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간지 2시간이 훌쩍 넘어가는데 아직 거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자전거 거치대에 땅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또... 실종? 세 시간을 넘기면 찾아 봐야 한다. 아파트 중정으로 내려가 땅꼬를 부른다. 우리의 신호는 박수 세 번 ‘짝짝짝’이다.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계절, 아파트 중정은 울림이 좋다. “땅꼬야~~~”부르는 소리는 열린 창문을 통해 모든 세대에게 전해질 것이고 우리의 근황이 주민들에게 공개되는 일은 다소 민망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박수 신호로 대체되었디. 이 소리는 더 멀리 분명하게 전달되고 고양이는 청력이 뛰어나다. 박수를 치며 아파트 중정을 돌고 있자면 어느샌가 종아리에 ‘콩!’ 박는 감촉과 함께 땅꼬가 나타난다. 평소에는 그렇다. 하지만 그래도 나타나지 않으면 실종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제 마음을 다잡아야 할 시간이다.
땅꼬의 모성을 박탈한 대신 집에 가두어 살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 풍성한 감각의 세계를, 너의 영역에 대한 권리를 지켜주겠다, 너의 모험을 함께하겠다는 낭만적인 결단 끝에 나는 아파트에 기거하면서 산책냥 혹은 외출냥이의 집사가 되었다. 그날 이후 땅꼬와 함께 여행하고 산책하는 특별한 경험이 주는 희열의 한편에는 끝나지 않는 배웅과 마중, 그리고 간헐적인 실종에 대처하는 수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8년의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실종 사건이 있었고 실종 때마다 치러야 했던 마음 고생과 몸의 수고 끝에 실종의 시간 동안 땅꼬에게 일어나는 일과 그에 대처하는 땅꼬의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고 집사인 나도 비교적 여유가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크고 작은 실종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땅꼬의 산책은 계속되고 있고 땅꼬는 그에 따른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곤 했지만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산책의 과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가장 커다란 위기는 함께 산 지 3년째 되던 늦은 가을, 킨텍스 근처로 이사해 살던 때 닥쳐왔다. 땅꼬의 익숙한 영역이었던 산을 면한 지금의 아파트를 떠나 광활한 평지에 신축된 오피스텔 최고층으로 옮겨 살던 2년의 기간 동안 자율 산책은 불가능해졌다. 집에 갖혀 지내는 땅꼬가 답답할까봐 퇴근하고 난 저녁이나 휴일이면 오피스텔 단지 정원과 인근 공원으로 땅꼬를 이끌어 산책을 다녔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고 킨텍스에서는 행사가 멈췄다. 봄날...벚꽃이 피었다 지고 가을과 겨울이 오가는 동안 텅 비어버린 킨텍스의 광활한 정원은 우리 차지였다. 그러다 공원 저류지 양지쪽에 놓인 고양이 밥자리를 발견하고 거기 사는 고등어 냥이에게 간식과 사료를 주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다.
출근이 재개된 후 11월 무렵, 어느 늦은 오후 땅꼬와 산책을 갔다가 고등어 냥이를 보았다. 혹시나 준비해간 간식을 밥자리에 놓아두는 동안 땅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추워진 날씨, 밥자리 말곤 집이 없는 고등어 냥이가 맘에 걸려 집을 만들어주자 하고 가까운 집으로 달려와 준비되어 있는 재료로 뚝딱 완성했다. 집을 만드는 동안 땅꼬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부르면 찰떡같이 나타나는 땅꼬를 믿은 것이었다. 하지만 밥자리 곁에 집을 놓아둔 뒤 어둑해지는 정원을 한 시간이 넘게 부르며 찾아다녀도 땅꼬는 나타나지 않았다. 밤이 왔다. 초조해져 집과 정원을 오가면서 2시간 간격으로 “땅꼬야~” 외치고 박수를 치면서 헤메다녀도 "야~옹!" 대답하던 땅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단이 났구나.
출근해야 한다. 2만보의 수색 후 새벽에야 천근만근해진 몸을 눕히곤 온갖 가능성을 상상했다. 고등어냥이와 다퉈 큰 부상을 입어 움직이지 못하나? 그렇다면 부르는 소리에 “야옹~~~”답이라도 했을텐데 ... 그렇다면... 호수공원으로 통하는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 중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 건 아닐까?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이라면... 최악이다.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심장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잔인한 손아귀가 이끈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땅꼬의 울음소리가 밤새 환청으로 들리고 어서 어서 그 무서운 곳에서 땅꼬를 되찾아와야 한다는 조바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손아귀에서 땅꼬를 구출하는 방법은 뭘까?
다음날 출근해서 실종 고양이를 찾는 온갖 사이트에 사진과 사연을 올리고 근처에 붙일 전단지를 만들었다. 문제는 사례금이었다. 그래 혹시 모를 누군가의 사악한 쾌락과 맞바꿀 수 있을 정도라면... 50만원... 이 정도면 유혹적이겠지.
