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강의안 2
밀 II
1. 우월성의 기준
어떤 쾌락을 다른 쾌락보다 질적으로 우월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쾌락의 질과 양의 결합을 다른 쾌락의 질과 양의 결합보다 우월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떤 쾌락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떤 두 가지의 쾌락에 대하여 만일 둘 모두를 경험한 모든 사람 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호한다면, 즉 그것을 선호하여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도 선호한다면 바로 그것이 더욱 바람직한 쾌락이다."({공리주의} 211쪽)
정당한 판단자들(즉 두 종류의 쾌락을 모두 경험하고 오직 이런 쾌락들의 본래적 특성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바가 쾌락들을 질적인 측면에서 비교하여 구별해 주는데 사용되는 기준이다.
이러한 정당한 판단자들의 선택 또는 선호는 또한 "양에 상반되는 질을 측정하는 규칙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물음: 정당한 판단자들의 선택이 우월성을 구성하는지(따라서 그들이 선택하는 쾌락이 정의상 우월한 것인지) 아니며 정당한 판단자들이 항상 우월한, 상위의 쾌락을 선호하는 것이 단지 우연적인 사실에 불과한 것인가?
만일 이것이 단지 우연적인 사실에 불과하다면 여전히 어떤 쾌락이 지니는 우월성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밀은 정당한 판단자들이 질적으로 우월한 쾌락을, 설령 그것이 상당한 불만족을 동반한다 할지라도 더 선호할 것이다.
II.상위의 능력들
밀은 높의 질의 쾌락들이 인간이 상위의 능력들을 발휘하는 것과 연결된다.
인간이 상위의 것들을 욕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능력들을 발휘하고 이로부터 생겨나는 쾌락들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하위의, 동물적인 삶이 쾌락들로 가득 찬다 할지라도 이러한 삶과 상위의 능력들ㅇ르 충분히 발휘하는 인간적인 삶을 결코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과 만족은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인간들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불만을 느낀다.
그러나 쾌락의 양의 정도가 곧 인간의 행복의 척도는 결코 아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에 찬 인간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에 찬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 그런데 만일 바보나 돼지라면 이와는 다른 견해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자신이 속한 한 측면밖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측면을 모두 알아야 이들 둘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공리주의}, 212)
소크라테스의 삶에 포함되어 있는 쾌락의 질은 바보의 쾌락의 질보다 우월하고 돼지의 쾌락의 질보다는 더욱 우월한 것이므로 소크라테스의 삶에 상당한 불만족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여전히 쾌락의 측면에서 우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고상한 것들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 매우 취약하다."(213)
이 능력은 유혹이나 성격사의 결함에 의해서 손상될 수도 있으며, 나이 때문에 아니면 인내심의 부족으로 또한 강건함이나 용기 또는 기회의 부족으로 무디어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상위와 하위의 쾌락 모두를 똑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기꺼이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위의 쾌락을 더 선호하리라는 것은 매우 의문시되는 일이다..."(213)
정당한 판단자, 즉 상위와 하위의 쾌락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의 견해에 최종적으로 호소하면서 이러한 결정이 상위의 쾌락을 선택하는 원인을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밀은 확신
인간의 행복을 정의하는데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상위의 능력들을 발휘하는 것과 이로부터 얻는 기쁨이다. 또한 행복의 구성요소에 포함되는 것은 자유와 능력의 감정, 안도감, 인격의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조화 등이다.
우리가 인간의 행위를 평가하는 기준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복합적인 목적이며 이 목적을 증진시키는 행위는 옳은 것으로, 이를 훼손시키는 행위는 그른 것으로 평가하게 된다.
III. 공평성
"행위에 있어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공리주의의 기준을 형성하는 행복은 결코 행위자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그 행위와 관련되는 모든 사람의 행복"(218)이다.
공리주의는 공정하고 개인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으며, 자비로운 관망자를 즉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먼저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얻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전체의 행복이라는 목표를 기꺼이 추구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공리주의 원리
"다른 사람들이 네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도 다른 사람에게 행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교육과 사회 제도를 통하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공동의 선을 바라고 개인의 행복과 전체의 행복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도록 인도되어야 한다.
*의무 또는 옳은 행위의 기준 vs 행위를 수행하는 우리의 동기의 구별
"무엇이 우리의 의무이며 어떤 기준을 통해서 우리가 그것을 바라게 되는지를 밝히는 것은 윤리학의 임무에 속한다. 그러나 어떤 윤리학의 체계도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의 동기가 의무감이어야만 한다는 점을 요구할 수는 없다."(219)
동기는 어떤 행위의 도덕성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를 한 것이다. 그의 동기가 의무감인지 아니면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보상받으려는 희망에서인지는 상관이 없다. 자신을 신뢰하는 친구를 배반한 사람은 나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설령 그가 더 큰 의무감에서 다른 어떤 친구를 도우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이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219)
유용성의 원리가 요구하는 바는 고통을 능가하는 쾌락의 전체적인 총량을 최대화하는 결과를 낳는 행위를 수행하라는 것이지 인류에 대한 사랑이나 다른 사람들의 선을 추구하는 행위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동기로부터 행위 하는 사람들은 매우 존경받으며 이러한 동기에 따른 행위들이 자주 사회 전반에 큰 이익을 낳는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도 이런 행위들은 적절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을 옳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익이지 동기가 아니다.
