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서동수)가 두한(안재모)에게 처참하게 당하자 함께 있던 김무옥(이혁재)도 결투를 신청한다. 팽팽한 대결 끝에 김무옥은 갈비뼈가 세 대나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진다.
옆에 있던 털보는 덜덜 떨면서 돈을 갚겠다며 용서를 빈다. 정진영(김정민)과 개코(이동훈)는 두한이 천하장사 김무옥을 이겼다며 기세등등해 한다.
소식을 접한 쌍칼(박준규)은 수하 문영철(장세진)에게 두한을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두한이 함께 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두 사람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결국 두한이 완승한다. 소식을 접한 쌍칼은 자신의 오른팔 왼팔 수하들이 거지 아이 하나 당하지 못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결국 김영태(박영록)가 두한과 쌍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나선다. 오씨(이덕희)는 두한이 몸집만 컸지 아직 세상 경험이 없다며 혼자서 만주로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불안해 한다.
친조모(정영숙)는 두한이 잘 할 거라며 믿어보자고 위로한다. 한편 두한을 만난 쌍칼은 두한을 향해 단검을 날리는데….
# 1 종로 거리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털보는 물론 사내1,2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있다. 완전히 제정신들이 아니다. 경탄과 공포의 눈으로 두한을 본다. 두한이 그렇게 김무옥을 마주보고 섰다. 구경꾼들은 더욱 모인다.
김무옥 아그야, 너 힘깨나 쓰는 모양인디.. 우리 아우들에게 미안하다고 혀라.
두한 이 아이들은 내 돈을 가지고 갔어. 내 돈...
김무옥 아이 잡놈아.. 미안하다고 혀라고 안 허냐? 다른 소리 말고...
두한 난 미안한 것이 없어.
김무옥 이 썩을 놈이 안되겄구먼 그래. 그려, 한 번 해보자 이거인 모양인디...?
김무옥이 어느새 자세를 바꾸며 쑤시던 이쑤시개를 뱉는다. 그러자 정진영이 급히 막아선다. 정진영이 불안해하며 말한다.
정진영 두한아, 그 사람은 안돼. 잘못했다고 해.
양코 그래, 그 사람은 안돼.
두한 ..............(대꾸 없이 본다)
김무옥 오냐, 오냐...괜찮다. 이 형님에게 말해 보그라, 잉? 나는 김무옥이라는 사람이여. 이 종로가 거지반 내 것이여. 니 이름이 무엇이여?
두한 김두한이다!
김무옥 김 뭐시기?
두한 김두한이다!
김무옥 김두...한이다?...(흉내내듯) 한이다? 워매, 이 어린 잡놈이 어른에게 말하는 것 좀 보소. 아무래도 안되겄다야. 워차피 내 아우들 망신도 줬고...좀 맞아야 겄다잉.
그렇게 김무옥이 두한을 본다. 거구다. 참으로 보기 드문 거구다. 그런 그가 천천히 두한의 앞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마주본다. 그리고 점차 결투 자세로 접어든다. 그런 두한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 2 다시 그곳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있다. 어느새 이들의 결투장은 자연스레 원형이 된다. 정진영과 양코들은 사색이 되어 보고 있고 털보와 병수, 삼수도 그렇게 보고 있다. 김무옥은 유도 자세로 두한을 잡으려고 하고 있고 두한은 언제든 발차기를 할 태세로 뒷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어느 순간 비호처럼 두한의 옷깃을 잡아 업어치기를 하는 김무옥. 두한이 나가떨어진다. 그러나 두한은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난다. 김무옥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양코와 정진영은 전전긍긍이다.
김무옥 워매, 이 아그가 무진장허니 빨라불그먼.. 암, 그래야제. 그래야 붙어볼 맛이 있구마니라..자, 이리 와바라 아그야. 이리 와보랑께. 덤벼보란 말이여.
두한이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김무옥 앞에 나선다. 그때 기생 설향이 인력거를 타고 오다가 길이 막혀 멈춰 선다.
인력거꾼 아이구 또 싸움판이 벌어졌네..아무래도 돌아가야겠는뎁쇼?
설향 아니에요. 여기서부터 걸어갈게요.
설향이 내려서 그 쪽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눈으로 싸움판을 바라본다. 순간, 두한이 다시 김무옥의 손에 붙들리는 듯 하다가 몇 번 실랑이를 계속한다. 그러다, 풀려나면 김무옥은 안되겠다는 듯 고개를 약간 외로 꼬아본다. 여유 있는 표정이 사라지고 있다.
김무옥 오냐, 그만하면 쓰긴 쓰겄다잉. 허지만 이 형님에게는 아니여. 자, 다시 와보랑게. 어여 와봐.
두한 ..........
김무옥 어여...
그들은 그렇게 한동안 빙빙 돈다. 서로의 틈새를 다시 노린다. 양코와 정진영도 그렇고, 털보도 그 일행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보고 있다.
양코 지...진영아, 믿어지지가 않아. 우리가 아는 두한이가 아니야. 천하의 김무옥이 하고 붙고 있어.
정진영 그러게 말이야.
그 한 쪽에서는 털보가 중얼거린다.
털보 대체 이게 꿈이야, 뭐야? 아니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감히 무옥이 형님하고 맞장을 뜨고 있어?
얼마만큼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노렸을까? 순간 기합 소리와 함께 두한이 솟구치더니 김무옥의 어깨와 안면을 번개처럼 동시에 강타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 놀라운 발차기에 김무옥이 꽈당 쓰러진다. 모두들 탄성을 내지른다. 김무옥이 힘을 주고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그러자 다시 두한의 이단 옆차기가 김무옥의 가슴팍에 작렬한다. 다시 관중들 틈으로 거목처럼 쓰러지는 무옥.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침묵이다.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두한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눈치를 보던 털보가 죽는시늉을 하며 무릎을 덥석 꿇는다. 다른 사내들도 다 피한다.
삼수 정신차리십시오, 형님. 형님!
