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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19 03:30
젊은 연주자들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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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 최연소 나이로 우승했던 임윤찬(왼쪽)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연주자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 /반 클라이번 콩쿠르·소프로니츠키
스마트폰이 거의 모두의 필수품이 되면서, 음악 감상이 취미인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 음반을 구입하거나 파일을 다운로드받는 방식에서, 이제는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스트리밍하는 방법으로 듣고 싶은 음악을 접하죠.
스트리밍 감상법이 유행하면서 음악 감상 문화도 감상자의 개성이 더 살아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분과 상황에 맞는 원하는 곡을 바로 들을 수 있고, 나아가 여러 곡을 모아 즉석에서 플레이리스트(재생 목록)를 만들어 연달아 들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플레이리스트는 누구나 쉽게 나만의 취향에 맞는 음반을 구성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이런 플레이리스트를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취향의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죠.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나라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최근 애플사가 출시한 클래식 음악 감상 앱을 통해 자신만의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임윤찬, 조성진, 손열음이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서 꼽은 주요 연주자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하는 연주자들은 모두 특별한 개성으로 한 세기 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평생 은둔, 그러나 '몰입 연주'로 존경받아
먼저 언급할 인물은 임윤찬이 특별히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1901~1961)죠. 이번에 임윤찬의 플레이리스트에도 들어갔습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소프로니츠키는 그가 두 살 때 가족 모두가 폴란드 바르샤바로 이사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첫 피아노 레슨을 받았고, 1921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했습니다. 그는 학교 친구였던 옐레나 스크랴비나와 1920년 결혼했는데, 엘레나는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딸이었죠.
소프로니츠키는 동시대 동료 피아니스트들이 깊은 존경을 보낸 인물이었습니다. 무대에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감에 찬 연주를 들려줬기 때문입니다. 소프로니츠키는 고전파부터 20세기 음악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연주했지만 그가 특히 애정을 보인 작곡가는 쇼팽과 스크랴빈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장인이기도 했던 스크랴빈을 해석해 연주한 것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어요.
소프로니츠키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이가 그의 연주에서 받은 영향을 고백하며 알려졌죠. 그는 평소 대중과 접촉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했고, 해외 연주도 단 두 차례만 가졌습니다. 생전에는 그의 진가가 러시아 밖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죠. 그의 연주는 강한 집중력으로 음악 속으로 온전히 몰입합니다. 지금은 좋지 않은 음질로 들을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합니다.
창의적이고 세련된 '프랑스식 연주'
조성진의 플레이리스트 중 주목할 인물은 알프레드 코르토(1877~1962)입니다.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한 조성진은 프랑스 피아니스트들의 전통에 주목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프랑스의 대표적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 지휘자였던 코르토의 연주를 플레이리스트에 넣었습니다.
코르토는 1877년 프랑스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896년 프랑스 파리음악원을 졸업했기 때문에 프랑스인 음악가라고 할 수 있어요. 코르토는 악보를 주관적으로 해석해 연주하는 것이 매력적이었죠.
실내악 연주에도 열정을 보였던 그는 1905년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와 트리오를 결성해 많은 연주를 했어요. 선생님으로 클라라 하스킬, 디누 리파티 등의 명연주자들을 길러내기도 한 그는 1919년 파리에 에콜 노르말 음악학교를 설립해 지금까지도 프랑스 음악교육에 큰 업적을 세운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초창기에 녹음 작업을 시작한 코르토는 1925년 빅터 레이블을 통해 슈베르트와 쇼팽을 녹음한 이후 많은 연주를 기록으로 남겼어요. 코르토는 쇼팽 이외에 베토벤, 슈만, 그리고 프랑스 레퍼토리들도 많이 연주했습니다. 코르토는 바쁘고 다양한 일정으로 인해 기술적으로 다소 부족한 면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늘 창의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의 연주로 듣는 이들을 사로잡았다고 해요.
2차대전 공습받던 광장서 연주한 피아노
손열음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여성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여럿 들어있어요. 그중 영국 출신 피아니스트 마이러 헤스(1890~1965)를 소개합니다. 런던의 유태인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난 헤스는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길드홀 음악학교를 거쳐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했습니다. 왕립 음악원의 토비아스 마테이 교수는 그녀에게 평생의 가르침을 준 스승이 되었는데요, 무엇보다 '음악을 즐기면서 연주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말해 주었죠.
헤스는 꾸준히 노력하는 연주자였어요. 스스로 천재성이 뛰어난 음악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07년 명지휘자 토머스 비첨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하면서 데뷔했고, 1922년 1월 뉴욕에서 미국 데뷔 연주를 한 후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음악사에 새긴 사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공습의 위험에도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의 국립 미술관에서 매일 점심 시간에 시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한 일이었습니다. 전쟁 직후부터 시작된 이 음악회는 전쟁 후까지 이어져 6년 반 동안 무려 1698회의 연주가 이뤄졌어요. 그녀의 동료들은 바쁜 일정 가운데 그녀가 주변의 이웃들과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음악인으로 보여준 행동들을 오랫동안 기억했죠. 1941년 헤스는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DBE)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베토벤, 슈만, 브람스 등의 작품 연주에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그는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의 피아노 편곡을 만든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스타 음악가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살피는 일은 그들의 탁월한 연주와 음악 세계를 흥미롭게 엿보는 것입니다. 다양한 선곡을 따라가며 또 다른 음악 감상법을 발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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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조성진(왼쪽)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연주자 '알프레드 코르토'. /빈체로·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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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콥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 입상했던 손열음(왼쪽)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연주자 '마이러 헤스'. /연합뉴스·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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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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