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문을 따고 들어서자 어머니 냄새가 포연砲煙 처럼 훅 기습해 왔다. 나는 역겨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납작하게 일그러졌다. 냄새는 순식간에 공격하듯 온몸에 달라붙었다. 어머니의 냄새는 너무도 강렬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내가 회사에서 돌아올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는 것은 언제나 아내가 아닌, 어머니의 냄새였다. 아내는 어머니 냄새 때문에 잠시도 집에 붙어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내는 일주일째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언니가 아파서 병구완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냄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냄새는 보통 냄새가 아니어요. 두엄 썩는 냄새, 아니 제초제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아요. 집에 있으면 냄새 때문에 식욕도 떨어지고 생머리가 지끈거려요. 병이 나겠다니까요. 꼭 무서운 바이러스 같다고요."
내 귀에서는 언제나 아내의 짜증 섞인 투정이 윙윙거리게 마련이다.
"세상에, 제초제 냄새라니……."
나는 아내의 엄살이 좀 지나치다 싶었다. 하기야 온종일 어머니의 냄새에 파묻혀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낸다는 것은 고역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냄새를 바이러스와 제초제에 비유하다니.
어머니는 아직 노인정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일찍 돌아올 것이다 기실 어머니는 낮 동안은 거의 노인정에서 보낸다.
내가 출근할 때쯤 몸단장을 하고 노인정에 나갔다가 날이 어둑해져서야 돌아온다. 아내가 집에 없는 날은 저녁밥을 짓기 위해 여느 날보다 두어 시간쯤 빨리 서둘러 귀가한다.
집에 돌아온 나는 베란다 창문부터 훨쩍 열었다. 태풍이 몰려온다는 예고와 함께, 온 세상이 삐걱거릴 정도로 아침부터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바람 소리가 마치 제재소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처럼 날카롭다. 나는 주방의 작은 창을 비롯해서 안방과 서재, 어머니의 방문 등 집 안의 바람구멍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열어젖혔다. 어머니는 노인정에 갈 때마다 먼지가 무섭다면서 창을 꼭꼭 닫았다. 그 때문에 어머니의 냄새는 더욱 온 집 안에 찐득거릴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창을 열고 바람을 맞아들였지만 어머니의 냄새는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이제 어머니의 냄새는 집 안 구석구석에 고약처럼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어 모든 틈새에서 여러 가지 냄새를 한꺼번에 내뿜고 있다. 어쩌면 냄새가 살아서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현관이며 거실, 주방과 안방, 서재, 화장실은 물론 거실의 소파, 식탁, 벽, 텔레비전에까지 냄새가 켜켜이 짙게 배어 있었다. 집 안의 모든 가구와 방바닥, 벽에 걸린 장미꽃 그림에서까지 어머니의 냄새가 났다. 냄새는 이제 유기체처럼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그 냄새의 발원지가 어디인 것조차 알 수 없었다.
일주일 전, 아내가 집에 일을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냄새가 이렇듯 온 집 안을 빈틈없이 장악하지는 않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냄새는 어머니의 방과 현관, 어머니가 주로 쓰는 거실에 딸린 화장실과, 어미니 자리로 정해진 거실의 소파 주변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아내가 나가고 나자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그 냄새는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갔고 닷새쯤 지나자 온 집 안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어머니의 냄새에 점령당한 우리 집의 어디에도 이제 아내의 냄새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날이 갈수록 더 깊어져가는 냄새에서 어머니의 강한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팔십이 넘었지만 아직 생의 욕망이 왕성하다. 식탐도 많고 시기심이며 질투심도 대단하다. 오십 줄의 아내보다 오히려 어머니의 기세가 왕성해 보였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기세에 오랫동안 눌려 살고 있다.
나는 허드레옷으로 갈아입고 거실 소파에 앉아 나의 하루 동안 쌓인 피로의 무게만큼이나 깊숙이 침잠하듯 파묻혔다. 냄새가 여러 겹으로 친친 나를 에워쌌다. 내가 냄새에 꼼짝없이 결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으로, 툭 트인 외곽 도로를 휩쓸고 달려온 바람이 뭉텅뭉텅 떼 지어 몰아쳐왔다. 15층 베란다 창문을 들이밀고 들어온 초가을 오후의 거친 바람의 냄새는 다소 눅눅하면서도 싫지 않을 만큼 차가왔다. 나는 코끝으로 바람의 냄새와 어머니의 냄새를 확연히 구별할 수가 있었다.
"지난번에 우리 집에 왔던 내 친구 정자는 화장실 변기에서 시궁창 썩는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내내 코를 쥐어 막고 있다가 냄새 때문에 오래 못 있겠다면서 금방 갔어요. 날씨가 후텁지근할때는 더 심하다니까요. 이제는 냄새가 진득찰처럼 내 몸에 쩍쩍 달라붙어요. 밖에 나가면 친구들이 자꾸 나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할 정도라고요. 향수를 뿌려봐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목욕을 해봐도 소용없어요. 비누와 향수로는 어머니 냄새를 제압할 수 없어요. 목욕으로는 내 몸에 깊숙하게 밴 냄새를 벗겨낼 수가 없다니까요. 우리 집집은 소금에 전 간고등어처럼 온통 어머니 냄새에 푹 절어 있어요."
나는 아내의 푸념을 떠올렸다. 아내는 그러면서 상반신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솔직히 아내가 드러내 놓고 어머니의 냄새에 대해 짜증을 내는 것이 듣기 싫었다.
"우리도 늙으면 냄새가 나게 돼 있어."
"사람마다 자기 냄새를 갖고 있지요. 그렇지만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아요. 어머니는 유별나요. 노인들의 고약한 냄새는 다 욕심에서 나온다구요. 친정어머니는 깨끗하게 마음을 비우고 사시니까 냄새가 안 나지 않아요."
"우리 어머니는 욕심이 많아서 냄새가 난다 이거야?'
"욕심이 많지요. 특히 생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해요. 몸에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지 사서 드시는 것 몰라서 그래요? 얼마나 더 살고 싶은지 원, 개 고膏 며 흑염소 고, 붕어즙에, 관절에 좋다니까 고양이 고까지 드셨지 않아요. 지금 냉장고에는 드시다가 만 사슴 육골즙 팩이 널려 있다니까요."
"그건 몸이 약하시니까……. 젊어서 워낙 고생을 많이 하셨어……."
"옷 욕심은 또 얼마나 많다고요. 친정어머니는 죽을 날이 가까운데 무슨 새 옷이냐면서 절대 옷을 사 입지 않아요. 지난 추석에 친정에 가서 장롱을 열어봤더니 헌 옷을 다 없애버렸더라고요. 죽을 때 자식들이 불태우려면 힘들다면서 미리 없애버렸다나요. 한데 당신 어머니는 지금도 자식들이 용돈만 드리면 새 옷부터 사 입으신다고요. 어머니 장롱 한번 열어볼래요? 팔순 노인이 무슨 옷 욕심이 그리 많으신지."
나는 아내의 말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아내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동물적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조금만 아프거나 배고픈 것도 참지 못했다. 노인정에서 점심 먹은 것이 조금 부실한 날은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허기진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서 숟가락을 들고 밥통부터 찾곤 했다. 이 때문에 우리 집 전기밥통에는 언제나 밥이 준비되어 있게 마련이다. 밥이 없으면 아무렇지 않은 일에도 까탈을 부리며 심하게 며느리를 닦달했다. 어머니한테 밥은 곧 생명이며 에너지원이다. 어머니는 또 몸의 컨디션이 조금만 나빠도 아이들처럼 엄살을 떨며 당장 병원에 찾아가 주사 맞는 것을 좋아했다. 노인네들이 항생제 주사를 많이 맞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 중에서 해마다 가장 먼저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것도 어머니다.
어머니가 젊었을 적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배고픈 것도 잘 참았고 아무리 아파도 자리보전하거나 약을 먹지도 않았다. 몸살이 나서 꿍꿍 앓으면서도 휘청거리며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젊었을 적 어머니는 자신의 몸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있으면 자식들 입에 먼저 넣어주는 것으로 행복해하였다.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삶은 궁핍과 땀과 희생과 인종의 그것이었다. 한창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한테 소박을 당해 눈물 대신 땀을 흘리는 것으로 외로움을 참았다. 첩질이나 하면서 보냈던 세월을 보냈던 반거충이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어머니는 남은 식구들의 생계를 떠맡았다. 계속된 궁핍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 식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희생 때문이었다. 우리 식구의 생명줄을 머리에 이고 버둥거렸던 어머니의 모습은 내 가슴속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존재로 살아 있었다.