양코 두한아, 니가 이겼어. 니가 김무옥이를 쓰러뜨렸다구.
정진영 두한아..?
두한 가자.. 여기서 돈을 돌려 받기는 틀린 것 같다.
두한이 돌아서 간다. 양코가 돌아보며 한 마디 던진다.
양코 야, 너희들 까불지 마. 우리 대장이야. 우리 대장 김두한 형님이시라구. 잘 기억해, 임마. (사내1에게) 특히, 너!
삼수 예. 형님.
양코 자식들이 말이야. 나는 수표교 밑에 사는 양코야, 알지..?
삼수 예, 형님.
양코 그래, 그래...아우야, 어흠... 몸조심들하고.. 가자, 진영아. 야, 대장 가자..
그렇게 두한과 양코들이 사라져 가면 설향이 놀란 눈으로 두한을 한동안 바라본다. 그 모습에서..
# 3 다른 거리
미와가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오무라, 김태서, 문달영과 함께 오고 있다.
미와 하하.. 간만에 회식이구만.. 그 동안 너무 바빴단 말이야. 오늘은 계집 궁둥이도 두드려보고 마음껏 회포를 풀어보라구.
오무라 헤헤 여부가 있겠습니까? 얼마만의 회식인데요.
그때 저 편 골목을 돌아 김무옥이 달구지에 실려 오고 있다. 털보도 사내2에게 부축 받으며 절뚝거리며 따라오고 있다.
문달영 (보며) 이 자식들 이거 어디서 또 싸움을 버린 모양이구만. 하여간 종로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니까. (혀를 찬다)
미와 놔두게. 저렇게 라도 울분을 풀어야지 어쩌겠는가? 저희들끼리 치고 받으면서 그럭저럭 사는 거지. 가세.
그렇게 미와들이 사라져 가면...
# 3-1 우미관 외경
# 3-2 동 사무실
구마적이 홀로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생각에 잠겨 있다. 탁자에는 보자기로 싼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구마적 들어와..
평양박과 제비가 들어온다.
평양박 찾으셨습니까 큰형님?
구마적 심부름 좀 해야겠다. 저걸 가지고 혼마찌에 다녀와라.
평양박 ............?
제비 (놀라) 호, 혼마찌에요?
구마적 그리고 하야시에게 내가 고맙다고 하더라고 전해라. 그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게다.
평양박 .........?
구마적 뭘 그렇게 서 있어? 어서 다녀오지 않구.
평양박 저 형님.. 저희들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신지...?
구마적 다녀오라면 다녀와..
그들 ............
구마적 정중히, 예를 갖춰서 말이야.. 알겠나?
평양박 예......알겠습니다.
평양박과 제비가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여전히 생각이 많은 구마적의 모습에서...
# 4 명월관 외경(밤)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설향이 종종걸음으로 허둥지둥 그 곳으로 오고 있다. 대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는 설향. 숨을 진정시키고 활짝 열려진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 5 동 마당
명월관 지배인이 음식을 나르고 있는 종업원들을 채근하고 있다.
지배인 빨리빨리 좀 서둘러. 오늘따라 왜 이렇게 동작이 굼떠? 에잉...쯧쯧..
설향이 들어와 지배인의 눈을 피해 까치발로 슬금슬금 다른 쪽으로 가려는데 지배인이 그런 설향을 보았다.
지배인 야, 너 설향이 아니냐?
설향 (화들짝 놀라며) 예..
지배인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응? 걸어왔어?
설향 ... 오는 길에 일이 좀 생겨서요.
지배인 어서 들어가서 준비해. 곧 손님들 오실 게야.
설향 (미소) 예..
아이란 (저쪽에서 나오며) 설향이구나. 어서 이리와.
설향 응.
# 6 동/기생들의 방
아이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설향에게 묻고 있다.
아이란 뭐, 싸움 구경을 하느라 늦었다구? 호호호, 얘 좀 봐. 그게 그렇게 볼 만 했니?
설향 (명경 앞에서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그냥....
아이란 (실소를 터뜨리며) 이 종로통은 그런 구경 자주 볼 수 있는 곳이야. 이제 막 권번에서 나온 네가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
설향 (미소).........처음 보는 싸움이었어. 아주 대단했어.
아이란 (한심한 듯 도리질을 친다) 아서라, 기생팔자에 건달까지 좋아하면 신세 망친다. 어서 화장 좀 고쳐. 손님 기다려.
# 7 명월관/어느 방안
건장한 체격의 쌍칼이 호탕하게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다 야시장 유지들과 쌍칼이 브레인 김영태가 자리해 있다.
쌍칼 (술잔을 건네며) 자 한 잔 받으십시오.
유지1 암, 받아야지. 아 누가 주는 잔인데.. 조선 제일의 협객이 내리는 하사주가 아닌가?
쌍칼 (술을 따르며) 허허 농이라도 그런 말씀하십쇼. 구마적 형님이나 동욱이 형님이 들으시면 어쩌시려구요? 허허허..
유지1 내가 뭐 틀린 말을 했는가? 그 사람들이 자네보다 주먹세계의 선배인 건 사실이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아 구마적이나 신마적 엄동욱이 어디 협객 축에나 끼는 사람들인가?
유지2 그럼.. 모름지기 협객이란 약자를 보호하고 의를 알아야 하는 것인데.. 그 사람들은 아니야. 종로 바닥에서 진정한 협객은 쌍칼 자네뿐일세.
쌍칼 허허 이런.. 그만들 하십쇼.
지배인 죄, 죄송합니다. 아직 초저녁이라 준비가 좀 늦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쇼.
유지2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늦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벌써 술 한 주전자를 다 비워버렸네, 이 사람아.
지배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설향 ..........
쌍칼 됐어. 그만 나가봐.
지배인 예, 예.. (기생들에게) 뭣들하고 있어? 어서 인사 올려야지.
기생들이 나란히 다소곳하게 절을 한다.
유지1 그래 그래.. 옳지.. 거 절하는 자태 한 번 곱구나.
