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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까지 누워있겠느냐 (잠언 6장 6-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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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교해 보면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다면 잠자는 시간에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잠자는 시간, 식사 시간을 극도로 제한하여 사용했습니다. 현대그룸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잠을 자는 완벽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정 회장은, “사람은 하루에 두 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잠자는 시간을 그렇게 아까워했다고 합니다. 두 시간 자고 일하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지만, 우리 일생 중에 잠자는 시간이 무려 26년이나 된다고 하니 시간이 아깝기는 합니다. 시간을 아껴서 자기 몸을 최대한 일하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시간과 전쟁을 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유의했던 것은 건강이었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했어도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성공한 위치에 오르려면 시간과 건강 두 가지를 철저하게 관리 하는 것은 필수 중의 필수 입니다. 시간과 건강관리,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수면의학회에서는“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비만과 당뇨병 등을 비롯해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경고합니다. 미국 수면의학회가 제시한 적정한 수면 수면시간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낮잠을 포함해 생후 4~12개월 된 아기들은 하루에 12~16시간, 1~2세 어린이 11~14시간, 3~5세 어린이는 10~13시간, 6~12세 어린이는 9~12시간, 13~18세 청소년 8~10시간 등을 자는 것이 적정하다고 했습니다. 의학적으로 성인들은 최소 6시간 이상 잠을 자야 모든 육체적인 기능이 충분하게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많이 주무시고, 푹 주무셔야 합니다. 열대야 폭염으로 설쳤던 잠을 날씨가 선선해 지셨으니 편안하게 주무십시오. 명절을 전후해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셔서 기력과 체력을 100% 회복하십시오.
저 같은 경우에는 한 가지 일을 집중하면 끝까지 하는스타일입니다. 한 가지 일을 마치는데 8~12시간 이상 꼼짝 않고 일하는 것도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제 컨디션이 올라올 때 까지 무조건 쉽니다. 잠을 자던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머리를 맑히는데 시간을 물 쓰듯 합니다. 편히 쉬고 나면 계속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이 충전 되어서 다음 일에 집중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 가지 고쳐야 되는 습관은, 일하는 중간에 식사를 제 시간에 해야 하는데 일과 식사가 겹치면 식사를 거르고 일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 습관을 고쳐서 일과 건강을 잘 유지해 나가도록 신경 쓰리라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성공하려면 시간관리를 잘하여야 하고, 시간관리를 잘 하려면 건강이 필 수입니다. 일도 열심히 하시고, 잘 드셔서 성공도 하시고 부자도 되시고, 시간관리 잘 하셔서 신앙생활도 열정적으로 해 나가시기를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서 게으름(나태함)을깨우쳐 주는 말씀으로, 게으름을 ‘잠’과 연관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렇다고 잠을 너무 많이 잠을 자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자야 피로가 풀리고 몸이 개운한가는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자신의 체질에 맞게 적당하게 잠을 자되 규칙적으로 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잠이 많아지면 당연히 게을러지고 몸도 무거워 집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잘 것에 대해 아무 것도 걱정 안하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한 달 정도 집에서 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을 제일먼저 하시겠습니까? 여러 가지 하시겠지만, 아마도 가장 많이 보내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일 것입니다. 잠을 많이 자다보면 나도 모른 사리에 점점 몸을 움직이기 싫어집니다. 점점 정해진 시간에 자는 것도 아니어서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 방학을 보내는 것을 보면밤에는 돌아다니거나 T.V, 컴퓨터, 전화기 하고 새벽까지 씨름하다가, 다음 날에는 오전을 훌쩍 지나 정오를 넘어서도 일어납니다. 이른바 “올빼미”족이 됩니다. 이것은 비단 학생 뿐 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편하게 쉬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쉬는 것이 곧 잠자는 것이 되는 생활이 지속되면, 게을러져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나도 못하게 됩니다. “잠은 잘수록 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놀고, 먹고, 자는 것에만 시간이 쓰여 진다면, 정말 인생은 허무하고 낭비되는 시간일 뿐일 겁니다.