IV. 부수적 원리들
과연 유용성을 계산할 시간이 있는가? 이런 측면에서 과연 공리주의가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의 경험은 어떤 종류의 행위가 지닌 성향이 공공의 선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방해가 되는지를 일반화하여 판단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도덕 규칙들은 이러한 행위들의 성향들을 나타내기 위해서 형성된 것들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그르다"등의 규칙들을 부수적인 또는 하위의원리들 아니면 간접적인 일반화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유용성의 원리에 부수되는 또는 그 하위에 놓이는 원리들로서 유용성의 원리를 통해서 구체화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떤 종류의 행위가 지닌 성향을 경험에 비추어 일반화하려 할 때 등장한다.
그러나 부수적 원리들은 예외를 허용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단지 일반적인 경우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줄 뿐이다.
부수적인 규칙들은 의무와 상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부수적 원리들 중 하나가 우리에게 진실을 말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다른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여 진실을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유용성의 원리, 즉 도덕성의 궁극 원리에 호소하여야 한다.
"만일 유용성이 도덕적 의무의 궁극적인 근원이라면 유용성은 부수적 원리들의 요구가 서로 양립 불가능할 때 그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여야 하는지를 결정해 준다."(226)
V. 도덕성의 구속력
유용성의 원리와 그것에 부수되는 원리들에 따르는 동기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그들을 따라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갖는 구속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는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우리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과 상충함에도 불구하고 왜 오리는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킬 의무를 지니는가?
밀: 훌륭한 공리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외적인 제재와 내적인 제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외적인 제재
우리가 전체의 선을 추구하지 않을 때 부과되는 처벌의 두려움(신 또는 다른 사람)과 우리가 전체의 선을 추구하였을 때 뒤따르는 보상의 희망을 포함한다.
유용성의 원리를 채택한 사회는 구성원들이 이 원리에 따르도록 만들기 위한 강력한 자극을 부여할 수 있다.
내적인 제재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또는 부수적인 도덕 원리들 중 하나를 위반하게 될 때 느끼는 내적인 느낌. 의무를 위반할 때 후회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런 내적인 제재는 주관적인 것으로서 자주 교육과 사회적 문제에 의해서 강화되고 확대된다.
이러한 내적인 제재의 기초에는 인간에 대한 사회적 정서가 본질적으론 내재한다.
"이러한 확고한 기초는 바로 인류에 대한 사회적 정서이다. 우리와 같은 동료 인간들과 하나가 되려는 욕구는 이미 인간 본성의 강력한 원리로 자리잡고 있으며 더욱이 진보된 문명의 영향력에 의해서 심지어 거듭해서 더욱 강해지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231)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하나라는 감각과 더불어 성장한다.
"각각의 개인이 항상 지니고 있는,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간주하는 뿌리 깊은 관념은 자신의 정서와 목적들과 다른 동료 인간들의 정서와 목적 사이에 반드시 조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자신의 자연적인 욕구로 느끼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223)
"하나됨의 정서"는 유용성의 원리의 궁극적 제재.
우리가 그 원리에 따르도록 동기를 부여하며 또한 그 원리에 따르는데 실패한다면 후회를 느끼게 하는 근거
VI.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
행위 공리주의
각각의 개별적인 행위가 그들이 산출하는 쾌락과 고통의(행복과 불행의) 전체 값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옳은 행위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 중 최대한의 유용성을 지닌 행위이다.
규칙 공리주의
유용성의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은 개별적인 행위들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행위를 요구하는 규칙 또는 관행이다.
우리는 어떤 규칙이나 관행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여야 하는데 그런 규칙이나 관행에 따랐을 경우 생기는 결과를 검토함으로써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만일 그 관행 또는 규칙에 일반적으로 따르는 것이 그런 관행이나 규칙이 없는 경우보다 더욱 큰 쾌락/행복을 산출한다면 그 관행 또는 규칙은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
규칙 공리주의자에게 있어 어떤 개별적 행위가 옳은 경위는 그 행위가 최대한의 유용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어 이미 도덕적으로 정당화된 규칙 또는 관행을 따를 경우이다.
행위공리주의에 대한 비판
1. 개별적인 행위들의 결과를 측정하기가 어렵다.
처벌이라는 관행을 구성하는 많은 규칙들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2. 행위 공리주의자들이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는 약속을 파기하거나 거짓말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즉 그런 상황에서는 약속의 파기나 거짓말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 큰 유용성을 지닌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고 그것은 도덕적 직관에 배치되는 것이다.
규칙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
이런 규칙들은 대락의 규칙으로, 우리의 행위를 인도하는 지침으로 활용되며 어떤 한 순가에 할 수 있는 행위들의 유용성을 계산하기가 어려울 때 행위를 결정하는 절차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규칙 또는 지침들은 예외를 허용하여야만 하며 만일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을 가장 크게 증진시키는 분명한 방법인 경우가 생간다면 이런 경우에는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일 것이다.
VII. 정의
공리주의: 유용성, 결과주의, 미래를 예견
정의론: 과거를 평가, 유용성과는 다른 요소
내가 약속을 지키기로 한 것은 그에 앞서 약속을 지키는 것의 유용성을 계산해서가 아니라 내가 행한 바, 즉 내가 한 약속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는 유용성의 한 예이다.
부정한 행위들의 예
1)한 개인으로부터 "그의 개인적인 자유와 그의 재산 또는 법적으로 그에게 속한 다른 어떤 것을 빼앗는 것"(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