그러던 어머니가 달라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이가 들고 자식들이 저마다 앞가림하고 살게 되자, 특유한 어머니의 냄새를 피우기 시작한 것 같다. 더 정확히 따져보면 도시로 나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인지도 모른다. 따로 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함께 살면서부터 고부 사이가 서서히 버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짜증섞인 투정질에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무렵부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머니의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 내 코에 어머니의 냄새는 오래된 신 김치에서 나는 군내 같기도 하고, 쿠리한 된장 냄새, 시지근한 땀 냄새, 퀴퀴한 곰팡이 냄새, 고리고리한 멸치젓 냄새, 꿀꿀한 두엄 썩는 냄새, 짭조름한 오줌버캐 지린내, 고리착지근한 발가락 고린내, 생고등어 비린내, 시금털털, 고리탑탑, 쓰고 시고 짜고 매운 냄새 등이 적당한 비율로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냄새가 역겹다고 느껴질 때마다 젊었을 때의 어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젊은 시절 어머니의 냄새는 풀잎 향기보다 상큼했다. 아내가 외출할 때 몸에 뿌리는 불란서 향수보다 더 향기로웠다. 어머니의 냄새가 너무 좋아 잠시도 떨어져 있기가 싫었다. 친구들과 싸움질을 하다 얻어맞고 분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을 때도 어머니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가 문지방 위 널빤지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흰 고무신을 꺼내 칼칼하게 닦는 날에는 어머니도 어김없이 친정 나들이를 서둘렀다. 아버지가 흰 고무신을 닦아 신고 옥색 두루마기 자락 펄럭이며 코 재 너머 난초네 집에 가고 나면, 어머니 또한 새뜻하게 몸단장을 하고 친정 나들이를 하게 마련이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화난 걸음으로 길을 떠났다. 연분홍 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한테서는 달콤한 박하 분 냄새가 솔솔 내 콧속을 간질였다.
봄에 산나물을 캐러 간 어머니는 어김없이 찔레와 송기를 꺾어 왔다. 한보따리의 산나물을 머리에 이고 해 질 무렵에 돌아온 어머니한테서는 쌉쏘름한 찔레순 냄새와 들큼한 송기 냄새가 났다. 송기 껍질을 벗겨 먹으면서 나는 생큼한 송기 냄새에 취해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깊숙한 산에 들어가 산나물을 캐 나르는 봄철 내내 어머니의 몸에서는 아카시아 꽃향기보다 더 알큼한 취나물 냄새가 눅진하게 배어 있었다. 봄내내 산나물 냄새가 온 집 안에 가득 흘렀다.
부엌에서는 언제나 진간장과 된장 냄새와 함께 어머니 냄새가 풍겼다. 어머니의 냄새는 배고픔을 없애주었다. 부엌에서 나는 어머니 냄새는 솥뚜껑을 열었을 때 연기처럼 훅 솟구치는 뜨거운 김과 함께 회를 동하게 만든 구수한 밥 냄새와 같았다. 그 시절 부엌은 어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방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 안에서 지냈다. 들에서 농사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기만 하면 생기를 되찾곤 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끝이 뭉뚝하게 탄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려가며 육자배기 가락으로 신세타령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내 눈을 피해 옆으로 살짝 돌아앉아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기도 하였다.
한여름 한낮, 해 뜨기 전에 밭에 나간 어머니는 온종일 콩밭을 매고 해가 져서야 지쳐서 돌아오곤 했다. 질퍽하게 땀에 젖은 어머니는 몸을 씻지도 못하고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곤하게 잠이 들곤 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땀 냄새가 조금도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잘 익은 개똥 참외 냄새처럼 달콤하기만 했다.
"이놈아, 징그럽다. 냉큼 치워라."
석유 등잔불을 끄고 어머니한테 바짝 모로 붙어 누워서 젖가슴을 만지작거릴라치면 어머니는 한사코 거칠게 내 손을 뜯어내곤 했다.
"엄니 냄새가 겁나게 좋다."
"어따 이놈에 자슥, 땀 냄새 쉰 냄새가 멋이 좋다고 그려."
"그래도 나는 엄니 냄새를 맡고 있으면 잠이 솔솔 잘 온당께."
"시방은 그래도 후제후제 색시 얻으면 늙어빠진 어매 냄새 싫어헐 거다.'
"아녀, 나는 엄니 냄새만 좋아헐겨."
"두고 볼텨."
"두고 봐. 엄니 냄새를 맡고 있으면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도, 더운 것도 추운 것도 다 잊을 수가 있어. 그렁께 엄니 냄새는 마술 냄새여."
지난날을 떠올리던 나는 씁쓸하고 공허하게 웃었다. 왠지 부끄러움으로 심신이 위축되는 것 같았다.
내가 신문사에 취직이 되어 어머니를 도시로 모셔 오던 해의 초여름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간 어머니가 저녁식사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얼마나 섭섭하게 했으면 어머니가 집을 나갔겠느냐며 애먼 아내만 닦달했다. 길도 잘 모르는 어머닌가 해가 지도록 연락이 없자, 걱정이 되어온 식구가 찾아 나섰다. 어머니는 밤이 되어서야 큰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헐근거리며 돌아왔다. 난 신경질을 부리며 빼앗다시피 하여 보퉁이를 풀어보았다. 어머니의 보퉁이 속에는 보리 이삭이 빵빵하게 들어 있었다. 온종일 보리밭에서 보리 이삭을 줍느라 날 저문 것도 몰랐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헛웃음을 쳤다. 아내는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 창피하다면서 남들이 알까 두렵다는 말을 했다.
"이삭 줍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천벌을 받는겨."
어머니는 오히려 아내를 꾸짖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농사꾼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곡식알은 땅의 혼령이라는 말을 자주했다. 어머니는 곡식 알갱이를 혼령 대하듯 소중히 했다. 농사를 지을 때, 콩 타작하는 날이면 대꼬챙이와 종지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 마당에 박힌 콩알을 낱낱이 파 모으곤 했던 어머니였다.
다음 날 어머니는 2층 옥상에서 보리 이삭을 말리고 방망이로 두들기거나 손으로 비벼 탈곡을 한 다음, 알갱이를 빻아서 볶아 미숫가루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주워온 이삭으로 손수 만든 보리 미숫가루는 혀끝이 간질간질하도록 꼬소름했다. 미숫가루를 타 먹었던 그해 여름 동안 어머니한테서는 참기름보다 더 고소한 냄새가 내 입맛을 자극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삭줍기는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만두라고 사정하며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듬해 봄, 나는 《오래된 향기》라는 첫 시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친지들이 보낸 축하 화분을 집으로 옮겨놓았다. 동백, 홍매화, 산철쭉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지가 찢어지도록 흰 배꽃이 활짝 핀, 앙증맞은 분재가 마음에 들어 거실과 안방에 들여놓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내와 내가 부부 동반 동창회에 나갔다 돌아와서 화분의 꽃이 모두 뿌리째 뽑혀져버린 것을 보고 놀랐다. 화분에는 꽃 대신 한 뼘 길이쯤의 가지와 고추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우리헌테 꽃이 무신 소용이여. 들이나 산에 가면 얼매든지 볼 수가 있잖여. 도회지에서는 흙 한 주먹이 참말로 아쉬워야. 꽃만 보랗고 있으면 뭣 한다냐. 꽃 대신에 까지나 고치를 심어서 반찬 해 묵어야제."
어머니는 화분의 꽃들을 가위로 가지런하게 잘라서 실로 친친 묶은 다음 벽에 걸어놓았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빗물받이 함석 홈통 아래, 마당에 깔린 두껍고 단단한 시멘트를 깨고 흙을 북돋은 다음 그 자리에 호박을 심어다. 물을 뿌리고 닭 전 머리 기름집에 가서 얻어온 깻묵을 거름으로 주어, 호박은 튼실하게 줄기를 뻗었다. 어머니는 아이들 방 유리창에 바자를 세우고 호박 넝쿨을 2층 옥상으로 올렸다. 2층 양옥이 온통 호박 넝쿨로 푸르게 뒤덮이게 되었다. 아내가 한사코 말렸지만 어머니는 끝내 듣지 않았다. 호박 넝쿨 때문에 아내와 어머니는 여러 차례 충돌이 있었다. 고부간의 갈등 소에서 호박 넝쿨은 그해 여름 내내 어머니의 왕성한 삶처럼 줄기차게 뻗어 올랐다. 드디어 노란 호박꽃이 피고 벌들이 날아들었다. 어머니한테 집의 외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구나. 고약시런 쎄멘트 냄새만 맡다가 호박 꽃 냄새를 맡으니 맥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구만."
어머니는 아내의 눈 흘김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고 흐믓한 얼굴로 호박 넝쿨을 바라보았다. 그해 여름 우리 집 식탁은 풋고추와 가지나물, 애호박나물, 호박잎 된장국 등으로 푸짐했다. 특히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호박잎에 밥을 싸고 참깨 버무린 양념간장을 곁들여 먹는 호방잎쌈은 별미였다. 나는 이 무렵 어머니한테서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흙냄새를 흠씬 맡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본 흙냄새는 매운 풋고추 맛처럼 코끝을 싸하게 훑어 내렸다. 젊었을 적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온 산나물 보퉁이에서 나는 찔레 냄새와 송기 냄새를 다시 맡아본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고향의 땅을 버리고 도시에 온 후부터 달라진 것 같았다.
아이들도 호박잎 쌈을 잘 먹었다. 그러나 아내는 어머니가 가꾸어 만든 반찬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냄새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맛나요? 그래요, 어디 잘 먹어봐요. 그러면 내년에도 우리집은 호박 넝쿨로 뒤덮이게 되겠네요."
