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이 몇날 며칠 주야창창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더니 어느 날 고스톱 머니를 삼천만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고스톱을 칠 때 나와 남편은 스타일이 아주 다르다.
난 그냥 어느 방 하나를 선택하면 나올 때까지 그 방에 꾹 눌러 앉아 오는 손님 반겨 주고 가는 손님 보내 주고 그런다.
그러나 남편은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며 열심히 돌아 다니다 밥 하나 걸렸다 싶으면 껍질까지 홀라당 벗겨 놓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해서 천만원 되고 이천만원 되고 지난 주 일요일엔 드디어 삼천만원 고지에 올라섰다. 그러고 나서는 마우스를 나한테 넘겨 주고 아들이랑 유쾌 상쾌 통쾌하게 목욕탕엘 간 것이다.
남편이 놀던 방을 보니 맞고 방이었다.
이게 그렇게 재미 있나 싶어서 나도 그 방에 눌러 앉아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아, 내 스타일을 또 하나 말하자면
이왕 내 돈 아닌 거, 재미나게 시원하게 쳐 보자는 것이다.
그 날도 평소의 습관대로 아슬아슬하거나 말거나 왠만하면 고를 불러가며 신나게 쳤었다.
삼천만원이 단 몇 분만에 이천만원이 되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천만원이라면 얼마나 부자인가.
느긋하게 의자에 제끼고 앉아 치고 있었는데
이게 왠 일이더란 말인가, 그 날은 마침내 하느님도 노망이 나셨던가 보다.
투 폭탄에, 4배짜리 미션에, 8고에, 피박에, 광박에, 청단, 초단, 고도리에, 하여간에 뭐 할건 다 해버리는 아주 인정머리 없는 상대에 걸려 도망도 못가고 한 자리에서 딱 2천만원을 날려 버렸다.
남편이 목욕간 지 채 한시간도 되지 않아 삼천만원이 88만원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이런 경우도 있나, 이백인가 이천인가 동그라미 헤아리고 있는 동안에 상대는 벌써 날라 버렸다.
허무하게 그 88만원 들고 새 손님을 맞았는데
글쎄 인정머리 없기는 이 넘도 매 한가지여서 그 88만원까지 한방에 홀라당 날려 버렸다.
부자 삼 대 안 간다더니 삼대가 다 뭔가, 한시간도 채 안 간 것이 내 고스톱 머니였다.
0원이라는 그 믿어지지 않는 수치를 보다가 리필을 받으려고 들어가 보니
고수는 또 리필이 안 되고 급수를 팔아야 머니를 벌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고수 등급을 팔아 80만원, 중수 등급을 팔아 40만원, 그렇게 보충을 해 놓고
하도 어이가 없는 황당한 일에 저녁밥이나 짓는 것밖에 딴 도리가 없어 부엌으로 줄행랑을 쳤었다.
목욕탕에서 돌아 온 남편은 그 기막힌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지, 아니면 설마 싶었던지 삼겹살 구워 맥주까지 한 잔하고 컴 앞에 앉더니 그제서야 이 마누라 고스톱 실력을 인정했는지 다시 삼천만원 고지를 향한 투혼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돈 버는 일이 어디 투혼만으로 되는 일이던가 말이다.
오늘 밤에 40만원 정도를 남겨 두고 테레비 앞으로 갔는데
그 막간을 이용하여 내가 또 컴 앞에 앉았다
결과는 딱 세판만에 0원.
리필 5만원 받아서 다시 두판만에 0원.
이젠 리필도 못 받고 하릴없이 앉아 이 허무함을 달래려고 글이나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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