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신앙사전]
정의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수호신으로 믿는 상징물.
형태
솟대는 삼한시대의 소도(蘇塗) 유풍으로서 ‘솟아 있는 대’로 인식하기도 한다. 세우는 목적에 따라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 마을의 액막이와 풍농·풍어 등을 기원하여 세우는 일반적인 솟대, 두 번째 풍수지리상으로 행주형(行舟形)인 마을에 비보(裨補)로서 세운 솟대, 세 번째 급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솟대인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마을신앙과 긴밀하다. 솟대는 대체로 마을 어귀에 세워진다.
홀로 세워지기도 하지만 장승과 함께 세워지거나 장승과 탑이 있는 곳에 함께 세워지기도 한다. 솟대의 새 모양은 Y 자형 나뭇가지로 만들거나, 기역(ㄱ) 자형 나뭇가지를 머리와 목으로 여겨서 Y 자형 나뭇가지나 넓적한 나무판에 연결하여 만든다. 새 모양을 사실적으로 깎아서 만들기도 한다. 재료로는 보통나무이지만 쇠나돌로 만들기도 한다. 솟대에 올려 있는 새의 숫자는 1~3마리이다. 솟대의 높이는 마을에 따라 다른데, 부산지역 일부 마을의 거릿대는 1~2m인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3m 이상이다. 장승과 함께 세워지는 경우는 장승보다 더 높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솟대의 기둥 굵기는 일정치 않다. 재질은 곧게 뻗은 소나무를 다듬어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마을에 따라 돌기둥, 쇠파이프, 콘크리트 전주(電柱)로 하는 곳도 있다. 새는 오리라고 호칭하는 마을이 대부분이지만 지역에 따라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왜가리, 까치, 까마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새의 크기는 마을마다 다르며, 동일마을이라도 제작할 때마다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솟대의 제작 시기도 마을마다 다르다. 해마다 마을 제의에 즈음하여 제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솟대가 부러져야 다시 만들거나 윤년이 들 때마다 새로 세우는 곳이 있다.
기둥이 콘크리트인 까닭에 새만 4~5년마다 교체하는 곳도 있다. 조간(鳥竿)이나 새가 모두 쇠로 되어 있어 오랫동안 솟대 제작을 잊고 사는 마을도 있고, 반영구적인 돌로 만든마을도 있다. 솟대를 나무로 새롭게 만드는 마을에서는 제일(祭日) 오전에 준비해 오후에 제작을 마치는 것이 보통이다. 솟대를 새로 제작할 때 나무껍질만 벗겨서 조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어떤 마을에서는 숯가루와 황토를 이용하여 기둥에 나선형으로 문양을 넣어 마치 황룡과 흑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다.
내용
솟대는 원래 긴 장대 끝에 오리 모양을 깎아 올려놓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간 역할을 하여 화재, 가뭄, 질병 등 재앙을 막아 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그러던 것이 풍수지리사상과 과거 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널리 확산됨에 행주행 지세에 돛대로서 세우는 짐대와 급제를 기념하기 위한 화주대로 분화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하여 오리는 물새가 갖는 다양한 종교적 상징성으로 인해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와 주고, 화마로부터 지켜주며, 홍수를 막아주는 등 마을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는 마을지킴이로 존재한다.
솟대의 새는 한 기둥에 세 마리를 얹은 경우, 새의 머리 방향이 세 마리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는가 하면 각기 동쪽, 남쪽, 북쪽을 향하기도 한다. 새가 두 마리인 경우 서로마주보고 있는가 하면 같은 곳을 응시하기도 한다. 또 한 마리씩 여러 개의 솟대가 있는 경우 같은 곳을 보고 있는가 하면 한 마리는 마을 안, 다른 한 마리는 마을 밖을 각각 향하고 있기도 한다. 이렇듯 새의 모양이나 머리 방향, 마리 수에 따라서도 다양한 의미가 부연된다.
솟대를 가리키는 호칭은 솔대, 소주, 소줏대, 화주, 표줏대, 수살대, 수살이, 짐대, 진대, 오릿대, 당산, 철융, 거오기, 별신대, 진또백이, 화재뱅이, 용대, 대장군영감님, 거릿대, 골맥이성황, 파촉대, 성주기둥, 설대, 추악대, 화줏대 등 다양하다. 마을 제의가 대부분 유교식으로 진행되듯이 솟대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솟대제만 지내는 곳이 있는가 하면 국사성황제→솟대제(골맥이제) 순서로 제의를 진행하거나 산신제를 지낸 뒤 당산나무제·탑석제(조탑제)·짐대제(솟대제)를 함께 진행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산신제→고사당제(골맥이할배·할매제)→거릿대장군제(솟대제)→장승제→용왕제(우물제) 또는 골맥이할배·할매제→용왕제→거릿대장군제(솟대제) 순서로 제의가 진행되기도 한다.
지역사례
마을 제의를 지내는 곳이라 하더라도 솟대를 신체로 삼는 마을은 흔치 않다. 솟대를 제의 때마다 장승과 함께 새로 만들어 세우더라도 장승의 부속물로 인식하여 솟대를 신체로 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 송내동 아치노리에서는 마을 제의를 수살대고사 또는 ‘수살대감님 모신다’라고 하면서 솟대를 신체로 모시고 있다. 수살대고사는 매년 정월 열나흗날 치른다. 15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수살대고사는 가뭄이나 화재 같은 재앙을 막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지낸다고 한다.