아내는 입을 비쭉이고 눈을 흘기며 그렇게 비아냥거렸다. 나와 아이들이 어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을 맛나게 먹는 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했다. 아내는 시장에서 사온 야채와 고기로 따로 반찬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화분에서 손수 가꾼 채소로, 아내는 아내도로 따로 시장을 보아 반찬을 만들었기에 식탁은 늘 성찬이었다. 아내는 아이들 구미에 맞추기 위해 고기를 주재료로 썼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을 맛나게 먹던 아이들도 불고기나 튀김 등 제 엄마 요리 쪽으로 기울어졌다. 어머니가 자신 있게 만드는 반찬은 된장국과 호박나물, 가지무침이고, 아내의 핵심 메뉴는 불고기와 돼지고기 김치찌개, 닭튀김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된장국을 좋아했다. 쌀뜨물에 된장을 알맞게 풀고 애호박과 호박잎, 풋고추를 담방담방 썰어 넣은 다음 멸치를 동동 띄워 보골보골 끓인 된장국은 냄새도 구수하거니와 매큼들큼한 맛이 일품이다. 된장국은 뜨거울 때 호호 불어가며 떠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젖을 뗀 후부터 줄곧 먹어온 어머니의 된장국 맛은 이제 내 체질과 성격을 만들었다. 물론 아내의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맛이 좋다.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고 나면 온몸이 후끈 닳아 오르면서 기분이 개운해진다. 나는 아내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을 때면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내와 어머니는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입장은 난처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반찬과 아내의 반찬을 적당히 섞어가며 먹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고 입맛에 따라 반찬을 선택해가며 먹었지만, 할머니가 만든 반찬과 어머니가 만든 반찬을 구별하기에 이르렀고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은근히 엄마와 할머니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는 서로 주방을 점유하기 위해 노골적인 암투가 시작된 듯했다. 주방을 점유하기 위한 처음 단계는 냉장고 반찬 진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아내가 밖에 나간 사이에 냉장고 안의 반찬들부터 어머니 식으로 위치를 바꿔버린다. 아내가 이것을 용납할 리가 없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먼저 냉장고부터 열어보고 아내식대로 진열을 다시 하게 마련이었다. 어머니의 주방 출입이 잦아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어머니는 아내가 외출해서 조금만 늦을라치면 기회는 이때다 싶게, 혼자 주방을 독점하고 서둘러 저녁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어머니의 주방 독점을 위한 노력은 생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집요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차츰 살림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러다가 아내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으면 외출을 했다가도 서둘러 귀가해서는 어머니가 노인정에서 돌아오기 전에 저녁밥 준비를 하곤 했다. 이런 날의 식탁은 풍성했다. 마침내 아내가 주방을 점유하게 되면 어머니는 한 발짝 물러나서 다시 호시탐탐 권토중래의 기회를 엿보다가 재빠르게 탈환한다. 이렇게 하여 주방 점유를 둘러싼 아내와 어머니 사이의 숨 가쁜 쟁투는 계속되었다. 어머니의 냄새가 부쩍 심해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바람이 드세어졌다. 기게톱 같은 이빨로 으르렁거리며 유리창을 물어뜯었다. 열어놓은 집 안의 모든 유리창들이 몸살 나도록 덜컹거리면서 벽에 걸린 달력이 날아갔다. 아무래도 태풍이 곧 상륙할 모양이다. 창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어머니가 헐근거리며 노인정에서 돌아왔다.
"하느님이 미쳤구만. 저눔에 바람 땜시 애써 키운 나락 다씨러지겄다. 하늘도 매정허시제, 한 열흘만 더 참어주시지 않고."
어머니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베란다의 창문을 닫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온 지도 10여 년이 지났건만 어머니는 지금도 농사 걱정이다.
이틀 뒤, 태풍은 상륙하기 전에 바다에서 소멸을 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바람이 윙윙거렸다. 나는 바람이 부는 동안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두고 거센 바람이 냄새를 휩쓸어가 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람은 냄새를 조금도 약화하지 못했다. 그 어떤 강한 바람도 어머니의 냄새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냄새는 더욱 깊고 무겁게 집 안의 구석구석으로 더끔더끔 짜들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코끝으로 냄새의 부피와 두께를 느낄 수가 있었다. 방학이 끝나 아이들까지 서울로 떠나고 없어, 어머니의 냄새는 무섭도록 강렬하게 확산했다. 나는 어머니의 냄새가 집 안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언제까지나 방치해두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질식할 것만 같은 어머니의 냄새를 약화하는 방법은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는 길밖에 없었다. 나는 다음 날 처형 집으로 가서 다짜고짜 설명도 없이 아내를 차에 싣고 돌아왔다.
"당분간 동생 집에 가 계시도록 할 테니, 당신은 제발 집에 있도록 해."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기라도 한답디까?"
반 강제로 떠밀리다시피 하여 차에 탄 후 말 한마디 없이 뚱해 있던 아내가 내 말을 비아냥거렸다.
"당분간이라도 모시도록 하겠어."
"당분간이라고요?"
"그래. 집 안에 찌든 냄새를 없앨 동안만이라도."
"냄새를 없앤다고요? 어떻게요?"
아내의 불만은 여전히 턱 끝가지 차올라 있었다. 나는 자동차 안에서 아내한테 냄새를 없애겠다고 거듭 약속을 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내는 잔뜩 주눅이 들어 어깨를 움츠리고 숨을 죽인 채 우묵한 눈을 연신 껌벅거리며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살림허는 여자가 집을 멀리 허면 종당에는 공중에 뜨고 마는겨."
예상했던 대로 어머니는 가시 돋친 목소리로 한바탕 쏘아댔다. 아내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현기증을 일으키며 흐물흐물 쓰러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안방으로 기어 들어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아내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물기 젖은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탓할 수가 없었다. 온종일 누워 있어도 좋으니 집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나는 우선 창문부터 열고 코끝이 아리도록 안방에 라벤더 향수를 듬뿍 뿌려댔다. 아내가 누워 있는 사이 어머니는 기세 좋게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내는 주방에 나와보지 않았고 저녁을 먹지도 않았다.
"네 처 또 아프냐?"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던 어머니가 마뜩찮은 표정으로 뚜벅 물었다.
"어머니 목욕은 자주 하세요?"
나는 대답 대신 밥그릇에 시선을 박은 채 생뚱맞게 물었다.
"왜? 에미헌테서 냄새날까 싶어서?"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아무 냄새도 못 맡으세요?"
"냄새? 사람 사는 집에서 사람 냄새가 나겄제잉. 그러고 살림살이 냄새도 날 것이고. 아무 냄새도 안 나면 워디 삶 사는 집이간듸, 그것이사 귀신이 사는 집이제잉."
"어머니한테서 나는 냄새는 무슨 냄새지요?"
"나헌테서 냄새가 나냐?"
"모르셨어요?"
"나헌테서 무신 냄새가 난다고 그려."
"아주 심해요."
"어떤 냄새?"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느라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거렸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듸. 절대로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녀."
어머니는 '절대로'라는 말에 힘을 주어 단호하게 부인했다.
"자, 어디, 한번 맡어봐."
그러면서 어머니는 상반신을 내 앞으로 바짝 꺾으며 재촉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어 부지런히 숟가락질만 해댔다.
"이놈아, 에미한테서 나는 냄새는 에미가 자식 놈들을 위해서 알탕같탕 살아온,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샌겨."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섞어가며 말했다.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는 어머니의 말이 명치끝을 후벼 팠다.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니…….
다음 날 새벽, 나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퍼뜩 잠이 깼다. 밖에 나가보니 집안의 모든 창문이 훨쩍 열려 있었다. 아내는 세탁기에서 탈수가 된 옷가지들을 꺼내 베란다 빨랫줄에 널다 말고 나를 보더니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순간 아내의 돌변한 태도에 놀란 내 동공이 확대되었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숨을 쉴 수 없다면서 기력이 빠져 있던 아내였는데 갑자기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세탁을 끝낸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끌고 다니며 구석구석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를 끝내자 아침을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경쾌한 도마질 소리와 개수대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매큼한 김치찌개 냄새가 온통 집 안을 뒤덮고 있었다. 아내가 돌아오자 집 안은 생기가 넘쳤다. 아침 식사 시간이 다 될 때까지도 어머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마 아내 때문에 밀려난 냄새와 함께 기회를 엿보며 방 안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밥상을 다 차려놓은 후에야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쌩하게 찬바람을 일으키며 노인정으로 갔다.
아내가 집에 돌아온 후부터, 집 안을 장악했던 어머니의 냄새가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했다. 안방은 아내의 냄새를 완전히 회복했고 주방과 거실에서는 소강상태였다. 점점 세력이 약화된 어머니의 냄새는 주방과 거실에서조차 오래 버티지 못했다 닷새가 지나자 어머니의 냄새는 어머니의 방과 어머니가 혼자 사용하는 화장실 안으로 뒷걸음질 쳐 기어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의 냄새가 아내의 냄새에 위압당해 가는 동안 숨 가쁜 긴장감을 느꼈다. 마치 파워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여자의 냄새를 통해서 나는 힘의 팽창과 몰락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힘은 삶의 욕망이고 생존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참으로 치열한 생명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내의 냄새는 어머니의 냄새를 물리친 다음에 스스로 소명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냄새로 냄새를 평정한 다음에는 무색무취無色無臭의 상태에서 방어를 유지했다. 그러니까 아내의 냄새는 제취제除臭濟 역할만을 한 셈이었다.
나는 아내가 돌아온 것을 계기로, 무취의 상태로 돌아간 아내의 냄새처럼 어머니의 냄새를 완전히 소멸해 버릴 생각을 했다. 나의 이 같은 계획은, 내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침잠해 가고 있는 우리 집의 분위기를 활성화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나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한 동생 집을 찾아가, 자세한 이유는 묻지 말로 한 달 동안만 어머니를 모셔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생은 무엇 때문이냐고 거듭 물었다. 나는 동생 부부한테 어머니의 냄새 때문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동생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난간함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동생은 단 한 번도 어머니를 모셔보지 않았다. 어머니도 동생 집에 가면 겨우 하룻밤을 넘기고 서둘러 돌아와 버리곤 했다. 작은아들 집은 불편하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밥 한 끼라도 축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배려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나는 어머니를 모실 동안 반찬 값이라도 보태라면서 준비해 간 돈 봉투를 내놓았다. 마지못해 동생은 재수와 함께 잠깐 조카들 방으로 나갔다 오더니 한 달 동안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내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동생 부부는 다음 날 저녁 약속대로 우리 집에 와서 한사코 싫다며 떼를 쓰다시피 한 어머니를 억지로 모셔 갔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 한결 냄새가 덜한 것 같죠?"