설향이 절을 마치고 앉으며 쌍칼을 흘끔 본다. 쌍칼은 묵묵히 술잔을 들고 있다.
# 8 동 밖
지배인이 나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서는데, 그때 열려진 대문으로 사내1이 급히 뛰어 들어온다.
지배인 ........?
삼수 우리 오야붕 여기 계시죠? 쌍칼 형님 말이에요.
지배인 응.. 저 끝방에 계시는데..
삼수 알았어요.
사내1이 급히 그 쪽으로 뛰어간다. 지배인이 불안한 듯 중얼거린다.
지배인 또 무슨 일이 터진 거야?
# 9 동 방
설향이 쌍칼 옆에 앉아 잔을 따르고 있다.
쌍칼 넌 처음 보는 아인데..?
설향 예, 한성권번에서 왔습니다.
아이란 얘는 설향이라고요. 오늘이 두 번째입니다.
쌍칼 허허허, 그래? 신출내기로구나.
그때 밖에서 사내1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온다.
삼수 (E)오야붕 안에 계십니까? 저 삼숩니다.
쌍칼 .........?
김영태 무슨 일이냐? 들어와서 말씀 드려라.
삼수 (들어와 무릎을 꿇고 앉고는) 큰 일 났습니다, 형님. 무옥이형이 당했습니다.
쌍칼 .......?(여전히 침착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옥이가 당하다니, 누구한테?
삼수 그게... 처음 보는 놈이었는데요. 거지패들과 함께 온 것으로 봐선 그 자식도 거지패 같긴 한데..
아이란 세상에... 무옥씨가 누구한테 당했어요? 거지패요?
쌍칼 .............?
삼수 예, 거지패들입니다. 하지만 싸움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쌍칼 이런 놈을 보았나? 아니 싸울 상대가 없어서 거지들하고 싸워? 게다가 얻어터지기까지 했단 말이지?
삼수 .........
쌍칼 지금 무옥이 어딨어?
삼수 병원에.. 실려갔는데요.
쌍칼 (그제서야) 뭐, 병원?
# 10 병원
김무옥이 병상에 누워 있다. 한 쪽에선 간호원이 털보의 다리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고, 의사 임동호가 김무옥을 진찰하고 있다.
병수 어떻습니까, 선생님?
임동호 갈비뼈가 세 대나 부러졌어요. 대체 얼마나 심하게 맞았길래...? 아무래도 쇠몽둥이 같은 걸로 두들겨 맞은 모양인데?
병수 쇠.. 쇠몽둥이요?
임동호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부상이 심할 수는 없지.
병수 그냥.. 발길질 몇 번 당한 것뿐인데...
임동호 정말이오? 허 그것 참.. 뼈가 아주 조각조각 됐는데..
병수 예...?
임동호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 11 거지촌 공터
두한과 정진영, 양코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모여 있다.
양코 두한아, 아깐 정말 끝내줬어. 그 자식들 말이야, 이제 우릴 무시하지 못할 거라구. 안 그러냐, 진영아?
정진영 ............
두한 ......괜찮냐, 진영아?
정진영 응...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걔네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보복을 해 올 거라구.
두한 ..........?
양코 뭐가 걱정이냐? 우린 두한이가 있는데...
정진영 쌍칼이 오면...?
양코 싸, 쌍칼...? (미처 생각지 못했다)
두한 그 사람이 누군데...?
정진영 김무옥이의 오야붕이야. 구마적두 싸움 실력을 인정하고 형님 동생으로 지내는 사이야.
두한 구마적...?
양코 옛날에 너두 본 적 있잖아. 조선의 주먹왕 말이야.
두한 ....(끄덕인다)
정진영 두한아, 일단 피하는 게 어떻겠냐? 우리를 아니까 분명 이 곳으로 찾아 올 거야.
두한 쌍칼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하냐?
정진영 (끄덕인다)......특히 칼을 빼들면 아무도 당하지 못한대.
두한 칼을 써...? 비겁한 사람이군.
정진영 하지만 특별한 경우만 칼을 쓰는가봐. 쌍칼이 칼을 빼든 모습을 본 사람은 별로 없어.
두한 ......쌍칼...?
# 12 명월관 마당
쌍칼이 김영태, 사내1을 거느리고 나온다. 마당을 서성이던 지배인이 황급히 그들에게 다가간다.
지배인 벌써 가시게요?
쌍칼이 굳은 표정으로 나서는데 신마적 엄동욱이 술에 취해 전문 학생복을 입은 패거리들을 데리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들어온다. 쌍칼이 그 자리에 굳어 선다. 지배인은 어느새 다가가 그들을 맞고 있다.
지배인 어이구 어, 어서 오십쇼. 오랜만에 오셨습니다요.
신마적 어 그래.. 옥련이 안에 있지?
지배인 오, 옥련이요? 그 아이는 지금... 다른 방에서 손님을 뫼시고 있습니다.
신마적 지금 뭐? 야, 임마.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알았어? 잔말 말고 들여보내.
지배인 예, 알겠습니다.
쌍칼 안녕하십니까, 형님?
신마적 (과장되게) 이게 누구야? 쌍칼 아닌가?
쌍칼 예, 형님.. 한 잔 하러 오셨습니까?
신마적 이 백면서생들이 명월관 구경 좀 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핫하하.. 한데 벌써 가는 게야?
쌍칼 예, 일이 좀 생겨서요.
신마적 별 일 아니면 같이 한 잔 하지? 자네랑 술자리 한 지도 꽤나 오래 되었어. 안 그런가?
쌍칼 오늘은 좀 어렵겠습니다. 다음에 제가 한 번 모시겠습니다.
신마적 그래? (눈꼬리가 올라간다)
지배인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신마적 그렇다면 뭐 하는 수 없고..
쌍칼 그럼..
쌍칼이 인사를 정중하게 하고 중절모를 다시 쓴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지배인 아, 안녕히 가십쇼. (그리고 신마적에게) 저, 저기 안으로..
