."
묘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방문 앞에 섰다.
비아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울지 마라 작은 아이
달은 언제나 너를 비춘단다... ♪
묘묘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유모."
그는 아주 오래전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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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요계 왕궁.
어린 묘묘는 작은 왕녀를 등에 업고 정원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뒤를 한 여인이 미소 지으며 따라왔다.
푸른 옷.
긴 검은 머리.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노랫소리.
"묘묘."
"왕녀님이 잠들 시간이란다."
"조금만 더 놀게 해 주세요."
여인은 웃으며 왕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지금과 똑같은 자장가를 불렀다.
어린 왕녀는 그 노래를 들으며 금세 잠이 들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은하였다.
왕궁에서 왕녀를 키운 유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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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끝났다.
묘묘는 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설마..."
"비아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얼굴은 다르다."
"하지만..."
"노래가 너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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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객잔 뒤뜰.
무명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빗속에 서 있었다.
비를 맞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
비아의 자장가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무명의 몸이 굳었다.
"...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선명한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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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어느 날.
어린 무명.
아직 무명왕이 되기 전,
검은 머리의 작은 소년이었다.
그는 혼자 숲을 헤매고 있었다.
온몸이 비에 젖어 떨고 있었다.
그때.
푸른 우산 하나가 그의 머리 위를 덮었다.
"비 맞으면 감기 걸려."
우산을 씌워 준 사람은 어린 소녀였다.
열 살쯤 되었을까.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우산을 소년에게 내밀었다.
"같이 가자."
소년은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우산을 썼다.
그리고 멀리서.
한 여인이 지금과 같은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비아..."
무명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름 하나가 흘러나왔다.
기억은 다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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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비아..."
"왜."
"내가 그 이름을 알고 있지?"
연우가 뒤뜰로 나왔다.
"괜찮습니까?"
무명은 고개를 들었다.
"기억이..."
"조금 돌아왔다."
연우는 조용히 그의 옆에 섰다.
"억지로 떠올리려 하지 마십시오."
"기억은."
"돌아올 준비가 되었을 때 스스로 찾아옵니다."
무명은 빗속을 바라보았다.
"...무섭다."
"무엇이요?"
"혹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던 기억이 돌아오면."
"지금의 나는..."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연우는 잠시 말없이 비를 바라보다가 미소 지었다.
"사람은 과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럼?"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무명은 그 말을 오래 마음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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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비는 그쳤다.
비아는 객잔 마당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설아가 꽃을 들고 다가왔다.
"언니."
"이 꽃 예쁘지?"
비아는 꽃을 받아 들었다.
그 순간.
또 하나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왕궁 정원.
같은 꽃.
그리고 어린 왕녀가 웃고 있었다.
비아는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설화가 급히 달려왔다.
"괜찮아요?"
비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꽃을..."
"본 적 있어요."
"어디서?"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주 행복했던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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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의문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비아는 왕녀가 아니다.'
'은하도 아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의 기억을 모두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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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비아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꿈속이었다.
끝없는 안개.
푸른 달빛.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는 비아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드디어..."
"널 찾았구나."
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에 작은 은빛 방울 하나를 쥐여 주었다.
맑은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링...
그 순간.
꿈속 하늘에 거대한 달이 떠올랐다.
달 표면에는 희미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기억의 문은 아직 절반만 열렸다.**
비아는 놀라 손을 뻗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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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비아는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깼다.
손을 펼쳐 보았다.
꿈이었다.
분명 꿈이었는데.
손바닥 위에는 작은 은빛 방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방울을 집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묘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월령의 기억방울."
"어째서 그것이..."
객잔에는 다시 평온한 아침이 찾아왔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아의 기억은 단순히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아주 오래전,
의도적으로 봉인해 두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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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화 예고
## 제36화 ― 기억방울
비아의 손에 남겨진 신비한 은빛 방울.
묘묘는 그것이 요계의 기억을 봉인하는 '기억방울'임을 알아본다.
방울을 깨뜨리면 기억은 돌아오지만,
동시에 봉인된 존재도 깨어날 수 있다.
한편 무명은 방울을 바라보는 순간 또 다른 이름을 떠올린다.
"...은하."
비아와 무명을 이어 주는 천 년 전의 인연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