아내가 진공청소기를 밀며 약간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냄새의 정도 차이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동생이 어머니를 모셔 간 다음 날부터 나와 아내는 본격적으로 어머니의 냄새 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어머니의 방을 여러 차례 쓸고 걸레질을 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의 방을 청소하면서, 어렸을 적 할아버지 방에서 빈대를 잡던 기억을 떠올렸다.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빈대 냄새가 내 머릿속의 틈새를 후벼 파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혼자 거처하던 건넌방에서는 언제나 담뱃진 냄새와 빈대 냄새가 진동했다. 수수 알갱이만 한 크기에 진한 밤색의 동글납작한 빈대는 낮동안에는 벽과 문, 목침 등 방 안의 모든 틈새에 죽은 듯 숨어 있다가도 밤만 되면 구물구물 기어 나왔다. 할아버지는 빈대 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한밤중에 불을 켜고 벽이고 방바닥에 기어 다니는 빈대를 파리채로 후려친 다음 손톱으로 잔인하게 꾹꾹 으깨어 죽였다. 그 때문에 벽에는 온통 빈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또 틈새에 담배 연기를 입으로 불어넣어 빈대가 기어 나오게 했으며 화롯불에 벌겋게 달군 부젓가락을 목침이나 문 틈새에 쑤셔대기로 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빈대가 타드는 노린내가 진동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틈새에는 한동안 빈대가 살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다른 빈대가 들어와 살았다. 이럴 때 할아버지는 틈새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아 빈대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부젓가락을 쑤셔댔다. 결국 빈대는 냄새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나는 냄새 때문에 죽은 바보 같은 빈대가 불쌍했다. 그런데 빈대가 죽을 줄 알면서도 냄새를 피우는 것은 생존을 알리는 메시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여기 살아 있다고 하는 아우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을 대할 때마다 할아버지가 부젓가락으로 빈대를 잡던 그때 일이 떠오르곤 했다. 할아버지는 빈대 잡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건넌방 빈대 냄새도 사라졌다. 건넌방 빈대들은 대들보가 컹컹 울린 정도로 해묵은 할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를 들어가며 할아버지와 생존을 같이했다. 아마 그중 몇마리는 무덤까지 따라갔을지도 몰랐다.
나는 어머니 방 벽에 향수를 뿌렸다. 화장실에 아로마 향 촛불을 겨고 방 구석마다 준비해 온 숯을 놓아두었으며 녹차 찌꺼기가지 방바닥 여기저기에 널어놓았다. 어머니의 방 안에 있는 반닫이며 TV, 보료, 이불, 옥돌 전기장판, 베개, 가방, 사각 거울, 벽에 걸린 액자, 뻐꾸기 벽시계, 헌 옷가지 등도 베란다로 꺼냈다. 그리고 반닫이 안에 들어 있는 옷이며 버선 한 짝까지도 모두 집게로 집어 빨랫줄에 널고 바람을 쐬었다.
"여보 여보, 이게 다 뭐죠?"
어머니의 반닫이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던 아내가 낡고 희부옇게 색이 바랜 무명 천보따리를 풀어보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는 어머니 방에 걸레질을 하다 말고 베란다로 나왔다. 아내는 오른손으로 코를 쥐어 막고 있었다. 풀어헤친 보따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훅 덮쳐왔다. 보따리 속에는 녹슨 호미와, 오래된 손저울, 함석 젓 주걱, 판자로 짠 손때 묻은 되, 때에 전 흰 다후다 천의 돈주머니, 짙은 밭색의 나일론 머플러, 땟국에 전 앞치마 등이 들어 있었다. 나는 검정 고무줄로 친친 묶여 있는 돈주머니를 풀고 그 속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냈다. 네 귀퉁이가 희치희치 닳고 종이 보푸라기가 푸수수한, 낡고 희누르스름하게 빛이 바랜 수첩에는 뭉뚝한 연필 심지에 침을 발라가며 꾹꾹 눌러 쓴 어머니의 서투른 글씨들이 삐뚤빼뚤 꿈틀거리고 있었다. 안골 큰 점백이네 간고등애 한 손. 쑥실 은행나무집 며루치 한 되빡. 샛골 양철대문집 양재물 두 근. 쌩오지 키 작은 과수댁 빨랫비누 두 장. 그 수첩은 어머니의 외상 장부가 분명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어머니는 도부 장사를 시작하여 아들 뒷바라지를 했다. 도부 장사를 그만두고 농사만 짓게 된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부터였다.
"이게 다 뭐예요?"
아내가 주걱처럼 생긴 젓 주걱을 들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여자의 몸으로 젓 지게를 지고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마을을 떠돌면서 젓 주걱으로 새우젓을 떠서 팔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무렵 어머니한테서는 푹삭은 젓국 냄새가 진동했다. 젓 주걱에서는 그때의 어머니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어머니가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오랫동안 도부 장수며 젓 장수를 했다는 것을 알 턱이 없는 아내는 냄새나는 보따리 속의 이상한 물건들에 대해 의문을 갖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노망나신 거 아녜요? 어디서 이런 쓸데없는 물건들을 주어다 놓은 거죠?'
아내는 젓 주걱으로 녹슨 호미며 손저울과 되를 쿡쿡 쑤셔대며 거듭 물었다. 나는 말없이 녹슨 호미를 집어 들었다. 오랜 세월 손때 먹은 호미 자루가 번질거렸다. 물로 칼칼하게 씻은 듯 흙이 묻지 않은 호미 날쪽에 불긋불긋 녹이 슬어 있었다. 예전에 어머니는 농사꾼 집에서 호미나 낫 등 농기구에 쇠꽃이 피면 집 안이 망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었다. 나는 호미를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손때 먹은 자루에서는 시지근한 땀 냄새가 났고 늑슨 날에서는 비릿한 녹내가 났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보따리에서는 고리고리한 새우젓국 냄새를 비롯해서 짭조름한 간고등어 냄새, 시큼한 쇠꽃 냄새, 비리척지근한 멸치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참으로 묘한 냄새를 만들고 있었다. 여러 가지 냄새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치장을 하고 소리를 내며 꿈틀대는 것 같았다. 그 냄새들이 아우성치며 내 뼛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냄새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나는 그 냄새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거부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나는 그때서야 어머니 냄새의 진원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보따리 당장 갖다 버려야겠어요."
나는 아내의 그 말에 심한 저항감을 느꼈다. 나와 아내는 어머니의 보따리를 버려야 한다거니 버려서는 안 된다거니 한동안 실랑이를 했다.
"도대체 이런 허섭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겠다는 이유가 뭐예요?"
"뭐? 쓰레기?"
"아니며 보물이라도 되나요?"
아내의 목소리가 도전적으로 변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떨려왔다.
"형님, 혹시 어머니 집에 오시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다니, 무슨 소리야?"
나는 그 순간 불길한 예감에 휘감겼다.
"큰일 났네. 어머니가 없어졌어요."
"없어지다니,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
"우리 집에 오신 후 맥이 빠진다면서 밥도 안 드시고 방 안에만 누워계셨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안 보여요."
나는 할 말을 잊고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어머니의 얼굴 윤곽이 그려지지지가 않았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끝이 살짝 매달린 가느다란 눈도, 뭉뚝한 코도, 크고 도톰한 입도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너, 어머니한테 냄새난다고 했냐?'
나는 생뚱스런 질문을 하고 나서 곧 후회했다.
"무슨 냄새? 그런 말 안 했는데요. 어머니한테서 어머니 냄새가 나겠죠 뭐."
"알았다. 어머니 꼭 찾아야 한다."
나는 전화를 끊고 허둥지둥 옷부터 꿰입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면서 가슴이 떨려왔다. 자동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어머니를 찾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선 도시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큰길을 향해 달리는 동안 어머니가 했던 말이 뇌리에서 자꾸 부스럭거렸다. 그 냄새는 몸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온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는 말이 벌겋게 달궈진 부젓가락처럼 오목 가슴을 뜨겁게 파고들었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병든 시아버지와 어린 두자식을 위해 짐승처럼 살아온 어머니. 그것은 어머니가 살아온 신산한 세월이 발효醱酵하면서 풍겨져 나온 짙은 사람의 향기였다. 고통스러웠던 긴 세월의 더께 같은 것. 어머니의 냄새는 팔십 평생 동안 푹 고삭은 삶의 냄새이며, 희로애락의 기나긴 시간에 의해 분해되는 유기체의 냄새가 분명했다.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냄새가 내 몸의 모든 핏줄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도시를 빠져나온 나는 무작정 고향으로 가는 국도를 타고 달렸다. 황금빛 들판에는 벼들끼리 온몸으로 서로에게 부대끼며 물결치고 있었다. 땅의 혼령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바람처럼 훅 덮쳐왔다. 나는 국도 변에 차를 세우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어머니의 향기로운 냄새가 아우성치며 온몸의 핏줄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머니의 향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93.8장)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
문순태
아파트 현관문을 따고 들어서자 어머니 냄새가 포연砲煙 처럼 훅 기습해 왔다. 나는 역겨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납작하게 일그러졌다. 냄새는 순식간에 공격하듯 온몸에 달라붙었다. 어머니의 냄새는 너무도 강렬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내가 회사에서 돌아올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는 것은 언제나 아내가 아닌, 어머니의 냄새였다. 아내는 어머니 냄새 때문에 잠시도 집에 붙어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내는 일주일째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언니가 아파서 병구완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냄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냄새는 보통 냄새가 아니어요. 두엄 썩는 냄새, 아니 제초제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아요. 집에 있으면 냄새 때문에 식욕도 떨어지고 생머리가 지끈거려요. 병이 나겠다니까요. 꼭 무서운 바이러스 같다고요."