신마적 건방진 자식.. 선배가 한 잔 하자면 하는 거지... 들어가자.
# 13 카페 비너스 앞 길
쌍칼이 김영태, 사내1과 함께 오고 있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행인들이 슬금슬금 길을 피한다. 최동열이 반대편에서 오다가 그들과 스쳐 지난다. 최동열이 무심히 쌍칼들을 보다가 비너스 안으로 들어간다.
# 14 비너스 안
최동열이 들어온다. 카페 주인 김이수가 바텐더에서 손님과 이야기하다가 최동열을 보고 과장스럽게 반색을 한다.
김이수 이게 누구야, 응? 최동열 기자가 아니신가?
최동열 오랜만일세.. 요즘 좀 바빴네..
김이수 자네가 언제 바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이러다가 얼굴 잊어버리겠어.
최동열이 미소를 지으며 어느 테이블에 가 앉는다.
최동열 임동호 그 사람은 아직 안왔나보구만..?
김이수 조금 늦는다고 연락이 왔네. 갑자기 급한 환자가 생겨서 말이야.
최동열 그래?
김이수 한 시간쯤 전에 종로 회관 앞에서 주먹패들끼리 싸움이 붙은 모양인데, 아마 그 치들이 아닐까 싶네.
최동열 그런 일이 있었나?
김이수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 거리에서 주먹께나 쓴다고 거들먹거리던 녀석이 이름도 없는 아이한테 단 몇 방에 나가 떨어졌대.
최동열 누군지 그 세계에 새로운 영웅이 나왔구만.
김이수 영웅? 하하하.. 하기사 주먹세계라고 영웅이 없을라구.. 일본에서는 뭐 야쿠자의 거두 두산만이를 영웅이라고 떠받든다니까.. 조선이라고 그런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 15 병원
문이 열리고 쌍칼이 부하들과 들어온다. 병상을 지키고 있던 부하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인다. 상체가 붕대로 감긴 김무옥이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려고 하지만...
김무옥 혀, 형님....?
쌍칼 누워 있어.
김무옥 ......면목없습니다, 형님.
쌍칼, 한동안 말없이 지켜서 있다. 처참하게 당한 부하들의 모습이 서글픈 것이다.
김무옥 지가... 방심을 혀뿌렸구먼이라우.
털보 모두 제 잘못입니다, 오야붕.. 다 저 때문에..
쌍칼 듣기 싫어. 못난 자식들..
김무옥 ...........
쌍칼 영철이는 왜 안 보이냐?
삼수 저기.. 형님이 아침에 시구문에 심부름을 보내셨는데요. 밤늦게나 돌아오실 텐데...
쌍칼 ......영철이 돌아오면 내일 안으로 그 자식 잡아오라고 해.
삼수 예, 형님..
쌍칼이 그렇게 나간다. 부하들이 일제히 허리를 꺾는다.
김무옥 저기.. 혀..형님..
김영태 몸조리들 잘 하고 있어.(역시 밖으로 나간다)
김무옥 (혼자 중얼거린다) 그려.. 영철이라면....허지만...
# 15-1 어느 술집
구마적과 상하이가 마주해 있다.
상하이 혼마찌에 애들을 보내셨다구요?
구마적 그래... 지금쯤 도착했을 게야.
상하이 ..........(뭔가 생각) 결국... 하야시의 호의를 받아들이시기로 하신 겁니까?
구마적 글쎄... 그저 미뤄왔던 인사를 하는 거 뿐이야. 고맙다는 인사말이야.
상하이 예...(묘하게 웃는다)
구마적 이제 내 나이도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고 있다. 예전처럼 힘으로 이 종로를 지켜내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상하이 그건 그렇습니다.. 근래 들어 우리 애들이 혼마찌 애들한테 밀렸던 게 사실입니다. 하야시 그 친구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전화 한 통으로... 허허허....
구마적 .............
상하이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형님? 하야시가 원하는 것은 결국 이 곳 종로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마적 어느 정도 답례는 해야겠지..
상하이 .........?
구마적 생각해 보면 크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야.. 길을 좀 터주고 우리도 나름대로 이익을 챙기면 되는 거니까... 그래... 생각해볼 만한 일이야..
구마적의 의미심장한 표정에서...
# 15-2 혼마찌깡 대문 앞
평양과 제비가 와 있다. 그 앞을 가로막고 선 야쿠자들.. 미우라가 밖으로 나오자 그들이 비켜선다.
미우라 아주 낯익은 분들이 오셨구만.. 그래 무슨 일로 예까지 왔소?
평양박 우린 구마적 큰형님의 심부름을 왔소. 당신들 오야붕을 만나게 해주시오.
미우라 ......우리 오야붕을? 용건이 뭐요?
평양박 이걸 전해주라고 하셨소. 그리고...
미우라 (보다가) 알겠소. 안으로 들어오시오.
미우라의 안내로 그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 15-3 동 거실
선물을 앞으로 밀어놓는 평양박, 가미소리와 미우라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시바루도 놀라는 눈치다.
하야시 이게 무엇인가?
평양박 우리 구마적 큰형님께서 하야시 오야붕에게 보내시는 겁니다.
하야시 구마적 오야붕께서...? 허허허... 갑자기 왜 이런 것을....?
제비 .............
하야시 풀어보게..
미우라 하이..
미우라가 보자기를 풀고 상자를 연다. 그 안엔 상감청자가 들어 있다. 놀라는 미우라.. 하야시에게 전한다.
하야시 오... 청자가 아닌가? 이런 귀한 물건을 내게 보내셨단 말인가?
제비 .......?
평양박 그건 우리도 모릅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야시 (끄덕이며)......그 일 때문이시구만.. 그렇다고 뭐 이런 거 까지... 이런 거 받자고 한 일이 아닌데 말이야..
가미소리 (혼잣말로) 인사 한 번 꽤나 늦게 하시는구만.
평양박 .......!(날카롭게 노려보지만)....
하야시 이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고맙다는 인사치레로는 안될 것 같고.. 언제 한 번 자리를 마련해 모시겠다고 전하게.