솟대는 원래 나무로 만들었으나 쉽게 썩어 몇 년에 한 번씩 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고자 1997년 무렵에 체신용 전신주를 이용하여 솟대를 설치했다. 전주에 나무와 비슷한 색으로 칠을 하고 꼭대기에다 나무로 만든 새를 올렸다. 새는 밤나무로 만든 기역(ㄱ) 자 모양으로 머리를 만들었으며 그것을 Y 자 모양의 몸통에 꽂아 전주에 볼트로 연결하였다. 보통 4~5년마다 교체되는 이 새는 기러기로 상징되며, 동쪽을 바라보게 세워진다. 새의 몸통에서 양옆으로 뻗은 가지 끝에 약 2m 길이의 왼새끼를 매달아 놓는다. 이는 기러기의 발을 의미한다.
제의는 기러기 발을 교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청년들이 사다리를 이용하여 지난해에 매달아 놓은 줄과 교체하고 새로 교체한 왼새끼 끝에 화선지를 묶어 둔다. 상차림은 시루떡 위에 통북어 두 마리를 나란히 얹어 놓고 막걸리를 따라 놓는 것이 전부이다. 축문은 따로 없으며, 화주가 고축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소지는 화주가 참여한 각 가구의소원을 축원하며 올린다. 소지 올리기가 끝나면 상 위에 놓인 북어 두 마리의 머리를 잘라 입에 떡을 물려 입이 하늘로 향하도록 솟대에 묶는다. 묶을 때에는 화선지로 꼬아만든 줄을 이용하여 짐승들이 건들지 못하게 높이 단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서는 국사성황제와 골맥이성황제를 지낸다. 국사성황제는 마을 뒤 굴로봉에 있는 성황당에서 지낸다. 이 제의는 성황당에 있는 기록물들을 종합할 때 1635년경에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진리의 골맥이성황은 솟대를 신체로 한다. 이 솟대를 마을에서는 흔히 골맥이라고 부른다. 마을 어귀에 해당하는 남쪽과 북쪽 두 곳에 있다. 금진초등학교 정문 옆에 있는 남쪽의 솟대는 3m 높이의 쇠파이프로 되어 있으며, Y 자형의 쇠파이프에 쇠로 만들어진 세 마리가 동쪽·서쪽·북쪽을 각각 향한 채 앉아 있다. 북쪽의 솟대는 3m 높이의 나무로 되어 있으며, Y 자형의 나무에 나무로 만들어진 새 세 마리가 동쪽, 서쪽, 북쪽을 각각 향해 앉아 있다. 금진리는 서쪽의 굴로봉이 마을을 감싸고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져 있다. 솟대가 위치하고 있는 두 곳은 남쪽과 북쪽의 마을 입구이다. 마을 사람들은 솟대가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아 주는 액막이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제의는 정월대보름날과 오월단옷날에 행한다. 시간은 자정을 기해 국사성황제를 지낸 다음 솟대가 있는 두 곳에서 동시에 골맥이성황제를 지낸다. 즉 국사 성황제를 지내는 제관과 골맥이성황제를 지내는 제관을 각각 선발하여 국사성황제를 지낼 때 두 곳의 골맥이성황 제관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서 대기하고 있다가 국사성황제가 끝났으리라 추측되는 시간(보통 0시 10분쯤)에 동시에 제의를 지낸다. 골맥이성황제를 마치면 솟대 주위에 친 금줄을 솟대기둥에 감아 놓는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마티마을에서는 탑신제를 정월대보름날에 지내는데, 조산탑, 솟대, 장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서는 솟대를 짐대라고 부르며 장승과 함께 윤년이 드는 해 정월대보름 전날에 만들어 세운다. 솟대의 높이는 5m 정도이며 오리를 올릴 때는 머리가 남쪽을 향하게 한다. 장대에 황색과 흑색이 용틀임의 단청을 하는데 황색은 황룡을 흑색은 흑룡을 상징한다. 황색은 황토로 흑색은 진흙에 숯가루를 반죽하여 칠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초에 날을 잡아 산신제와 탑신제 제주를 각각 한 명씩 선출하는데, 선출자 중 나이가 위인 사람이 산신제를 지내고 아래 사람은 탑신제를 주관한다. 산신제는 탑신제에 앞서 산신제 제주로 선정된 부부만 지내고 온다. 원래 탑신제는 정월대보름날 해가 뜨기 전에 징을 세 번 울려 쇳소리로 잡귀잡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탑, 솟대, 장승, 샘굿 순서로 이어졌다. 그러나 청마리제신탑이 1976년 12월 21일에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면서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요즘은 오전 9~10시에 제를 올린다.
탑신제는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제주가 탑 꼭대기와 솟대에 소지를 묶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의는 탑 앞에서 먼저 진행되는데, 제주는 집사가 따라준 잔을 제상에 놓고 절을 하고 나서 제상 앞에 앉는다. 집사는 술을 탑에 세 번 나누어 뿌린다. 제주는 다시 잔을 들고 술을 가득 받아 제상에 올려놓고 모두 함께 재배한다.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소지를 올린다. 이후 제주만 음복하고 제상을 든 집사들을 따라 솟대로 이동한다.
제상을 솟대 앞으로 옮기고 탑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제를 지낸다. 이때 술만 새 것으로 갈고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다음으로 장승 앞에서 지내는데, 제상을 옮겨 솟대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지낸다. 마을에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 있지만 제는 천하대장군에만 지낸다. 제가 끝나면 제주가 음복한 후 주민들도 함께 음복한다. 이때 집사들은 미투리를 만들어 탑과 솟대에 갖다 놓는다. 마티마을에서는 소지만 올릴 뿐 축문은 따로 없다.
참조[네이버 지식백과] 솟대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