내 귀에서는 언제나 아내의 짜증 섞인 투정이 윙윙거리게 마련이다.
"세상에, 제초제 냄새라니……."
나는 아내의 엄살이 좀 지나치다 싶었다. 하기야 온종일 어머니의 냄새에 파묻혀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낸다는 것은 고역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냄새를 바이러스와 제초제에 비유하다니.
어머니는 아직 노인정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일찍 돌아올 것이다 기실 어머니는 낮 동안은 거의 노인정에서 보낸다.
내가 출근할 때쯤 몸단장을 하고 노인정에 나갔다가 날이 어둑해져서야 돌아온다. 아내가 집에 없는 날은 저녁밥을 짓기 위해 여느 날보다 두어 시간쯤 빨리 서둘러 귀가한다.
집에 돌아온 나는 베란다 창문부터 훨쩍 열었다. 태풍이 몰려온다는 예고와 함께, 온 세상이 삐걱거릴 정도로 아침부터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바람 소리가 마치 제재소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처럼 날카롭다. 나는 주방의 작은 창을 비롯해서 안방과 서재, 어머니의 방문 등 집 안의 바람구멍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열어젖혔다. 어머니는 노인정에 갈 때마다 먼지가 무섭다면서 창을 꼭꼭 닫았다. 그 때문에 어머니의 냄새는 더욱 온 집 안에 찐득거릴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창을 열고 바람을 맞아들였지만 어머니의 냄새는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이제 어머니의 냄새는 집 안 구석구석에 고약처럼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어 모든 틈새에서 여러 가지 냄새를 한꺼번에 내뿜고 있다. 어쩌면 냄새가 살아서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현관이며 거실, 주방과 안방, 서재, 화장실은 물론 거실의 소파, 식탁, 벽, 텔레비전에까지 냄새가 켜켜이 짙게 배어 있었다. 집 안의 모든 가구와 방바닥, 벽에 걸린 장미꽃 그림에서까지 어머니의 냄새가 났다. 냄새는 이제 유기체처럼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그 냄새의 발원지가 어디인 것조차 알 수 없었다.
일주일 전, 아내가 집에 일을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냄새가 이렇듯 온 집 안을 빈틈없이 장악하지는 않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냄새는 어머니의 방과 현관, 어머니가 주로 쓰는 거실에 딸린 화장실과, 어미니 자리로 정해진 거실의 소파 주변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아내가 나가고 나자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그 냄새는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갔고 닷새쯤 지나자 온 집 안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어머니의 냄새에 점령당한 우리 집의 어디에도 이제 아내의 냄새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날이 갈수록 더 깊어져가는 냄새에서 어머니의 강한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팔십이 넘었지만 아직 생의 욕망이 왕성하다. 식탐도 많고 시기심이며 질투심도 대단하다. 오십 줄의 아내보다 오히려 어머니의 기세가 왕성해 보였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기세에 오랫동안 눌려 살고 있다.
나는 허드레옷으로 갈아입고 거실 소파에 앉아 나의 하루 동안 쌓인 피로의 무게만큼이나 깊숙이 침잠하듯 파묻혔다. 냄새가 여러 겹으로 친친 나를 에워쌌다. 내가 냄새에 꼼짝없이 결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으로, 툭 트인 외곽 도로를 휩쓸고 달려온 바람이 뭉텅뭉텅 떼 지어 몰아쳐왔다. 15층 베란다 창문을 들이밀고 들어온 초가을 오후의 거친 바람의 냄새는 다소 눅눅하면서도 싫지 않을 만큼 차가왔다. 나는 코끝으로 바람의 냄새와 어머니의 냄새를 확연히 구별할 수가 있었다.
"지난번에 우리 집에 왔던 내 친구 정자는 화장실 변기에서 시궁창 썩는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내내 코를 쥐어 막고 있다가 냄새 때문에 오래 못 있겠다면서 금방 갔어요. 날씨가 후텁지근할때는 더 심하다니까요. 이제는 냄새가 진득찰처럼 내 몸에 쩍쩍 달라붙어요. 밖에 나가면 친구들이 자꾸 나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할 정도라고요. 향수를 뿌려봐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목욕을 해봐도 소용없어요. 비누와 향수로는 어머니 냄새를 제압할 수 없어요. 목욕으로는 내 몸에 깊숙하게 밴 냄새를 벗겨낼 수가 없다니까요. 우리 집집은 소금에 전 간고등어처럼 온통 어머니 냄새에 푹 절어 있어요."
나는 아내의 푸념을 떠올렸다. 아내는 그러면서 상반신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솔직히 아내가 드러내 놓고 어머니의 냄새에 대해 짜증을 내는 것이 듣기 싫었다.
"우리도 늙으면 냄새가 나게 돼 있어."
"사람마다 자기 냄새를 갖고 있지요. 그렇지만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아요. 어머니는 유별나요. 노인들의 고약한 냄새는 다 욕심에서 나온다구요. 친정어머니는 깨끗하게 마음을 비우고 사시니까 냄새가 안 나지 않아요."
"우리 어머니는 욕심이 많아서 냄새가 난다 이거야?'
"욕심이 많지요. 특히 생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해요. 몸에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지 사서 드시는 것 몰라서 그래요? 얼마나 더 살고 싶은지 원, 개 고膏 며 흑염소 고, 붕어즙에, 관절에 좋다니까 고양이 고까지 드셨지 않아요. 지금 냉장고에는 드시다가 만 사슴 육골즙 팩이 널려 있다니까요."
"그건 몸이 약하시니까……. 젊어서 워낙 고생을 많이 하셨어……."
"옷 욕심은 또 얼마나 많다고요. 친정어머니는 죽을 날이 가까운데 무슨 새 옷이냐면서 절대 옷을 사 입지 않아요. 지난 추석에 친정에 가서 장롱을 열어봤더니 헌 옷을 다 없애버렸더라고요. 죽을 때 자식들이 불태우려면 힘들다면서 미리 없애버렸다나요. 한데 당신 어머니는 지금도 자식들이 용돈만 드리면 새 옷부터 사 입으신다고요. 어머니 장롱 한번 열어볼래요? 팔순 노인이 무슨 옷 욕심이 그리 많으신지."
나는 아내의 말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아내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동물적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조금만 아프거나 배고픈 것도 참지 못했다. 노인정에서 점심 먹은 것이 조금 부실한 날은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허기진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서 숟가락을 들고 밥통부터 찾곤 했다. 이 때문에 우리 집 전기밥통에는 언제나 밥이 준비되어 있게 마련이다. 밥이 없으면 아무렇지 않은 일에도 까탈을 부리며 심하게 며느리를 닦달했다. 어머니한테 밥은 곧 생명이며 에너지원이다. 어머니는 또 몸의 컨디션이 조금만 나빠도 아이들처럼 엄살을 떨며 당장 병원에 찾아가 주사 맞는 것을 좋아했다. 노인네들이 항생제 주사를 많이 맞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 중에서 해마다 가장 먼저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것도 어머니다.
어머니가 젊었을 적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배고픈 것도 잘 참았고 아무리 아파도 자리보전하거나 약을 먹지도 않았다. 몸살이 나서 꿍꿍 앓으면서도 휘청거리며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젊었을 적 어머니는 자신의 몸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있으면 자식들 입에 먼저 넣어주는 것으로 행복해하였다.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삶은 궁핍과 땀과 희생과 인종의 그것이었다. 한창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한테 소박을 당해 눈물 대신 땀을 흘리는 것으로 외로움을 참았다. 첩질이나 하면서 보냈던 세월을 보냈던 반거충이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어머니는 남은 식구들의 생계를 떠맡았다. 계속된 궁핍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 식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희생 때문이었다. 우리 식구의 생명줄을 머리에 이고 버둥거렸던 어머니의 모습은 내 가슴속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존재로 살아 있었다.