평양박 .......?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드리도록 하죠. 그럼 우린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평양과 제비가 일어난다.
하야시 미우라, 손님들 배웅을 해 드려라.
미우라 하이, 오야붕..
미우라가 평양과 제비를 안내해 밖으로 나간다. 가미소리가 조금 다가앉으며..
가미소리 과연 오야붕이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혜안이십니다, 오야붕..
하야시 머리가 둔한 사람은 아니었어. 구마적 말이야.. 길이 열리기 시작한 거야..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종로진출의 길 말이야..
하야시의 그 모습에서...디졸브...
# 16 거지촌(아침)
두한과 정진영이 유유히 흐르는 청계천을 바라보고 서 있다.
정진영 미안하다, 두한아? 괜히 나 때문에...
두한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지..
정진영 만주 가는 일은 이제 어떡하냐...? 털보가 순순히 돈을 돌려준다고 해도 밀선을 타기는 틀렸잖아?
두한 ......뭔가 다른 방법이 있겠지..
정진영 ...........?
두한 .....(생각)... 그 분이라면 도와주실 수도 있을 텐데...
정진영 누구...?
두한 최기자 아저씨라구.. 너두 옛날에 본 적이 있을 거야.
정진영 응.. 알아.
두한 하지만 그 분한테 더 이상 신세지고 싶지가 않아..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 그리고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내 힘으로 하고 싶어. 나도 이제 어른이잖냐?
# 17 신문사
최동열이 뭔가 기사를 쓰고 있다. 국장이 다가온다.
국장 소식 들었나, 최기자?
최동열 (돌아보면)...?
국장 동경에서 고균 기념회가 설립이 됐다고 하네.
최동열 고균이라면.. 김옥균 선생 말씀이십니까?
국장 그렇지... 자네가 존경해 마지않는 백야 장군의 양부 말일세. 그 김옥균 선생의 피살 40주기를 맞아 그 분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가리기 위해 설립이 됐다고 하네..
최동열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국장 대단하지 않은가? 고균은 동아시아의 대정치가라 추앙을 받고 있고, 그 아들 백야 또한 위대한 독립 투사였네.. 그렇다면 두한이는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 자못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최동열 ......(미소) 모르긴 해도 뭔가 큰 일을 하기는 할겁니다. 어떤 길로 들어서느냐가 중요하겠지요.
# 17-1 우미관 외경
구마적 (E)자리를 마련하겠다?
# 17-2 동 사무실
구마적을 중심으로 부하들이 모두 모여 있다. 뭉치와 셔츠, 상하이, 평양박, 제비 등등이다.
구마적 하야시가 나를 모시겠다? 하하하.. 그래야지.. 그래야 얘기가 되는 거겠지....
모두들 .............?
뭉치 이봐 박치기, 그게 무슨 소리야? 하야시가 뭘 어쩌겠다구?
평양박 어제는 주무시고 계셔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너무 궁금합니다. 하야시에게 전한 선물은 무엇이며 고맙다는 그 말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구마적 야, 평양박..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냐? 아니면 다 알고 있으면서 날 놀리는 거냐?
평양박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단지......
상하이 하야시는 큰형님의 은인이다. 하야시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자리에 계시는 큰형님을 오래도록, 아니 영영 뵐 수 없었을 거야..
모두들 ...........?
뭉치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지난번에 달려가셨을 때......하야시가 꺼내드렸다는......
셔츠 정말입니까, 큰형님?
구마적 맞아.. 하야시가 그때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어.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서 두어 바퀴는 돌아야 했었는데 말이야..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한 일이지.. 그래서 답례를 했던 거야..
평양박 ..........
뭉치 ... 아 예.....
구마적 도움을 받았으면 은혜를 갚는 게 도리가 아니겠냐? 상대가 화해의 손을 내밀었는데 그걸 매정하게 뿌리친다면 그건 사내가 할 짓이 아니지..
평양박 그럼 하야시 패와 화해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구마적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어? 오랜 생각 끝에 나 구마적이 내린 결정이야.. 군소리 말고 따르도록 해.. 그리고 앞으로는 혼마찌 애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해라.. 그렇다고 기죽어 다닐 건 없고..아마 저 쪽에서도 조심을 할 테니까.. 알았나?
모두들 ..(불만들이다)..
구마적 왜 대답이 없어?
모두들 예.. 알겠습니다.
# 18 종로/어느 권투 도장 외경
# 19 도장 안
링 위에서 문영철이 스파링을 하고 있다. 문영철이 일방적으로 스파링 파트너를 몰아붙이고 있다. 링 아래에선 사내1,2와 권투장갑을 끼고 있는 사내 두 명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링 위를 지켜보고 있다. 마침내 무차별 펀치를 맞고 스파링 파트너가 링 위에 쓰러지면 츄리닝을 입고 있는 체육관 사내들이 올라와 들쳐 메고 내려간다.
문영철 자 다음..
다른 스파링 파트너가 링 위로 올라온다. 종소리와 함께 문영철의 공격이 시작된다. 쉴 새 없는 펀치에 그도 곧 케이오 되고 만다.
문영철 자 다음.
파트너3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삼수 형님, 그만 하시죠. 이제 그 자식 잡으러 가셔야죠.
문영철 아냐, 아직 몸이 덜 풀렸어.
병수 벌써 다섯 놈쨉니다, 형님..
문영철 거 자식들.. 알았어.
파트너3 (안도의 한숨)....
# 20 종로 거리
문영철이 부하들 서넛을 이끌고 어깨를 흔들며 오고 있다.
문영철 그 자식 이름이 뭐라고 김...?
삼수 김두한이라고 했습니다, 형님.
문영철 김두한이라.. 김두한.. 근데 그 자식이 도망가지 않고 거기에 있을까?
삼수 글쎄요. 지 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도망갔겠죠. 정진영이하고 양코 자식은 쌍칼 형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병수 형님.. 그 자식 만나면 조심하십쇼. 싸움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문영철 야 임마.. 내가 설마 거지 새끼한테 당하겠냐? 이 문영철이가?