50만원 사례금 덕분이었는지 비슷한 고양이를 찍은 사진과 함께 목격 제보가 쇄도했다. 하지만 땅꼬는 아니었다. 퇴근 무렵 만들어둔 전단지를 코팅까지 하여 킨텍스 인근에 도배했다. 잔인한 그 누군가가 이 길을 또 걷는다면 꼭 볼 것이다. 밤이 왔다. 배가 고플텐데... 혹시나 해서 땅꼬가 좋아하는 습식사료를 가득 담아 실종된 근처 덤불 속을 헤치고 들어가 밥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계속되는 환청에 이끌려 몽유병 환자처럼 공원의 어둠 속을 방황하다 새벽이 왔다. 무서움도 잊었다. 밥자리 사료는 그대로였다. 다음날 비가 내린 저녁과 밤, 수색은 재개되었지만 찾지 못했다.
4일째 되던 날 아침, 제보 전화가 걸려 왔다. 킨텍스에 입주한 사무실에 근무하는 남성이라는 소개와 함께 비가 내린 지난 밤, 정원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있던 고양이가 전단 속의 땅꼬인 것 같다고... 전날 밤, 비가 내리면 혹시나 주차장에서 비를 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하 주차장에서 부르며 다닌 소리를 들었던 땅꼬가 한발 늦게 당도했을 것이다. 젖은 채 내가 떠나버린 주차장 계단에서 황망하게 앉아있었을 광경이 눈에 선해서 맘이 아팠다. 하지만 다행이다. 납치되진 않았구나.
퇴근 후,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산책 중 마주치곤 했던 노견을 돌보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땅꼬가 실종된 일도 알고 계시고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힘껏 찾아주시던 분이다. 땅꼬 제보 소식을 공유한 후 함께 주차장 근처로 갔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큰 소리로 부르며 찾았지만 허탕이었다. 그 순간 계단 쪽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달려갔더니 “땅꼬 찾았어요~~~!!!” 아주머니가 필사적으로 땅고를 안고 계셨다. 주차장 근처 식당 앞에서 땅꼬를 발견하셨고 내게 전화했지만 정신없는 내가 받질 못했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땅꼬에게 다가가 “땅꼬야~~~ 이리와!!!” 불렀더니 한참 고민하다 주춤주춤 다가왔다는 것이다. 주차장에서 울리는 부르는 소리를 들은 땅꼬가 입구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4일 만에 땅꼬는 아주머니 품을 경유해 내 품으로 돌아왔다. 내 품에서 머리를 부비는 땅꼬를 안고나서야 세상이 빛을 되찾고 일상의 시계가 다시 째깍거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께 끝없이 감사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땅꼬가 내려달라 보채기 시작했다. 내려주자 앞장 서 걸으면서 사뭇 딴청을 피운다. 괜히 냄새를 맡기도 하고 멀리 보기도 하면서 흘깃흘깃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살피는 것이었다. 서운함.... 분명하게 느껴지는 원망!!!
집으로 돌아와 4일 굶은 허기를 채운 땅꼬 몸을 살피던 중 딱지가 앉은 상처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고등어 냥이와 싸움이 붙었고 상처를 입은 땅꼬가 어딘가 숨어 있었던 거로구나.
그 후, 어느 겨울날 산책 중 알게 된 땅꼬의 은신처. 공원에서 큰 도로로 내려가는 돌계단은 오후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이 잦아드는 곳이라 우리가 즐겨 머물곤 하는 장소였다. 그 계단 곁 화단 겸 풀숲에 나지막한 지붕처럼 덮인 덤불이 있다. 우연히 문제의 그 고등어 냥이를 먼발치에서 본 땅꼬가 사색이 돼서 쏜살같이 덤불로 숨어 들어갔다. 덤불을 들추고 하염없이 땅꼬를 불러도, 츄르를 내밀어도 땅꼬는 몸을 부풀린 채 “하악~~!!!”거릴 뿐이다. 그 순간의 땅꼬는 모든 판단분별을 상실하고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내 존재감은 본능 앞에서 위력을 잃었다. 아~~~ 이랬구나! 싸움에서 다친 후 이곳에 숨어서 공포가 잦아들고 상처에 딱지가 앉기까지 바로 곁에서 부르는 자기 이름도 분별할 여유가 없었구나.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공포의 파도가 지나고 난 후 내 부르는 소리를 쫓아서 두렵지만 용기를 냈던 것이구나.
외투를 벗어 땅꼬를 감싸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실종 사건의 전모와 함께 부상당한 고양이의 습성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사례금 50만원은 어찌 되었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맘이 다르다는 속설은 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사악한 쾌락을 상대한 협상은 없었다. 제보자는 가당찮다고 사양했고 나느 슬그머니 물러나는 대신 카톡 선물하기로 10만원 가량의 치킨을 선물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나누는 간식 타임은 일상의 액센트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귀가 후 안심하고 잠든 땅꼬의 사진도 동봉했다. 덕분에 땅꼬로 인해 또 한번 선량한 세상, 고마운 마음들을 선물로 얻었다.
...
길 여기저기 빛 바랜 전단지, 또는 현수막 속 “가족을 찾습니다.”
그리고 또 “잃어버린 강아지(고양이) 찾습니다.... 가족같은 아이입니다.”
그 문구 앞에 멈춰서서 이 사연을 붙인 이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그러고자 해도 그럴 수는 있었을까? 나는 또 한 번 느즈막한 나이에 비로소 낯선 세계의 자물쇠에 손을 내민다. 한 삼색이 고양이를 향한 애정이라는 열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