예화를 한 가지 말씀 드립니다. 「어느 농장 주인의 딸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농장 주인은 딸의 결혼식 때 가축을 한 마리 잡아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그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 가축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었습니다. 동물들은 회의를 열어 이 농장에서 주인에게 가장 필요하지 않은 존재인지 토론래 보고 해당되는 가축이 희생제물이 되기로 했습니다. 먼저 황소가 나섰습니다. “나는 주인님의 농사를 짓는데 등골이 휘도록 일하고 있다.” 이번에는 개가 말했습니다. “도둑을 누가 막는가. 내가 짖어대면 도둑이 도망간다.” 고양이도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곡식을 훔쳐 먹는 쥐를 잡는다.” 닭도 목을 길게 뽑으며 자랑했습다. “주인에게 새벽을 알리고 아침 식탁의 달걀을 제공하는 일을 누가 하는가?” 그러나 한 동물만은 말 한마디 못한 채 눈물만 떨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게으른 돼지였습니다. 돼지는 먹고 자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는 낙오자의 인생을 사람들을 차별하고 냉대합니다. 노숙자들이 겨울철에 차디찬 바닥에 누워 잠자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들을 돕고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 등을 제공하는 봉사자들도 많습니다. 노숙자들이 저마다의 아픈 사연이 있겠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이 게으르고 나태하여 일하기 싫기 때문에 저러고 있다고 비난 합니다. 정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오갈 데가 없어 노숙의 생활을 하는 분들이 대다수 이지만, 그들 중에는 일하는 것이 싫어서, 아무것도 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렇게 사는 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똑 같은 몸을 가지고, 똑 같은 시간을 쓰면서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살려고 열심을 다하면서 시간을 아끼며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면서 시간을 물 쓰듯이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겠습니까? “게으름은 나랏님도 못 고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게으름 피우는 사람은 정말 구제 불능의 사람이겠습니까?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몸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습니다. 게으름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게으름의 생각에 붙잡힌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가 의지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게으름은 질타와 비난으로 몰아 부칠 것이 아니라,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게으름이 죄라고 말합니다. 모든 죄악은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으름은 자기 자신의 몸과 영혼에 죄를 덧 붙여가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게으름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는 역할과 사명들을 무시하고 방치해 두는 불순종의 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장막을 치게 만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 ‘게으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6절에서,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부지런한 동물의 대명사인 개미라고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개미를 보고 게으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은 수치 중의 수치입니다. 개미를 보고 지혜를 배우라는 말씀은 심하게 말해서, 개미 못한 인간으로 취급 받지 않으려면 하루 속히 정신 차리고 게으름에서 벗어나라는 권면입니다.
톨스토이는“게으른 자의 머릿속은 악마가 집을 짓기에 알맞은 장소이다”라고 말했고, 미국의 초대 정치가였던 벤자민 플랭클린은 “부지런한 사람은 만물을 황금으로 만들고, 무형의 시간까지도 황금으로 변화시킨다. 일하는 농부는 앉아있는 신사보다 존귀하다.”고 하였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말하기를 “최대의 행운은 자신의 전 능력을 들여서 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에게 어떤 기자가 묻기를 “대통령님!, 대통령님의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글쎄요, 나라고 별다를 것이 없는데. 내가 공부를 더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혹, 굳이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매일 네 시에 일어났습니다. 매일 네 시에 일어났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은 성실과 근면이 몸에 배인 사람들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당연하게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잘 되고 돈 많이 벌고 성공 했다는사람 못 봤습니다. 우리 몸의 병의 원인 중 75%가 게으름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게으름과 비만, 당뇨, 혈압, 관절, 이런 것들이 다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정식적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보고 일확천금을 노립니다. ‘한 방에 인생을 역전 시킨다’고 하는데, 그런 행운도 게으른 사람보다 근면 성실한 사람에게 기회가 더 주어집니다. 결국 게으름은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는 자기 포기 상태, 인생 허비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공도 하지 못하고, 건강도 잃어버리고, 후회만 잔뜩 하는 덧없는 인생만 살다 가는 것이 게으름 병이 가져다주는 결말입니다.
7, 8절에서 개미의 습관을 보십시오. 개미들은 누가 시켜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자기의 본분을 지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곧 생활습관입니다. 늘 미래를 준비하고 곡식을 차곡차곡 쌓아놓습니다. 일하려고 태어나서 일하다가 죽는 모습이 개미의 일생입니다. 우리에게도 누가 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일을 통해 사회적인 유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일을 하기 위해 지식과 지혜도 쌓고, 일을 하면서는 인간적인 교제 관계도 배워 나갑니다. 일을 통해서 얻는 기쁨과 감사를 찾게 됩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신앙생활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게으르지 않고 나태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함으로 감당하는 사람은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이 일어나서 교회생활도 열심히 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도 먼저 나섭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어느 면을 보아도 일터와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개미와 같이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해 나가는 일꾼으로 세워 집니다.
반대로 게으른 사람은 진 안에서부터 분란을 일으킵니다. 집 안에서 뒹굴며 잠만 자고,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면, 부모님들 화를 내면서, “그 만 일어나라, 잠좀 그만 자라, 먹었으면 밥 값좀 해라, 세수하고 머리나 감고 있어라, 밖으로라도 나가서 친구라도 만나라...” 온갖 잔소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집안에서 큰 소리와 다툼이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게으름은 나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집안사람 모두를 지치게 만들고 절망으로 끌어가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나 한사람 때문에 다른 가족 구성원이 고통 받는 다는 것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던가, 아니면 피해를 준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뻔뻔하기만 합니다. 그로 인해 가족들은 신경이 날카로워 져서 이웃과 사회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짜증나는 표정과 다툼을 일으키는 불손한 말을 던지게됩니다.