병수 하지만 무옥이 형님도 저렇게 되셨지 않습니까?
문영철 그건 마.. 무옥이가 방심해서 그런 거야. 술도 좀 취했구.
병수 그렇긴 하지만..
문영철 (주먹을 들어 보이며) 이거 한 방이면 끝나는 거야. 너희들은 구경이나 해.
# 21 거지촌
문영철과 부하들이 광교 옆 계단을 내려와 무서운 기세로 오고 있다. 폐품을 정리하고 있던 거지패들이 그들을 보고 놀란다. 한 꼬마 녀석이 어디론가 달려간다.
문영철 (다가와) 야, 정진영이하고 양코 그 자식들 어딨어?
거지1 예?
문영철 그 거지 새끼들 어디 있냐구, 임마!
거지1 왜, 왜요? 왜 우리 대장을 찾는데요?
문영철 (코웃음) 대장? 임마, 형님이 데려오라면 데려오는 거지 뭔 말이 많아!
거지1의 복부를 걷어찬다. 욱하며 쓰러진다. 그때 정진영, 양코가 그 쪽으로 다가온다. 정진영과 양코가 인사를 한다. 그들 뒤로 저만큼 두한이 온다.
양코 헤헤헤, 형님, 어서 오십시오. 우리 거지촌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문영철 내가 여기 오고 싶어 오겠냐, 이 거지 새끼야? 야, 정진영?
정진영 아, 예.
문영철 김두한이 어딨어? (하다가) 저기 저 놈인가?
두한 ......(이미 서로를 보고 있다)
삼수 맞아요, 형님. 저 자식이에요.
문영철 ......? 니가 김두한이냐? 니가 내 동무의 갈빗대를 석대나 부러뜨렸다면서..?
두한 돈은 가져왔나?
문영철 돈? 이 자식 이거 되게 웃기는 놈이네.. 니가 언제 나한테 돈 꿔줬냐?
두한 ........
문영철 너 조용히 같이 갈래? 아니면 병원차에 실려 갈래?
두한 내가 왜 너하구 같이 가야 하나?
문영철 내가 가자면 가는 거야.
두한 난 가고 싶지 않아.
문영철 (피식 웃고)...... 좋아,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어차피 나도 너를 조용히 데려갈 마음은 없었으니까. (외투를 벗어 부하에게 준다)
두한 난 싸우고 싶지 않다.
문영철 하지만 난 너를 좀 교육을 시켜야겠다. (천천히 가죽 장갑을 낀다)
두한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문영철 뭐, 할 수 없어? 이런 건방진 자식이..
문영철이 비호처럼 주먹을 날린다. 두한이 슬쩍 피하며 돌아선다.
문영철 어쭈 빠른데..? (미소)
문영철이 비로소 권투자세를 갖추고 두한을 노려본다. 두한도 자세를 갖췄다. 이윽고 문영철이 가벼운 잽에 이어 연타를 날린다. 그 주먹들을 김두한이 고스란히 맞어준다. 그리고 휘청거린다. 모두들 우 하고 본다. 그러나 김두한은 씩하고 웃는다.
두한 손이 굉장히 빠르구나.
양코 권투선수라구...... 저 자는 권투 선수야.
두한 그래...? 네 주먹을 한번 일부러 맞아 봤다. 세긴 세구나.
문영철 뭐라구...? 이 자식이......
문영철이 다시 주먹을 날린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헛손질이다. 세 번, 네 번째의 헛손길 끝에 다시 공격해 들어오는 문영철을 노려 두한의 돌려차기가 문영철의 안면을 강타한다. 문영철이 쿵 나가떨어진다.
삼수 형님... (다가가 부축한다)
문영철 ......비켜.
문영철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자세를 취해본다. 두 사람은 다시 대치한다. 그리고, 이어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허나, 그것도 잠깐이다. 두한의 발차기 한 방에 이어 그대로 주먹 하나가 정통으로 꽂혔다. 그것으로 승부는 끝났다. 문영철이 결국 한동안 꼿꼿이 서 있는가 했더니 그대로 중심을 잃은 채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수하들이 소리치며 다가간다.
사내들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두한 ...........
문영철 (한참 두한을 보다가) 대단하구나. 내가.... 졌다.
두한 ...........
문영철 대단하다... 너 같은 놈은 처음이로구나.
두한 ...........
문영철 하지만... 쌍칼 형님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두한 난 아무도 두렵지 않아.
문영철 (도리질 치며) 그래, 인정한다. 너는 정말로 세다. 하지만, 우리 형님은 다르다.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두한 난 도망 같은 것은 안가. 가서 전해. 내 돈을 가져오라구 말이야.
문영철 .......(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떨군다)
문영철이 부하들에 의해 부축되어 사라진다.
정진영 두한아...? 저 문영철의 말이 옳아. 저들형이라는 사람이 바로 쌍칼이야. 조선 팔도가 다 아는 주먹이라고...
# 22 야시장/쌍칼의 사무실
쌍칼이 노기 가득한 표정으로, 그러나 결코 흥분하지 않고 무게 있는 음성으로 묻는다. 사내1이 와 있다.
쌍칼 지금 뭐라고 했어? 영철이두 당해?
삼수 예, 형님. 지금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쌍칼 또 병원에....?
삼수 예, 형님.
쌍칼 ........이런 변변치 못한 놈들을 봤나.. 내 오른팔, 왼팔이라는 놈들이 그래 그깟 이름도 없는 거지 아이 하나 당하지 못해!
삼수 (고개를 푹 숙인다)......
쌍칼 내가 애들을 잘못 키웠어. 도대체 믿을 만한 녀석이 없단 말이야.
김영태 형님, 싸움이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옥이랑 영철이가 이번에 임자를 만났다 생각하십쇼.
쌍칼 ..임자를 만나..?
