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에는 노고산(老姑山)에 추사필적암각문(秋史筆蹟岩刻文) 등 여러 선인
들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많이 있는 독재동계곡(篤才洞溪谷)을 위주로 답사
하는 등산경로를 적어본다. 필자는 이 독재동계곡을 근래에는 9월16일에 올라
가보았고, 또 10월17일과 10월31일에도 가 보았다. 그리고 과거에도 도봉문화
원 한문반원들과도 복지관 고전반원들과도 가본 일이 있다. 그래서 올려진 사
진들이 여러 계절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에서 노고산을 오르려면, 일단 삼하리 매내미마을로 가야 한
다. 의정부쪽에서 이 삼하리 매내미마을로 가려면 전철 1호선을 타고 가다, 의정부
가능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온다. 가능1동 주민센터 앞에 위치한 송추 방면 정
류소에서 360번 불광역 행을 타면, 흥선광장을 지나 39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장흥
면 소재지에서 고가도로 아래로 돌아서 371번 지방도 일영로를 타고가는데, 삼하
리에서 내려야 한다. 만약 3호선 전철을 타고 간다면, 구파발 역에서 내려 길을 건
너 의정부 금오중학행 360번을 탄 후에, 지축동을 지나고 매내미고개를 지나서 삼
하리에서 내리면 된다.
삼하리 매내미마을(전원일기마을)을 들머리로 하여 노고산 최고봉을 오르는 등산
코스는 둘째지도에서 보는 대로 삼하리 전원일기마을로 들어가서 금바위저수지의
뒤쪽 지능선을 올라서 흥국사 뒤쪽 산의 주능선 길을 만나게 된다. 이 주능선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최고봉에 오르게 되는 [1]번 코스 등산로를 선택한다.
삼하리 버스정류장에서 삼상리 쪽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면 “SELF COFFEE 스톤
하우스” 라는 간판이 보이고, 그 커피점과 골목 경계선에 담벼락이 쌓여져 있으며,
그 담벼락 옆에 <노고산등산로입구>라는 이정목이 보인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노고산으로 올라가는 지능선이 나오고, 지능선을 따라 계속 걸어 올라가면 먼저 노
고산②에서 정상에서 삼하리로 내려오는 [노고산정상 420m, 금바위저수지 2.7km,
삼하리 2.0km]라고 표시해둔 이정목이 있는 곳에서 주능선에 합해지는 [3]번 코스
등산로이다.
▶SELF COFFEE 스톤하우스 앞 골목길을 들머리로 노고산 오르기
삼하리 버스정류장-(북쪽 도로로 약 80m)→SELF COFFEE 스톤하우스 앞-(오른쪽 골목으로
약 60m→ 4거리(왼쪽 집 마당에 백구 1마리+황구 1마리)→ 청실농원 출입문 앞-(왼쪽 길로
약 20m)→Y자 삼거리(노고산 등산로 2.5km↗ 푯말)→송림지대 속 고인돌 유적1기)→마을
제석단(큰 상석 2개)→425m봉 서릉 첫째 4거리안부(←추사 필적 암각문 300m, ↑노고산정
상 1.9km, ↓삼하리 500m 푯말) →248.8m봉 쉼터(벤치 1개)→425m봉 서릉 둘째 4거리
안부(←추사 필적 암각문 680m, ↑노고산 정상 1.1km, ↓삼하리 1.4km, 금바위저수지 1.1km
→ 푯말과 벤치 1개)→ 약 15m 길이 밧줄→ 쉼터(벤치 1개)→ 약 60m 길이 밧줄 하단부→
60m 길이 밧줄 상단부-(약 15m 전진)→425m봉 북쪽 약 20m 아래 T자 삼거리(←노고산
정상 420m, ↓삼하리 2.0km, 금바위저수지 2.7km→ 푯말). 이후 왼쪽 능선을 타고 노고산
정상 헬기장으로 향한다.