그러던 어머니가 달라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이가 들고 자식들이 저마다 앞가림하고 살게 되자, 특유한 어머니의 냄새를 피우기 시작한 것 같다. 더 정확히 따져보면 도시로 나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인지도 모른다. 따로 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함께 살면서부터 고부 사이가 서서히 버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짜증섞인 투정질에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무렵부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머니의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 내 코에 어머니의 냄새는 오래된 신 김치에서 나는 군내 같기도 하고, 쿠리한 된장 냄새, 시지근한 땀 냄새, 퀴퀴한 곰팡이 냄새, 고리고리한 멸치젓 냄새, 꿀꿀한 두엄 썩는 냄새, 짭조름한 오줌버캐 지린내, 고리착지근한 발가락 고린내, 생고등어 비린내, 시금털털, 고리탑탑, 쓰고 시고 짜고 매운 냄새 등이 적당한 비율로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냄새가 역겹다고 느껴질 때마다 젊었을 때의 어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젊은 시절 어머니의 냄새는 풀잎 향기보다 상큼했다. 아내가 외출할 때 몸에 뿌리는 불란서 향수보다 더 향기로웠다. 어머니의 냄새가 너무 좋아 잠시도 떨어져 있기가 싫었다. 친구들과 싸움질을 하다 얻어맞고 분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을 때도 어머니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가 문지방 위 널빤지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흰 고무신을 꺼내 칼칼하게 닦는 날에는 어머니도 어김없이 친정 나들이를 서둘렀다. 아버지가 흰 고무신을 닦아 신고 옥색 두루마기 자락 펄럭이며 코 재 너머 난초네 집에 가고 나면, 어머니 또한 새뜻하게 몸단장을 하고 친정 나들이를 하게 마련이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화난 걸음으로 길을 떠났다. 연분홍 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한테서는 달콤한 박하 분 냄새가 솔솔 내 콧속을 간질였다.
봄에 산나물을 캐러 간 어머니는 어김없이 찔레와 송기를 꺾어 왔다. 한보따리의 산나물을 머리에 이고 해 질 무렵에 돌아온 어머니한테서는 쌉쏘름한 찔레순 냄새와 들큼한 송기 냄새가 났다. 송기 껍질을 벗겨 먹으면서 나는 생큼한 송기 냄새에 취해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깊숙한 산에 들어가 산나물을 캐 나르는 봄철 내내 어머니의 몸에서는 아카시아 꽃향기보다 더 알큼한 취나물 냄새가 눅진하게 배어 있었다. 봄내내 산나물 냄새가 온 집 안에 가득 흘렀다.
부엌에서는 언제나 진간장과 된장 냄새와 함께 어머니 냄새가 풍겼다. 어머니의 냄새는 배고픔을 없애주었다. 부엌에서 나는 어머니 냄새는 솥뚜껑을 열었을 때 연기처럼 훅 솟구치는 뜨거운 김과 함께 회를 동하게 만든 구수한 밥 냄새와 같았다. 그 시절 부엌은 어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방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 안에서 지냈다. 들에서 농사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기만 하면 생기를 되찾곤 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끝이 뭉뚝하게 탄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려가며 육자배기 가락으로 신세타령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내 눈을 피해 옆으로 살짝 돌아앉아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기도 하였다.
한여름 한낮, 해 뜨기 전에 밭에 나간 어머니는 온종일 콩밭을 매고 해가 져서야 지쳐서 돌아오곤 했다. 질퍽하게 땀에 젖은 어머니는 몸을 씻지도 못하고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곤하게 잠이 들곤 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땀 냄새가 조금도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잘 익은 개똥 참외 냄새처럼 달콤하기만 했다.
"이놈아, 징그럽다. 냉큼 치워라."
석유 등잔불을 끄고 어머니한테 바짝 모로 붙어 누워서 젖가슴을 만지작거릴라치면 어머니는 한사코 거칠게 내 손을 뜯어내곤 했다.
"엄니 냄새가 겁나게 좋다."
"어따 이놈에 자슥, 땀 냄새 쉰 냄새가 멋이 좋다고 그려."
"그래도 나는 엄니 냄새를 맡고 있으면 잠이 솔솔 잘 온당께."
"시방은 그래도 후제후제 색시 얻으면 늙어빠진 어매 냄새 싫어헐 거다.'
"아녀, 나는 엄니 냄새만 좋아헐겨."
"두고 볼텨."
"두고 봐. 엄니 냄새를 맡고 있으면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도, 더운 것도 추운 것도 다 잊을 수가 있어. 그렁께 엄니 냄새는 마술 냄새여."
지난날을 떠올리던 나는 씁쓸하고 공허하게 웃었다. 왠지 부끄러움으로 심신이 위축되는 것 같았다.
내가 신문사에 취직이 되어 어머니를 도시로 모셔 오던 해의 초여름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간 어머니가 저녁식사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얼마나 섭섭하게 했으면 어머니가 집을 나갔겠느냐며 애먼 아내만 닦달했다. 길도 잘 모르는 어머닌가 해가 지도록 연락이 없자, 걱정이 되어온 식구가 찾아 나섰다. 어머니는 밤이 되어서야 큰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헐근거리며 돌아왔다. 난 신경질을 부리며 빼앗다시피 하여 보퉁이를 풀어보았다. 어머니의 보퉁이 속에는 보리 이삭이 빵빵하게 들어 있었다. 온종일 보리밭에서 보리 이삭을 줍느라 날 저문 것도 몰랐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헛웃음을 쳤다. 아내는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 창피하다면서 남들이 알까 두렵다는 말을 했다.
"이삭 줍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천벌을 받는겨."
어머니는 오히려 아내를 꾸짖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농사꾼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곡식알은 땅의 혼령이라는 말을 자주했다. 어머니는 곡식 알갱이를 혼령 대하듯 소중히 했다. 농사를 지을 때, 콩 타작하는 날이면 대꼬챙이와 종지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 마당에 박힌 콩알을 낱낱이 파 모으곤 했던 어머니였다.
다음 날 어머니는 2층 옥상에서 보리 이삭을 말리고 방망이로 두들기거나 손으로 비벼 탈곡을 한 다음, 알갱이를 빻아서 볶아 미숫가루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주워온 이삭으로 손수 만든 보리 미숫가루는 혀끝이 간질간질하도록 꼬소름했다. 미숫가루를 타 먹었던 그해 여름 동안 어머니한테서는 참기름보다 더 고소한 냄새가 내 입맛을 자극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삭줍기는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만두라고 사정하며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듬해 봄, 나는 《오래된 향기》라는 첫 시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친지들이 보낸 축하 화분을 집으로 옮겨놓았다. 동백, 홍매화, 산철쭉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지가 찢어지도록 흰 배꽃이 활짝 핀, 앙증맞은 분재가 마음에 들어 거실과 안방에 들여놓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내와 내가 부부 동반 동창회에 나갔다 돌아와서 화분의 꽃이 모두 뿌리째 뽑혀져버린 것을 보고 놀랐다. 화분에는 꽃 대신 한 뼘 길이쯤의 가지와 고추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우리헌테 꽃이 무신 소용이여. 들이나 산에 가면 얼매든지 볼 수가 있잖여. 도회지에서는 흙 한 주먹이 참말로 아쉬워야. 꽃만 보랗고 있으면 뭣 한다냐. 꽃 대신에 까지나 고치를 심어서 반찬 해 묵어야제."
어머니는 화분의 꽃들을 가위로 가지런하게 잘라서 실로 친친 묶은 다음 벽에 걸어놓았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빗물받이 함석 홈통 아래, 마당에 깔린 두껍고 단단한 시멘트를 깨고 흙을 북돋은 다음 그 자리에 호박을 심어다. 물을 뿌리고 닭 전 머리 기름집에 가서 얻어온 깻묵을 거름으로 주어, 호박은 튼실하게 줄기를 뻗었다. 어머니는 아이들 방 유리창에 바자를 세우고 호박 넝쿨을 2층 옥상으로 올렸다. 2층 양옥이 온통 호박 넝쿨로 푸르게 뒤덮이게 되었다. 아내가 한사코 말렸지만 어머니는 끝내 듣지 않았다. 호박 넝쿨 때문에 아내와 어머니는 여러 차례 충돌이 있었다. 고부간의 갈등 소에서 호박 넝쿨은 그해 여름 내내 어머니의 왕성한 삶처럼 줄기차게 뻗어 올랐다. 드디어 노란 호박꽃이 피고 벌들이 날아들었다. 어머니한테 집의 외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구나. 고약시런 쎄멘트 냄새만 맡다가 호박 꽃 냄새를 맡으니 맥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구만."
어머니는 아내의 눈 흘김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고 흐믓한 얼굴로 호박 넝쿨을 바라보았다. 그해 여름 우리 집 식탁은 풋고추와 가지나물, 애호박나물, 호박잎 된장국 등으로 푸짐했다. 특히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호박잎에 밥을 싸고 참깨 버무린 양념간장을 곁들여 먹는 호방잎쌈은 별미였다. 나는 이 무렵 어머니한테서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흙냄새를 흠씬 맡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본 흙냄새는 매운 풋고추 맛처럼 코끝을 싸하게 훑어 내렸다. 젊었을 적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온 산나물 보퉁이에서 나는 찔레 냄새와 송기 냄새를 다시 맡아본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고향의 땅을 버리고 도시에 온 후부터 달라진 것 같았다.
아이들도 호박잎 쌈을 잘 먹었다. 그러나 아내는 어머니가 가꾸어 만든 반찬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냄새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맛나요? 그래요, 어디 잘 먹어봐요. 그러면 내년에도 우리집은 호박 넝쿨로 뒤덮이게 되겠네요."