김영태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무옥이랑 영철이도 종로 바닥에선 내노라 하는 싸움꾼인데, 걔네들이 그렇게 나가 떨어졌다면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가 아니겠습니까?
쌍칼 ..(생각).. 지금 거지촌에 있다고 그랬냐?
삼수 예, 형님..
쌍칼 도망도 가지 않고... 결국 나를 만나보고 싶다 이건가? 거 배짱 하나는 두둑한 놈이군.
김영태 형님, 이번엔 제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형님 체면이 있지, 어떻게 거길 가시겠습니까?
쌍칼 자네가?
김영태 염려 마십쇼. 싸움 실력은 이미 다 봤는데 굳이 저까지 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잘 타일러서 형님 앞에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쌍칼 그래서...?
김영태 쓸만한 아이면 부하로 삼으시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는 이 바닥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단단히 못을 좀 보여주셔야지요.
쌍칼 음....(끄덕이며)
의미심장한 쌍칼의 모습에서..
# 23 거지촌
두한과 정진영, 양코가 모여 있다.
정진영 쌍칼한테는 안돼. 더 이상은 무모한 짓이야. 저들은 종로통에 건달들이야. 건달 말이야.
양코 그래 두한아, 일단 여길 피하자. 쌍칼이 오면 우린 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구.
두한 ...........
정진영 넌 만주로 가야해. 여기서 이럴 필요가 없잖아? 혹시라도 잘못되면 만주고 뭐고 다 끝나는 거야.
두한 비겁하게 도망갈 수는 없어. 어차피 그 돈이 없으면 만주에 가지도 못해.
정진영 하지만 두한아...
두한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어렵게 바느질을 해서 마련해주신 돈이야. 꼭 되찾아야 해.
# 24 삼청동 외경(밤)
오씨 (E)두한이가 잘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25 동 안
오씨와 친조모가 마주해 있다.
오씨 저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몸집만 자랐지 아직 세상 경험도 없구...
조모 걱정 마라. 그 악명 높다는 종로서 고문도 견뎌낸 아이가 아니냐? 아범은 그 나이에 종문서를 불사르고 학교를 세웠어.
오씨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 만주에 간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어머님..미와라는 사람의 허락 없이는 경성 땅조차 벗어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모 어려운 일이지.. 허나 지금 그 아이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왜놈들이 물러가지 않는 한 그 아인 한 시도 편할 날이 없게 돼 있어.
오씨 ..........
조모 믿어보자꾸나. 두한이는 잘 할 게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겠지...
# 26 거지촌(밤)
두한이 김영태와 마주보고 있다. 정진영과 양코, 그리고 거지패들이 나와 그들을 보고 있다.
김영태 자네가 김두한인가?
두한 .........?
김영태 (미소)... 우선 인사부터 하지. (손을 내밀며) 난 김영태라고 하네. 무옥이와 영철이의 형뻘 되는 사람이지.
두한 .........
김영태 수인사조차도 못하겠다 이건가? 허허.. 이거 내 손이 부끄럽게 됐구만...
두한 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영태 좋아.. 정 그렇다면 본론부터 얘기하지. 쌍칼 형님이 자넬 만나고 싶어하시네.
두한 무엇 때문에요?
김영태 난 그저 심부름을 왔을 뿐이야. 장소는 종로 회관 뒤에 쌍칼 형님이 쓰시는 사무실이 있지. 금방 찾아올 수 있어. 시간은 정각 12시고.
두한 ..........?
김영태 나오고 안 나오고는 자유일세. 하지만 한 가지만 알아두게. 지금까지 종로 바닥에서 쌍칼 형님의 심기를 건드리고 무사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단 한 명도 말이야. 그 자리에 나올 수 없다면 아마 종로를 떠나는 게 좋을 걸세.
두한 (생각하다가) 나가겠습니다.
양코 (겁이 나서) 두한아...?
김영태 (미소) 마음에 드는구만. 그럼 내일 보세.
김영태가 모자챙을 바로잡으며 돌아서 간다.
양코 두한아, 너 어쩔려구 그래?
두한 .............
정진영 정말 가려고 하냐? 쌍칼한테 갈 꺼야?
두한 .............
# 27 병원 외경
# 28 동 병실 안
김무옥과 문영철이 병상에 누워 있다. 털보는 문영철에게 병상을 내주고 간이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아이란이 눈물을 닦고 있다.
아이란 영철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문영철 괜찮아. 왜 질질 짜고 그래?
아이란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건 처음 봐요. 도대체 누구한테 이렇게 된 거예요?
문영철 시끄러워.
아이란 누가 이렇게 했냐고요? 거지패가 누구예요?
문영철 그만 하라니까.
아이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눈물만)
김무옥 영철아... 괜찮냐?
문영철 ............
김무옥 (한숨).. 우리가 이게 무슨 꼴이냐? 듣도 보도 못헌 촌놈한티 이 꼴이 되다니 말이여...(사이, 몸을 일으키고) 영철이 너까지 당하다니... 그 자식 정말 세기는 센 모양이다 잉?
문영철 맞아, 그렇게 센 놈은 처음이었어. 쇠망치로 두들겨 맞는 줄 알았다구.
김무옥 주먹도 주먹이지만 말이여, 그 발차기는 정말 못당하겠더라구. 워디서, 어떻게 날아온 줄 모르고 정신없이 맞았다니께..
털보 정말 그랬어요. 그냥 순식간이었다니깐요.
김무옥 넌 주둥아리 닥쳐 임마. 다 너 땜시 이렇게 된 거잖여?
털보 .........
아이란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어쩌다가요...
문영철 야, 털보 얘기해봐.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털보 .....사실... 제가 걔네들 돈을 꿀꺽했거든요.
문영철 뭐야?
털보 처음부터 그럴 마음은 없었어요. 어쩌다 보니까 그냥...
문영철 야, 임마. 등칠 때가 없어서 거지 애들 돈을 삼켜? 이거 아주 형편없는 놈이네.
털보 ......잘못했습니다, 형님.