독재동(篤才洞)이란 말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사는 마을 또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 노닐던 골짜기"
란 의미이다.
독재동계곡(篤才洞溪谷)은 규모는 작지만 이 지역민들의 피서지로
이용되는 곳이다.
계곡 곳곳에 옛날 이 지역에는 글깨나 아는 선비들이 자주 드나든
흔적들이 여러 암각문(岩刻文)으로 남아 있다.
독재동(篤才洞)은 노고산(老姑山)의 해발 120m 지점인데,
노고산은 양주시 장흥면과 고양시 지축동 경계에 위치한다.
보통사람들은 노고산을 고양시 흥국사(高陽興國寺) 뒷산이라고 말하면서,
흥국사를 들머리로 하여 이 산을 많이 올라간다.
그러나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매내미마을을 거쳐서, 금바위 저수지로도
이 산을 오르내린다.
매내미마을은 그 형성 시기가 알 수 없는 자연마을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나마 매내미라는 마을이름도 MBC 드라마 "전원일기" 촬영지가 된 이래로
"전원일기마을"로 바꿔져서 지금은 고유한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篤才는 <도타울-독(篤)>자와 <재주-재(才)자를 써서, ‘재능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또는 ‘근본(根本)을 지키도록 힘쓰자’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독재동계곡(篤才洞溪谷)은 옛날에는 난리나 조정의 모함을 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피난지라는 설도 있다.
추사암각문(秋史岩刻文)에 대하여 삼하리 토박이 주민은 제주도로 귀양 간 추사
가 이곳을 직접 다녀가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추사(秋史)를 따르고 좋아했던 지역
선비들이 추사에게서 글씨를 받아다가 바위에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노고산독재동추사필적암각문
老姑山篤才洞秋史筆蹟岩刻文
경기도 기념물 제97호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산63-1
바위에 새긴 이 글씨는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秋史金正喜)선생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노고산 계곡의 바위에는 몽재(夢齋), 만의와(萬懿窩), 가탁천(可濯泉),
미수선생장구지소(眉叟先生杖屨之所) 등 여러 명문이 흩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몽재(夢齋)라고 쓰여진 암각문의 왼쪽 아래에 추사(秋史)라는
명문이 있어 김정희선생의 필적임을 시사하고 있다.
활달하고 거침없는 필체가 호방한 추사체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추사의
필적을 누군가 이곳 전경의 바위에다 새겼을 가능성이 짙다.
따라서 추사체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또한 이곳에는 미수 허목
(眉叟許穆:1595~1682)선생과 그의 문하인 송월재 이시선(松月齋李時善 :
1625~1715) 등의 글씨도 남아있어 조선 서예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글씨가 낡고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 글이 암각 되어 있을 것으로 추리해 본다.
"載三恩 拜岩亭 (재삼은 배암정)
세 가지 은혜를 받들고, 암정에서 감사하며 절한다.
甲子 八月 二十七日 (갑자 팔월 이십칠일)
갑자년(1684년) 음력 8월 27일"
글자가 모두 보이지는 않지만,
지붕 바위 윗면에 암각된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복원해 본다.
君降三恩 (군강삼은) 임금은 세 가지 은혜를 내리고,
師敎四可 (사교사가) 스승은 네 가지 옳은 것을 가르치고,
父遺萬券 (부유만권) 아버지는 많은 문서를 남겼으니,
感祝者我 (감축자아) 내가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축복한다.
(감사하고 축복할 사람은 나로다.)
李時善謹書 (이시선근서) 이시선이 정중히 이 글을 쓰다.
추사필적암각문이 있는 독재동계곡으로 향해서 간다
계곡물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는길인데
거의 모든 바위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한자를 모르면 차라리 외면하면 되겠는데,
명색이 이 시대 남은 마지막 유학 가문의 막내라고 할 수 있을지?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고나 할까?
글자가 모두 보이지 않는다 - 닳아서 보이지 않는 글자도~
탁본을 할 수도 없고??? 원본을 찾아서 다시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