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첫 도읍지 졸본은 어디인가?
우리는 국사 시간에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은 중국 환인에 있는 오녀산성이라고 배웠고 이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역사적인 사실로 믿어 왔습니다.
현재 졸본의 위치로 추정하는 오녀산성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85%80%EC%82%B0%EC%84%B1
하지만 이는 사료에 입각한 역사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졸본의 위치를 환인의 오녀산성으로 비정한 사람은 일제식민사학자 도리이 류조이며 강단사학에서 이를 그대로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정사인 삼국사기에 졸본의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 - 고구려 초기 도읍 홀승골성과 졸본 ( 기원전 37년 )
고기(古記)에서 이르기를 “주몽(朱蒙)이 부여(扶餘)로부터 난을 피해 도망하여 졸본(卒本)에 이르렀다.”라 하였으니, 곧 흘승골성(紇升骨城)과 졸본(卒本)은 같은 한 곳이다. 《한서지(漢書志)》에서 이르기를 “요동군(遼東郡)은 낙양(洛陽)에서 3천 6백리 떨어져 있으며, 속한 현으로서 무려(無慮)가 있다.”고 했다. 곧 《주례(周禮)》에서 보이는 북진(北鎭)의 의무려산(醫巫閭山)이며, 대요(大遼)註 010때에 그 아래에 의주(醫州)를 설치하였다.
즉 졸본의 위치는 의무려산(醫巫閭山)에서 찾아야 합니다.
또한 당 수서 배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高麗之地,本孤竹國也。周代以之封於箕子,漢世分為三郡
고(구)려는 고죽국에서 나왔다, 주나라때 기자를 봉하고 한나라때 한삼군(한사군)이 설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죽국도 하북성 노룡현으로 북경 부근에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사군의 위치도 같이 알수 있습니다.)
즉 졸본의 위치는 의무려산(醫巫閭山)과 고죽국(竹國也)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문헌 사료에 합당합니다. 1660년에 제작된 천하고금대총편람도에서 그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는데 졸본의 추정 위치는 하북성, 난하 부근입니다.
(한서 지리지 요동군 : 무려현(無慮縣): 應劭曰慮音閭師古曰即所謂醫巫閭.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慮의 음은 려(閭)라고 했다.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즉 이른바 의무려(醫巫閭)라고 했다. 또한 巫를 없을 무(無)로도 사용합니다.)
삼국사기 - 후한과 화해하다 ( 49년 (음) )
2년(49) 봄에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을 습격하였으나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해하고 친하게 지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2년에 중국 내륙의 산서성 태원까지 공격한 기록을 보더라도 졸본을 현재의 오녀산성으로 비정할 수 없습니다. 졸본을 난하 부근으로 해석하면 모본왕에 관련된 삼국사기 사료도 정확히 해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