김무옥 그만해 둬라. 나한테 혼날 만큼 혼났으니께. 그나저나 쌍칼 형님이 화가 단단히 나셨을텐디.. 그 자식 무사할지 모르겄다.
문영철 내가 피하는 게 좋겠다고 말은 해주었는데...
김무옥 그렇게 말을 해주었어야?
문영철 비록 내가 지기는 했지만, 괜찮아 보이더라구. 난 나보다 센 놈을 만나면 존경심이 들어.
아이란 아이구, 그렇게 얻어맞고도 존경을 해요?
문영철 시끄러워. 그게 사내들 사는 세상이야. 괜찮은 놈이었어....
# 29 관철여관 마당
김영태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느 방 앞에 쌍칼의 부하들 서넛이 서성거리다가 김영태에게 인사를 한다.
김영태 오야붕 일어나셨지?
삼수 예, 들어가 보십쇼.
김영태 형님, 저 김영탭니다.
쌍칼 (E)들어와.
김영태가 마루 위로 올라선다.
# 30 동 여관 방 안
쌍칼이 넥타이를 매고 있다. 김영태가 들어와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를 올린다.
김영태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형님?
쌍칼 (끄덕이고) 앉아.
김영태가 자리에 앉는다.
김영태 어제 거지촌에 다녀왔습니다.
쌍칼 (여전히 넥타이를 매며) ....만나봤어?
김영태 예, 형님을 만나 뵈러 오겠답니다.
쌍칼 그래? (피식 웃고) 잘 됐구만.. 처음부터 자네를 보낼 걸 그랬어.
김영태 덩치도 좋고 쓸만하더군요.
쌍칼 .... 몇 시에 보기로 했지?
김영태 정각 12시, 사무실입니다.
쌍칼 설렁탕 한 그릇 먹고, 야시장 한 바퀴 돌면 되겠구만.. (드디어 넥타이를 다 맸다) 그럼 일어나 볼까?
김영태 형님..
쌍칼 왜..?
김영태 아래 애들한테 불어보니까 우리 아이들이 잘못했더군요. 털보라는 녀석이 그 아이의 돈을 삼킨 모양입니다.
쌍칼 (날카롭게) 뭐야?
김영태 형님께서 대신 갚아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쌍칼 내가?
김영태 예. 그건 우리 애들이 잘못한 거니까요.
쌍칼 ......(보다가) 자넨 벌써 마음을 정했구만. 우리 식구로 맞아들이기로 말이야..
김영태 결정은 형님께서 내리시는 거지요.
쌍칼 (미소) 그렇게 마음에 드는 녀석이야?
김영태 ..........
쌍칼 허허, 궁금해지는구먼. (일어난다)
쌍칼이 외투를 걸치고 중절모를 쓴다. 김영태가 문을 열어 주면 밖으로 나선다.
# 31 동 밖
쌍칼이 나오면 일제히 부하들이 허리를 굽힌다. 쌍칼이 끈이 달린 구두를 신고 일어선다.
쌍칼 (하늘을 보며) 거 날씨 한 번 좋구나.
쌍칼이 그렇게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부하들이 그 뒤를 따른다.
# 32 종로 회관 앞 거리
두한이 혼자 걸어오고 있다. 막 종로 회관을 지나쳐 뒷길로 접어들고 있다. 조금씩 긴장하는 듯한, 유태권의 소리가 들려온다.
유태권 (E)천하에는 네가 알지 못하는 무술의 고수가 너무도 많다. 그들을 제압하고 우뚝 서려면 그들에 앞서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하느니라. 명심하거라, 자신을 이겨야 한다.
# 33 종로 회관 그 뒷길
두한이 걸어온다. 그러나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천천히 현관 앞으로 걸어온다. 병수와 삼수가 눈을 꿈뻑해보인다. 안을 가리킨다.
삼수 안으로 들어가십쇼.
두한 ......?
병수 쌍칼 형님께서 먼저 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한 .........
그들의 안내에 따라 두한이 안으로 들어간다.
# 34 동 그곳 일각
정진영과 양코가 몰래 김두한이를 따라왔다. 둘은 허리를 숙이며 건물 한 모퉁이로 가서 현관 쪽을 본다. 거기, 막 쌍칼이 부하들과 함께 들어가고 있다.
양코 진영아, 저기... 두한이가 들어갔어.
정진영 응, 봤어......(마른침을 삼킨다)
# 35 동 쌍칼의 사무실 건물 복도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작은 복도를 지나 안내에 따라 쌍칼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 36 동 사무실 안
두한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쌍칼이 옆모습으로 턱 버티고 앉아있다. 잠시 긴장이 흐른다.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본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단한 풍채의 사내다. 정장에다 머리는 포마드 기름으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다. 그 옆에 김영태가 앉아있다. 상대적으로 두한의 차림은 너무도 초라하다. 계속해 이들은 말이 없다. 그렇게 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쌍칼이 웃기 시작한다.
쌍칼 ...(보다가) 잘 왔다. 반갑구나.
그리고 그대로 단검을 날린다. 그 검은 날아가 두한이 서 있는 등뒤의 문짝 두한의 바로 머리 정수리 위에 정확히 꽂힌다. 두한은 그렇게 흠칫하며 굳어버린다.
쌍칼 하하하.. 내 인사야.
그대로 다시 두 자루의 단검이 사이를 두고 날아가 두한의 양쪽 귀 밑에 정확히 하나씩 다시 꽂힌다. 한치의 여유도 없다. 두한은 그렇게 굳어져 서있다. 쌍칼은 웃으며 마지막 한 자루를 던질 자세를 취하고 있다.
쌍칼 한 자루가 남았어. 네 오장육부, 어느 곳에도 정확히 가서 꽂힐 수가 있지. 내 말이 거짓말 같냐?
두한은 아니라고 약간 고개를 젓는다. 쌍칼이 더 크게 웃으며 마지막 한 자루를 날린다. 그 한 자루가 머리 위 그 칼자루의 손잡이에 다시 가 꽂힌다. 흔들리는 단검에서...