아내는 입을 비쭉이고 눈을 흘기며 그렇게 비아냥거렸다. 나와 아이들이 어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을 맛나게 먹는 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했다. 아내는 시장에서 사온 야채와 고기로 따로 반찬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화분에서 손수 가꾼 채소로, 아내는 아내도로 따로 시장을 보아 반찬을 만들었기에 식탁은 늘 성찬이었다. 아내는 아이들 구미에 맞추기 위해 고기를 주재료로 썼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을 맛나게 먹던 아이들도 불고기나 튀김 등 제 엄마 요리 쪽으로 기울어졌다. 어머니가 자신 있게 만드는 반찬은 된장국과 호박나물, 가지무침이고, 아내의 핵심 메뉴는 불고기와 돼지고기 김치찌개, 닭튀김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된장국을 좋아했다. 쌀뜨물에 된장을 알맞게 풀고 애호박과 호박잎, 풋고추를 담방담방 썰어 넣은 다음 멸치를 동동 띄워 보골보골 끓인 된장국은 냄새도 구수하거니와 매큼들큼한 맛이 일품이다. 된장국은 뜨거울 때 호호 불어가며 떠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젖을 뗀 후부터 줄곧 먹어온 어머니의 된장국 맛은 이제 내 체질과 성격을 만들었다. 물론 아내의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맛이 좋다.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고 나면 온몸이 후끈 닳아 오르면서 기분이 개운해진다. 나는 아내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을 때면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내와 어머니는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입장은 난처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반찬과 아내의 반찬을 적당히 섞어가며 먹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고 입맛에 따라 반찬을 선택해가며 먹었지만, 할머니가 만든 반찬과 어머니가 만든 반찬을 구별하기에 이르렀고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은근히 엄마와 할머니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는 서로 주방을 점유하기 위해 노골적인 암투가 시작된 듯했다. 주방을 점유하기 위한 처음 단계는 냉장고 반찬 진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아내가 밖에 나간 사이에 냉장고 안의 반찬들부터 어머니 식으로 위치를 바꿔버린다. 아내가 이것을 용납할 리가 없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먼저 냉장고부터 열어보고 아내식대로 진열을 다시 하게 마련이었다. 어머니의 주방 출입이 잦아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어머니는 아내가 외출해서 조금만 늦을라치면 기회는 이때다 싶게, 혼자 주방을 독점하고 서둘러 저녁을 짓고 반찬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어머니의 주방 독점을 위한 노력은 생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집요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차츰 살림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러다가 아내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으면 외출을 했다가도 서둘러 귀가해서는 어머니가 노인정에서 돌아오기 전에 저녁밥 준비를 하곤 했다. 이런 날의 식탁은 풍성했다. 마침내 아내가 주방을 점유하게 되면 어머니는 한 발짝 물러나서 다시 호시탐탐 권토중래의 기회를 엿보다가 재빠르게 탈환한다. 이렇게 하여 주방 점유를 둘러싼 아내와 어머니 사이의 숨 가쁜 쟁투는 계속되었다. 어머니의 냄새가 부쩍 심해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바람이 드세어졌다. 기게톱 같은 이빨로 으르렁거리며 유리창을 물어뜯었다. 열어놓은 집 안의 모든 유리창들이 몸살 나도록 덜컹거리면서 벽에 걸린 달력이 날아갔다. 아무래도 태풍이 곧 상륙할 모양이다. 창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어머니가 헐근거리며 노인정에서 돌아왔다.
"하느님이 미쳤구만. 저눔에 바람 땜시 애써 키운 나락 다씨러지겄다. 하늘도 매정허시제, 한 열흘만 더 참어주시지 않고."
어머니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베란다의 창문을 닫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온 지도 10여 년이 지났건만 어머니는 지금도 농사 걱정이다.
이틀 뒤, 태풍은 상륙하기 전에 바다에서 소멸을 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바람이 윙윙거렸다. 나는 바람이 부는 동안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두고 거센 바람이 냄새를 휩쓸어가 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람은 냄새를 조금도 약화하지 못했다. 그 어떤 강한 바람도 어머니의 냄새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냄새는 더욱 깊고 무겁게 집 안의 구석구석으로 더끔더끔 짜들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코끝으로 냄새의 부피와 두께를 느낄 수가 있었다. 방학이 끝나 아이들까지 서울로 떠나고 없어, 어머니의 냄새는 무섭도록 강렬하게 확산했다. 나는 어머니의 냄새가 집 안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언제까지나 방치해두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질식할 것만 같은 어머니의 냄새를 약화하는 방법은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는 길밖에 없었다. 나는 다음 날 처형 집으로 가서 다짜고짜 설명도 없이 아내를 차에 싣고 돌아왔다.
"당분간 동생 집에 가 계시도록 할 테니, 당신은 제발 집에 있도록 해."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기라도 한답디까?"
반 강제로 떠밀리다시피 하여 차에 탄 후 말 한마디 없이 뚱해 있던 아내가 내 말을 비아냥거렸다.
"당분간이라도 모시도록 하겠어."
"당분간이라고요?"
"그래. 집 안에 찌든 냄새를 없앨 동안만이라도."
"냄새를 없앤다고요? 어떻게요?"
아내의 불만은 여전히 턱 끝가지 차올라 있었다. 나는 자동차 안에서 아내한테 냄새를 없애겠다고 거듭 약속을 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내는 잔뜩 주눅이 들어 어깨를 움츠리고 숨을 죽인 채 우묵한 눈을 연신 껌벅거리며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살림허는 여자가 집을 멀리 허면 종당에는 공중에 뜨고 마는겨."
예상했던 대로 어머니는 가시 돋친 목소리로 한바탕 쏘아댔다. 아내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현기증을 일으키며 흐물흐물 쓰러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안방으로 기어 들어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아내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물기 젖은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탓할 수가 없었다. 온종일 누워 있어도 좋으니 집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나는 우선 창문부터 열고 코끝이 아리도록 안방에 라벤더 향수를 듬뿍 뿌려댔다. 아내가 누워 있는 사이 어머니는 기세 좋게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내는 주방에 나와보지 않았고 저녁을 먹지도 않았다.
"네 처 또 아프냐?"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던 어머니가 마뜩찮은 표정으로 뚜벅 물었다.
"어머니 목욕은 자주 하세요?"
나는 대답 대신 밥그릇에 시선을 박은 채 생뚱맞게 물었다.
"왜? 에미헌테서 냄새날까 싶어서?"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아무 냄새도 못 맡으세요?"
"냄새? 사람 사는 집에서 사람 냄새가 나겄제잉. 그러고 살림살이 냄새도 날 것이고. 아무 냄새도 안 나면 워디 삶 사는 집이간듸, 그것이사 귀신이 사는 집이제잉."
"어머니한테서 나는 냄새는 무슨 냄새지요?"
"나헌테서 냄새가 나냐?"
"모르셨어요?"
"나헌테서 무신 냄새가 난다고 그려."
"아주 심해요."
"어떤 냄새?"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느라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거렸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듸. 절대로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녀."
어머니는 '절대로'라는 말에 힘을 주어 단호하게 부인했다.
"자, 어디, 한번 맡어봐."
그러면서 어머니는 상반신을 내 앞으로 바짝 꺾으며 재촉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어 부지런히 숟가락질만 해댔다.
"이놈아, 에미한테서 나는 냄새는 에미가 자식 놈들을 위해서 알탕같탕 살아온,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샌겨."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섞어가며 말했다.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는 어머니의 말이 명치끝을 후벼 팠다.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니…….
다음 날 새벽, 나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퍼뜩 잠이 깼다. 밖에 나가보니 집안의 모든 창문이 훨쩍 열려 있었다. 아내는 세탁기에서 탈수가 된 옷가지들을 꺼내 베란다 빨랫줄에 널다 말고 나를 보더니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순간 아내의 돌변한 태도에 놀란 내 동공이 확대되었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숨을 쉴 수 없다면서 기력이 빠져 있던 아내였는데 갑자기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세탁을 끝낸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끌고 다니며 구석구석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를 끝내자 아침을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경쾌한 도마질 소리와 개수대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매큼한 김치찌개 냄새가 온통 집 안을 뒤덮고 있었다. 아내가 돌아오자 집 안은 생기가 넘쳤다. 아침 식사 시간이 다 될 때까지도 어머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마 아내 때문에 밀려난 냄새와 함께 기회를 엿보며 방 안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밥상을 다 차려놓은 후에야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쌩하게 찬바람을 일으키며 노인정으로 갔다.
아내가 집에 돌아온 후부터, 집 안을 장악했던 어머니의 냄새가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했다. 안방은 아내의 냄새를 완전히 회복했고 주방과 거실에서는 소강상태였다. 점점 세력이 약화된 어머니의 냄새는 주방과 거실에서조차 오래 버티지 못했다 닷새가 지나자 어머니의 냄새는 어머니의 방과 어머니가 혼자 사용하는 화장실 안으로 뒷걸음질 쳐 기어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의 냄새가 아내의 냄새에 위압당해 가는 동안 숨 가쁜 긴장감을 느꼈다. 마치 파워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여자의 냄새를 통해서 나는 힘의 팽창과 몰락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힘은 삶의 욕망이고 생존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참으로 치열한 생명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내의 냄새는 어머니의 냄새를 물리친 다음에 스스로 소명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냄새로 냄새를 평정한 다음에는 무색무취無色無臭의 상태에서 방어를 유지했다. 그러니까 아내의 냄새는 제취제除臭濟 역할만을 한 셈이었다.
나는 아내가 돌아온 것을 계기로, 무취의 상태로 돌아간 아내의 냄새처럼 어머니의 냄새를 완전히 소멸해 버릴 생각을 했다. 나의 이 같은 계획은, 내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침잠해 가고 있는 우리 집의 분위기를 활성화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나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한 동생 집을 찾아가, 자세한 이유는 묻지 말로 한 달 동안만 어머니를 모셔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생은 무엇 때문이냐고 거듭 물었다. 나는 동생 부부한테 어머니의 냄새 때문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동생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난간함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동생은 단 한 번도 어머니를 모셔보지 않았다. 어머니도 동생 집에 가면 겨우 하룻밤을 넘기고 서둘러 돌아와 버리곤 했다. 작은아들 집은 불편하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밥 한 끼라도 축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배려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나는 어머니를 모실 동안 반찬 값이라도 보태라면서 준비해 간 돈 봉투를 내놓았다. 마지못해 동생은 재수와 함께 잠깐 조카들 방으로 나갔다 오더니 한 달 동안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내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동생 부부는 다음 날 저녁 약속대로 우리 집에 와서 한사코 싫다며 떼를 쓰다시피 한 어머니를 억지로 모셔 갔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 한결 냄새가 덜한 것 같죠?"