결국은 게으른 사람 하나 때문에, 가족과 사회와, 이웃이 공멸하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옵니다. 이것이 바로 게으름, 곧 죄가 주는 무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안전하겠습니까? 교회 내에서 게으름과 나태함은 더욱 그 파장이 큽니다. 게으름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화목의 관계가 깨지고 틀어지면, 이것은 다른 어떤 것을 잃는 것보다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드시는 진노의 회초리로 매를 맞기 전에 개미에게 에서라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나에게 붙어 있는 게으름을 흔적들을 말끔히 씻어 내지 못한 다면, 성공은커녕 가진 것조차도 다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게으름의 상태와 피해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 알았으니, 이제는 어떻게 하면 게으름을 이겨낼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먼저, 게으름 이라는 병이 움직이지 않으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병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혼자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우선은 자신의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생각을 고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서 움직여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하더라도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반 강제적으로라도 게으름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조치를 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그렇다고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급하게, 그리고 대충 손대는 것은 역효과만 날 뿐입니다. 오랜 게으름으로 인해 의지가 약해져 있고, 생각해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준비시켜 주고, 작은 것 하나라도 결정하게 만들어 주고, 잘한다고 격려해 주는, 철저하게 돕는 역할을 하라는 뜻입니다. 게으름을 벗어나 스스로 움직여보려는 사람보다,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 더욱 힘들 것입니다. 인내 없이는 불가능 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의 헌신적인 희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 다음에 게으름이 죄라고 한다면, 죄를 끊어낼 수 있도록신앙적인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죄는 끈질기고 더러움을 풍기면서 계속 재발을 일으킵니다. 죄와 싸우는 것은 기도가 아니고서는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이 또한 인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으름에 빠진 사람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신이 가진 욕망만을 추구하는 굴레에 갇혀 있는 전형적인 죄의 종노릇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사랑의 주체가 누구이고, 누구에게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상담을 통해서 게으름의 주체가 주변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게으름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방법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랑과 자유를 얻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게으름을 말할 것이 아니라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들은 다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 살아갑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이 우리의 믿음을 바닥나게 만들고, 성령을 소멸하게 만들고, 말씀 없이 내 멋대로 살아가는 가장 치명적인 병이요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누워만 있고 잠자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합니다. 오늘 말씀 9-11절을 읽어 드립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어느 때 까지 누워 있겠느냐?”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누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까?“이 게으른자여!” 라고 지칭하고 있는 불특정 다수 속에 내가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누워있자” 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편하고 쉬운 것만 찾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려고 하고, 거룩과 경건의 모양은 갖추지 않고,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생활은 흉내만 내는 수준이고,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 차별과 미움의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 잠깐 누리는 이 평안도, 게으름과 나태함을 버리지 않는다면, 강도와 근대가 와서 다 빼앗아 갈 것입니다.
“어느 때 까지 누워 있겠느냐?”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주님의 말씀이 들리신다면 핑계대지 말고, 누워 있지 말고, 무엇이든지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어느 누가 비싼 뷔페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한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갔습니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산해진미가 쌓여 있습니다. 한 열 접시 쯤 먹어야지 벼르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나는 안 먹을래요? 라고 말하고 나가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또 어느 지인이 우리 가족 모두를 2주간 유럽 여행을 보내 주시겠다고 해서 모든 항공비와 체류비와 경비를 다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신이 나서 여권 준비하고 옷도 새로 사고 여러 가지 준비해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가족이 여행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습니다. 출국 수속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나는 여행 안 갈래요? 만약에 나 없이 가면 큰일 날 줄 알아요? 이렇게 말해서 모두 다 가족여행을 못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미련한 행동 아닙니까? 아마 그 가족은 평생토록 그 일로 인해 분쟁과 앙금이 남아 있을 겁니다.
뷔페 음식 값을 내주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항상 좋은 것을 주시고 자 하는데 우리는 누워서 잠만 잡니다. 외국 여행 시켜 주시겠다고 하신 분도 바로 우리 주님 이십니다. 항상 더 새로운 것을 보게 하시려는 데도, 게으름 때문에 나 뿐 만 아니라 주변 사람도 보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원인이 무엇입니까? 게으름 때문입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누워있자” 주님이 주시는 것보다도 내가 선택한 것이 최고라고 고집하고, 지금 당장 몸 평안히 지내는 것이 더 좋은 것인 줄로 착각하고 사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고 살아가면서 개미만도 못한 처우를 받아서야 되겠습니까?개미만도 못한 게으름으로 주님을 실망시켜 드려서는 안 됩니다. 내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인생을 허비하여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됩니다. 내게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엉뚱한 곳에 가서 다른 것을 찾아 헤매 여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내게 주신 사명을 힘써 이루어 나가지도 못하고, 내게 주신 은사들을 묻어두고 살아간다면 주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으시고, 벌떡 일어나십시오.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쫒아내도록 결단하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날마다 성장시켜 나가고, 신앙생활 더 열심히 하고, 주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일에 우리의 남은 인생과 시간들을 투자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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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호통하심으로, 게으르고 나태한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누워만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하셔서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모든 좋은 약속의 선물들을 다 누릴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이 이 땅 가운데 우리를 사용하셔서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을 다 이루는데,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아낌없이 사용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게으름을 물리쳐 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60904 주일설교.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잠언 6장 6-11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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