아내가 진공청소기를 밀며 약간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냄새의 정도 차이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동생이 어머니를 모셔 간 다음 날부터 나와 아내는 본격적으로 어머니의 냄새 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어머니의 방을 여러 차례 쓸고 걸레질을 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의 방을 청소하면서, 어렸을 적 할아버지 방에서 빈대를 잡던 기억을 떠올렸다.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빈대 냄새가 내 머릿속의 틈새를 후벼 파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혼자 거처하던 건넌방에서는 언제나 담뱃진 냄새와 빈대 냄새가 진동했다. 수수 알갱이만 한 크기에 진한 밤색의 동글납작한 빈대는 낮동안에는 벽과 문, 목침 등 방 안의 모든 틈새에 죽은 듯 숨어 있다가도 밤만 되면 구물구물 기어 나왔다. 할아버지는 빈대 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한밤중에 불을 켜고 벽이고 방바닥에 기어 다니는 빈대를 파리채로 후려친 다음 손톱으로 잔인하게 꾹꾹 으깨어 죽였다. 그 때문에 벽에는 온통 빈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또 틈새에 담배 연기를 입으로 불어넣어 빈대가 기어 나오게 했으며 화롯불에 벌겋게 달군 부젓가락을 목침이나 문 틈새에 쑤셔대기로 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빈대가 타드는 노린내가 진동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틈새에는 한동안 빈대가 살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다른 빈대가 들어와 살았다. 이럴 때 할아버지는 틈새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아 빈대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부젓가락을 쑤셔댔다. 결국 빈대는 냄새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나는 냄새 때문에 죽은 바보 같은 빈대가 불쌍했다. 그런데 빈대가 죽을 줄 알면서도 냄새를 피우는 것은 생존을 알리는 메시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여기 살아 있다고 하는 아우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을 대할 때마다 할아버지가 부젓가락으로 빈대를 잡던 그때 일이 떠오르곤 했다. 할아버지는 빈대 잡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건넌방 빈대 냄새도 사라졌다. 건넌방 빈대들은 대들보가 컹컹 울린 정도로 해묵은 할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를 들어가며 할아버지와 생존을 같이했다. 아마 그중 몇마리는 무덤까지 따라갔을지도 몰랐다.
나는 어머니 방 벽에 향수를 뿌렸다. 화장실에 아로마 향 촛불을 겨고 방 구석마다 준비해 온 숯을 놓아두었으며 녹차 찌꺼기가지 방바닥 여기저기에 널어놓았다. 어머니의 방 안에 있는 반닫이며 TV, 보료, 이불, 옥돌 전기장판, 베개, 가방, 사각 거울, 벽에 걸린 액자, 뻐꾸기 벽시계, 헌 옷가지 등도 베란다로 꺼냈다. 그리고 반닫이 안에 들어 있는 옷이며 버선 한 짝까지도 모두 집게로 집어 빨랫줄에 널고 바람을 쐬었다.
"여보 여보, 이게 다 뭐죠?"
어머니의 반닫이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던 아내가 낡고 희부옇게 색이 바랜 무명 천보따리를 풀어보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는 어머니 방에 걸레질을 하다 말고 베란다로 나왔다. 아내는 오른손으로 코를 쥐어 막고 있었다. 풀어헤친 보따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훅 덮쳐왔다. 보따리 속에는 녹슨 호미와, 오래된 손저울, 함석 젓 주걱, 판자로 짠 손때 묻은 되, 때에 전 흰 다후다 천의 돈주머니, 짙은 밭색의 나일론 머플러, 땟국에 전 앞치마 등이 들어 있었다. 나는 검정 고무줄로 친친 묶여 있는 돈주머니를 풀고 그 속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냈다. 네 귀퉁이가 희치희치 닳고 종이 보푸라기가 푸수수한, 낡고 희누르스름하게 빛이 바랜 수첩에는 뭉뚝한 연필 심지에 침을 발라가며 꾹꾹 눌러 쓴 어머니의 서투른 글씨들이 삐뚤빼뚤 꿈틀거리고 있었다. 안골 큰 점백이네 간고등애 한 손. 쑥실 은행나무집 며루치 한 되빡. 샛골 양철대문집 양재물 두 근. 쌩오지 키 작은 과수댁 빨랫비누 두 장. 그 수첩은 어머니의 외상 장부가 분명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어머니는 도부 장사를 시작하여 아들 뒷바라지를 했다. 도부 장사를 그만두고 농사만 짓게 된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부터였다.
"이게 다 뭐예요?"
아내가 주걱처럼 생긴 젓 주걱을 들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여자의 몸으로 젓 지게를 지고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마을을 떠돌면서 젓 주걱으로 새우젓을 떠서 팔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무렵 어머니한테서는 푹삭은 젓국 냄새가 진동했다. 젓 주걱에서는 그때의 어머니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어머니가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오랫동안 도부 장수며 젓 장수를 했다는 것을 알 턱이 없는 아내는 냄새나는 보따리 속의 이상한 물건들에 대해 의문을 갖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노망나신 거 아녜요? 어디서 이런 쓸데없는 물건들을 주어다 놓은 거죠?'
아내는 젓 주걱으로 녹슨 호미며 손저울과 되를 쿡쿡 쑤셔대며 거듭 물었다. 나는 말없이 녹슨 호미를 집어 들었다. 오랜 세월 손때 먹은 호미 자루가 번질거렸다. 물로 칼칼하게 씻은 듯 흙이 묻지 않은 호미 날쪽에 불긋불긋 녹이 슬어 있었다. 예전에 어머니는 농사꾼 집에서 호미나 낫 등 농기구에 쇠꽃이 피면 집 안이 망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었다. 나는 호미를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손때 먹은 자루에서는 시지근한 땀 냄새가 났고 늑슨 날에서는 비릿한 녹내가 났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보따리에서는 고리고리한 새우젓국 냄새를 비롯해서 짭조름한 간고등어 냄새, 시큼한 쇠꽃 냄새, 비리척지근한 멸치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참으로 묘한 냄새를 만들고 있었다. 여러 가지 냄새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치장을 하고 소리를 내며 꿈틀대는 것 같았다. 그 냄새들이 아우성치며 내 뼛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냄새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나는 그 냄새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거부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나는 그때서야 어머니 냄새의 진원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보따리 당장 갖다 버려야겠어요."
나는 아내의 그 말에 심한 저항감을 느꼈다. 나와 아내는 어머니의 보따리를 버려야 한다거니 버려서는 안 된다거니 한동안 실랑이를 했다.
"도대체 이런 허섭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겠다는 이유가 뭐예요?"
"뭐? 쓰레기?"
"아니며 보물이라도 되나요?"
아내의 목소리가 도전적으로 변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떨려왔다.
"형님, 혹시 어머니 집에 오시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다니, 무슨 소리야?"
나는 그 순간 불길한 예감에 휘감겼다.
"큰일 났네. 어머니가 없어졌어요."
"없어지다니,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
"우리 집에 오신 후 맥이 빠진다면서 밥도 안 드시고 방 안에만 누워계셨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안 보여요."
나는 할 말을 잊고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어머니의 얼굴 윤곽이 그려지지지가 않았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끝이 살짝 매달린 가느다란 눈도, 뭉뚝한 코도, 크고 도톰한 입도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너, 어머니한테 냄새난다고 했냐?'
나는 생뚱스런 질문을 하고 나서 곧 후회했다.
"무슨 냄새? 그런 말 안 했는데요. 어머니한테서 어머니 냄새가 나겠죠 뭐."
"알았다. 어머니 꼭 찾아야 한다."
나는 전화를 끊고 허둥지둥 옷부터 꿰입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면서 가슴이 떨려왔다. 자동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어머니를 찾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선 도시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큰길을 향해 달리는 동안 어머니가 했던 말이 뇌리에서 자꾸 부스럭거렸다. 그 냄새는 몸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온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는 말이 벌겋게 달궈진 부젓가락처럼 오목 가슴을 뜨겁게 파고들었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병든 시아버지와 어린 두자식을 위해 짐승처럼 살아온 어머니. 그것은 어머니가 살아온 신산한 세월이 발효醱酵하면서 풍겨져 나온 짙은 사람의 향기였다. 고통스러웠던 긴 세월의 더께 같은 것. 어머니의 냄새는 팔십 평생 동안 푹 고삭은 삶의 냄새이며, 희로애락의 기나긴 시간에 의해 분해되는 유기체의 냄새가 분명했다.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냄새가 내 몸의 모든 핏줄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도시를 빠져나온 나는 무작정 고향으로 가는 국도를 타고 달렸다. 황금빛 들판에는 벼들끼리 온몸으로 서로에게 부대끼며 물결치고 있었다. 땅의 혼령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바람처럼 훅 덮쳐왔다. 나는 국도 변에 차를 세우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어머니의 향기로운 냄새가 아우성치며 온몸의 핏줄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머니의 향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93.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